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빠져버릴까.

 

 

 

 

 

 

 

 

 

바다라는 건 무섭잖아.”

왜요?”

가끔은 잡아먹힐 거 같거든.”

 

- 시원한 소리가 공간을 가로질렀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10월 말의 모호한 날씨에 바다라니, 애초부터 이상했다. 추운 것이 싫은 건 아니다. 오히려 약간 쌀쌀한, 좋아하는 계절이었다. 날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오이카와씨의 제안이었다.

바다에 갈까.’

그 말만 들어도 코끝에 소금 냄새가 스치는 느낌이었다. 혀끝에 퍽퍽하게 소금이 묻었다. 왜요? 반문해봤자 내일 오전 10시에 집 앞에 나와.’ 라고 통보식으로 말할 게 뻔한 사람이었기에 묻지 않았다. 오이카와씨는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건 좋아 혰지만, 예쁜 옷을 구경하거나 희귀한 소품들을 사 모으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바닷가에 간다고 한다면, 글쎄. 바다를 구경한다기보다 예쁜 색을 띠는 조개를 모으거나, 근처 음식점에서 머리가 띵할 정도로 차가운 빙수를 사 먹거나. 그 정도의 소일거리만 하고 올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가끔 오이카와씨는 바다에 가자고 조르곤 했다. 들어왔다 다시 나가는 파도나, 귀 언저리를 간지럽히는 갈매기 소리 등바닷가에 서 있다 보면 어딘가 다른 세계에 있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운동화 속 양말까지 다 젖을 정도로 물속에 잠긴 적이 있지만, 이렇다 할 물놀이를 한 적은 딱히 없었다. 어쩌다 가게 된 동네 풀장에선 그렇게도 장난을 쳤으면서, 바다에선 오이카와씨는 점잖은 어른이 되었다. 애초에 저를 제외하고 보면 장난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어째서 저에게만 그리도 짓궂은 건지는 차치하더라도 바다는 오이카와에게 특별한 장소였다. 특별한 장소임이 틀림없었다. 언뜻 동그란 지평선을 바라보는 오이카와의 눈동자는 평상시와 달리, 슬쩍 물빛을 띠었다. 바다에 가자. 그렇게 말할 때의 오이카와는시간도 공간도 없는 곳에 발을 대고 서 있는 사람과도 같았다.

오전 10. 평소처럼 가벼운 차림을 하고 나가려니, 작년의 바닷바람을 떠올리고 다시 겉옷을 바꿔 입었다. 그대로 신발을 신고 있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토비오, 잠깐만.”

.”

어머니가 목도리를 들고 서 있었다. 검은색의, 털실로 짠 목도리. 끝 매듭의 올이 서툴게 묶여있었다. 몸을 돌려 마주 보자 어머니가 빙긋 웃어 보였다. 가을이라고는 하나 아침은 매서운 겨울바람이 집안을 휘어잡는 날씨였다. 어머니 양 볼에 말갛게 홍조 빛이 돌았다.

“30번째 생일, 축하해.”

생일은, 다음 주인데요.”

, 알고 있어. 어제저녁에 완성했거든. 얼른 주고 싶어서.”

말간 볼을 소소하게 물들이면서, 어머니는 내 목에 목도리를 둘렀다. 아직 새것의 섬유 냄새가 남아있는 털실이었다. 빳빳하고 촘촘하게 짜인 털실 사이에 얼굴을 묻으면 따뜻한 온감이 퍼졌다.

. 잘 어울려.”

……, 감사합니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감사인사를 내뱉을 땐 입을 삐죽이게 된다. 어릴 적에 자주 지적받던 나쁜 버릇이었지만, 어머니는 이제 이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솔직하게 말해도 돼라고 웃으며 대답해주곤 했다. 그 덕분일까. 한 박자 늦지만, 제대로 고맙다고 대답할 수 있는 입이 되었다. 목도리에 파묻힌 탓에 우물우물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도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생일 축하해다시 말했다.

올해도 건강하게, 행복하게 보냈으면 좋겠네.”

올해12월인데요.”

바보. 생일부터가 내년인 거야.”

