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l me, Please don’t tell

-중-

 

 

 

 

 

oikawa side

 

 

 

조각난 구름 몇 조각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간간이 부는 후끈한 열기는 전날보다도 더욱 심해져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폐에 답답한 공기가 가득 찼다. 오이카와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몽롱한 머릿속에서 부옇게 전날을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하길래 또 바보 같은 표정이냐.”

이와이즈미가 땀이 한두 방울 묻어있는 뺨에 대고 손부채 질을 하며 툭 내뱉었다. 한두 마리 울기 시작한 매미는 고요한 공간 안에 가끔씩 귀를 찌르는 이명을 던져넣었다.

으음, 그냥.”

무슨 일 있냐.”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오이카와를 보면서, 이와이즈미는 인상을 찌푸렸다. 또 무슨 귀찮은 일이라도 저지른 건 아니겠지. 어제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더니, 오늘은 종일 이 상태다. 하루 사이에 일어난 변화는 오이카와만이 아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매미가 울기 시작했고, 햇빛은 더 강하게 지면을 태웠고, 날이 더욱 더웠다. 본격적인 여름이 오고 있었다.

미안, 이와쨩. 나 먼저 갈게.”

또 어디 가서 사고 치려고?”

사고 치는 거 아니라니까! 그냥, 확인해보는 것뿐이야.”

뭐를?”

이것저것.”

 

 

뭐하러 또 오신 거에요?”

누가 봐도 질색이란 표정으로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쏘아붙였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불만 섞인 목소리는 신경도 쓰지 않는지 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안녕, 토비오쨩. 있지, 나랑 데이트할래?”

데이트요?”

카게야마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오이카와를 쳐다봤다. 위아래로 흘기는 느낌이 들어, 살며시 드러난 이마에 딱밤이라도 먹여주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 데이트.

저 연습할건데요.”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고 카게야마는 금세 툭 내뱉었다. 방금까지 한 건 연습 아니야? 카게야마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있는 투명한 땀방울을 보면서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배구 바보. 그런 점은 중학교때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카게야마는 여전히 카게야마 토비오였다. 배구밖에 모르는, 건방진 후배 녀석.

지금 선배 말을 무시하겠다고?”

미간을 찌푸리면서 미소 짓는 오이카와를 보고, 카게야마가 인상을 더욱 구기더니 입을 삐죽 내밀었다. 오이카와의 시선을 피하고 뭐라 뭐라 꿍얼거리더니 이내 못마땅하다는 듯 내뱉었다.

어디 갈 건데요.”

데이트, 갈 거야?”

오이카와씨가 강제로 후배를 끌고 가는 걸 데이트라고 부르고 싶으시다면요.”

우와, 토비오쨩 건방지네~”

장난식으로 내뱉으면서 오이카와는 피식 웃음 지었다. 그와 동시에 비어있던 카게야마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연습을 마치고 땀이 식어가던 카게야마의 손이 순식간에 열기로 물들었다. 거봐, 역시 좋아하는 거 맞지? 피어오르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올리자, 카게야마의 얼굴이 순간이나마 생전 처음 보는 표정으로 변했다. 순간적인 당황과 경계, 동시에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슬며시 붉어진 얼굴을 보면서, 오이카와는 올렸던 입꼬리를 다시 내렸다. 저런 표정도, 짓는구나. 미간을 찌푸린다든가, 인상을 구긴다거나, 입술을 삐죽 내민다든가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 보일 뿐인.

이상하게 묘한 두근거림에 금세 놀려주면서 놓으려고 했던 손을 놓지 못하고, 오이카와는 어정쩡하게 마주 잡은 채로 발을 움직였다. 손에 열이 모이는 게 느껴졌다.

 

 

전날 갔던 카페, 이 근처였던 거 같은데. 이상하게 길이 멀게 느껴졌다. 같은 곳을 돌고, 돌고, 또 도는 느낌. 눈을 돌려 주변을 보면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런데도, 왜일까. 발은 분명 움직이고 있고, 몸도 나아가고 있고, 태양도 기울고 있는데 왜일까. 카게야마와 이대로 영원히, 도착하지 않는 길을 걸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오이카와는 시선을 돌려 살며시 카게야마를 바라봤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조금 아래로 내린 채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오이카와와 보폭을 맞춰서 걸어가고 있었다. 아무 말이 없었다. 오이카와의 타는 목구멍에서도 숨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조용한, 두 사람의 간격 25센치 정도의 적막 안에서 매미 한 마리가 오이카와와 카게야마를 따라오면서 끊임없이 울고 있었다. 한 마리, 단 한 마리가 그렇게 울어댔다. 아지랑이가 저 끝에서 피어올랐다. 해가 더욱 뜨겁게 타고 있기 때문이리라. 바람 한 점 없는 습기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그런데도 손은 놓을 수가 없어서. 오이카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말랐던 목구멍이 더욱 비쩍 말라서, 약간의 통증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등을 타고 땀이 한줄기 흐르는 감각이 이상하게 선명했다. 등에 흐르는 간지러움에 오이카와는 손을 더욱 꽉 잡으면서, 카게야마를 다시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바닥을 향했던 그 눈길은 이제 곧게 뻗어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고, 푸른 눈동자. 밤하늘 같은 눈동자.

