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게 '특별한 날'


 



카게야마 토비오라고 합니다.”

 

오이카와는 눈을 떴다. 오랜만에 꾸는 꿈이었다. 매일 2시간에서 3시간정도의 쪽잠을 자는게 습관이 된 탓인지, 꿈을 꾸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나마 가끔 꿈을 꾸면 이미 국화꽃 아래에 누워있는 자들과의 소름끼칠만큼 선명한 기억만 뚝뚝 끊긴 필름처럼 흘러가곤 했다. 그런 꿈을 꾸면 식은땀으로 몸이 식은 뒤에 깨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한 꿈이 두려운 건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지나간 일에 대해선 크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었고, 그런 그의 성격은 조직을 키우는 데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다만, 오이카와는 식어버린 몸을 칼날처럼 깎고 지나가는 새벽바람이 싫었다. 전날 모르고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새벽바람은, 순백색의 커튼을 거칠게 휘젓고 들어와 오이카와를 휘감았다. 꿈을 꾸고 난 뒤 오이카와는 감기에 걸리는 일이 잦았다. 대립조직과의 회담에서 볼썽사납게 기침하는 꼴이 오이카와 토오루 본인이 생각해도 영 아니었지만 어찌할 바가 없었다. 오이카와는 자는 시간을 줄였다. 애초에 모자른 게 오이카와의 시간이었으니, 어느 면으로 보면 효율적이었다.

오이카와는 반쯤 들어올린 눈동자를 옮겨 옆을 바라봤다. 깊게 잠든 얼굴 위, 어느새 길게 자란 검은 앞머리가 살짝 들렸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그 아래에 모양 좋게 자리잡은 입술은 얇게 열려 있었다.

앞머리, 자르라고 한 게 벌써 일주일짼데.’

오이카와는 아직 부연 머릿속으로 불만을 토로하면서, 눈 앞에서 흔들거리는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정돈했다. 아무리 정돈해도 모래가루처럼 떨어지는 머리카락은 부드러웠다. 오이카와는 다시 눈을 감았다. 어린애같이 체온이 높은 그를 끌어당겨 안았더니, 식었던 몸에 다시 온기가 뭉근하게 새어올랐다. 귓불이 따끈한 느낌이 좋았다. 오이카와는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오이카와 토오루의 최근 수면시간은 거의 8시간이었다. 사실 오이카와에게 정해진 수면시간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고,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필요한 만큼만 자는 게 기본적인 원칙이었다. 지금 오이카와의 품 안에서 잠들어 있는 그의 경우 상황이 달랐다. 내일 핵폭탄이 터지든, 당장 세력싸움이 일어나서 총을 든 자가 뛰어들어오든 그의 수면시간은 8시간이었다. 달리 말하면, 8시간이 지나면 그는 여지없이 눈을 떴다. 그보다 늦게 잠든 오이카와가 눈을 못 뜨고 있어도 그는 오이카와 옆에서 꼼지락거리며 이불 속을 부산스럽게 만들었다. 그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눈을 뜨는 생활을 반복한 오이카와의 수면 습관은 이제 완전히 그와 비슷해졌다. 물론 일이 있어 더 늦게 자거나 더 일찍 일어나거나 하는 일이 있어도 대체로 비슷했다. 악몽은 매우 드물게 오이카와를 찾아왔다. 꿈속에서 미세하게 풍기던 국화꽃 향기도 점차 옅어졌다. 현실과 악몽의 경계선을 휘청거리던 오이카와는 현실도, 악몽도 아닌 안전장치 안에 자리를 잡았다. 몇 년 전 만났던 안전장치는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두각을 드러냈지만, 이제사 몸에 피를 묻히고 오지 않을 정도의 레벨은 되어 있었다. 오이카와가 보기에는 여전히 건방진 꼬맹이지만.

검은 속눈썹이 천천히 움직였다. 우주같은 눈동자에 새벽 햇빛이 닿아 별빛이 단숨에 들어찼다. 몇 번 눈을 깜빡인 검은 눈동자는 이내 고개를 꾸벅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오이카와씨.”

좋은 아침, 토비오.”

오이카와는 어쩔 수 없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잠에서 깬 약간 멍한 얼굴은 몇 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몸도, 키도, 어깨도, 손가락 길이도 달라졌지만 토비오의 표정은 전부 그대로였다. 토비오가 표정으로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오이카와는 손을 들어 체온이 높은 카게야마의 귓바퀴를 매만졌다. 천천히 그 모양을 따라 문지르듯 쓸어 내려가자, 카게야마는 간지러운 듯 어깨를 움츠렸다.

