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데이즈(Seven Days)

 

 




 

부상 때문에 로드워크를 하지 못하는 건 무척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못했던 게 언제였을까. 1년 전, 작년 9월 즈음 유럽 챔피언십 결승전이 끝나고였나. 무리하게 리시브한 공을 바로 토스로 연결하느라 발을 접질린 게 원인이었다. 가벼운 염좌기도 했고 결승전이 끝나고 난 뒤라 적당히 쉬면 괜찮으리라 생각했지만,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완전히 나을 때까지 2주일 동안 카게야마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가 얼마나 불만스럽게 동료들의 연습을 지켜봤을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염좌는 한 번 일어나면 두 번, 세 번 연달아 일어나기 쉽다고 그 당시 단단히 주의받았다. 그 뒤로는 카게야마도 발목에 특히나 주의를 기울였으나, 이건 불가항력이다. 적어도 카게야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야야…….”

발목이 휘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 쓰면서 카게야마는 옷을 챙겨입었다. 시간은 오전 930. 미야기에서는 아무리 일찍 여는 의원도 10시부터다. 평소 습관대로 눈을 뜬 건 오전 7시 전후였으나, 그때부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축내는 건 카게야마를 괴롭게 했다. 대충 아침을 챙겨 먹은 후 씻고 나오면 발목은 전날 밤보다 더욱 부어 있었다. 효모를 넣은 빵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발목 한 부위도 붉게 달아올라 발목을 돌리면 찌릿한 통증을 자아냈다. 통증이 박동처럼 퍼질 때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떠올렸다. 서늘한 눈동자, 날카롭게 벼린 칼처럼 카게야마의 귀를 난도질하던 낮은 목소리. 지금의 이 통증은 바로 그 오이카와가 선사한 것이었다. 배구를 그만둔 오이카와, 미야기로 돌아온 오이카와.

카게야마는 지갑을 챙겼다. 발 한쪽을 절뚝이면서 문을 나서면 이탈리아의 여름처럼 눈 부신 태양이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 적어도 이탈리아는 이 정도로 매미가 많지는 않다. 대지를 뒤덮은 것이 태양이라면, 열기로 덥힌 공기를 진동시키는 건 수를 가늠하기 힘든 매미였다. 집에서 겨우 두 발자국 뗐을 뿐인데 목 뒤로 엷게 땀이 배어 나왔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매미의 무거운 폭음(爆音)이 카게야마를 짓누른다. 마치 미야기의 여름이, 미야기 땅이 카게야마를 거부하는 것만 같다. 5년 전에는 이곳이 저의 땅이고 제가 숨 쉬는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그의 흐릿한 기억처럼 풍화되었다. 카게야마가 살던 집이 있고, 카라스노 고등학교가 있고, 사카노시타 상점이 있었으나 미야기는 과거의 잔해와 함께 카게야마를 밀어냈다. 카게야마는 다시금 오이카와를 떠올렸다.

돌아가.’

돌아가라던 그의 말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옮긴다. 미야기 안에서 카게야마를 기억하는 유일한 존재인 오이카와가 저를 밀어낸다 해도, 카게야마는 가야 했다. 발목의 통증이 심해졌다. 오이카와를 선명하게 떠올릴수록 통증이 날카로워졌다.

 

 

#2nd day

 

 

오래 입은 듯 빛바랜 백의를 입은 의사가 컴퓨터 화면에 X-ray 사진을 띄웠다. 정면에서 찍은 것, 옆에서 찍은 것 총 두 개였다. 얇게 뻗은 하얀색 뼈대가 검은 바탕 속에 선명하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네요.”

그렇게 말해도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웃할 뿐이다. 의사가 대답을 원하는 듯 미소지으며 바라봤기에 조금 끄덕였다.

그런가요.”

붕대를 감아드릴테니 나흘 뒤에 교환하러 오세요. 많이 아프시면 진통 주사를 좀 놔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의사는 그래요? 의외라는 듯 반문한 뒤 눈을 가늘게 뜨고 카게야마의 발목을 주의 깊게 바라봤다. 노르스름한 피부에 붉게 자리 잡은 부위는 오목하니 부어있다.

그나저나 어디 세게 부딪치셨어요? 웬만하면 이 정도는 안 되는데. 인대가 안 찢어진 게 다행이네요.”

.”

운동하신다면서요, 몸을 좀 더 소중히 여겨주세요. 특히 염좌는 재발하기 쉬우니까. 한 번 멀어진 관계는 수복하기 힘든 것처럼요.”

.”

