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l me, Please don’t tell

--

 

 

 

 

 

Kageyama side

 

 

키스란 건 뭘까. 언제 하는 걸까. kiss. 케이아이에스에스. 사전을 뒤져보면, ‘키스, 입맞춤, 뽀뽀라는데. 아니, 물론 맞는 말이지만. 카게야마는 묻었던 고개를 다시 번쩍 들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이 슬금슬금 피할 정도로 구겨진 인상은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다. 교실 내에 가득 차오른 질척한 습기가 머리카락에 들러붙었다. 며칠 전부터 울기 시작한 매미는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목을 젖히며 울어댔다. 매미가 한번 울 때마다 뒷목을 타고 땀 한 방울이 흘렀다. 미지근한 땀이 귀 뒤로 한줄기 흐르는 걸 느끼면서, 카게야마는 다시 고개를 묻었다. 오랜 시간 누워있던 책상의 네모난 공간 안에는 답답한 열기와 습기가 그득했다. 무거웠던 눈꺼풀을 내리면, 다시금 생각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뭘까. , 어째서. 오이카와씨는 나에게 키스한 걸까. 오이카와는 그 날 이후로 찾아오지 않았다. 카게야마도 찾아가지 않았다. 어차피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찾아왔기에 성립된 관계였다. 나를 놀리고자 시작한 일이었으니까, 충분히 놀려준 이상 오이카와는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그렇다면 찾아올 일도, 필요도 없겠지. 그래서였다. 오이카와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건. 카게야마가 오이카와를 찾아가지 않는 건. 엎드린 카게야마의 뒤통수에 직사광선이 내리 쬈다. 머릿속이 다시 천천히 익어갔다. 몽롱한 의식이 카게야마를 뒤덮고, 그 날의 감촉이 떠올랐다. 조금 촉촉했던 오이카와의 입술, 땀이 송골 맺힌 보드라운 코끝이 맞닿은 느낌. 오이카와의 입술이 떨어진 뒤 제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모른다. 매미 소리가 너무 커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는 것 외에는.

뭐였을까. 카게야마는 다시금 인상을 찌푸렸다. 뭐였을까, 오이카와씨의 수수께끼는. 정답이 무엇이었을까. 장난이었는걸, 뭘 그렇게 진지해? 왜 키스했냐고 물으면 오이카와는 그렇게 대답할 게 뻔했다. 분명 또 풋, 하고 일부러 보여주듯이 비웃으면서. 카게야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마에 묻었던 땀방울이 팔에 질척하게 번졌다. 카게야마가 뱉은 숨이 그대로 책상에 닿아서, 이미 충분히 오른 열기를 더했다. 괜스레 머리에 열이 올랐다. 뜨거운 이마가 간질간질했다.

그만하자. 낮게 숨을 내뱉었다. 치아 끝에 미미하게 남아있는 보드라운 귓바퀴의 감촉도, 입술에 남아있는 그 온기도, 모두 그만하자. 그 사람은 목적을 달성했고, 난 이번에도 당한 거고. 그냥 그걸로 끝인 거지. 오이카와씨랑은. 그냥 그걸로. 카게야마는 뜨끈해진 이마, 습기를 몰고 온 낮은 바람, 잠시도 쉬지 않고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오이카와의 손을 잡았던 손이 이상하게 뜨거워져서, 열기를 잠재우고자 주먹을 쥐었다. 의식 안에서, 태양 빛이 부서지며 닿았던 홍차 빛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건방진 토비오쨩. 오이카와의 입술이 움직였다. 건방진 토비오쨩. 성격 나쁜 오이카와씨. 오이카와씨는 항상 그런 식이죠. 자기 목적만 달성하면, 남겨진 사람은 어찌 되든중학교 때도, 난 당신에게 휘둘리기만 하고. 그러니까, 이번에는 휘둘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데.