오늘 중요한 회의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 나중에. 준비해야지.”

그 말 어제도 들은 것 같은데요.”

. 그러다가 이와쨩한테 혼났지.”

카게야마는 미심쩍은 얼굴로 오이카와를 빤히 바라봤다. 오이카와는 토비오의 저런 표정을 아주 오랜만에 봤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저런 식으로 바라본적이 있었다. 꽤 오래전이었다. 그가 아직 오이카와의 한 팔에 가볍게 안길 정도로 작은 몸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꿈을 꿨거든. 너를 처음 만났을 때의 꿈.”

오이카와씨는 꿈을 잘도 꾸시네요.”

카게야마는 큰 하품을 했다. 다시 눈이 천천히 감기는 게, 두 번째로 잠들 준비를 하는 듯했다. 오이카와는 자지 말라는 듯 그 콧등을 가볍게 꼬집었다. 찌푸린 눈가를 보고 새삼 느꼈다. 넌 정말 하나도 안 변했구나.

건방진 꼬맹이는 하나도 한 변했어. 처음에 너, 나를 완전 이상한 사람 보듯이 본 거 기억나?”

이상하잖아요. 갑자기 찾아와서는 데려가줄게라고 말하는 사람인데. 누가 봐도 수상하다고요.”

수상하다니! 너무해! 어쨌든 따라온 건 토비오쨩이면서!”

카게야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콧등의 아픔은 짧았고, 폭신한 이불의 감촉은 기분좋았다. 오이카와의 굳은살이 박힌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이면서 이젠 카게야마의 목덜미를 만지고 있었다. 순수하게 기분좋다고 느끼는 머릿속에선 몽롱한 졸음을 향수처럼 지속적으로 뿌리고 있었다.

저도 오이카와씨밖에 없다고 느꼈어요. 그것 뿐이에요.”

뭐가?”

제가 따라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요.”

오이카와는 카게야마 토비오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동그란 머리통에 참깨같이 검은 눈동자, 그 눈동자로 조직원도 잠시간 눈을 피하고 마는 오이카와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마냥 건방진 꼬맹이였던 그를 조직으로 데려와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오이카와가 손수 가르쳤다.

테이블 매너, 양복 각 부위의 명칭 및 입는 순서, 화술같은 아주 기본적인 사항부터 총 잡는 법, 어떤 동맥을 끊어야 가장 빨리 죽는지, 암살도구의 사용법심지어 어느 순간에 그것들을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하는지에 이르기까지 오이카와는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직접 가르쳤다. 이전 보스에게 11로 배웠던 실력은 카게야마를 가르치면서 발휘됐다. 그렇게 직접 배운 오이카와가 현 보스인 탓이었을까. 딱히 후계자로 키울 생각은 없지만 어디서 데려왔는지도 모를 아이를 후계자로 삼으려든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오이카와의 등 뒤편에서 끊임없이 흘렀다. 카게야마에게 그러한 비난에 대해 들은적이 있냐 물었을 때 카게야마는 그저 고개를 갸웃해보일 뿐이었다. 저가 후계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예 해본적도 없는게 분명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그런 점을 보고 조금 웃었다. 후계자라느니, 조직이 어떻다느니, 저 꼬맹이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바로 그 때문에 카게야마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토비오, 오늘은 같이 나가야 해.”

회의는 어쩌고요?”

그건 네가 신경쓸 게 아니고. 일어나서 준비해. 사격장으로 갈거니까.”

카게야마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노란빛이 도는 피부에 새하얀 햇빛이 닿아 평소보다 더 밝아보였다. 오이카와도 몸을 일으키고 샤워실로 걸어들어갔다. 악몽을 꾸면 들리던, 오이카와를 부르는 목소리는 희미한 국화꽃 향기 너머로 점점 멀어졌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다시 끌어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보다는 준비가 먼저였다. 샤워실 문을 닫기 전, 카게야마가 옷가지를 챙겨입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보였다. 등과 배에 어느정도 붙은 마른 근육이 최근 늘었다. 매일 매일은 조금씩 우리 사이에 쌓이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형태도, 그렇지 않은 형태로도. 그것은 벌써 몇 년째 쌓인 관계와도 같은 것이었다.

 

 

몇 발의 총성이 들리고 난 후 카게야마는 헤드셋을 벗었다. 순식간에 가까이 다가온 과녁 안에 정 중앙에 가깝게 세 발이 정확히 꽂혀있었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꼼지락거리며 눈가를 빛냈다.

기뻐보이네.”

