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9 오이카게 온리전2 In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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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간 [Paradise Lost]
"자세한 샘플 및 인포"
1. 해당 책은 만 19세 미만 구독불가의 성인본입니다. Information의 내용을 꼭 확인해주세요.
2. 성경 구절 및 성경 인물 등장 등 종교적 소재가 극히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정 종교를 포교하려는 목적은 전혀 없으며 내용 상 필요한 부분만을 차용했습니다.
3. 아주 짧은 내용이지만(약 2.5p) 오이카와와 교제하는 모브 여성이 나오고
두 사람이(오이카와&모브 여성)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래는 샘플입니다.(샘플 내용은 일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제 키보다 조금 높은 체육관 창문에 코를 박은 채 내부를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일반 고등학생보다 건장한 체격의 남성 열 몇 명 정도가 체육관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배구공 여러 개가 동시에 코트 이쪽 저쪽을 왕복하면서, 어쩐지 카게야마를 부르는 것처럼 그의 눈동자를 놓아주지 않았다. 몸을 가까이 대고 눈을 여러 번 깜빡이자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뭐 해.”
어깨가 떨렸다. 이곳에 오면 저 목소리와 마주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음에도, 심장은 상정 외의 상황이라는 것처럼 두근거렸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오이카와가 작은 들꽃 사이에 서서 카게야마를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연분홍색 7부 셔츠, 발목을 덮지 않는 길이의 짙은 청바지. 깨끗한 흰색 단화는 노란색과 분홍색 들꽃 사이에서 말간 빛을 냈다. 그의 머리는 여전히 멋들어진 모양으로 정돈되어 있었고 그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갔다. 쏘아보는 홍차 빛 눈동자가 대답을 재촉하고 있었다.
“입학했습니다.”
“뭐?”
“오늘이요.”
“…….”
오이카와는 심드렁한 얼굴로 바라보더니 ‘그래?’ 작게 말했다. 카게야마는 입을 다물었다. 미묘한 침묵이 이어졌다. 바람이 살며시 불 때마다 그의 앞 머리카락이 꽃잎처럼 살랑거렸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옆 쪽으로 시선을 가로 내린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른 곳에 갈 줄 알았는데.”
“이곳에 오이카와 선배가 있으니까요.”
급하게 대답하고 다시 서둘러 입술을 닫았다. 오이카와가 불쾌하다는 듯이 냉소를 지었다. 산들바람이 지나가고, 그는 오른손으로 조금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그래서 안 올 줄 안거야.”
오이카와는 등을 돌려 대학 건물 쪽으로 다섯 발자국 정도 걸었다. 그가 걸어가는 동안 가만히 서있는 카게야마를 보더니 고개를 한번 까딱인다. 특별히 감정을 담지 않은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가자. 대학 소개해줄게.”
* * *
오이카와와 카게야마가 동거를 시작한 건 중간고사가 끝날 즈음이었다. 카게야마는 학과생 한 명과 자판기 앞에서 음료를 고르고 있었다. 같은 학과생 P는 전공 수업 중 만난 사이였다. 지금은 다른 지역 대학교를 다니는 히나타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작은 키였으나, 성격은 히나타보다 킨다이치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었다. 제 고집도 나름 있고 수더분한 성격에, 무엇보다도 카게야마의 말을 잘 들어주는 면이.
“카게야마, 우유 품절인데?”
“어?”
P가 캔커피를 홀짝이며 자판기를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우유’가 쓰인 버튼이 빨갛게 반짝이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작게 꿍얼대고 그 위의 요구르트 버튼을 눌렀다. 덜컹, 소리가 들린 후 카게야마는 몸을 굽혔다. 잘 집히지 않는 요구르트를 잡으려고 손을 휘적이고 있던 때에 P의 긴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오이카와 선배. 안녕하세요.”
“안녕.”
‘오이카와 선배’라는 말에 카게야마는 요구르트를 버려두고 몸을 일으켰다. 오이카와는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줄무늬 티셔츠에 스키니를 입고 있었다. 그는 카게야마를 한번 흘깃 쳐다봤다. 아무말없는 카게야마를 비웃는 건지 아니면 그저 의미없는 행동인지, 입꼬리만 올리는 웃음을 짓고 카게야마의 옆을 천천히 지나갔다. 오이카와에게서 풍겨나온 비누향이 여름 초입의 풀잎 향기 사이에 섞여들었다. 몸에 달라붙은 스키니 바지는 단단한 허벅지 선을 감싸며 내려가다가, 얇고 깨끗한 발목 언저리에서 박음질되어 있었다. 볼록 튀어나온 복사뼈가 유독 눈길을 끈다. 카게야마는 그가 몇 걸음 더 걸어가는 걸 바라보다가 서둘러 달려갔다.
“오이카와 선배.”
“토비오.”
오이카와는 내키지 않는 듯이 카게야마의 이름을 짧게 불렀다. 그는 왜인지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 정도만 돌아선 오이카와는 서둘러 이 자리를 떠나고 싶은 것 같았다.
“시험 공부 많이 하셨습니까?”
“너보다는 많이 했지.”
오이카와는 의외라는 듯이 눈썹을 올렸다. 완전히 돌아선 걸 보아 이야기에 흥미는 생긴 모양이다.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선연히 빛났다. 엷게 우린 홍차 빛은 빛의 세기에 따라 그라데이션을 만들어냈다.
“공부, 가르쳐주시면 안 되나요?”
“내가 왜?”
오이카와는 미간을 신경질적으로 좁히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카게야마는 달리 할 말이 없어 입술만 오물거렸다. 그의 말대로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도와줄 이유는 없다. 카게야마는 몇 번 입을 달싹이고 마른 침을 삼켰다.
색색깔의 장미는 활짝 피어 강한 향을 풍겼고, 햇빛이 닿으면 더욱 선명한 색으로 빛났다. 오이카와는 탐탁지 않게 카게야마를 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해두지만 기본만 가르쳐줄 거니까. 나머지는 네가 해.”
“…감사합니다!”
“그래서? 도서관 갈 거야? 어디서 할 건데?”
“저, 선배네…”
“뭐?”
“선배네 집에서 공부하면 안 됩니까?”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오이카와 선배는 이 곳에 자주 오나요?”
“가끔. 필요할 때.”
“필요할 때가 있어요?”
“필요 없는데 쓸데없는 일을 하진 않아.”
오이카와의 말은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카게야마에게 정원이란, 고향집 앞에 작게 만들어졌던 토마토 화단도 정원이었으며 사진으로 봤던 뉴욕 센트럴파크(Central Park)도 정원이었다. 나무가 있고, 풀이 있으며 꽃이 있다.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으나 오이카와는 이 곳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굳이 저에게 소개한 건 그러한 이유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꽃은 뭐예요?”
“아래 써있잖아. 아몬드 나무 꽃이야.”
“벚꽃이랑 닮았네요.”
“너, 분홍색에 꽃잎 다섯장이면 무조건 벚꽃이라고 하는 거 아냐?”
