* 오이카와가 배구를 하지 않습니다. (부상은 아닙니다.)

* 세이죠 및 카라스노 캐릭터의 미래 날조, 오이카와 가족설정 날조가 있습니다.

 

 


 

세븐데이즈(Seven Days)

 

 

 

 

 

 

센다이仙台駅 역을 나오면 매미와 빛의 세계였다. 내리쬐는 열기가 지면을 가른다. 드문드문 보이는 나무 어딘가에 달려있을 매미떼는 그칠 줄 모르는 폭풍우처럼 귓가를 가득 메웠다. 얇게 입고 왔다고는 하나 본래 있었던 곳에 비해 여름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아스팔트 바닥이 흡수했던 아지랑이를 분출했다. 카게야마는 검은색 캐리어를 끌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들이마쉬고 내뱉는 한숨이 모두 뜨겁다. 푸르게 빛나는 나뭇잎 사이의 햇빛조차 살을 가를 듯이 날카롭다. 5년 만에 돌아온 일본, 미야기현宮城県은 카게야마의 조각난 기억보다 달랐다.

 

 

 

#1st Day

 

 

 

길고 구불진 길과 곧게 난 주택가를 걸어가다 보면 표지판 역할을 하는 큰 벚나무가 나온다. 벚나무의 왼쪽으로 돌아들어가 다시 걸어가기를 5, 하얀 간판이 달린 빵 가게를 지나카게야마의 기억으로는 7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의 홍삼즙 가게였는데, 지난 5년 사이에 바뀐 모양이었다한 번 더 오른쪽으로 꺾으면 보이는 2층 주택 집. 바뀌지 않았다면 오이카와의 집이었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갈 자신은 없었으나 다행히도 카게야마의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캐리어를 문 근처에 놓아두고 벨을 눌렀다. 이름 팻말은 없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없었다. 카게야마가 기억하기로 오이카와의 집은 오이카와가 있다, 그 외에 생각나는 건 없었다. 카게야마에게 중요한 건 그 하나뿐이었으니, 그의 기억력이 나쁘다며 탓할 수는 없다.

문 너머는 조용했다. 목 뒤로 땀이 흐른다. 한번 멈췄던 매미가 재차 울고 있다. 매미 소리에 맞춰 햇볕이 더욱 열기를 더했다. 이윽고 문 너머에서 .”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

문을 열고 나온 건 한 명의 남자였다. 거품처럼 가볍게 정돈된 홍차 빛 머리카락과 그보다 조금 더 짙은 색의 눈동자, 햇빛 아래에서 더욱 빛나는 흰 피부. 카게야마가아마도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가장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는 오이카와 토오루의 얼굴이었다. 이마와 양 관자놀이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카게야마를 보자마자 오이카와가 한 일은, 열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문을 빛과 같은 속도로 닫는 일이었다. 카게야마 또한 그에 질세라 서둘러 문 사이로 발을 집어넣었다. 문 사이에서 묵직한 소리가 나고 윽, 고통을 참는 신음이 땀으로 젖은 입에서 새어 나왔다. 발목을 부여잡고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고통이 살을 쪼개더니, 이어지는 둔한 통증이 왼쪽 다리 전체를 타고 올라왔다. 오이카와는 문 사이로 냉기 담은 눈동자만 내밀고 싸늘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야.”

휴가를 받았어요. 일주일이요.”

그래서.”

오이카와씨를 보러왔어요.”

본인이 들어도 다급한 말투였다. 말소리 사이로 들리는 매미 소리에 귀가 아프다. 발목이 뜨겁게 불타는 것만 같았다. 이 발을 빼면 오이카와는 문을 닫아걸고 두 번 다시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 카게야마도 바보는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잠시 침묵하더니 한차례 매미 소리가 지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돌아가.”

저랑 얘기해요.”

너랑 할 얘기 없어.”

, 안 치우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중얼거린 뒤 오이카와는 희번득한 눈길로 카게야마를 쳐다봤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냉기를 품은 말투였다.

자를지도 몰라.”

카게야마는 척수를 따라 흐른 생존본능에 의해 저도 모르게 발을 빼고 말았다. 그 순간 문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오싹한 공포 때문에 땀이 온통 식더니 이번엔 식은땀이 스멀거리며 배어 나왔다. 처음 보는 눈동자. 아니, 기억해보면 중학교 때 단 한 번 봤었던. 허나 저런 표정을 짓는 사람이었던가. 근원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눈동자, 잔인한 말은 담은 입술. 카게야마의 안에서 지난 기간의 오이카와가 느린 속도로 흘러갔다. 중학교 시절 처음 만나 이때까지 그를 잊은 적은 없다. 센다이를 떠났던 지난 5년간도 그는 카게야마에게 변하지 않는 존재였다. 카게야마는 5년간의 공백으로 남아있던 오이카와 토오루를 메꿔야만 했다.

카게야마는 닫힌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발을 돌렸다. 등에 녹아있던 식은땀도 증발해버릴 정도로 해가 뜨거웠다.

