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l me, Please don’t t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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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kawa side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티가 나는 법이다. 사람의 감정을 예민하게 느끼는 건 선천적인 걸까, 그에 대해선 뭐라 말로 할 수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목소리 톤을 높이면서 말을 거는 여자아이들, 모른 척 기대는 좁은 어깨, 남자치고 피부가 희다면서 가볍게 하는 접촉들. 그런 게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자연적으로 머릿속에서 전환되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자신이 있었다. 여름은 낮이 길다는 것과 같이 당연한 이치인 것처럼.

역시 카게야마 토비오는 날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머릿속에 뚱한 얼굴이 떠올랐다. 노란 끼가 도는 피부에 까만 머리, ‘뭐하러 오셨어요.’하며 삐죽 튀어나온 입술. 이상하게 웃음이 피어올랐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태도, 저는 모르겠지만 손끝까지 긴장한 것 같은 그 모습은 좋아한다고 온 몸으로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오이카와는 가는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고 슬며시 미소 지었다. 옆에서 이와이즈미가 또 무슨 이상한 짓 꾸미고 있냐며 험악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오이카와는 피식 웃어 보이며

그냥. 솔직하지 못하구나 싶어서.”

가볍게 내뱉을 뿐이었다. 연습이 없는 날의 귀갓길 가운데로 햇빛은 부서지며 떨어지고 있었다. 몸에 달라붙는 습기가 끈적거렸다. 뜨끈한 바람이 드러난 팔에 닿아서, 오이카와는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카라스노에 도착했을 무렵엔 석양이 바닥 저변에 녹아들고 있었다. 더위가 한풀 꺾인 저녁나절은 매미 소리도 한풀 꺾여 낮에 비해서 고요했다. 오이카와는 저 멀리서 걸어오는 무리를 보고 가방을 고쳐맸다. 지그시 한 사람만을 향한 시선을 따라가면, 오이카와를 발견한 건지 강한 인상을 쓰고 있는 험악한 표정의 후배가 보였다. 오이카와가 눈을 가늘게 굽히면서 안녕, 토비오쨩. 가볍게 내뱉고 손을 살살 흔들어 보이면, 카게야마는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강하게 한숨을 쉰 뒤 무리 속의 누군가에게 뭐라 뭐라 말을 하고 오이카와쪽으로 걸어왔다. 카게야마가 다가오면 올수록 그 까만 저지에 노을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까만 머리카락에도, 꾹 다문 입술에도. 어둑해져 가는 저녁에 얼굴이 또렷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이르자, 카게야마는 발을 멈췄다. 더는 찌푸려지지 않는 미간을 더욱 좁히면서, 뚱한 입술을 열었다.

뭐하러 오셨어요.”

토비오쨩 보러.”

거짓말 치지 마세요.”

조금의 쉼도 없이 주고받은 말 뒤에 카게야마는 시선을 틀었다. 잠시간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오이카와를 그대로 지나치려는지 몸을 움직였다. 오이카와가 서둘러 손을 뻗어 카게야마의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그냥 가지 말고. ? 할 말 있으니까.”

…….”

카게야마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오이카와와, 오이카와가 붙잡은 팔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 입술이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잠시간 달싹였지만 오이카와가 응? 운을 떼자 다시 꾹 닫혔다. 연습을 끝낸 몸에서는 연한 땀 냄새가 나서, 오이카와는 이상하게 그리운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시절 같이 남아서 늦게까지 연습하던 날은 바람에 실려 카게야마의 땀 냄새가 났었다. 시선이 비슷해질 정도로 키가 자라도, 예전에는 순진한 표정을 짓던 얼굴에 이제는 짜증이 가득해도, 예전과는 달리 굵어진 팔이 한 손에 들어오지 않아도, 카게야마는 카게야마였다.

 

 

저녁이 물드는 카페에는 사람이 적었다. 뚱한 표정으로 눈앞에서 연거푸 물만 마셔대는 카게야마를 보면서, 오이카와는 기어코 웃음을 지었다. 입꼬리를 올린 오이카와를 보더니 카게야마는 먼저 운을 뗐다.

할 말이 뭔데요.”

있지, 토비오쨩.”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카게야마가 놀란 듯 주춤거리며 몸을 뒤로 조금 뺐다. 열이 올랐던 몸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닿은 걸까, 그 팔을 조금 떨면서.

솔직하게 말하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오이카와는 아이스티를 한 모금 마셨다. 간질간질한 목구멍을 타고 톡톡 튀는 아이스티가 내려갔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뭐가요?”

오이카와는 피식 웃더니, 아이스티의 얼음을 빨대로 휘적휘적 흔들었다.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다 아니까 괜찮아. 솔직하게 말해. 오이카와씨의 대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처음부터 정해져있었다. 카게야마가 어떤 식으로 고백하든, 오이카와의 대답은 한가지였다. 여름에는 시원한 음료가 마시고 싶다는 당연한 이치처럼. 카게야마는 얼마간 조용한 표정을 짓더니, 오이카와가 장난스레 지어 보인 미소에 이내 웃어 보였다.

? 웃었다고?

오이카와는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마시던 아이스티를 내려놓았다. 아무리 봐도 눈앞의 후배는 인상 나쁘게 웃고 있었다.

그러는 오이카와씨는요?”