“아닌가요?”
오이카와는 바보 취급하듯이 웃었다. 아몬드 나무는 줄기가 가늘고 색이 짙다. 벚꽃같은 연분홍색 꽃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달려있었다. 오이카와는 잠시 아몬드 나무 옆에 서서 눈을 내리깔았다. 그는 바람과 나무, 꽃 사이에 서 있다. 촘촘이 하얀 햇빛이 스며들어 색이 옅은 속눈썹과 연분홍 셔츠는 빛을 받는 아몬드 나무와 비슷했다. 오이카와는 제 몸에 달렸던 꽃이 전부 떨어진 것처럼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벚꽃이라면 벚꽃이겠지. 아몬드 꽃도.”
“지금 저 바보 취급 하시는 거죠?”
“많이 컸네, 토비오도.”
그 얼굴이 빠르게 바뀌어 어느새 오이카와는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왼쪽 손목에 채운 시계를 들여다봤다. 오후 3시 20분이었다. 정원은 보드라운 빛에 싸여 간간이 부는 바람에 기분좋다는 듯 잎사귀 소리를 냈다.
“토비오.”
“네.”
오이카와의 양쪽 볼이 하얀 빛에서 연분홍빛으로 바뀌었다. 아몬드 꽃 빛깔이었다.
“용케 들어왔네. 열심히 했나봐.”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새끼손가락 부근을 따라가다보면 굽히는 곳에 손목뼈가 톡 튀어나와 있다. 조약돌처럼 동그랗고 앙증맞은 모양을 보며 카게야마는 그걸 만지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 그렇구나.
“오이카와 선배를 만나고 싶어서요.”
그 홍차 빛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의 눈동자가 놀란 듯 커진 것이 보인다. 눈이 마주치고, 오이카와는 복잡한 얼굴로 시선을 틀었다.
나는 오이카와 선배를 좋아하는 거구나.
그것도 아주 이전부터, 혹 그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물론 그때부터. 한쪽에서 파문(波紋)이 일어난 연못 저 편까지 물결이 흔들리는 것처럼, 카게야마의 조용한 감정의 연못에 퍼진 물방울 하나가 전신을 물들인다. 새삼스레 의식하면 제 안에서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도 깨닫게 된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보지 못하고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귀 두 개가 뜨거워졌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왜 서브야? 난 세터고, 너도 세터인데.”
체육관 정리 당번으로 오이카와와 카게야마가 남게 되었던 날이었다. 오이카와는 별이 한 두 개 떠있는 밤하늘이 체육관을 뒤덮은 뒤에야 입을 열었다. 비를 쓸던 카게야마가 몸을 돌려 오이카와를 마주봤다. 짧은 앞머리가 흔들리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 행동이 또 맘에 들지 않아 오이카와는 머리를 헤집고 인상을 찌푸렸다. 카게야마는 잠시 조용히 있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뭐가요?”
“가르쳐달라는거. 왜 토스가 아니고, 서브냐고.”
카게야마는 눈동자를 굴렸다. 고민하는 듯했다. 고민의 여지도 없이 말해버리면 되잖아. 토스는 제가 더 잘하니까요, 라고. 카게야마를 만난 뒤로 어쩔 수 없이 늘어버린 자조적 독백에 오이카와는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괜한 걸 물었지 싶었다. 정답이 정해져있는 질문을 카게야마에게 해봤자 의미가 없다. 또 울컥하는 심장을 잠재웠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입이 열리기 전에 서둘러 얼버무렸다.
“됐어. 대답 안해도 돼.”
“오이카와 선배가 제일 좋아하는 걸 배우고 싶어요.”
오이카와의 만류에도 카게야마는 꼿꼿이 대답했다. 넓은 체육관 안에서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목소리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이어졌다. 오이카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카게야마의 얼굴은 진지한 눈동자를 담고 오이카와를 향해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거라니?”
“오이카와 선배는 서브를 넣을 때 가장 즐거운 표정을 지으시니까요.”
“…….”
입을 몇 번 뻐끔거린 뒤에야 오이카와는 열린 입술을 닫을 수 있었다. 눈가를 찌푸리고 카게야마를 여러 감정이 담긴 얼굴로 바라보았다. 카게야마는 그저 고개를 갸웃하고 오이카와 선배? 혹시나 싶은 두근거림을 담아 기대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가르쳐 주기 싫어.”
“…….”
오이카와의 대답에 카게야마가 입을 삐죽이고 다시 청소를 시작하려 했다. 오이카와가 빗자루를 든 카게야마의 팔목을 세게 잡았다. 뼈마디가 느껴지는 얇은 팔이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주웠던 기다란 산호사처럼 보드라웠다. 힘을 주면 부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뼈가 물렁거렸다.
“오이카와 선배?”
“너한테 줄 건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
네가 어디서 무얼하든, 네가 어떤 배구를 하든, 나와는 관계없어.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양 볼을 쓰다듬으며 감쌌다. 자, 봐. 네가 원하는 서브가 녹아있는 손이야. 오이카와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빛에 따라 양상을 바꾸는 홍차빛 눈동자가 그윽하게 빛났다. 너에겐 그 어느것도 주지 않을거야. 내게 없는 것만큼, 난 분명 ‘네가 바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 오이카와는 하얗게 이를 드러내보이고 웃었다. 청량한 여름 하늘의 미소와도 같았다. 그의 안이 맑게 개였다.
“그러니까, 토비오쨩. 천재의 손을 가지고 잘 해봐.”
“너 카게야마 괴롭히는 것 좀 그만해라.”
“이와쨩,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 난 괴롭히는게 아니고 혼자서는 못한다는 걸 깨닫게 해주려는 거라구?”
“쓰레기네.”
“너무해!”
카게야마의 성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카게야마의 배구. 오이카와의 배구의 원형이자 근원과도 같은 그 배구가 오직 카게야마에게만 속해있다면―.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는 나에게 있는 배구를 하면 된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배구를 만들어가면 된다. 나는 끝나지 않았다. 내 배구는 무엇하나 끝나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다시 처음부터 쌓아갔다. 처음 배구를 시작했을 때 하나씩 배워가던 아이처럼 오이카와의 안에서 허물어진 배구가 아름답게 세공되었다.
“세이죠로 오지마, 토비오.”
“안 가요.”
카게야마가 불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오이카와는 인상을 찌푸리고 그의 머리를 한 두 번 헤집었다.
“반드시 오지 마. 차라리 시라토리자와에나 가. 짜증나는 우시와카쨩이랑 같이 쳐부숴줄테니까.”
“……저도 지지 않을 겁니다.”
“건방지네, 정말!”
카게야마에의 사랑은 오이카와 안에서 허물어진 배구처럼 점차 흩어졌다. 지구의 중력에 붙들려있는 사람처럼 어찌할 바 없이 카게야마가 환부(患部)에 침투해있다가, 그의 숨결은 오이카와 안에 남아있지 못하는 순간에 이르렀다. 고등학교 마지막 시합, 카게야마와의 ‘1승 1패’ 이후로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라이벌로서만 보는데에 성공했다. 사랑의 감정은 바람에 날려간 꽃잎처럼 그 어딘가에서 조용히 모래에 묻힐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이제는 오이카와를 좋아하지 않는거야?”