토비오쨩.”

발을 멈추고, 오이카와가 낮게 불렀다.

?”

카게야마가 고개를 돌린 순간, 조금 놀란 표정으로 몸을 살짝 뒤로 뺐다.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 오이카와의 눈동자가 있었다. 카게야마의 입술이 당황한 탓일까, 슬며시 벌어졌다. 오이카와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틀고 마치 키스할 것 같은 모양새로 카게야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 말을 내뱉지 못한 카게야마의 입술에서 뜨거운 한숨이 나왔다. 결국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눈동자를 끝까지 바라보지 못하고 눈꼬리를 물들이면서 눈을 꼭 감았다.

,”

오이카와가 못 참겠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카게야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슬며시 뜨자, 오이카와는 푸하핫, 매끄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 그러게 솔직해지라니까?”

오이카와가 장난스레 웃어 보이며 놀리듯이 말하자, 카게야마의 노란 끼 도는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이내 인상을 찌푸리면서 오이카와와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줘서 강하게 끌어당겼다. , 어라? 무방비하게 웃고 있던 몸이 좀전과 같이 카게야마 쪽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오이카와는 웃음을 거뒀다. 카게야마의 얼굴이 오이카와의 옆으로 기울어지더니, 그 코끝이 귀 뒤의 연한 살을 간지럽혔다.

저라고 오이카와씨 못 놀릴 줄 아세요?”

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스며들더니, 이내 귓바퀴에 날카로운 통증이 훅 퍼졌다.

우왁?!”

오이카와가 귀를 손으로 감싸면서 펄쩍 뛰었다. 순식간에 통증은 사그라들었지만, 징징 울리는 욱신거림은 가시지 않았다. 여름이어서 그런걸까, 더운 날씨 때문인 걸까. 오이카와의 흰 피부가 연한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투명한 땀이 한 방울 흐르고 있던 얼굴도 마찬가지여서, 붉어진 카게야마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오이카와 또한 몸에 열이 오르고 있었다.

,

말이 이어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선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는데, 정작 나오는 건 공기 거품뿐이었다. 카게야마는 인상 나쁜 얼굴로 오이카와를 째려보면서 아직도 잡고 있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습기가 손과 손 사이에 그득했다. 언제 땀방울이 배어 나와서 흘러내릴지 모를 정도로, 손가락 사이사이에 몽글몽글 열이 맺혀있었다.

이상해. 이거, 뭔가 이상해.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토비오쨩이 나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나? 토비오쨩이 먼저 나를 좋아했고, 그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었고, 난 그저그저. 그런데도 왜 자꾸만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지. 죽을 것만 같이,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카게야마와 이어진 손이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이대로 녹아서, 모두 녹아서 그대로 손이 없어지는 건 아닐까 할 정도로.

오이카와씨, 두근거리고 있죠?”

카게야마가 쌤통이다라는 건방진 표정으로 툭 내뱉었다. 요 녀석이? 짜증이 확 치밀었지만 그 벌려진 입 사이로 고른 치아 선열이 보이자, 카게야마가 깨문 귓바퀴가 다시 욱신거렸다. 그가 깨물었던 잇모양이 하나하나 느껴져서, 귀가 마치 불에 덴 듯이 뜨거웠다.

아니거든?”

전 두근거려요.”

?”

오이카와씨 때문이 아닌 건 확실하네요.”

건방지네.”

오이카와씨도요.”

조금도 지지 않으려는지 카게야마는 미간에 힘을 주고 오이카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을 따라오던 매미는 울지 않고 있었다. 방금까지 강하게 울던 소리가 그치고, 조용한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었다. 잡고 있는 손에 감각이 없었다. 어느새 서로 간에 깍지를 끼고, 조금의 틈도 없이 겹쳐진 손안에는 더운 공기가 가득했다. 열기를 담은 땀방울이 목을 타고 흘렀다. 입술을 슬며시 열고, 오이카와는 낮게 내뱉었다.

건방진 토비오쨩.”

고른 치열이 보이는, 살짝 벌려진 카게야마의 입술에 오이카와는 그대로 가볍게 키스했다. 메마른 입술은 약간 짠맛이 났다. 카게야마의 땀 냄새가 났다. 여름밤의 향기였다. 매미 한 마리가 한차례 크게 울었지만, 오이카와에게는 카게야마의 숨 삼키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날이 더웠다. 본격적인 여름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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