의사로서는 드문 비유다. 카게야마는 멀어진 관계라는 표현에 어쩔 수 없이 오이카와를 떠올리고 만다. 오늘만도 벌써 그를 생각한 지 여러 번이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옆에 서 있던 간호사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렸다. 의사와 비슷할 정도로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간호사가 볼록 튀어나온 볼살을 동그랗게 모으며 웃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 * *

  


 

붕대로 꽉 죄인 발목은 쉽게 구부러지지 않았다. 간호사는 목발 대여를 권했으나 카게야마는 고개를 가로젓고 의원을 나왔다. 붕대를 감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흘러 햇빛이 기세를 떨치는 오후였다. 카게야마는 드문드문 이어진 나무 그늘로 걸었다. 여름 바람이 푸르고 창창한 잎사귀를 건드리자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시원한 소리가 났다. 아무리 배구 이외의 영역에서 기억력이 안 좋은 카게야마라 해도 한 번 가봤던 길을그것도 몸이 기억하고 있던 길을잊지는 않았다. 벚나무 왼쪽으로 들어간 후 하얀 간판의 빵 가게를 보고 카게야마는 멈춰 섰다. 전날 밤 아무 이유 없이 떠오른 상념 때문이었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좋아하는 음식은 우유빵.

우유빵이 있을까. 오이카와가 좋아하는 맛일까. 혹시 그가 좋아하는 우유빵과 다른 빵이면 어쩌지. 혹은, 어쩌면입맛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카게야마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반숙 달걀을 얹은 돼지고기 카레를 좋아하지만 오이카와는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이었으니. 중학교 때 언뜻 전해 들은 우유빵에서 다른 음식으로 바뀌었을지도 몰랐다. 카게야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설령 그렇다 해도 카게야마가 아는 건 우유빵 하나뿐이다. 고민할 여지조차 없었다. 붕대를 감은 발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면서 ‘OPEN’ 팻말이 달린 하얀 목재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곱게 구운 밀가루의 향기와 달콤한 우유 향이 미미하게 풍겨온다. 가게 안은 크게 3개의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하나는 케이크를 넣어둔 냉장고, 나머지 두 개는 크림빵 종류가 있는 선반과 크루아상 종류가 있는 선반이었다. 잔머리 한 올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빈틈없이 머리를 묶어 올린 여성 한 명이 웃는 낯으로 카게야마를 반겼다. 계산대 옆 공간은 빵 굽는 과정을 밖에서 바라볼 수 있게 유리로 되어있었다.

우유빵 있나요?”

지금 곧 나올 거예요. 만들어진 건 있는데, 혹시 새로 나온 걸로 가져가실 건가요?”

뭐가 더 맛있나요?”

아무래도 새로 만들어진 거죠.”

그럼 그걸로 주세요.”

,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여성은 계산대와 연결된 빵 굽는 쪽을 바라보며 우유빵 얼마나 걸려요?’ 물었고 그 안에선 곧 있으면요.’ 대답이 들려왔다. 여성은 대화 내용대로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선반에 놓인 빵들을 바라봤다. 카게야마가 아는 단팥빵부터 시작해서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브리오슈까지. 아무래도 이탈리아에서 살다 보니 5년간 빵도 꽤 먹어보았으며 적어도 바게트와 크루아상을 구분할 수준까지는 되었다. 그렇다 해도 빵과 밥,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카게야마는 단연 밥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카레와 먹기에는 밥이 더 편했기 때문이다.

노릇하게 구워진 빵은 황토색을 띠는 것도 있었고 옅은 노란색부터 황금색까지 무척 다양했다. 그 위에 하얀 가루가 뿌려진 빵은 설탕 내음을 뿜었다. 카게야마는 벽면에 마련된 좌석을 바라보다가 그 바깥에 흐드러진 큰 나무로 시선을 옮겼다. 가지 사이사이에 촘촘하게 달라붙은 푸른 잎을 보이지 않는 햇빛이 쓰다듬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햇빛은 존재했고, 나뭇잎이 그 존재의 증인이 되었다.

손님, 우유빵 나왔습니다.”

, .”

다시 계산대 쪽으로 걸어가자 하얀 김을 피우는 우유빵이 가득했다. 안쪽으로 휘감긴 빵 모양이 독특하다.

몇 개 드릴까요? 방금 만들어서 제일 맛있을 거예요.”

“10개 주세요.”

?”

여성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갸웃했다. 우유빵을 담으려던 손이 멈칫한다.

“10개 주세요.”

…….”

 

 

* * *

  


 

작은 빵이어도 10개는 확실히 조금 무겁다. 카게야마는 붕대를 감지 않은 쪽으로 우유빵 봉지를 들고 절뚝이며 걸어갔다.

만든 지 얼마 안 돼서 뜨거우니까 비닐에 안 넣고 종이 봉지에 넣어드릴게요.’