“좋아해요.”
급하게 대답한 카게야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잠시 고요가 흐른다. 8명의 손님이 한꺼번에 카페를 나갔다. 한 두 사람의 손님만이 남아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카페 음악은 어느새 슬로우 재즈 연주곡으로 바뀌어 있었다.
“저는 아직도… 앞으로도 오이카와 선배를 사랑할테지만……. 함께 있는 것이 오이카와 선배에게, 또한 저에게… 괴롭기만 하고 죄가 될 뿐이라면…….”
카게야마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의 어깨는 축 처져있었다. 입을 달싹인다. 다음 말을 하기가 어지간히 힘든 모양이었다. 스가와라는 응.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관계를 지속할 필요가 있을까요.”
카게야마는 내뱉었다. 한 번 새어나온 말의 물줄기를 따라, 작은 언어의 금붕어들이 입 밖으로 줄지어 나왔다. 단어, 단어마다 튀어나오는 금붕어들은 금세 형상이 무너져버릴 정도로 약했다.
“이 관계가 옳지 않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누가 봐도 이상한 이 관계의 무엇에 정답이 있는 걸까…싶어요.”
스가와라는 그의 시선을 좇는다. 우유가 담긴 머그컵에 고정되었던 눈동자는 이리저리 움직였다. 물티슈를 바라봤다가, 다시 머그컵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스가와라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카게야마가 소중한 머그컵이라도 된다는 듯이.
“…왜 처음에, 오이카와를 만나고나서 함께 하겠다고 결정했어? 도쿄에 오기 전에는 딱히 생각한 적 없었잖아. 그저 한 번 더 만나고 싶다, 그 정도 아니었어?”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와 눈을 마주쳤다. 생각지 못했던 문제인 듯 그 눈동자가 잠시 커졌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카게야마는 생각하고 있었다. 오이카와와 재회한 시절의 기억일까, 혹은 그와 처음 만났던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는 걸까. 금붕어보다 작은 물고기가 된 카게야마의 문장은 머그컵에 빠져 우유 속을 헤맸다.
“오이카와 선배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낀 게 있어요.”
“느끼다니?”
“……꿈을 꿨는데요.”
카게야마는 띄엄띄엄 간격을 두면서 자신의 꿈 내용을 스가와라에게 말했다. 펼쳐지는 꽃과 나비의 찬란한 세상, 그와는 반대로 어둑한 오이카와의 등. 허나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따라간다. 그가 결코 뒤돌아보지 않아도, 그저 ‘카게야마가 따라오기를 바라는 것 같다’는 그 추측 하나 때문에.
스가와라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두 사람의 관계에서 느꼈던 오묘한 감정을 다시금 느꼈다. 카게야마가 따라가기에 성립되는 관계. 혹은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성립되는 관계? 기이한 사랑법이었다. 사랑― 스가와라가 정의하기에 그것은 확실히 사랑이었다.
“제가 오이카와 선배를 잘 쫓아가고 있는지, 오이카와 선배를 버려두고 어디 다른 곳으로 가버리지는 않는지, 오이카와 선배가 계속 뒤돌아 확인하는 그런 기분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어요.”
2. 신간 [Summer Moon]
자세한 샘플 및 인포
* 포함되는 단편은 아래를 참고해주세요.
(수록되는 모든 단편은 수정과정을 거칩니다.
표현이 다소 달라질 수 있으나 내용상 차이는 없습니다.)
1. Cresent Moon |
우리 아이의 애인은 배구부 주장 카게야마의 맛은 달다 연애를 가르쳐 주세요 봄비를 닮은 사람 오늘, 내일, 오늘 오이카와 토오루와 카게야마 토비오의, OO 만약 네가 Baby, It's You! |
2. Half Moon |
Tell me, Please don't tell 사랑에 관하여 전력 - 안경 다시 태어난 여름 전력 - 발렌타인 데이 전력 - 컬러버스 AU 전력 - 이별 미공개 단편 인력(引力) |
3. Dark Moon |
Love Actually 바다에 빠져버릴까 전력 - 동거 전력 - 눈물 Blindness Love Lost in Memory LOVERS 미공개단편 The Lobster |
아래는 미공개 단편 2개의 샘플입니다.
(샘플 내용은 일부 변경될 수 있습니다.)
1. 인력(引力)
오이카와는 이불보를 크게 펼쳤다. 평소 사용하던 것보다 조금 더 큰 이불보는 방 안을 꽉 메웠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 고등학생 두 명이 누울 테니까, 이 정도는 되어야겠지.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자고 간다’는 사실을 애써 아무렇지 않게 넘기려 노력했다. 사귀는 사이라고는 하나 지금 그럴 상황도 아니고. 고개를 몇 번 가로젓고 덮을 이불을 이불보 위에 놓자 2인용 침상이 마련되었다. 좌식 책상 위 미등만 틀어놓고 불을 끄면 적당한 밝기의 미등이 엷게 퍼졌다.
“같이 자는 건가요?”
고개를 돌리면 카게야마가 방금 욕실에서 나온 모습으로 서 있었다. 오이카와가 빌려준 티셔츠와 바지를 입은 카게야마는 볼을 살며시 물들이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시선을 피하고 가볍게 말했다.
“그럼, 넌 거실에서 잘 거야? 좁아도 참아.”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감사합니다.”
카게야마는 노곤해진 눈가를 끔뻑이다가 크게 하품을 했다. 좌식책상에서 먼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고개를 갸웃거린다.
“제가 이쪽입니까?”
“토비오쨩 마음대로 해. 이는 닦았어? 머리는 제대로 말렸고? 옷 아무 데나 내던지진 않았지?”
“그렇게 어린애는 아니에요. 다 했다고요.”
입을 삐죽이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오이카와는 놀리듯이 ‘믿을 수가 있어야지.’ 짓궂게 말한 후 카게야마의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카게야마도 그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이불 안에 몸을 눕혔다. 카라스노 고등학교에서부터 지금 오이카와의 방 안에 누워있기까지. 오이카와의 두 눈에 보이는 건 카게야마 뿐이었는데, 이제는 무늬 없는 천장이 그의 눈동자를 채웠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숨소리가 다른 사람보다 크다는 걸 깨달았다. 조용한 방 안에서 카게야마의 규칙적인 숨소리만 들려왔다.
오이카와는 눈을 감았다. 카게야마의 숨소리에 맞춰 호흡을 조절한다.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의 호흡을 끌어당기는 흐름에 몸을 맡겼다.
“오이카와 선배.”