,?”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지 못한 상황에 오이카와는 잠시간 머릿속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카페 안은 조용했고, 카게야마는 웃고 있었고, 시원했던 에어컨 바람은 어느새 소소한 한기를 주고 있었다. 어떤 말이든 오이카와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정해놓지 않은 대답이 나오고 말았다. 카게야마는 소름이 돋는 미소를 거두더니 조용한 얼굴로 오이카와를 바라봤다.

오이카와씨가 뭘 생각하는지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카게야마의 손이 튀어나왔다. 그 손이 오이카와의 넥타이를 낚아채고 끌어당기더니, 두 입술 사이에 아주 조금의 간격만을 남겨두고 카게야마는 입을 열었다.

너무 바보로 보지 마시죠.”

입술에 와 닿는 뜨거운 입김에 오이카와는 입술이 덜덜 떨리는 느낌이었다. 잡고 있던 넥타이를 던지듯이 내려놓은 카게야마는 무언가 해냈다는 표정으로 가방을 들고 카페 밖으로 나가버렸다. 오이카와는 얼마간 아무 말도 못 하고 입만 벌린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간질이던 이마, 바로 앞에서 마치 별이 담긴 듯 반짝이던 검고 푸른 눈동자. 귓속을 울리는 낮은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저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느껴져 머릿속이 다시 한 번 새하얘졌다.

뭐야, 토비오쨩?”

얼굴이 뜨거웠다. 카페 안에서 저만 다른 세상인 것처럼, 온몸이 뜨거워서 오이카와는 손을 꽉 쥐었다. 카게야마에게 잡혔던 넥타이에 주름이 져 있었다. 목이 타서 아이스티를 한 모금 마셔도 가시지를 않았다. 귓속에 들렸던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재차 떠오르면, 다시 열이 올라 목구멍을 태웠다.

…… 토비오쨩?”

그 까맣고 푸르던 눈동자가, 저를 자꾸만 바라보고 있는 착각이 일었다.

 

 

 

 

 

 

Kageyama side

 

 

오이카와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옛날부터 그는 그랬다. 무언가를 꾸미고, 나를 놀리고, 장난치고, 자기가 한껏 즐거운 다음에 남겨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고. 중학교 시절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그랬다. 서브를 가르쳐달라는 나를 내치고, 혼자 앞으로 나아가고. 졸업식 날 세이죠에 가도 되나요? 라고 물었을 때 그건 토비오쨩이 알아서 할 일이지, 저 혼자 졸업해버리고. 오이카와는 그랬다.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와 마주할 때면 또 어떤 짓을 당할까 하는 생각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카게야마는 공을 올리던 손을 멈췄다. 아무도 없을 때 하는 연습은 조용하고 기분이 좋았다. 새벽 기운은 아직 오르지 못한 태양 빛을 가려주어 선선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런데도 열이 모인 몸을 가라앉히기 위해 카게야마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낮게 숨을 내뱉자 폐에 가득했던 뜨거운 열기가 한차례 빠져나갔다. 그래도, 이제 예전과는 다르다. 당하지만은 않을 거니까. 다시 배구공을 들어 올리고, 서브 자세를 취했다. 뭘 꾸미는지는 모른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전날, 오이카와가 갑작스레 찾아온 것도 결국엔 그런 일이겠지. 날 놀리려는 일. 알고 있으면서도 그 석양이 녹아든 웃는 얼굴에, 이상하게 저 안쪽이 욱신거리는 건 카게야마에게 일종의 병이었다. 고질병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사라지질 않는 지독한 병. 서브를 내려치는 맛이 좋지 않았다. 공이 저 바깥쪽으로 빠져 아웃코스로 날아들었다. , 짧게 혀를 차고 카게야마는 재차 공을 들었다.

토비오쨩, 솔직하게 말하지? 그의 정해진 순서였다. 먼저 저의 마음을 파헤치고, 무언가 재미난 건 없을까 떠보고. 바보같이 거기에 걸려들어서 저 속까지 드러내 보이면, 오이카와는 그 안을 온통 할퀴는 사람이었다. 여자애들이 자주 말하는, 쇼트케이크에서 딸기만 빼 먹는 얄미운 사람이란 건 이럴 때 쓰는 말인 걸까. 자세한 건 모르지만 비슷한 말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뭘 꾸미는지는 몰라도 이제 당신 원하는 대로는 안 될 거니까. 오이카와는 어차피 저를 놀릴 생각만 가득하니까, 나도 내 맘대로 할 뿐이었다.

카게야마는 강하게 팔을 휘둘렀다.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강하게 내리치자, 공이 슬쩍 휘어 아웃선 아슬아슬한 곳에 꽂혔다. 땀으로 흠뻑 젖은 티셔츠를 들어 올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쓸어 닦았다. 더워지고 있었다. 체육관의 열린 창문으로 후덥지근한 바람과 습기가 카게야마를 온통 휘어 감았다. 입술을 꾹 다물고, 한번 고개를 끄덕인 뒤 카게야마는 재차 공을 들어 올렸다. 반 박자 쉬고, 도움닫기를 하고. 팔을 휘두르면. 한 번 해보자구요, 오이카와씨.

오이카와씨가 좋아하는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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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와 생일기념 연성 첫번째. 상중하로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평소 쓰던 느낌이 아니라 뭔가 어색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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