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게] 오이카와의 벚꽃

*하이큐 글전력 주제 : 벚꽃 참여했습니다.

*지루함 주의입니다..

 

 

 

꽃놀이란 말을 처음 알았을 때. 카게야마는 정말로 꽃을 가지고 노는 놀이인 줄 알았던 자신을 떠올렸다. 꽃과 놀이라는 말의 결합이 의아했다. 꽃으로는 어떻게 놀면 되는 걸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오이카와가 꽃놀이 갈까?” 라고 했었던 날은, 정말로. 카게야마의 안에서 꽃놀이라는 말이 이질적인 단어가 될 정도로 고민했었다. 저로서는 답이 나오지 않아 결국 오이카와에게 답을 얻고자 찾아갔으나, 돌아온 대답은 맥빠질 정도로. 오이카와는 방금 핀 꽃처럼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바보, 벚꽃 보러 가는 것뿐이야.”

벚꽃. 벚꽃. 그 말을 되풀이할 때마다 카게야마의 머릿속이 온통 분홍빛으로 가득 찼다. 벚꽃은 분홍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막상 떠오르는 것은 분홍색 일색이었다. 정면으로 떨어지는 태양이 아닌, 고스란히 퍼지는 햇볕. 따뜻한 공기 가운데에 퍼지는 약간은 차가운 바람. 그곳에 흩날리는 벚꽃잎들. 바람이 불 때마다 폭풍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퍼붓는 벚꽃잎의 홍수는 아름다운 공포였다. 모두 떨어지면 결국에는 엉성한 나무만이 남을 뿐이었다. 나무는 아주 짧은 순간 모두의 눈빛을 끈 뒤에, 결국에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만다. 나머지는 아주 긴, 긴 겨울 뿐이었다. 벚나무에게는 벚꽃잎이 없는 자신이란, 여름이든 가을이든 겨울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카게야마는 그걸 보는 것이 싫었다. 꺾일 때를 놓쳐버린 고목처럼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싫었다. 언젠가는 져버리는 꽃잎. 언젠가는 사라져버리는 봄. 그런데도, 벚나무는 어째서. 매번 그다지도 꽃잎을 내버리는지. 제 몸을 모두 소멸시키려는 듯이. 그때만큼은 벚나무가 무서워 보일 정도로, 카게야마에게는. 벚꽃잎이 흩날리는 모양은 무서운 신기루였다.

 

그래서일까, 오이카와와 가는 꽃놀이는 조금 두려웠다. 어쩌면 카게야마와 오이카와 앞에서 모두 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불가능한 일이란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카게야마는 그런 장면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오이카와와 바라본 벚나무, 순식간에 바람이 몰아쳐서, 모두 떨어진 벚꽃잎들. 오이카와와 카게야마의 머리에도, 땅에도, 공기 중에도 온통 벚꽃잎으로만 가득해서. 그때 오이카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카게야마는 그것이 무서웠다. 오이카와는 어쩌면, 벚꽃잎처럼.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몰랐다. 그 뒤엔 긴, 긴 겨울을 오이카와 혼자 보낼지도 몰랐다. 벚나무는 오이카와를 떠올리게 했다.

 

 

✤ ✤ ✤

 

 

, 아직 남아있네.”

그러게요.”

연습으로 바쁜 오이카와와 카게야마는 시간을 맞추는 것이 힘들었다. 서로 학교도 다르고, 연습시간도 달랐다. 같은 것은 둘 다 연습을 빠지진 않는다는 점뿐이었다. 겨우 잡은 시간은 벚꽃 만개기보다도 꽤 늦은 시기였다. 벚나무가 그득하니 늘어선 공원은 없지만, 몇 그루가 모여 있는 공터는 그 나름대로 장관이었다. 어느 정도 떨어진 벚꽃잎이 바닥에서 흥건히 분홍빛 호수를 이루고 있었다. 그 꽃의 잔해들이, 얼마나 많은 나무가 제 몸을 흔들어댔는지 알게 해줬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위로 들었다. 빈틈없이 피어있는 벚꽃 사이로 포근한 햇살이 쏟아졌다. 따스한 날이었다. 가쿠란을 입고 있는 몸이 조금 더웠다. 오이카와는 이미 세이죠의 재킷을 벗은 상태였다. 홍차 빛의 머리카락이 연한 바람에 조금씩 흔들 흔들거렸다. 그 사이로 물 흐르듯 흐르는 벚꽃잎이, 한 방울. 두 방울. 오이카와 주변으로 떨어졌다.

 

덥지 않아? 가쿠란.”

조금, 덥네요.”

오이카와가 미간을 찡그리며 웃었다. 항상 깔끔한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카게야마는 목 부근의 단추뿐만이 아닌, 나머지의 단추도 모두 풀었다. 그런 뒤 오이카와가 했듯이 가쿠란을 벗어 팔에 걸쳤다. 짙은 검은색의 가쿠란에 떨어진 벚꽃잎이 묘하게 눈에 띄었다.

토비오.”

.”