낮게 울린 목소리를 듣고 오이카와는 다시 눈을 떴다. 옆을 보면 카게야마가 오이카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오이카와 선배한테 가까이 가면 안 돼요?”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된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카게야마는 어느새 몸을 밀착시켰다. 오이카와는 팔을 벌려 그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카게야마의 뺨이 은은하게 물들었다. 오이카와는 숨이 가빠지려는 걸 애써 진정시키고 미등을 괜히 틀어뒀다는 후회를 되풀이했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면 카게야마의 머리에서 연한 꽃향기가 났다. 오이카와가 쓰는 것과 똑같은 제품. 지금 카게야마와 오이카와의 몸을 덮은 건 같은 향기라는 생각이 미치자, 공연히 두근거림이 더해졌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쪽으로 몸을 기대고 그의 눈을 강렬하게 마주 봤다.
“왜 그럴까요.”
“뭐가?”
“오이카와 선배랑 있으면 괜찮은 건…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갑작스레 오늘 생긴 이상한 증상― 몸이 어딘가로 끌려가는 카게야마. 어디로 향할지, 무엇 때문에 몸이 움직이는지, 왜 오이카와와 가까이 있으면 괜찮은지.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오이카와는 인상을 찌푸렸다. 걱정이 안 되는 게 아니다. 평생 가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이번 학기를 마치고 졸업하면 오이카와는 미야기를 떠난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고 만다. 만약 그때까지도 증상이 지속된다면?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로 고개를 기울였다. 저는 조금 이상한 게 분명하다. ‘카게야마를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이 이다지도 기분 좋게 느껴지다니. 비겁한 건 아닐까, 졸업 전 카게야마를 안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오이카와는 제 생각보다 나약하고 어리숙한 존재인 건 아닐까 생각했다. 카게야마와 헤어지는 건 무리라고 다짐했을 때 카게야마에게 붙들린 건 확연한 사실이었다.
“몸이 끌려갈 때 어딘가로 향한다, 그런 느낌은 없었어?”
“아뇨, 그냥 끌려가기만 했습니다.”
“카라스노 고등학교 밖으로 향했다는 거지?”
“네.”
카게야마가 모르는 어떤 곳으로 끌고 가던 힘은 도대체 무엇일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나아가려던 방향을 떠올려 보았다. 그래 봤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서 풍겨오는 미약한 꽃향기를 맡았다. 카게야마의 푸른 눈동자가 오이카와를 주시하고 있었다.
“오이카와 선배?”
‘어딘가’로 가버리는 카게야마. 오이카와는 그런 상상을 하루에 몇 번이고 했었다. 저가 졸업하면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따라 도쿄로 올까? 혹은 자기만의 길을 걸어갈까? 카게야마의 배구에서 오이카와가 사라지는 날이 오는 건 아닐까? 언젠가 오이카와와 카게야마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면…….
“…토비오.”
“네?”
“내일, 나랑 같이 한 번 ‘끌려가 보는’ 건 어때? 토비오쨩의 발이 이끄는 대로.”
2. The Lobster
카게야마는 고개를 숙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구김살 없는 미소는 기이한 인상을 주었다. 살며시 오싹한 기분까지 들었기에 카게야마는 눈을 살포시 감았다가 떴다. 무언가 할 말이 생각났지만, 입술을 여는 행동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오이카와는 어느정도 카게야마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사람이었고, 카게야마는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입을 다물 뿐이었다.
카게야마가 신고 있는 검은색 샌들과 오이카와의 하얀 샌들에 물기가 스며들었다. 먹먹하고 찝찝한 감각이 퍼질 때쯤이면 다시 바닷물이 발가락 사이를 적셨다.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해산물의 감칠맛, 약한 바람이 불 때마다 풍겨오는 열대 꽃의 아찔하고 달콤한 향기. 소금결정이 폐 속을 채울 것처럼 짠내 그득한 바다냄새와 멀리 암석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
카게야마는 미니 크랩을 오독오독 씹으며 수평선으로 눈을 돌렸다. 가장자리가 희미하게 휘어진, 일출시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는 태양처럼 부연 빛이 수평선을 뒤덮고 있다. 휴양지 바닷가에 흔히 떠돌아다니는 보트나 유람선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물과 태양과 모래, 오이카와와 카게야마. 그것이 시야에 보이는 전부였다. 미니 크랩을 포크로 집던 카게야마와 오이카와가 저 바닷물에 집어삼켜져도 모래사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평온할 것이다. 실제로는 도보로 5분 거리인 호텔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겠지. 그럼에도 이 지구상에 생물체라고는 오이카와와 저 뿐인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저희 뿐이네요.”
카게야마는 작게 중얼거렸다. 오이카와는 그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포크와 나이프를 각각 손에 든 오이카와는 가운데에 놓인 랍스터 살을 크게 덜어 카게야마의 접시에 놓았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오이카와는 기분 좋은 듯이 미소짓고 있다. 평소처럼 여유로운 오이카와였다.
“…제가 먹을 수 있어요.”
“이렇게 선배가 챙겨줄 땐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먹으면 되는거라고. 토비오쨩, 아직도 바보구나?”
카게야마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오이카와는 포크를 둥글게 휘두르며 뻐기듯이 말했다. 이를 드러내 보이며 짓궂게 웃는 그의 얼굴에 화가 나다가도, 결국 그가 놓아준 랍스터를 먹는 건 저 자신이었다. ‘선배’라는 그의 말에는 어폐(語弊)가 있다. 이제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선배가 아니었고, 그들은 정의하기 힘든 관계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랍스터 속살 일부를 입 안에 넣으면 버터향이 향신료처럼 코 주변을 감쌌다. 풍미가 깊은 향기와 적당한 정도로 익은 부드러운 살결이 입안에서 조화롭게 녹았다. 입을 오물거리는 카게야마를 조용히 바라보던 오이카와가 살포시 미소지었다. 잔잔한 햇살과 같은 미소였다.
“토비오, 그거 알아?”
“네?”
입을 우물거리는 탓에 엉성한 말투로 대답하자 오이카와는 랍스터로 눈을 돌렸다. 그의 눈동자가 다른 빛깔로 변하고 있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빛에 따라 보랏빛 혹은 산호빛으로 바뀌는 것처럼―.
“랍스터는 있지, 무척 오래 사는 갑각류 중 하나거든. 아마 지구상의 전 생물 중 가장 오래 사는, 거의 불로장생에 가까운 동물인데.”
“네.”
“인간이 나이를 많이 먹으면 몸이 늙어서 죽듯이 갑각류도 오래 살수록 점차 약해지게 되는데… 랍스터는 그와 반대로 껍데기가 단단해지고 힘도 세진대. 신기하지?”
“…그렇네요.”
3. 신간 [세븐데이즈]
★페이지수가 변동되었습니다.(2017.04.16 수정내용)
기존 70~80p → 100p(예상)
가격변동은 없습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샘플 및 인포
1. 해당 책은 만 19세 미만 구독불가의 성인본입니다. Information의 내용을 꼭 확인해주세요.
2. 오이카와가 가정사정 때문에 배구를 하지 않습니다.