오이카와는 장난스레 웃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돌려 오이카와의 과녁을 바라봤다. 조금의 틈도 없이 머리 한가운데, 가슴 한 가운데, 배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카게야마는 인상을 찌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알기 쉬운 꼬맹이는 오늘부터 사격 연습을 더 늘릴게 분명했다. 오이카와는 주름 한줄 없는 셔츠소매를 올린 뒤, 권총을 잡고 자세를 취하는 카게야마를 뒤에서 끌어안는 형태로 섰다.

좀 더 턱을 당겨야지.”

낮게 속삭이고 아직 제 손보다는 굳은살이 적어서 깨끗한 오른손을 감싸 쥐고, 다른 한 팔은 카게야마의 허리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카게야마의 몸이 조금 굳은 채로 권총을 단단히 잡았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알아듣는 것이 카게야마 토비오였다. 오이카와는 그걸 알고 있었고, 이제는 굳이 저가 일일이 자세를 교정해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의 사격자세는 빈틈없이 아름다웠다. 다만 오늘이었기에, 오이카와는 사격장에 왔고 카게야마의 허리를 감았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귓바퀴 가까이에 입술을 대었다. 아침과 같이 온도가 높은 귓바퀴는 매끈했다. 기억나? 오이카와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숨소리로 물었다.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팔에 힘이 들어가서, 오이카와가 골라준 카게야마의 정장에 주름이 생겼다.

오늘이잖아.”

내가 너한테 처음 사격 가르쳐 준 날.”

몇 년 전 오늘,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이 자리에서 가르쳤었다. 총 잡는 법조차 모르는 꼬맹이를 데려다가 오늘과 같이 자세를 잡고, 장전을 하고, 과녁을 노리고 쏘도록 가르쳤다. 오이카와는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날에 대한 기억은 깊이 묻어두지 않는 오이카와였지만, 카게야마에 대한 기억만큼은 모래시계같이 심장 안에 소복이 쌓여서 은빛 둔덕을 이뤘다. 가끔 카게야마가 다쳐서 돌아오는 날에는 카게야마가 없어지는 순간을 상상했다. 그 밤의 오이카와 토오루는 무엇을 하며 밤을 보낼까. 상상 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보스 실격이네,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면서 오이카와는 쓴 맛이 나는 커피를 마시곤 했다. 언젠가 카게야마를 국화꽃 아래에 눕힐 날이 올까. 보스가 된 순간부터 자신의 그러한 모습을 상상해온 오이카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품 안에서 조금 몸을 꼼지락거렸다. 고개를 갸웃한 것 같았다.

오늘이 그 날 이었어요?”

토비오쨩 진짜 너무한 거 아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억울한 심정이 몰려왔다. 됐어, 이미 알고 있었지만. 토비오쨩이 이런 아이인것쯤은! 이것저것 꿍얼거리면서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권총을 다시 고쳐 잡았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가로젓고, 오이카와쪽으로 몸을 틀었다. 마주본 눈동자가 까맣게 빛나고 있었다. 카게야마의 눈동자는 항상, 오이카와만 바라보고 있었다.

전 오이카와씨가 가르쳐준 사격은 전부 기억하고 있으니까, 언제가 처음인지는 몰랐어요.”

전 오늘도 오이카와씨가 가르쳐준 건 기억하겠지만내년에 또 말씀해주셔도 까먹을걸요. 어쨌든, 오이카와씨가 가르쳐줬다는 사실이 중요한거잖아요.”

저한텐 가르쳐주신 그 날 하루하루가 특별한 날이니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와 처음으로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카게야마 토비오입니다, 작은 입술은 그렇게 말했었다. 검은 두 눈동자로 바라보면서, 오이카와를 저의 눈동자에 기록하고 있었다. 매일 매일의 기억을 모래시계처럼 쌓는 건 오이카와만이 아니었다. 카게야마는 분명 저 나름대로, 확실하게, 오이카와에 대한 무언가를 쌓고 있었다. 그것은 딱히 오이카와와의 특별한 관계도 아니었고, 확연하게 눈에 보이는 특징적인 형태도 아니었지만 카게야마의 안에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조금 웃었다. 아니, 입꼬리가 평소보다 더 올라가있었다. 카게야마는 이제 다시 몸을 돌리고 과녁에 집중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권총에 대고 있던 손을 내리고 양손으로 그 허리를 강하게 끌어당겨 안았다. 셔츠의 서늘한 감촉이 팔에 달라붙었다.

당분간은 카게야마가 없는 밤을 상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이카와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미세하게 화약냄새가 났다.






-

카주님 생일 축하드려요!! u//u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