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이카게인데 오이카게다운 내용이 안 나옵니다.
* 카게야마 어머니가 주인공.
* 재미없음, 지루함 주의
(제 기준으로 긴 글. 길어요!!)
 







[오이카게] 우리 아이의 애인은 배구부 주장








 아오바죠사이 고교. 이 좁은 미야기현에서, 그 고등학교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적다. 시라토리자와와 더불어 배구 강호로 유명한 그 학교는 언제나 여름만 되면 미야기현의 배구 팬들을 불태웠다. 그저 고교 배구 아냐? 라고 우습게 여기는 사람도 한번 그 경기를 보면, 그 고교의 이름을 잊을 수 없게 된다. 특히 지역 TV에도 나온, 아오바죠사이 고교 배구부 주장 오이카와씨네 아들 오이카와 토오루는 더더욱.

 수려한 용모에 184를 넘는 키, 갖춰진 몸에 배구부 주장이라는 리더십까지. 덕분에 바로 옆에서 꺄악꺄악하는 소녀들처럼 나설 수는 없지만, 뒤편에서 그에 대한 얘기로 꽃을 피우는 것은 이제 한 아이의 엄마인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미야기현에 이사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나도, ‘오이카와씨 댁네 아들’에 대한 얘기는 벌써 많이 들었었다. 듣자하니 어릴 적부터 유명인사였다고. 꽤나 동네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란 것 같았다. 오이카와씨네 가족은 그다지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지금도 오이카와 토오루를 제외한 그 가족에 대해선 의문이 가득이지만.

 어찌됐든 이제 갓 중학교 입학생인 아들을 데리고 이사온 미야기현 안에서- 주변 어머니들과 나눈 대화에서 ‘오이카와 토오루’는 일종의 지역 아이돌이란 느낌을 받을 정도로. 헤에, 그런 아이도 있구나. 정도의 느낌뿐이었지만 확실히 그 이름은 뇌리에 새겨졌다.

 

 

 그래서 겨울, 하나뿐인 아들의 중학교 1학년 생활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 아들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좋아하는 사람?”

  “응.”
 

 저녁밥을 먹으며, 약간 볼을 홍조로 물들이고- 평소의 감정 표현이 서툴렀던 아들에게서 보기 힘든 그 모습을 봤을 때. 드디어 이 아이에게도!! 라는 생각이 들어 이상하게 대견함이 마음속에 퍼졌다.

 하나뿐인 아들, 카게야마 토비오는 엄마인 내 입으로 말하기도 참 뭐하지만. 감정 표현이 서툴고 그저 배구밖에 모르는 아이였다. 얼굴은 꽤 귀엽고, 나중에 크면 여자애들도 여럿 울릴 것 같은데. 초등학교 2학년, 처음으로 데려갔던 어린이 배구 교실에서 배구를 접한 이후로 아들의 마음에는 오직 배구 한 길 뿐이었다. 담당 선생님이 흥분하며 ‘이 아이는 천재에요. 꼭 배구를 시키세요, 어머님.’ 이라고 말했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괜찮을까? 정말로, 괜찮을까? 천재라는 이유로 배구를 시키는 게 과연 이 아이의 행복이 될까? 스포츠 세계는 쉽지 않다. 어릴 적 신동이라는 이유로 동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던 운동 선수 얘기를 TV에서 볼 때마다 그런 걱정은 커갔다. 하지만 배구공을 만질 때마다 토비오의 무뚝뚝했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누가 봐도 즐거운 듯이 배구를 하는 토비오에게서 배구를 뺏을 수는 없었다. 이미 이루어진 운명적인(?) 만남에는 엄마인 나조차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그 이후로, 아들의 세계는 배구 일색이다.

 


 그랬던 아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엄마로서는 기쁠 수밖에 없었다. 아, 이 아이가 잘 크고 있구나. 그런 마음이 드는 동시에 여러 가지 조급한 마음도 들었다. 첫사랑은 흔히들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조그만, 배구밖에 모르는 아이가 받을 아픔이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나도 참 과보호인 엄마구나. 조심, 또 조심.

 그래서 일부러 관심있게, 그러나 너무 과도한 관심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가볍게 내뱉었다.

 


  “그래? 잘됐네. 어떤 사람이야?”

  “우리 부 주장. 배구, 엄청 능숙한 사람이야.”

  “...배구부 주장?”

  “응. 오늘, 고백했더니 그럼 사귀자고.”

  “....”

 

 

 마치 잘 익은 사과처럼, 그 하얗던 얼굴이 스르륵 붉어지는 건 무엇보다 귀엽지만. 토비오의 말을 잘 이해할 수가 없다. 배구부, 주장? 배구가 엄청 능숙한 사람? 분명 배구는- 으음, 남녀 별개이다. 그리고 토비오가 다니는 중학교는..