3. 웹에 공개했던 「세븐데이즈 1st day~7th day」까지의 이야기와
미공개 에필로그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원하는 형태의 에필로그가 아닐 수 있습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4. 웹에 공개했던 내용은 모두 수정을 거칩니다.
표현이 일부 달라질 수 있습니다만 내용 상 차이는 없습니다.
아래는 샘플입니다. (웹에 공개되어 있는 내용 중 일부 발췌)
「오이카와 선배, 배구 그만뒀어.」
“…….”
‘배구 그만뒀어.’
「나도 이와이즈미 선배한테 들은 거야. 아버지가 돌아가셨대.」
“…….”
‘아버지’가.
「자세히는 모르겠어. 오이카와 선배 아버지가 미야기에 있는 건설회사 사장님이셨는데, 대대로 오이카와 가문 회사였나 봐. 오이카와 선배가 실업팀에서 활동하면서 국가 대표 선발 시합 준비하고 있던 건 알지? 도쿄에 있다가 임종도 못 지키고 가셨나 봐. 알고 보니 몇 년 전부터 지병이 있었다던데, 그걸 오이카와 선배가 알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
들려오는 목소리가 우묵하게 퍼졌다. 마치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귀가 가득 차서 쿠니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집중해서 들으려 해도 자꾸만 귓바퀴 뒤로 스쳐 지나가서 카게야마는 핸드폰을 더욱 귀에 가까이 댔다. 보글거리는 소리가 목소리에 스며들어 카게야마를 방해했다. 배구 그만뒀어. 그 말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흐릿하기만 하다.
「실업팀에서 나오고 배구도 집도 정리하고 센다이로 돌아갔어. 건설회사는 안그래도 요 몇 년간 경영난이 있어서 그냥 팔고, 회사 취직하신다고.」
“…응.”
쿠니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목소리가 변했다. 카게야마, 힘주어 말하는 쿠니미의 목소리는 사망 선고를 내리는 의사처럼 단호했고 사형을 언도하는 재판관처럼 무거웠다. 새어드는 달빛보다 싸늘한 말이 귓속을 찔렀다.
「오이카와 선배는 이제 평생 배구를 안 할 거야.」
「국가대표가 되지도 않을 거야. 회사원이 될 거야. …나 같은.」
오이카와가 배구를 하지 않는다. 오이카와의 삶에서 배구는 사라지고, 그는 다른 길을 걸어간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떠올렸다. 고등학교 시절 아오바죠사이와 카라스노의 경기가 끝나고 그가 했던 말과 함께.
“이걸로 1승 1패야. 너무 우쭐대지 마.”
오이카와가 졸업하고 도쿄로 가는 날 들었던 말과 함께.
“따라오지 마, 바보 토비오쨩.”
그는 웃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눈가를 구부리고 벚꽃잎이 싸르라기 눈처럼 흩어지는 날에 오이카와는 등을 돌리고 떠났다.
카게야마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다가 새벽빛이 밝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익숙한 거리를 따라 아침 로드워크를 다녀온 후 바로 소속팀 감독에게 전화했다. 다짜고짜 일주일 휴가를 달라고 떼를 쓰니 무어라 쓴소리를 강하게 들었지만 완강하게 고집하자 지금까지 못 받은―라기보다 안 받은―휴가를 전부 포함해서 받은 걸로 합의를 내렸다. 센다이로 가겠다고 하자 ‘도대체 왜?’라고 당연하게도 부모님이 물었으나 이렇다 할 대답을 찾기 힘들었다. 오이카와 때문에? 와달라고 하지도 않은 그의 이름을 댈 정도로 카게야마는 뻔뻔하지 못했다. 사실 센다이에 돌아온 근본적인 이유를 말하라면 카게야마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왜 돌아온 걸까? 오이카와와 다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 욕구의 이유도 찾지 못한 채 무작정 오른 일본행 비행기에서 카게야마는 몇 번이고 오이카와를 생각했다. 제 안에 녹아있는 오이카와는 생각 이상으로 농도가 짙었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떠오를 정도로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기억하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끼며 조심스레 양말을 벗었다. 언뜻 보기에도 불그스름하게 퉁퉁 부어있다. 쳇, 짧게 혀를 차고 대충 찬물에 적신 수건을 대었다. 병원은 내일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예전에 딱 한 번 가본 정형외과 의원의 위치를 떠올리고자 노력했다. 침대에 조심스레 눕자 묵은 이불 냄새가 난다.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이불까지 깨끗이 빨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불이 남아있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눈을 감고 조금 전의 오이카와의 모습을 떠올렸다. 차가웠던 눈동자와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목소리.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저는. 확실하진 않아도 오이카와와 이야기를 나누면 해결될 것이다. 불편하게 내려앉은 응어리도, 쿠니미와 통화한 후부터 부연 머릿속도 전부. 카게야마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저가 일본으로 돌아온 이유 중 가장 뚜렷하고 절망적인 이유를 하나 대라면, 다만 오이카와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짙은 남색으로 물든 하늘에서 붉은빛을 쏘는 태양은 달과 위치를 바꾸고 있었다. 보랏빛으로 빛나며 움푹 팬 반달이 뜨고 있다. 약 12시간이 소요된 비행은 5년 전보다도 힘겨웠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고문이 중세 시대 존재했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수마(睡魔)에 잠식되는 눈꺼풀을 닫으면서, 카게야마는 멀리서 매미 소리가 잦아드는 걸 느꼈다. 지금쯤 카라스노 고등학교 뒷산에는 반딧불이가 풀 사이로 빠져나와 꼬리를 빛낼 준비를 하고 있겠지.
생각해보니, 오이카와가 좋아하는 건 우유빵이었다. 잠들기 전 누구나 흔히 그렇듯 쓸데없는 상념을 되풀이하면서 카게야마는 잠들었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시작은 쿠니미처럼 갑작스러운 전화겠지. 화면에 뜬 그의 이름을 보고 카게야마는 잠시 고민한다. 수신음은 멈추지 않고 울린다. ‘오이카와씨’라고 등록해놓은 화면이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반짝인다. 카게야마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오이카와씨.”
「토비오쨩, 바빠?」
“……아뇨.”
‘여보세요’라고 받지 않은 카게야마도 그답지만, 오이카와의 물음도 꽤 의외였다. 항상 카게야마의 사정과 상관없이 제 용건만 말하던 오이카와가, 입술 사이로 작게 내뱉듯이 묻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문득 그가 평소와는 다른, 아주 태연자약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오이카와씨가 카레 사줄까.」
“…네. 좋아요.”