다 알고 있어요. 오이카와씨가 생각하고 있는 거. 날 놀리려는 거. 날 가지고 놀려는 거. 그런데도 당신에게 할 말이라고는 왜 저한테 키스했어요?’라는 말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난 아직도 여전히, 중학교 때와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걸까. 잠의 호수로 빠져드는 의식 너머에서, 매미 소리가 울렸다. 그 날 울었던 매미일까, 한 마리가 줄기차게 울어댔다. 뜨거웠던 오이카와의 손, 뜨거운 입술, 이상하게 두근거리던 가슴. 죽을 것만 같던 숨 막힘.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느낄 정도로.

 

 

 

 

 

 

 

 

Oikage side

 

 

 

내일은 비가 온다고 했던가, 날이 맑았다. 비 오기 전의 어찌할 바 없는 더위가 하늘 끝부터 땅 아래까지 차곡차곡 가득했다. 여름의 낮은 뭉게구름은 몇 조각 띄엄띄엄 떨어져 있어서, 칼날같이 직선으로 내리꽂는 태양을 막을 것은 없었다.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핀 들꽃이 햇빛을 흠뻑 받아 선명한 노란빛으로 빛났다. 그래서였다, 카라스노 고교 앞엔 노란빛이 점점이 박혀있었다. 오이카와는 그 날과 같이, 교문 앞에서 선연한 태양 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카게야마가 저 멀리서 나오는 것을 보고 첫날과 같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더니. 후배는 첫날과는 달리 약간 긴장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오이카와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날이 길어진 탓에 그때와 달리 노을이 지려면 아직 한참이라는 듯 태양은 더 진하게 타오르며 더위를 흩뿌렸다.

안녕, 토비오쨩.”

오이카와가 놀리듯이 웃으며 말하자, 카게야마는 모래 씹은 표정으로 오이카와를 바라봤다.

용건도 끝났는데 왜 오셨어요?”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꿍얼꿍얼 내뱉더니 그대로 오이카와를 지나가려는 카게야마를,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붙잡았다. 손은 여전히 따뜻했고, 또 뜨거웠다.

나랑 데이트할래?”

인사를 건네듯 가볍게 물어본 오이카와에게, 카게야마는 눈을 동그랗게 뜬 뒤 내뱉었다.

데이트요?”

. 데이트.”

요모조모 따져보면 역시나 잘생긴 그 얼굴 안에서 부드러운 미소가, 그날과 전혀 다를 바 없이 피어올랐다. 카게야마는 미간을 좁히면서 의심하는 눈길로 쳐다봤다.

뭐하러요?”

싫어?”

됐어요. 어차피 선배 명령이겠죠.”

오이카와는 싱긋 웃어 보인 뒤, 카게야마의 손을 다시 한 번 제대로 꽉 잡았다. 오이카와의 손에 있는 굳은살이 하나하나 느껴질 정도로 두 손이 강하게 밀착했다.

갈까.”

오이카와의 모습이 그날과는 달랐다. 이상하게 깔끔한 목소리, 마치 옆에서 꺅꺅거리는 여자애들에게나 보여줄 것 같은 싱그러운 미소. 뭘까. 카게야마는 의심하는 눈초리로 바라봤지만 그래 봤자 카게야마가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놀리려는 목적도 달성했고, 더는 아무것도 원하는 건 없을 텐데. 오이카와는 무얼 하려는 걸까. 무얼 하고 싶은 걸까, 카게야마와. 왜 키스했어요? 다시 혀까지 올라온 말을 카게야마는 꿀꺽 삼켰다. 쓴맛이 났다.

 

 

지독한 여름 때문이었을까, 카페에는 한두 사람밖에 보이지 않았다. 선선한 에어컨 바람이 땀으로 젖은 몸을 순식간에 식혔다. 갑자기 몰려드는 한기에 카게야마는 몸을 조금 떨면서, 오이카와가 이끄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있지, 토비오쨩. 오이카와는 카게야마 쪽으로 홍차 빛 눈동자를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

솔직해지자구?”