  “음... 여자 배구부 주장?”

  “...? 아니? 여자 배구부는 따로 있는데?”

  “...?”

 

 아들과의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다. 토비오가 다니는 중학교에서, 여자 배구부가 따로 있다면. 그리고, 아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배구부 주장이고, 배구가 능숙하고- 그런데 여자 배구부는 아니고. 그렇다면, 그렇다면.

 

 순간적으로 머릿 속에 지역 아이돌의 얼굴이 훅 지나갔다. 분명, 그 아이도 키타이치 중학교였다.

 

 

  “...‘오이카와 토오루’?”

  “..! 어떻게 알아?”

 


 아들의 얼굴이 생전 처음보는 당혹으로 물들었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기뻐 보인다. 그 눈동자가 반짝반짝 거리며 검은 눈동자 안에 별들이 가득 빛났다. 이미 발그레 한 볼이, 눈가까지 붉게 물들이며 더욱 붉어졌다.

  놀랐다. 까만 눈동자 안에, 잔뜩 기대와 당혹을 담고서. 아들이 그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이었다. 항상 말주변이 없고, 감정표현은 서툰, 그래도 제대로 기뻐하고 슬퍼하고 낙담할 줄 아는. 하지만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이었다. 얼마나, 좋아하면. 얼마나 기뻤으면-
  오이카와씨 댁네 아들은, 어떻게 아들에게 저런 표정을 짓게 하는걸까.

   "근데...음-... 사귄다고?"
   "응. '우리 오늘부터 연인이야, 토비오쨩' 이라고 했어."
   "...."


  머리가 어질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토비오는, 그것이 이상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그저 기쁜 마음에 나에게 말했다고 생각한다. 그저, 처음으로 좋아한 상대와, 처음으로 사귀게 되고- 그게 남자인 것과는 상관없이. 좋아하는 '오이카와 선배'와 사귀게 되어서, 그게 기쁘고 기뻐서.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눈앞에서 부끄러운듯 고개를 숙이고 미소짓는 아들을 보며 마주 웃어줄 수 없었다.
그 선배는 남자잖아? 토비오도 남자고- 남자랑 남자가 사귄다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는 건 쉬웠다. 아니, 그렇게 말해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였을지도 모른다. 아직 어린 마음의 미숙한 사랑을 착각으로 치부하고, 그 마음을 짓뭉개서- '정상'을 강요하는 것이 옳았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과연 이 아이의 행복일까? 처음 배구를 시킬 때 들었던 고민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그 때도 이런 고민을 했었다. 어쩌면, 토비오. 배구를 하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평범한 남자애, 땀냄새가 나는 동아리 선배가 아닌- 꽃향기가 나는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평범한 남자애로 너를 키우는게 옳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나는. 평소에는 삐죽 내밀며 불만을 표시하는 그 입술이- 부드럽게 올라가며 미소짓는게 보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네가 행복하다면.
  자식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그 어떤 길을 택하든 난 네 편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게 부모 아닐까. 그 어떤 감정이라도, 토비오가 행복하다면.

 난 받아들여줄 수 있으니까.


   "응. 좋아하는 사람이랑 사귀다니, 좋겠네. 토비오."
   "....응."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했지만 그래도 제대로 고개를 끄덕이는 너를 보며 나는 겨우 웃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서와, 오늘 저녁도 먹고 갈거니?"
   "네. 매번 감사합니다."
   "토오루는 맛있게 먹어주니까 좋아. 토비오는 매번 물어봐야 대답해주니까. 정말, 내가 생각해도 무뚝뚝한 아들이야."

  토비오는 또 입을 삐죽 내밀며 미간을 좁혔다. 정말이지, 저 버릇 고쳤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저것도 저 아이 나름대로의 감정표현이라고 생각하면, 토비오도 의외로 표정이 다양하다는 걸 알게된다.

  토비오는 오이카와와의 관계를 나에게 말한 것에 대해서 조금 쓴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조금 걱정스런 표정으로,

   "엄마. 오이카와 선배랑 사귀는 걸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건, 나쁜 일이야?"

  라고 물어왔으니까. 그에 대해서는, 음. 조금 고민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하나 뿐이었다.

   "다른 사람한텐 비밀로 하는게 좋지 않을까? 사귄다는 건 두 사람만의 약속이니까."
   "...하지만 엄마한텐.."