어머니는 장난스럽게 말하며 내 볼을 한번 쓰다듬었다. 차갑고 주름진 손끝이 부드럽게 볼을 왕복했다. 검은 눈동자 끝을 조금 물들이면서, 어머니는 다시 천천히 미소 지었다. 30. 나이의 앞자리에 3이 붙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나는 아직도, 그저 카게야마 토비오일 뿐인데. 이걸 그 사람은 벌써 2년 전에 겪은 걸까. 그 사람 생일 때는 어땠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같이 보냈는데도, 그와는 벌써 몇 년이나. 몇 년이나앞자리 숫자가 1일 때를 넘어, 2일 때를 지나, 3일 때인 지금에 와서도. 그와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한 날은 하루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내게 닿을 듯 말 듯 모호한 거리에 있었고, 장난스럽게 키스를 하는가 하면 숨 막히게 뜨거운 스킨십을 할 때도 있었다. 30살이 훌쩍 넘은 그도 여전히 내겐 오이카와씨일 뿐인데. 나이가 들면 관계는 언젠가 변하게 되는 걸까, 그 사이에 있는 감정도.

다녀올게요.”

목도리는 따뜻했다. 늦지 말고, 라고 대답하는 어머니의 대답은 벌써 몇 년째 들어온 대답이었다. 어머니가 쓰다듬던 볼이 따뜻하면서도 간지러웠다. 까슬까슬하던 손끝이 떠올라서, 입술을 슬쩍 깨물었다.

 

 

늦잖아.”

오이카와씨야말로 집 앞이라고만 했지, 집 앞 카페라고는 말 안 했잖아요.”

어쨌든. 늦었으니까, 토비오가 커피 사.”

오이카와씨는 의자에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집 앞에 나와 보니 평소에 기다리던 장소에 오이카와가 없는 걸 알고서, 급히 연락했다가 이런저런 골목길을 찾아보느라 고생한 건 생각도 안 하고. 애초에 애매하게 집 앞이 아닌 카페라고 했으면 헤맬 일도 없고, 늦을 일도 없었을 텐데. 오이카와가 마시던 커피는 거의 다 마신 뒤라 바닥이 보였다. 가끔 차가운 바람이 부는 바깥과 달리 카페 안은 포근한 온기와 초콜릿 시럽 향기가 가득했다. 이른 시간의 카페는 손님이 별로 없는 터라 오이카와를 몰래 훔쳐보는 여성들도 없었다. 밝은 갈색빛의 트렌치코트를 걸친 오이카와는 어딘가의 화보에서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고등학교 때보다 조금 더 짧게 잘라 정돈된 머리는 카페의 브라운 조명에도 부드러운 홍차 빛을 띠었다. 오이카와는 제가 먹던 초콜릿 케이크의 마지막 한입을 내 입에 쑥 집어넣더니, ‘토비오쨩도 먹었으니까, 공범.’ 툭 내뱉었다. 입안에 퍼지는 촉촉한 단맛을 느끼면서 무슨 공범이요? 물었더니 오이카와는 피식 웃어 보였다.

초콜릿 케이크 살인사건.”

뭐라는 건지.

 

 

 

전철을 타고 1시간 반, 버스를 갈아타서 2시간. 도보로 걸어서 20분을 지나고 나면, 길 건너로 넓은 모래사장이 보였다. 걸어오는 동안 잔뜩 식은 몸을 바닷바람이 동그랗게 휘감았다. 코트 주머니에 넣어놓았던 손에는 축축한 땀이 배어 있었다. 입속에서는 아직도 초콜릿 향기가 남아있었다. 코로 들어오는 짠맛, 혀끝에 맺힌 단맛. 바람이 센 탓에 눈동자 끝에 망울망울 달린 눈물까지. 최악이었다.

무슨 생각해?”

모래사장 한가운데까지 걸어오고 난 뒤, 오이카와씨는 감각이 남아있지 않은 차가운 귀를 매만졌다. 따끔거리는 통증이 순간 스치고 이내 오이카와 손에 있는 온기가 귓바퀴를 통해 이동했다. 오이카와의 손에도 남아있던 습기가 귓불에 닿아 온몸이 저릿할 정도로 심장이 펌프질했다. 뜨거운 열기가 순식간에 몸을 덮쳐 손끝에 찌릿 전기가 올랐다. 마침 파도가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요.”