피식피식 웃으면서. 카게야마의 안에 첫날의 기억이 지나갔다. 오이카와와의 첫날. 변덕스러운 그가 찾아왔던 첫날과 같이, 그는 또다시 반복하려는 걸까. 오이카와가 좋아하는 수수께끼. 카게야마는 무언가 결정한 듯 오이카와를 곧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요, 솔직해지자구요. 오이카와씨가 원하는 대로 절 놀렸으니까, 이제 다 없던 일로 해요. 키스도, 손을 잡았던 것도, 데이트도.”

카게야마가 툭툭 토하듯이 내뱉었다. 이상하게 명치 깊숙한 곳이 욱신거렸다. 태양이 몸을 찌르던 것보다도 더 날카롭게 무언가가 콕콕 박혔다. 오이카와가 이끌었던 손, 입술의 감촉, 왠지 그게 다. 여름날의 신기루와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습기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사라지는 것처럼 그것도 사라지는 걸까. 아지랑이와 같이 사라지는 걸까.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에게서 시선을 비껴 내려가더니 마찬가지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흰 피부가 전등 빛을 받아 말갛게 빛났다. 오이카와는 흐리게 웃고 있었다. , 솔직해지자.

있잖아, 토비오쨩.”

오이카와는 토비오의 손을 끌어, 그 손가락 사이사이를 부드럽게 채웠다. 깍지 낀 두 손이 선선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포근한 열기를 나눴다. 카게야마가 동그란 눈동자로 오이카와를 마주 보자, 그 홍차 빛 눈동자가 카게야마의 시야를 가득 채우면서 순식간에 빛났다. 솔직해지자.

있지, 토비오쨩. 나 거짓말했어.”

무슨 거짓말이요?”

엄청 두근거렸거든. 그때.”

그때?”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에게로 몸을 굽히고, 얼굴을 틀어 밀착하면서 가깝게 다가왔다. 귓가에 닿은 입술에서 나온 그의 한숨이 귓속으로 파고들어, 한기 도는 전신에 뜨거운 한숨이 퍼질 정도로 가까이. 카게야마의 몸이 움찔 떨리면서 뒤로 물러나려는 것을 오이카와가 깍지 낀 손을 당겨 제지했다. 귓속에 숨을 불어넣듯이, 숨소리만으로 오이카와는 속삭였다. 눈앞에 있는 오이카와의 목덜미에서 달콤한 향내가 났다.

토비오쨩이 깨물었을 때.”

이어진 통증에 카게야마는 앗, 낮게 내뱉었다. 급하게 손을 들어 귀를 가리고 뒤로 몸을 빼자, 오이카와도 좁혔던 거리를 되돌렸다. 오이카와가 가볍게 씹은 귓바퀴가 화끈거렸다. 그 예쁜 치열이 저의 귓바퀴에 와 닿았다는 사실이 무의식중에 점점 확실해져서, 귀에서 시작한 통증이 전신으로 아찔하게 퍼지는 느낌이었다. 또 놀리시려는 거에요? 짜증스럽게 내뱉으려던 입술을 카게야마는 다시 꾹 다물었다. 오이카와는 웃고 있지 않았다. 흰 피부가 희미한 열로 붉어져 있었다. 카페의 조명은 상아빛으로 흘러내리는데, 오이카와는 그 아래에서 더 붉은 얼굴로 카게야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체온이 올랐다. 36.7도로 이루어져 있는 체내의 물이 보글보글 끓으면 이런 기분일까. 머릿속이 부옇게 흐려졌다.

지금도, 두근거리거든. 엄청.”

오이카와는 마주 잡고 있는 카게야마의 손을 끌어 제 심장에 갖다 댔다. 일정한 박자로 조금의 쉼도 없이 뛰어오르는 펄떡임을 느끼면서, 카게야마는 제 손도 똑같이 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마저 떠올렸다. 오이카와의 다른 한 손이 카게야마의 왼쪽 가슴에 슬며시 닿았다. 오이카와의 큰 손 아래에서 심장은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두근대고 있었다. 정말 바보 같게도.