카게야마는 전화를 끊고 옷을 서둘러 챙겨입는다. ‘준비하면 나와’ 라고 말한 오이카와는 대체로 늦는 때가 많았다. 다만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도착했을 때 저가 없다면 이후 평생 오이카와를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막연히 되풀이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점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느꼈고’, ‘무의식적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불러낸 카레 집으로 들어간다. 평소 함께 식사하던 카레 집이 아니어서 카게야마는 몇 번 헤맨 뒤에야 찾아낸다. 어색하게 한쪽에 자리 잡고 가게에서 나오는 뉴스 라디오를 들으며 입구를 초조하게 바라본다. 이내 오이카와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 평소보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 엷게 땀이 밴 피부에 흰 티셔츠와 면바지. 그의 뒤쪽으로 커다란 민트색 캐리어가 따라 들어온다. 카게야마는 캐리어를 바라보고, 오이카와에게로 다시 시선을 옮긴다. 아무렇지 않게 캐리어를 자리 뒤쪽에 두고 오이카와는 턱을 괴며 미소 짓는다.
“카레, 시켰어?”
“아뇨.”
“왜? 여기 주문이요.”
평소보다 한 톤 높은 목소리와 부드럽게 굽힌 눈꼬리. 아무렇지 않게 카게야마 대신 돼지고기 카레를 주문한 뒤 오이카와는 ‘전 됐어요’라고 말하고 주문을 끝낸다. 카게야마는 그것에 별로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오이카와는 다시금 미소를 머금었다. 그의 웃는 낯이 한여름 해바라기처럼 반짝인다. 카게야마는 아주 묘하게도 오이카와가 이대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오이카와는 제 앞에 놓인 얼음물을 한 모금 마신다. 아래로 내린 눈꺼풀은 살며시 젖어있었다. 오이카와는 땀조차도 반짝이는 사람이다. 그는 눈을 살포시 내렸다가 다시 들어 올린 뒤, 마치 주문할 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배구, 그만하려고.”
“…….”
머리 한쪽 끄트머리에서 쿠니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이카와가 배구를 그만두는 이유. 오이카와 토오루가 더는 걷지 않기로 한 길. 그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떠올릴 수 없었던 그 순간의 재현이었다.
“나이가 젊다고는 하지만 오래 하기도 했고. 뭐, 내 나름대로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만큼 했어.”
“아, 맞아. 킨다이치 얘기 들었어? 이번에 승진했다던데.”
“……킨다이치한테 전수나 받아야지. 이제 회사 다닐 거니까.”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얘기를 귓바퀴 너머로 흘려들으면서, 배구를 하지 않는 오이카와를 상상한다. 오이카와의 서브와 토스는 두 번 다시 발현되지 않는 신기루로만 남아있을 것이다. 카게야마 안에서 여전히 빛을 뿜으며 숨 쉬고 있는 오이카와의 서브는 오로지 제 안에서만 살아있겠지.
“그래서, 은퇴는 다음 주쯤에 기사 날 거 같고… 아, 감사합니다.”
주문했던 카게야마의 카레가 나오고 대화는 잠시 중단된다. 오이카와는 먹어, 라며 카게야마에게 카레를 권하고 카게야마는 입안에서 부서지는 카레를 억지로 씹는다. 오이카와는 잠시 카게야마의 모습을 지켜보더니 웃음을 거두고 홍차빛 눈동자로 카게야마를 곧게 바라본다.
“그래서, 미야기로 돌아가려고.”
“…….”
카게야마는 잠시 먹는 걸 그치고 오이카와를 마주 본다. 오이카와는 입꼬리만 살며시 올린 채 조금 전보다는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한다.
“자취집도 정리했어. 토비오쨩 다 먹으면 기차 시간 딱 맞을 거 같은데.”
오이카와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핸드폰의 민트색 케이스는 먼지 한 점 묻어있지 않았다. 마치 그는 이 곳ㅡ카게야마가 있는 곳ㅡ에는 그 어떤 흔적도 가져가지 않으려는 것만 같았다. 다만 이것조차도 카게야마의 생각에 불과했다. 카게야마는 인상을 찌푸리고 손을 내려놓았다. 카레와 섞인 밥이 치아 사이로 돌아다닌다.
“카레 안 먹어?”
“…먹어야죠.”
오이카와는 동그란 눈을 뜨고 카게야마를 바라봤다. 카게야마는 내려놓았던 손을 들어 다시 입 안으로 욱여넣는다. 묘한 식감이다. 상상 속이라 그런 걸까, 카레는 무미무취(無味無臭)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카레를 바라본다. 그의 눈빛이 깊고 그윽하다.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입술이 열렸다 닫히는 반복적인 행동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오이카와의 눈동자로부터 새어 나오는 체취가 카레에 묻어 카게야마의 입 안으로 들어간다. 식도를 타고 위를 지나, 장 속에 골고루 퍼져 오이카와가 스며드는 상상을 한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통해 저 자신을 분해한다. 오이카와가 남길 것 없이 두고 떠나는 모든 것은 카게야마의 안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의 서브, 향내, 홍차 빛 눈동자도 혹은 그의 무언의 감정도……….
오이카와는 이내 살포시 웃는다. 카게야마는 손을 멈췄다. 올라간 입술이 열리고, 하얀 치아가 보였다.
“잘 있어. 더럽게 귀여운 토비오쨩.”
뒤에 놓았던 캐리어를 꺼낸 후 오이카와는 계산대로 향한다. 카게야마가 먹고 있는 카레 값을 계산한 후 문을 밀어 연다. 문 위쪽에 달린 종(鐘)이 두꺼운 여름 바람 탓에 몸을 이리저리 흔든다. 오이카와의 머리카락 사이로 빛이 산란된다. 카게야마는 눈을 깜빡이지 않고 오이카와를 바라보다가 문이 닫히기 직전 입술을 열었다. 카게야마는 저의 입술에 집중한다. 무슨 말을 자아내야 할까.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이 오른쪽 눈에 들어가 카게야마는 눈을 떴다. 정면으로 보이는 센다이시체육관 뒤쪽으로 노을이 깔려있다.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인 하늘 북쪽은 푸른빛으로 빛났고, 누군가 베어 먹은 것처럼 반 토막 난 달이 불투명하게 걸려있다. 잠시 잠들었던 건지 몸이 벤치에 녹아내린 듯 축 늘어진 채 전신이 땀투성이였다. 근처 나무에서는 매미 한 마리만 끊어질 듯 말 듯 울음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카게야마는 눈에 들어간 땀을 닦아내고 끈적이는 몸을 일으켰다. 꿈인지 상상인지 모를 기억 속 오이카와의 눈동자가 시야 어딘가에 박혀있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가져온 짐은 옷 몇 가지와 혹시나 싶어 챙겨온 배구공, 세면도구 등이 전부였다. 머물었던 기간도 이제야 5일째, 짐이 많을 턱이 없었다. 짐 정리를 몇 분 만에 끝내고 마지막으로 배구공을 가방에 넣고자 방에 들어갔다. 채도가 낮은 벽지와 바닥은 제 방이 처음 생겼던 중학생 때부터 바뀌지 않았다. 키타가와 제1중학교 3년과 카라스노 고등학교 3년이 녹아있는 방이었다. 주변 벽보다 색이 덜 찌든 곳은 트레이닝 메뉴를 붙여뒀던 곳이다. 카게야마는 침대에 걸터앉아 그곳을 매만지다가 오이카와와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저의 트레이닝 메뉴에 팔 근력 트레이닝이 몇 가지 추가된 날이기도 했다.