맞춰 볼까? 오이카와씨 생각했지?”

……

저런 말은 무시하는 게 정답이다. 몇 년 동안 배운-라기보다 이와이즈미씨에게 배운-방법이었다. 입을 삐죽 내민 채 연신 파도만 바라보고 있자, 오이카와씨는 문지르던 귀를 세게 꼬집었다.

아얏,”

건방져.”

이내 귀에서 손을 뗀 오이카와는 수평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날이 흐렸다. 몇 가지의 물감을 섞은 듯한 회색 하늘에는 태양 조각도 보이지 않았다. 들어오는 파도, 젖어드는 모래가루, 가끔 풍기는 참기 힘든 소금 냄새. 몇 번이고 오이카와와 왔던 바다였지만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얀 거품이 일다가 가라앉는 것을 계속해서 바라보다 보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이 당연했지만,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이질감은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30번째 생일 축하해.”

생일, 다음 주인데요.”

알아.”

오이카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크고 맑은 홍차 빛 눈동자는 몇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 중 하나였다. 흰 피부가 바닷바람을 맞아 더욱 하얗게 빛났다.

“32년이랑, 30. 겨우 2년이네.”

겨우 2. 겨우 2년인데도, 그는 항상 지나치게 컸다. 그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것 중 하나였다. 2년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었다. 내가 오이카와 씨만큼 자라면, 오이카와는 이미 그만큼 앞서 걷고 있다. 멈추지 않는 시간 속에서, 오이카와의 등은 영원히 내 앞에 존재했다. 그런 2년을 앞서 보내고 있는 오이카와는 33살이 되는 내년 1, 배구선수로서 은퇴한다. 33. 운동선수로서 많다고 하면 많은 나이였다. 선수 생명은 길어봤자 30대 후반까지니까. ‘나이라는 숫자 앞에 3이 붙은 시점에서 내가 느꼈던 것처럼, 그도 30살이 된 때부터 생각해온 것이리라. 그는 여전히 오이카와 토오루국가 대표 세터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인생은 나이를 먹고 있었다. 허리 문제로 받고 있던 물리치료는 은퇴 후에도 받는 듯했다. 이렇다 하게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높은 강도로 오래 지속한 운동 때문인 것을 나도 그도 알고 있었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있는 문제였다. 그것 때문에 은퇴하는 게 아니라는 건 충분히 알고 있었다. 바보여도, 그쯤은.

 

바다는 무섭지 않아?”

무서워요?”

집어삼킬 거 같잖아. 통째로.”

오이카와는 쓴 초콜릿을 먹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바람이 한차례 불어 모래사장이 흔들거렸다. 눈앞에 흩날리는 모래가루가 싫어서 눈을 한번 꼭 감았다가 떴다. 지금까지 중 제일 큰 파도가 밀어닥쳐 와, 운동화 코끝까지 젖었다.

젖어봤자 운동화 코끝인데요.”

그렇게 방심하다간 이것도 저것도 잡아먹힌다?”

오이카와는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내 코트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열기를 품은 손 두 개가 만나 얽히고, 매만지다가, 이내 마주 잡았다. 기분 좋은 온기가 주머니 속에 가득했다. 딱 손 두 개가 들어가면 가득 차는 그 주머니에 정신을 집중하면, 이상하게 뭉근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오이카와를 끌어안고 싶었다. 세게, 조금 힘껏. 그 대신 그의 단단한 손을 꽉 붙잡았다.

토비오쨩. 몇 년까지 있을 수 있을까.”

벌써 몇 년이고 같이 있었는걸요.”

내일이면 헤어지게 될지도? 갑자기 오이카와씨가 사라지거나, 토비오쨩이 이 세상에서 없는 존재가 되어서. 애초부터 약속 없는 관계였으니까.”