토비오쨩도 두근대고 있네.”

오이카와가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오이카와씨.”

토비오쨩도 거짓말, 했지?”

카게야마가 말라붙은 침을 삼켰다. 목울대가 크게 울리면서, 그 행동 하나까지도 오이카와가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의 입술이 부드럽게 열리더니, 카게야마에게 기울였던 아까와 같이 다시 거리를 좁혔다.

나 때문이지?”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간격 사이에서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울렸다. 카게야마의 눈동자와 오이카와의 시선이 겹쳤다. 검고, 푸른 눈동자. 오이카와가 눈동자를 한번 깜빡일 동안, 카게야마는 그저 곧게 오이카와만을 바라봤다.

왜 키스하셨어요?”

무미건조하게 말을 내뱉은 순간 인상을 찡그리며 험악한 표정을 지어 보인 카게야마는 기어코 시선을 피해버렸다. 아뇨, 연이어 내뱉은 말은 지독히도 낮았다.

아뇨, 됐어요. 대답 안 하셔도 돼요.”

토비오쨩.”

오이카와가 짧게 불렀다. 동시에 가볍게 닿았던 입술은 금세 다시 에어컨 바람에 차가워졌다. 카게야마의 크고 까만 눈동자 안에 오이카와만이 가득했다. 더위를 잊은 몸은 오이카와로 가득 차서, 귓속에 그날 들었던 매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매미, 한 마리만 그다지도 울어대던 그 날, 쏟아 내리던 햇살, 녹아서 한 덩어리의 습기가 된 것 같았던 마주 잡은 손.

, 좋아해?”

오이카와가 물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잡고 있는 깍지 낀 손에 힘을 주어 잡았다. 심장에 닿아있던 서로의 손은 떨어져, 남은 건 차가운 테이블 위에서 둘만의 여름을 맞잡고 있는 손 두 개뿐이었다. 카게야마의 입술이 꾹, 굳게 다물어졌다가 다시 열렸다. 한숨이 나올 새도 없이 다시 닫혔지만.

, 물어요. 그런 거. 알고 있잖아요.”

솔직해지기로 했잖아.”

싫어요. 오이카와씨 같은 사람. 심술궂고, 맨날 장난만 치고, 놀리기나 하고. 갑자기 찾아와서 데이트니, 키스니, 그런 거. 그런 짓만 하는 오이카와씨는 싫어요.”

토비오쨩.”

오이카와가 다시 가볍게 키스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오이카와의 입술이 천천히 뜨거워져서, 그와 맞닿았던 카게야마의 입술도 이제는 달싹일 정도로 뜨거워진 것을 느꼈다. 카게야마는 결국 눈을 감았다.

두근거려요.”

?”

오이카와씨 때문에요.”

. 나도.”

감긴 카게야마의 속눈썹에 오이카와는 살며시 키스했다. 카게야마는 천천히 눈을 뜨고, 검고 푸른 눈동자로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약간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이 장면에서 그런 표정을 짓나? 오이카와는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게야마의 미간을 꾹 눌렀다.

감동적인 장면인데 표정이 왜 그래?”

솔직한 오이카와씨뭔가 기분 나빠요.”

진짜 한 대 때려버릴까. 요 꼬맹이.

건방지다니까, 진짜.”

그래도 싫진 않아요. 솔직한 오이카와씨.”

대답할 새도 없이 카게야마의 입술이 오이카와를 덮쳤다. 오이카와가 했던 가벼운 키스보다도 더 깊게 입술을 얽어매는. 떨어질 줄 모르고 붙어있는 카게야마의 입술을 깨물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 오이카와는 눈을 마저 감았다.

역시 건방진 녀석이라니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