  이미 말했는데. 끝까지 말하지 못 한 토비오의 입술이 삐죽 튀어 나왔다. 아직 말랑말랑한 얼굴근육을 구기며, 미간을 좁힌 토비오를 보며.
  이 아이가, 그 관계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순간적인 기쁨으로 나에게 말해버린 걸, 후회할 정도로.
  그정도로 소중히 여길 사람이 생겼다는 게 기쁜 동시에, 벌써 엄마에게 비밀이 생길 나이구나. 그런 마음도 들어 웃음이 나오면서도 심장 한쪽이 욱신거렸다.


   "그럼, 엄마가 비밀 알아버린 사과로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다음에 오이카와 선배도 데리고 와."
   "...괜찮을까?"
   "응. 엄마가 꼭 왔음 좋겠다고 했다고, 오이카와 선배한테 말하면 올거야."
   "....응."

  자신도 옳다고 생각하면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 그것은 토비오의 좋은 습관이었다. 입술을 내밀거나, 미간을 좁히거나, 가끔 혀를 차거나- 고쳤으면 하는 습관은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솔직한 아이로 자란 것에는 항상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이카와 토오루라고 합니다."
 
  동네 애엄마 모임에서 항상 빠짐없는 주제였던, 그리고 토비오에게 대단하다고 전해 들었던 바로 그 오이카와씨 댁네 아들은.
분명 수려한 외모에 각잡힌 몸, 그리고 어린아이라고 보기 힘든 갖춰진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게 말할 때 약간 떨리는 손이, 아- 이 애도 그냥 중학교 남자애구나. 둘의 관계를 알고 있는, 자신이 좋아하는 토비오의 엄마인 나를 보며 무서워하고 있구나. 그 관계가 깨어질까봐.
  그렇게 생각하니, 참 이상했다. 그때까지 아무리 떨쳐내려해도 떨어지지 않던, 마음 한구석에 응어리져 가라앉아있던 걱정들이 모두. 가루가 되어 사르륵 모래와 같이 바람에 나부껴 사라졌다.

  이 아이도 제대로 토비오를 좋아하고 있구나. 이 아이들의 사랑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어리숙한게 아니구나. 그런 마음이 들어서, 어쩐지 눈가가 뜨거워졌다. 토비오를 위해 한 선택이 잘못된게 아니야, 라고 토오루의 떨리는 손이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어서오렴. 저녁, 카레인데 괜찮니?"

  뜨거워진 눈가를 애써 억누르며, 떨리는 말투를 애써 밝은 목소리로 가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말하니 토오루는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그래도 그 호박빛의 예쁜 눈동자로 똑바로 나를 바라보면서.

   "네. 카레, 좋아해요."


  그 뒤로는 토오루도 가끔씩 놀러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집에 들어올 때마다 떨리던 손이, 어느새 떨림이 멈추고 자연스럽게 토비오의 손을 맞잡고 들어오기까지. 천천히, 그래도 확실히 토오루에게 신뢰를 주었다는 느낌이 들어 그 무엇보다도 기뻤다.

  받아들여줬구나, 나를.
  너희가 그 어떤 모습으로 있든지, 토비오가 행복할 수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수긍할 수 있는 나를.




  그 뒤로 중학교 기간을 거치며 토비오는 여러가지로 힘든 시기를 겪은 것 같았다. 나름대로 상처도 받고, 또 슬프기도 하고, 가슴아픈 일도 있었으리라.
  그래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똑같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네편이야, 토비오.
  세상 모든 사람이 너를 비난하고, 네 적이 된다고 해도.
  나는, 나 만큼은. 언제나 네 옆에 있을게.




  아이는 커간다. 부모 마음을 모르던 아이는 어느새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이제는 자신과 자신의 연인이 어떻게 보일지도 안다. 그리고 그 관계가 세상에서 말하는 '정상이 아닌' 관계라는 것도 안다. 그리고- 그걸 중학교 1학년 때 뭣도 모르고 나에게 말해버린 자신이 바보같다는 것도.
  그래도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도 그렇게, 너에게 카레를 만들어주고.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묻는다.

   "오늘 토오루 오는 날이지? 저녁, 카레로 괜찮아?"

  그렇게 말하면 너는 조금 쑥스러운 듯이, 그래도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 -응. 카레, 좋아."



  그 얼굴이 평소와 똑같이 무뚝뚝해 보이지만, 그 눈가가 슬며시 붉어진 걸 이제는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입가가 평소보다 조금 더 느슨해진 것도.


  그러면 나는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미소짓는다.
  오늘도 행복하구나, 토비오.
  오늘도 너는, 내 하나뿐인 자랑스런 아들로 잘 크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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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야마에 대한 모성애가 마구 솟구쳐서 쓴 글입니다. 그냥
사랑해. 항상 행복하면 좋겠어. 이 말을 해주고 싶다고 떠올리며 썼습니다.
오이카게라고 하기 참 부끄러운 글이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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