그렇게 말한 여성은 정사각형 종이로 우유빵 10개를 각각 감싼 뒤 큰 비닐봉지에 넣었다. 카게야마는 이마에 벌써 흐르기 시작한 땀방울을 천천히 닦아냈다. 매미 소리가 더위를 부추겼다. 5년 동안 이탈리아의 여름에 익숙해진 몸은 눅눅한 습기와 찐득한 공기로 뒤덮인 일본의 여름이 버거웠다.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둔한 불편감이 붕대 안쪽에서 저릿했으나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다. 카게야마는 우유빵 봉지에서 스며 나오는 온기로 손이 노곤하게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골목길을 꺾었다. 보이는 2층 주택 집 앞에까지 온 다음에야 카게야마는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폐 속의 더운 공기를 내보내도 들어오는 건 똑같이 뜨거운 공기였다.

딩동전날과 마찬가지로 벨을 한번 눌렀다. 어제와 같이 문 너머는 조용했다. 카게야마는 조용히 기다렸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오이카와가 집을 비울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집에 있을 거라는 직감을 느꼈다. 오이카와는 문 너머에서, 카게야마라는 걸 알고서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는 거라고. 항상 그의 생각을 추론할 때도 그랬듯이 뚜렷한 근거는 없다. 단지 카게야마가 아는 오이카와라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오이카와씨.”

문 너머에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다시 한번 숨을 고른 뒤 우유빵 봉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웃긴 행동이었다. 오이카와에게는 보이지도 않을 텐데.

우유빵 사 왔어요.”

방금 만든 거예요. 방금 만든 게 가장 맛있대요.”

…….”

대답은 없었다. 어쩌면 정말 집에 없는 걸지도 모른다. 앞서 생각했듯 그가 집에 있다는 건 순전히 카게야마의 근거 없는 느낌에 불과했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맛있을 때 그가 먹었으면 좋겠다. 아쉬운 건 그것 때문이었다.

두고 갈게요.”

카게야마가 문고리에 우유빵 봉지를 걸어놓으려고 다른 한쪽 손을 마저 든 순간전날 문이 닫혔을 때와 똑같이 무서운 속도로 꽉 닫혔던 공간이 열렸다. 갈귀처럼 튀어나온 흰 손이 카게야마가 들어 올린 손을 낚아챘다. 카게야마가 입 밖으로 소리를 내기도 전에 다시 닫힌 문 안쪽에서, 강한 충격이 등과 머리를 가격했다. 문이 떨리면서 세게 울린 마찰음 뒤로 이어진 건 극심한 통증이었다. 카게야마는 시야가 흔들릴 정도로 세게 부딪친 뒤통수를 문지르고 싶었으나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불 꺼진 공간에서 검은 그림자가 카게야마의 가슴과 목 바로 아래 부근에 내려앉았다. 폐 속에 남아있던 숨을 내뱉은 카게야마는 그림자의 허벅지가 내리누르는 압박 탓에 원하는 만큼 가슴이 움직이지 않았다. 좁아진 기도로 들어오는 건 색색이는 목소리뿐이다. 답답한 심장이 떨리면서 심장 박동이 거세졌다. 좀 전의 충격 때문에 흐릿한 시야로 그림자를 쳐다보면, 오이카와의 두 눈동자만이 검은 공간 안에서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딱 붙는 청바지를 입은 허벅지로 카게야마를 잡아 눌렀다. 전력질주로 산을 올랐을 때보다 폐가 조여왔다.

.”

오이카와는 사방의 벽이 진동할 정도로 낮은 목소리를 냈다. 평소 그의 말투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였다.

어떻게 하려고? 나를 비웃으려고?”

무표정했던 얼굴이 몇 번 움직이더니 입꼬리가 기묘하게 올라갔고, 그는 미소 지었다. 일그러진 눈동자, 미소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뒤틀린 입술로 오이카와는 웃어 보였다.

잘난 카게야마 토비오씨가 여기 와서 뭘 어쩌려고?”

, 이카와,”

원하지 않아도 목소리가 끊어졌다. 성대를 움직이려 하면 그의 아래에 눌린 폐가 찔린 듯이 괴롭다. 숨을 내쉬면서 겨우겨우 이름을 부르면 오이카와는 웃음을 거뒀다. 카게야마의 손을 낚아챘던 손으로 오이카와는 이번엔 검은 머리카락을 휘어잡았다. 앞머리에서 이어지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기세다. 짧은 머리카락을 다섯 손가락 가득 쥐고 피부에서 뜯어낼 것처럼 잡아당긴 채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에게로 다가왔다. 이마가 닿을 듯이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 본 오이카와의 피부는 희고 건조했다.

오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토비오쨩, 너무 멍청해서 일본어도 못 알아듣게 된 거야?”

……오이, 카와

말해, 토비오. 왜 오는 거야.”