 

 



 

 

센다이 고향 집으로 가는 길은 익숙했다. 가는 동안 여러 곳을 지나왔지만 카게야마의 기억과 비교해보면 바뀐 곳도 많았다. 기억에 남아있던 카라스노 고등학교는 그대로였다. 시간 탓인지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으나 몇몇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히나타에게 듣기로 남자 배구부는 강호로 남아있었지만 카게야마가 아는 후배는 없었다. 애초에 제 바로 아래 연도의 후배도 기억하고 있는 이름은 적었다. 사카노시타상점 간판은 남아있으나 내부는 비어있다. 우카이 감독은 도쿄에 있는 모 고등학교의 감독으로 채용되어 그곳에서 남자 배구부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 당시 사와무라에게 듣기로 유명한 강호교여서 우카이 감독도 꽤 고민한 후 결정을 내렸다고.

센다이를 떠난 지 5. 24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이탈리아로 떠난 지도 똑같이 5년째다. 소속 팀이 있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지냈던 5년 사이에 바뀐 장소도 많았지만 사람 또한 장소와 동일하게 가변적인 존재였다. 히나타를 비롯하여 사와무라와 아사히가 실업 배구팀에 소속한 건 그렇다 해도 스가와라가 교사가 된 건 카게야마에게 적잖이 충격이었다. 동시에 무척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말아, 당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심 카게야마는 그가 배구 외에 다른 일이 어울릴거라는 생각을 했다는 걸 그때에서야 깨달았다. 키타이치 시절의 사람들을 얘기하자면 이와이즈미는 도쿄도 경시청에 있고, 킨다이치와 쿠니미는 각각 다른 현에 있는 일반 회사에서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센다이에 아는 사람이라곤 이제 오이카와뿐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인사해도 집에는 인기척이 없다. 카게야마는 불을 켜고 캐리어를 안으로 들여놓았다. 5년 전에 떠난 이후로 한 번도 들어간 적 없는 방은 짐이 없다는 걸 제외하곤 침대나 책상 모두 그대로였다. 카게야마가 스카우트 제의를 승낙하고 이탈리아로 떠날 때 부모님도 함께 그쪽 직장을 구해 이동했던지라 센다이에 남아있는 건 빈집이었다. 빈집이라 해도 전기와 수도 모두 멀쩡하다.

노후는 일본에서 보내고 싶어.’

그렇게 말한 부모님의 뜻에 따라 집은 팔지 않고 아직 카게야마가의 소유였으며, 가끔 일본에 돌아오는 어머니가 청소해둔 덕분에 사람이 살 정도의 청결함은 유지하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방 내부를 둘러봤다. 남겨놓은 물건은 하나도 없다. 이탈리아로 떠날 때 웬만한 건 버렸고, 물건에 특별한 감정을 두지 않는 카게야마였기에 들고 간 짐도 무척 간소했다. 그 탓에 5년이 지나 집에 돌아와도 무엇 하나 추억할만한 거리가 없다.

캐리어 짐을 정리하면서 카게야마는 일본으로 돌아오던 날을 떠올렸다. 뜻하지 않은 일주일의 휴가는 갑작스러웠다. 계기 또한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쿠니미 아키라의 거의 1년 반만의 전화. 이탈리아와 일본의 시차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새벽 3시의 전화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했다. 그날은 특히나 고된 연습을 했던 날이어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져 잔 날이었다. 평소라면 그런 날에 핸드폰 벨 소리는 못 들었을 테지만 묘하게도 눈이 떠졌다. 핸드폰 액정에 뜬 이름을 보고 숨을 한번 들이마신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와 통화하는 건 여전히 낯선 일이다.

쿠니미지금 새벽 3시야.”

잠긴 목소리를 열심히 가다듬어도 여전히 알아듣기 힘들 정도다. 핸드폰 너머 상대는 개의치 않는 듯 알아. 그래도 전화한 거야.”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오이카와 선배에 대해서 뭐 들은 거 있어?

없는데…….”

안 그래도 타지 생활에 다른 사람을 신경 쓸 여유는 안타깝게도 없었다. 만약 부모님이 같이 오지 않았더라면 밥은 매일 사 먹기 일쑤고 빨래는 꿈도 못 꿨을 것이다. 카게야마가 아는 오이카와의 소식은 주로 히나타로부터 전해 듣는 내용과 이탈리아 배구잡지에 가끔 나오는 일본 배구 기사가 전부였다. 초기에는 가끔 익숙하지 않은 인터넷으로 오이카와 토오루 이름을 검색해보거나 그의 기사가 실린 잡지를 몇 번이고 봤었다. 최근에는 검색 한 번 해보지 않은 탓인지 이렇다 할 소식을 듣지 못했다. 히나타와 연락이 닿은 지도 반년이 넘었다. 세계적인 대회를 제외하면 일본과 이탈리아 배구의 접점은 찾기 힘들다. 국내대회 시기도 다르니 그의 기사가 보이지 않아도 단지 그러한 시기상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오이카와 선배, 배구 그만뒀어.

…….”

배구 그만뒀어.’

나도 이와이즈미 선배한테 들은 거야. 아버지가 돌아가셨대.

…….”

아버지.