‘카게야마 토비오? 이름 이상해!’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성격이 나쁜 사람이었다. 다른 기억을 몇 개 더 꺼내보아도 그는 결코 친절한 선배는 아니었다. 카게야마는 입을 삐죽였다. 그럼에도 그의 서브ㅡ 빛을 모으고 볼의 한 점에 집중한 뒤 찰나를 섬광처럼 내던지듯 던지던 그의 서브는 명백하게 카게야마의 배구를 뒤흔들었다. 그를 ‘이기고 싶다’고 생각한 건 그때부터였지.
카라스노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 그를 이기지 못한다고 깨달았던 순간. 생애 최초의 절대적인 패배였다. 아오바죠사이와 두 번째 경기에서 오이카와가 했던 말. 그 어느 때보다도 카게야마를 올곧게 바라보는 눈동자로, 아니. 오이카와가 줄곧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걸 카게야마가 깨달은 순간.
‘이걸로 1승 1패야.’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을 감으면 그 당시 그의 뺨 어느 부위에 땀이 흐르고 있었는지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땀방울이 눈꼬리에 들어가 잠시 머물다가 흘러내리던 모양, 네트 너머에 있는 그의 숨소리, 입가에 맺히던 땀방울.
대학 시절 간간이 만났던 그는 매번 환한 여름처럼 웃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카게야마의 옷만 보고도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곤 했다.
‘토비오쨩,’
가볍게 공기주머니를 부풀리듯 둥그렇게 이름을 부르던 오이카와. 그와 가끔 갔던 카레 집과 카페는 기억력이 안 좋은 카게야마의 안에도 사금(砂金)처럼 남아있었다.
‘토비오.’
언제였을까. 카게야마가 이탈리아에 간다고 말했던 날이었을까. 함께 카레를 먹고, 오이카와가 평소처럼 짓궂은 장난을 치듯이 말하다가 카게야마의 집에 도착했을 때였다. 출국이 언제야? 잘 가, 처럼 아무렇지 않게 물은 그를 바라보고 카게야마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내일모레요.’
‘그래.’
‘…오이카와씨?’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오이카와는 눈을 가만히 내리고, 카게야마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바로 이 집 앞에서. 어둑해진 거리를 비추는 연한 가로등 불빛이 오이카와의 머리카락부터 전신을 비스듬히 비췄다. 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손을 다시금 꽉 붙잡았다. 제 것이 아닌 온도와 감촉이 낯설었다.
‘토비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곧게 바라봤다. 고등학교 시절 그 시합을 떠올리게 하는 눈빛이었다. 카게야마는 다시금 오이카와의 눈빛과 그 흐르던 눈동자의 움직임을 뚜렷이 인식했다. 그 뒤에 오이카와는 뭐라고 했었지. 카게야마는 감고 있는 눈동자에 힘을 줬다. 신경이 긴장하는 게 느껴진다.
‘토비오. 죽지 마.’
‘……비행기 사고가, 나지 않으면요.’
‘바보. 그런 게 아니야.’
오이카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선 카게야마의 손을 깨끗이 놓았다. 그의 낯선 온기가 떨어져 나가고 미묘하게 남은 잔류 열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이걸로 1승 1패야.’
‘죽지 마.’
카게야마는 천천히 눈을 들었다. 트레이닝 메뉴를 붙였던 벽이 보인다. 세월이 흘러 어쩔 수 없이 남겨진 자잘한 자국들이 보였다. 이곳에 카게야마가 존재했다는 증거였다. 카게야마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핸드폰을 꺼내 다시 번호를 눌렀다. 카게야마는 좀 전에 비해 지나치게 신호음이 길다고 느꼈다.
4. 구간 [SAD MACHIME]
자세한 샘플
“뭐야?! 불법 주거 침입!? 토비오쨩, 이거 범죄라고!!? 아니 애초에 어떻게 들어온거야?!”
오이카와가 결국 택할 수 있는 건 ‘펑’ 터뜨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한 차례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지금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알기 힘든 두려움과 공포가 폭포처럼 전신을 덮쳤다. 빠르게 시선을 돌리면 방문을 굳게 닫혀있었다. 서둘러서 벽이 있는 뒤쪽으로 뒷걸음질 치자 카게야마는 고개를 꾸벅, 한번 숙였다. 동그란 눈동자와 동그란 머리. 지금 이 상황만 아니면 오이카와 토오루가 아는 카게야마 토비오였다.
“안녕하세요. 오이카와 토오루씨 맞으시죠?”
“…….”
무언가 이상했다. 목소리도 저가 아는 카게야마의 목소리였고, 그의 눈동자도 흔들리지 않고 여전히 오이카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오이카와 토오루씨’? 거기다 이상한 말투.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듯한 태도.
“토비오쨩?”
“토비오쨩. 제 이름으로 입력했습니다.”
카게야마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아니아니, 무슨 말이야? 이름으로 입력이라니? 얘는 남의 집에 불법 침입하고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알 수 없는 상황이 겹겹이 밀푀유(mille-feuille)처럼 쌓였다. 가벼운 빵 부스러기도 여러 겹 쌓이다 보면 하나의 디저트가 되는 법이다. 그처럼 오이카와의 작은 두려움이 쌓여 저를 다른 세계로 끌고 가는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이 카게야마가 저가 아는 카게야마 토비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토비오쨩…맞지? 지금 이건 뭐야? 장난?”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대답하는 자문자답이 따로 없다. 오이카와 안의 카게야마가 불퉁하게 입술을 내밀고 투덜거렸다. 무슨 소리세요, 제가 이런 장난을 칠 리가 없잖아요. 그 말 그대로였다. 카게야마는 이런 장난을 칠 위인이 아니었다. 애초에 오늘은 쉬는 날이고,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의 집을 알 리도 없고, 설사 안다 해도 이렇게 찾아올 만큼 예의가 없는 아이도 아니었으며―여기서 오이카와는 잠시 ‘정말 그런가?’하고 제 생각을 의심해보기는 하였으나―, 저런 말투를 쓸 성격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눈앞의 카게야마는 다시 인사하듯이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좀 전보다 더 확고한 몸짓이었다.
“안녕하세요, 오이카와씨. 당신의 새드 머신(Sad Machine)으로 온 ‘토비오쨩’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말 중 단 하나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첫째, 오이카와씨라는 어감이 여전히 어색하고 이상했다.
둘째, 새드머신이라니? 새드머신이라니?
셋째, ‘토비오쨩’이라는 3인칭으로 자신을 지칭하다니 카게야마 토비오로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 에?”
오이카와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어를 뭐라고, 뭐부터 얘기해야 하지? 저 토비오쨩은 자기 할 말은 다 했다는 듯이 입을 다물고 말았는데? 마치 묻는 건 오이카와의 역할이라는 눈빛으로 카게야마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머리를 내저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어도 변하는 건 없었다. 어쨌든 저쪽에서 나서서 바톤 터치했으니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우선 가장 중요한 거로, 하나.