……오이카와 씨,”

입술을 둥글게 만들고 목소리를 내려고 하면 그의 체중이 오롯이 느껴진다. 그 또한 지독한 통증이 되어 카게야마의 목울대를 갉아먹었다. 말해야만 한다, 카게야마는 하얗게 의식이 새는 도중에도 한껏 숨을 들이마셨다.

우유빵…… 지금 먹어야, 맛있대요…….”

……….”

오이카와는 기분 나쁜 말을 들은 것처럼 안 좋은 표정을 짓더니 카게야마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던졌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에게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청바지의 꺼끌한 감촉이 가슴에서 사라졌다. 급격히 들어오는 산소에 절로 기침이 나온다. 목 졸린 사람처럼 목을 붙잡고 헐떡이는 기침을 몇 번 한 뒤에야 카게야마는 일어날 수 있었다. 붕대로 감싼 발을 절뚝이며 일어나자 오이카와가 붕대를 흘겨봤다. 금세 고개를 돌리고 비웃듯이 이마를 찌푸린다.

우유빵이라고?”

. 여기요. 몇 개 사야 할지 몰라서 10개 정도 사 왔어요. 맛있으시면 더 사올게요.”

오이카와는 시선만 아래로 내리고 카게야마가 건네는 봉지를 쳐다봤다. 카게야마의 손을 잡고 카게야마의 머리를 쥐어뜯던 손이 이번에는 봉지를 건네받으려 하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제 손에 들려있던 우유빵 봉지를 오이카와 쪽으로 조심스레 건네려고 했다. 그 순간, 오이카와의 손이 봉지를 든 카게야마의 손을 튿어내며 우유빵 봉지를 채간 뒤 문을 열어 멀리 던졌다. 카게야마는 어두웠던 방 안에 가득 찬 태양 빛에 눈을 찌푸리며 날아가는 봉지를 바라봤다. 마치 슬로 모션과 같다. 불투명한 봉지는 햇빛을 받아 오색빛깔의 스펙트럼을 빛냈고, 봉지가 천천히 회전하며 우유빵이 하나둘 흩어져 나온다. 보드라운 갈색의 빵 사이 우유 크림이 태양 빛에 빛난다. 찢어진 구름과 청색 하늘, 매미 소리 진동하는 대기 속에서 우유빵이 후두둑 떨어졌다. 하늘 어딘가를 날던 비둘기와 까마귀가 우유빵으로 날아들었다. 매미 소리를 압도하는 괴성을 지르며 그들은 땅에 떨어진 우유빵 조각에 얼굴을 처박고 쪼아댔다. 보이는 건 새의 머리뿐이다.

카게야마는 조금 전 일어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눈을 크게 뜨고 잠시 멈춰서 있었다. 빛이 비추는 오이카와의 얼굴은 카게야마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우유빵을 잡아챘던 손이 카게야마의 멱살을 잡고 비틀었다. 눈이 튀어 나올 것만 같이 목이 조여왔다.

잘 들어, 토비오.”

오이카와의 홍차 빛 눈동자가 위험한 빛깔로 빛났다. 태양이 더위에 녹아내리면 나타나는 아지랑이처럼 흔들거린다.

내건 내가 사. 두 번 다시 그 얼굴, 그 표정으로 오지 마.”

카게야마의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카게야마는 답답한 숨을 얕게 내뱉으며 오이카와의 타오르는 눈동자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잠시 말하기 어려운 듯 시선을 내렸다. 이내 그는 비릿하게 웃었다. 한쪽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올린 오이카와는 찢어진 초상화 같다.

다시 오면 죽여버릴지도 몰라.”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내던지듯 밖으로 밀어붙이고 문을 다시 닫았다. 닫힌 문 너머는 조용하다. 갑자기 해방되어 벌떡이는 심장과 폐에 찌릿한 통증이 퍼졌다. 카게야마는 마지막으로 바라봤던 오이카와의 형형하게 빛나는 홍차빛 눈동자를 떠올렸다. 그의 몸에 짓눌렸다가 억지로 밀쳐진 다리가 욱신거렸다.

카게야마는 비틀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널브러진 우유빵 쪽으로 걸어가 엉망이 된 빵을 봉지에 하나둘 집어넣었다. 바닥에 눌어붙은 크림이 손에 묻는다. 직선으로 내리쬐는 햇볕에 벌써 크림은 지방층이 분리되어 기름이 번득이고 있었다. 손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아, 카게야마는 눈 사이를 찌푸렸다. 우유빵을 담는 손등이 붉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에게서 봉지를 채갈 때 그의 손에 만든 생채기였다. 핏방울이 몽울몽울 맺혀있던 흔적이 이제는 굳어있다.

발목도 손등도 그가 남긴 흔적투성이였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에게 남긴 건 통증뿐인데도, 카게야마는 통증조차 버거울 정도로 오이카와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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