나 내일 졸업식인데.”

알아요.”

카게야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내일이면, 오이카와는 졸업하고. 도쿄의 대학으로 가버린다. 어긋나기만 했던 시간을 겨우 맞췄더니 다시 어긋나버린다. 뭐가 아쉬운 걸까. 카게야마는 그저 어색했다. 오이카와가 없는 미야기가 어색했다. 오이카와가 없는 인터하이가 어색했다. 오이카와가 제 영역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이 카게야마의 미간을 좁혔다.

 

뭘 안다는 거야. 오이카와는 장난스레 내뱉은 뒤 미소 지었다. 화려한 얼굴에 꽃과 같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딜 가나 눈길을 끄는 사람이었다. 화려한 벚나무와 같은 사람. 당신을 보면 눈이 부셔서 모두 넋을 놓고 바라보지만, 무대 아래의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미소를 바라볼 때면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도 결국에는 똑같으면서. 무대 위의 모습만을 바라보는 건 카게야마도 같았다. 온통 빛으로 가득 찬 등만을 바라봤다. 오이카와는 자신에게 항상 큰 존재였다. 그가 서브를 한 번 내리칠 때마다, 벚꽃잎 폭풍이 들이닥치는 것처럼. 눈부셔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그를 붙잡고 싶어서, 분홍색 시야 사이로 손을 내뻗으면 오이카와는 그대로 사라져버리는 느낌이었다.

 

도쿄로 갈 거니까.”

.”

절대 따라오지 마. 알았지?”

……왜요.”

그러라면 그냥 네, 알겠습니다 하면 되는 거야. 여전히 귀엽지 않은 녀석이네.”

오이카와는 짜증스럽게 내뱉으며 카게야마의 머리를 헤집었다. 입꼬리는 여전히 올라간 채였다. 따스한 햇볕으로 상기된 두 볼이 붉었다. 카게야마의 얼굴 또한 붉었다. 카게야마의 정수리가 뜨거웠고, 오이카와는 그 열을 느끼는 듯 가만히 손을 대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오이카와를 올려다봤다. 좁혀진 미간으로 인해 험상궂은 얼굴이 오롯이 오이카와만 바라보고 있었다. 건방진 녀석,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내뱉었다. 카게야마의 정수리에 놓여있는 오이카와의 손에 한 방울, 벚꽃잎이 떨어졌다. 오이카와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봤다. 카게야마에게는 보이지 않는 벚꽃잎이 떨어질 듯 말 듯 흔들거렸다. 오이카와는 입술을 모아 그 벚꽃잎을 다시 공기 중으로 흘려보냈다. 흔들, 흔들. 그 새끼손톱만 한 잎이 빙글빙글 돌면서.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불어넣은 바람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뭐하시는 거에요?”

? 벚꽃잎은 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거잖아.”

오이카와는 가만히 미소 지었다. 떨어지기 위해 몽우리가 맺히고, 떨어지기 위해 꽃이 피고.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셔츠를 가만히 붙잡았다. 카게야마가 상상했던 그대로, 어쩐지 오이카와가 사라질 것 같아서.

도쿄로 가면 영영 안 오실 건가요?”

. 안 올 거야. 토비오가 있는 곳으로는.”

그렇게 혼자서 어디까지 가시려구요?”

글쎄. 다 떨어질 때까지?”

오이카와는 피식 웃음 지었다. 카게야마의 정수리에 놓였던 손이 천천히 떨어졌다. 손이 가르는 공간 사이로 벚꽃잎이 흩어졌다. 세찬 바람이 불고, 나뭇가지를 흔들고, 벚나무는 또 한 차례 벚꽃을 제 몸에서 깎아냈다.

오이카와가 셔츠를 붙잡고 있는 카게야마의 손을 떼어내고, 그 몸을 돌릴 때까지. 카게야마는 울렁거리는 가슴에 어지러웠다. 언젠가 상상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의 등이 분홍빛 시야 사이로 보이고, 오이카와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아직도 그 등이 커 보이는데. 당신은 아직도, 내게는 봄인데.

따라, 갈 거에요.”

…….”

따라갈 거라구요. 도쿄. 그러니까, 그때까지. 혼자 멋대로 사라지지 마세요. 기다리셔야 돼요.”

오이카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몸은 아직도 벚꽃잎을 내뿜고 있었다. 언젠가 져버릴 때를 기다리듯이, 그렇게 가만히 혼자서. 카게야마가 없는 도쿄에서, 그는 길고 긴 겨울을 보낼지도 몰랐다. 카게야마는 조급하게 내뱉었다.

도쿄는 더 벚꽃이 많죠? , 같이 보러 가요. 꽃놀이. 그때는 오이카와 선배 시간에 맞출게요. 그러니까또 같이 가요.”

 


, 같이. 당신과 벚꽃을 보고 싶어요. 그때는, 당신의 손을 잡을 테니까. 나만 두고 져버리지 않게, 붙잡고 말 거니까.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길고 긴 겨울을오이카와의 겨울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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