자세히는 모르겠어. 오이카와 선배 아버지가 미야기에 있는 건설회사 사장님이셨는데, 대대로 오이카와 가문 회사였나 봐. 오이카와 선배가 실업팀에서 활동하면서 국가 대표 선발 시합 준비하고 있던 건 알지? 도쿄에 있다가 임종도 못 지키고 가셨나 봐. 알고 보니 몇 년 전부터 지병이 있었다던데, 그걸 오이카와 선배가 알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

들려오는 목소리가 우묵하게 퍼졌다. 마치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귀가 가득 차서 쿠니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집중해서 들으려 해도 자꾸만 귓바퀴 뒤로 스쳐 지나가서 카게야마는 핸드폰을 더욱 귀에 가까이 댔다. 보글거리는 소리가 목소리에 스며들어 카게야마를 방해했다. 배구 그만뒀어. 그 말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흐릿하기만 하다.

실업팀에서 나오고 배구도 집도 정리하고 센다이로 돌아갔어. 건설회사는 안그래도 요 몇 년간 경영난이 있어서 그냥 팔고, 회사 취직하신다고.

.”

쿠니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목소리가 변했다. 카게야마, 힘주어 말하는 쿠니미의 목소리는 사망 선고를 내리는 의사처럼 단호했고 사형을 언도하는 재판관처럼 무거웠다. 새어드는 달빛보다 싸늘한 말이 귓속을 찔렀다.

오이카와 선배는 이제 평생 배구를 안 할 거야.

국가대표가 되지도 않을 거야. 회사원이 될 거야. 나 같은.

오이카와가 배구를 하지 않는다. 오이카와의 삶에서 배구는 사라지고, 그는 다른 길을 걸어간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떠올렸다. 고등학교 시절 아오바죠사이와 카라스노의 경기가 끝나고 그가 했던 말과 함께.

이걸로 11패야. 너무 우쭐대지 마.”

오이카와가 졸업하고 도쿄로 가는 날 들었던 말과 함께.

따라오지 마, 바보 토비오쨩.”

그는 웃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눈가를 구부리고 벚꽃잎이 싸르라기 눈처럼 흩어지는 날에 오이카와는 등을 돌리고 떠났다.

카게야마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다가 새벽빛이 밝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익숙한 거리를 따라 아침 로드워크를 다녀온 후 바로 소속팀 감독에게 전화했다. 다짜고짜 일주일 휴가를 달라고 떼를 쓰니 무어라 쓴소리를 강하게 들었지만 완강하게 고집하자 지금까지 못 받은라기보다 안 받은휴가를 전부 포함해서 받은 걸로 합의를 내렸다. 센다이로 가겠다고 하자 도대체 왜?’라고 당연하게도 부모님이 물었으나 이렇다 할 대답을 찾기 힘들었다. 오이카와 때문에? 와달라고 하지도 않은 그의 이름을 댈 정도로 카게야마는 뻔뻔하지 못했다. 사실 센다이에 돌아온 근본적인 이유를 말하라면 카게야마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왜 돌아온 걸까? 오이카와와 다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 욕구의 이유도 찾지 못한 채 무작정 오른 일본행 비행기에서 카게야마는 몇 번이고 오이카와를 생각했다. 제 안에 녹아있는 오이카와는 생각 이상으로 농도가 짙었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떠오를 정도로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기억하고있었다.

카게야마는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끼며 조심스레 양말을 벗었다. 언뜻 보기에도 불그스름하게 퉁퉁 부어있다. , 짧게 혀를 차고 대충 찬물에 적신 수건을 대었다. 병원은 내일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예전에 딱 한 번 가본 정형외과 의원의 위치를 떠올리고자 노력했다. 침대에 조심스레 눕자 묵은 이불 냄새가 난다.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이불까지 깨끗이 빨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불이 남아있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눈을 감고 조금 전의 오이카와의 모습을 떠올렸다. 차가웠던 눈동자와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목소리.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저는. 확실하진 않아도 오이카와와 이야기를 나누면 해결될 것이다. 불편하게 내려앉은 응어리도, 쿠니미와 통화한 후부터 부연 머릿속도 전부. 카게야마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저가 일본으로 돌아온 이유 중 가장 뚜렷하고 절망적인 이유를 하나 대라면, 다만 오이카와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짙은 남색으로 물든 하늘에서 붉은빛을 쏘는 태양은 달과 위치를 바꾸고 있었다. 보랏빛으로 빛나며 움푹 팬 반달이 뜨고 있다. 12시간이 소요된 비행은 5년 전보다도 힘겨웠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고문이 중세 시대 존재했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수마(睡魔)에 잠식되는 눈꺼풀을 닫으면서, 카게야마는 멀리서 매미 소리가 잦아드는 걸 느꼈다. 지금쯤 카라스노 고등학교 뒷산에는 반딧불이가 풀 사이로 빠져나와 꼬리를 빛낼 준비를 하고 있겠지.

생각해보니, 오이카와가 좋아하는 건 우유빵이었다. 잠들기 전 누구나 흔히 그렇듯 쓸데없는 상념을 되풀이하면서 카게야마는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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