“토비오쨩, 서브 가르쳐 줄까?”
오이카와는 내심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두근거림을 느끼며 조심스레 물었다. 질문을 하고 난 후에도 해소되지 못한 양가 감정이 입술을 내리눌렀다. 만약 ‘가르쳐주세요’라고 한다면? 절대 가르쳐 줄 생각은 없는데. 그런데도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그리 대답해 주길 바라는 심정도 있었다. 저도 정의하기 힘든 감정의 양대산맥이었다.
카게야마는 잠시간 조용히 오이카와를 바라봤다. 곧게 닫힌 입술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오이카와의 두근거림은 점점 심해져 귓가를 덮었다. 심장 고동 때문에 바닥까지 덜덜 떨리는 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심했다. 카게야마는 입을 열기 전 고개를 옆으로 작게 기울였다. 그의 짧은 앞머리가 천천히 기울고, 창문으로 들어온 산들바람 때문에 조금 흔들린 것까지도 오이카와에게는 녹화 장면처럼 느리게 재생됐다.
“서브가 뭡니까?”
오이카와는 확신했다. ‘토비오쨩’은 토비오쨩이 아니었다.
“새드 머신이라는 게 무슨 뜻이야? …로봇이라는 의미야?”
“말 그대로예요.”
카게야마는 눈을 그대로 동그랗게 뜬 상태였다. 무엇이 의문이냐는 태도처럼 보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를 설명하라고.”
오이카와의 툴툴대는 말투에 카게야마는 다시 생각하는 듯 고개를 숙였다. 무엇을 생각하는 걸까. 제가 아는 카게야마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하나부터 열까지 난해하고 힘들었다.
“말 그대로의 의미예요. 오이카와 선배의 새드(Sad), 슬픈 감정을 받아들이고 제가 대신 감정을 해소하는 거요. 로봇과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해요.”
카게야마는 ‘다르지만’에서 말끝을 흐렸다가 ‘비슷해요’에서 조금 강하게 말했다. 아마 ‘로봇이냐’는 질문 때문에 고민했던 모양이었다. 카게야마의 말은 지금까지 그가 했던 말보다 더욱 난해했다.
“슬픈 감정을 받아들인다니? 더 자세히 설명해 봐.”
오이카와의 왼쪽 관자놀이가 쑤시기 시작했다. 불가해한 영역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오이카와는 학자가 아니었고, 공부는 어느 정도 하는 편이지만 지적 난제(難題)를 탐구하는 취미는 없었다. 단지 중학교 3학년 배구부 주장일 뿐이지. 카게야마는 눈동자를 굴렸다. 저 스스로 말을 고르는 걸까.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오이카와는 순간순간마다 침을 한 번씩 삼키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윽고 작은 입이 다시 말을 뽑았다.
“슬플 때 나오는 호르몬, 슬픔의 반응으로 나타나는 위장관계 증상 및 호흡기계 영향이나 안구압 변화… 또한 코나 눈 혈관으로 흐르는 혈류량 변화 등을 통해 받아들인다……고 제 프로그래밍 상에는 입력되어 있어요.”
응, 토비오쨩이 아니네.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그가 카게야마 토비오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토비오라면 저런 한자를 읽는 법조차 몰랐을 텐데. 오이카와 또한 전부 이해하진 못했지만 대충 신체적 증상을 통해 슬픔을 감지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단순히 낱말의 나열일 뿐이다. 저런 설명은 책에 있는 걸 그대로 읊는 수준이었다. 오이카와는 의심을 담은 눈초리로 경멸 섞인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 그걸 어떻게 토비오쨩이 아는 건데? 눈에 전자칩이라도 박혀 있어?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거야?”
명백하게 비아냥 섞인 말에 원래의 카게야마라면 입술을 비죽이며 불만을 말하든지, 혹은 아예 입을 바위처럼 다물든지 둘 중 하나는 할 텐데. 눈앞에서 조용한 우주 같은 눈동자로 오이카와를 바라보고 있는 카게야마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기만 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은 것과 똑같은 속도로 차근차근 손을 내밀어 오이카와의 비어있는 손을 마주 잡았다. 오이카와는 놀라서 손을 당길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놀란 건 카게야마가 손을 잡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손을 마주 잡는 방법을 통해서요.”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키타가와 제일 중학교 배구부는 이름난 강호(强豪)였다. 아이를 배구선수로 키우려고 생각한 부모든 스포츠 하나는 익혀두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 부모든 키타이치 중학교 배구부는 학부모 사이에서 꽤 인기가 좋았다. 키타이치 중학교에서 스포츠를 하려면, 우선 배구부. 이와 같은 인식은 중학교 주변 학부모들에겐 일반적이었다. 그 덕분에 부원은 항상 부족하지 않은 수였고, 부내 대항 연습 시합은 종종 이뤄졌다. 주로 1학년&2학년 대 3학년의 시합인 경우가 많았다. 보통 월말에 이루어졌고, 그 날도 비슷하게 한 달이 지는 때였다.
“3학년 세터로는 오이카와가 들어가고, 1학년이랑 2학년 세터로는… 카게야마.”
“네.”
A 감독의 말에 카게야마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2학년이 있는 무리에서 몇 마디 말이 오갔으나 오이카와가 한 번 쓰게 웃으며 쳐다보는 걸로 목소리는 금세 조용해졌다. 2학년 세터 N이 있는데도 A 감독이 카게야마를 세터로 지정한 건 오이카와에게는 빤한 일이었다. 오이카와의 안에서 그러한 일은 논란의 여지도 없었다.
종종걸음으로 걸어 네트 건너편 세터 자리에 선 카게야마는 양 손을 맞잡고 가슴 부근에 대고 있었다. 입술이 꾸물거렸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마주 보듯이 서자 카게야마는 눈가를 구부리며 살짝 웃었다. 제 나름의 인사였을지도 몰랐다. 오이카와는 무심하게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이와쨩!”
레프트로 올린 공이 이와이즈미의 손안에서 강한 스파이크가 되어 반대편 코트로 날아갔다. 떨어지려던 공이 리베로의 손등에 맞고 다시 오르자, 카게야마가 서둘러 세터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서 눈동자를 떼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저에게 올라오는 공에 손을 대고자 가볍게 발돋움을 했다.
그 순간― 카게야마의 미소를 오이카와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너무나 즐거워 보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사랑스러운 대상을 만질 때의 그 미소는 오이카와에게 심장을 쪼개는 충격을 주었다.
몸을 가볍게 흔들고 그의 손끝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까지, 오이카와는 차원과 파장을 조정한 세상에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눈을 깜빡이는 몇만 분의 일 초의 세상 속에서 카게야마는 자신이 올린 공에서 쏟아지는 빛의 세례를 받고 있었다. 그를 비추는 이 세계의 것이 아닌 후광은 오이카와에게 강한 그림자를 지웠다. 다리가 후들거려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아, 오이카와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웃기지 마. 웃기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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