약속은커녕, 그 어느 것으로도 묶이지 않은 관계였다. 그가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금 잡고 있는 이 손도, 어느 한 쪽이 풀어버리면 다시 붙잡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도, 나도. ‘그럼, 안녕.’ 중학교 졸업식 날 들었던 그 말이 다시 한 번 오이카와의 입에서 나온다면, 그걸로 아예 끝일지도 몰랐다. 그때처럼 벚꽃 잎 피어있는 봄날은 아닐지라도, 안녕이란 말은 머릿속에 그 장면을 자동 재생했다. 그곳이 푸른 바다가 피어있는 바닷가라 할지라도, 안녕은 그대로 안녕이었다.

이대로 끝날지도 모르고, 어쩌면지금까지처럼 하루하루 계속될지도 모르죠.”

있지, 토비오쨩. 같이 바다에 빠져버릴까.”

싫어요. 춥잖아요.”

거절의 이유가 그거야?”

올해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라고 어머니가 그랬는걸요.”

……. 그러네.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야지. 토비오쨩은 착한 어린이니까.”

오이카와는 미소 지었다. 찬바람 사이에서 미소가 슬쩍 흐려졌다가, 다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바르게 굽은 호물선이 작은 얼굴에 피었다. 립밤을 열심히 바르는 오이카와의 입술은 겨울에도 얇은 주름이 예쁘게 남아있었다.

바다에 빠지면 잡아먹히는 거 아니었나요.”

잡아먹히는 게 나을지도, 라는 생각을 했거든.”

이대로 잡아먹히면너도, 나도. 전부 바다 탓으로 하면 되잖아. 바다, ..에서. 토비오쨩이랑

오이카와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가 향한 시선 끝에는 젖은 모래가 어느샌가 말라 있었다. 사이로 빼꼼, 작은 조개가 묻혀있었다. 오이카와가 손을 더욱 단단하게 잡았다. 이젠 거의 아플 정도의 악력이 심장까지 조이는 느낌이었다. 바다 안에서, 오이카와씨랑. 이것도 저것도 모두 바다 탓으로 하고 빠져버리면 영원히 같이 있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은퇴도, 나이도 없는 바닷속에서 숨 쉬는 법도 잊은 채 다른 세상인 것처럼 산다면. 시간이 지나 점점 흐려질 것들을 걱정하지 않은 채바뀌지 않는 것들만 생각하면서. 오이카와씨의 숨소리, 눈동자, 흰 피부, 목소리 같은. 생각만 해도 목 끝까지 뜨거워지는 오이카와씨를 떠올리면서, 그렇게 있을 수 있다면.

“2년뿐인걸요. 저도 금세 32살이 될 거에요.”

그럼 난 34살이잖아!”

그땐 저도 금세 34살이 되니까요.”

36.”

“2년씩만 기다리면 되잖아요. 2년뿐인걸요.”

“2

오이카와는 다시 엷게 미소 지었다. 2년이라, 다시 중얼거리듯 내뱉은 그의 말은 평상시와 똑같았다. 눈을 들어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지평선의 경계는 하늘과 맞닿아 뿌옇게 흔들거렸다. 저 너머에는 다른 세계가 있을지도 몰랐다. 바다는 항상 이질감을 주었다. 이 바다에 빠진다면, 말 그대로 이것도 저것도 잡아먹히고 끝날지도 몰랐다.

나는 조심스레 눈을 감았다. 귓가에서 세찬 바람 소리만 가끔 이명처럼 들렸다. 추웠다. 지독하게 추웠다. 오이카와와 연결된 손을 제외한, 전신이. 바다는 춥잖아요, 우리 바다는 피하는 거로 해요. 가끔 찾아와서 몰려드는 파도를 보고, 예쁜 조개를 찾아서 줍고, 여름에는 얼얼한 빙수를 먹고. 그렇게 보내다 보면 2년은 금방이잖아요. 그러다 보면, 그러다 보면. 약속 없이 그저 질질 끌고 있는 이 관계도 어느 정도는 약속이란 게 생길지도 몰랐다. 굳이 말로 하는 게 아닌, 지금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서로 놓지 않고 있는 손처럼. 그때가 오면 바다엔 더는 오기도 싫어질지도 몰라요. ‘바다에 빠지자고? 싫어, 춥잖아라고 오이카와씨가 먼저 말할지도 몰라요. 그때쯤엔그때쯤엔, 말로 하는 약속을 해요. 그땐 저도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오이카와씨. 저랑 사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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