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게 전력 #7 동거

 



 

오이카와 선배네 집은 중학교 시절,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었다. 2층으로 이루어진 개인 주택의 옆에는 작은 주차장이 있었고, 현관문 양옆으로 가지런히 늘어놓은 화분에는 이름 모를 노란 꽃이 몇 개 피어있었다. 당겨서 여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는 신문을 놓을 수 있는 신발장이 있었다.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들어가면 정면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오른쪽에는 거실로 통하는 투명 유리문, 왼쪽에는 안 쓰는 방이 있었다. 매일 닦은 듯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계단을 오르면 발을 내딛는 곳 아래쪽으로 나무 썩는 소리가 들렸다. 삐이, 삐극, 삐걱하는 소리가 끝나고 2층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방이 오이카와 선배의 방이었다. 사각으로 접어놓은 이불, 좌식 책상과 옷에 걸린 교복까지, 무엇 하나 오이카와 선배의 향이 나지 않는 물건이 없었다. 배구공이 구석진 곳에 있는 게 유난히 눈에 띄었다. 기억력이 나쁜 나로서는, 이다지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이 의아할 정도였다. 벽걸이형 달력에 표시되어있던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다. 319, 졸업식. 오이카와 선배의 글씨체가 아닌 그 표시는 가족 중 누군가가 적어놓은 듯했다. 오이카와 선배의 집에 간 날이 그 전이었는지, 후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달력 끄트머리에 남아있던 젖었다가 마른 흔적까지 생각나는데도, 기억이란 이상한 곳에서 모호했다. 오이카와 선배는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앉아도 돼, 토비오쨩.’

난 그 말을 듣고 좌식 의자에 앉아야 할지, 그냥 방바닥에 앉아야 할지, 혹은 그런 말은 들었지만 그냥 서 있는 게 좋을지 잠시간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손바닥에 차가운 식은땀이 번졌다.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오이카와 선배가 지금껏 집에 초대한 후배는 한 명도 없었다는 걸 나는 쿠니미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이와이즈미 선배도 초등학교 이후로 오이카와 선배의 방에 들어온 적이 없다는 걸 나는 이와이즈미 선배와 오이카와 선배의 대화로 알고 있었다. 망설이다가, 어깨에 멘 에나멜 가방을 고쳐 매고 오이카와 선배를 바라봤다.

저기, 오이카와 선배.’

오이카와 선배는 무언가 소중한 걸 바라보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앉아도 돼, 한 번 더 말했던 것 같다. 아니,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뇌 속의 바람이나 기호에 따라 조금씩 가공된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오이카와 선배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왜 웃는 거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잘 모르겠어요.’

입으로 말했던 것, 같다. 오이카와 선배는 내가 두 손으로 잡은 에나멜 가방을 한 손으로 빼서, 바닥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어디에 있는진 모르겠지만, 시계 두 개의 째깍거리는 소리가 서로 어긋난 박자로 들려왔다. 그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이카와 선배의 냄새가 방 안에 가득해서 조금 머리가 아팠다. 오이카와 선배는 양손으로 내 체육복 저지 상의를 벗겼다. 저지가 소리도 없이 떨어졌다. 다다미 바닥은 소리 흡수를 잘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오이카와 선배는 말없이 내 흰색 티셔츠 자락을 잡았다. 토비오, 내 이름을 불렀던 것 같다.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대학생이 되고 도쿄로 이사를 왔다. 걸어서 역까지 8, 역에서 학교까지 30. 꽤 괜찮은 집을 찾았다며 히나타는 부러워했다. 오이카와 선배와는 가끔만 연락을 주고받았다. ‘잘 잤어?’, ‘도쿄로 이사 왔다며.’, ‘오늘 만나기로 한 거 잊은 건 아니겠지?’ . 오이카와 선배와 같은 대학인 건 우연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목표로 하고 있던 대학이었고, 그쪽에서 먼저 스카우트하러 온 걸 보고 츠키시마는 행운이네라고 했다. 성적으로는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다. 대학에 현재 다니고 있는 지금에도 그런 기회는 흔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오이카와 선배가 없는 2년은 회색 필름처럼 흘러갔다. 그 안에서 나름대로 충실했고, 기쁘기도, 분하기도 했지만 오이카와 선배에 대한 감정은 생각 날 때만 한 번 꺼내보는 상자였다. 가끔가다 기억을 되새기곤 했지만 꿈에 나올 때는 다른 식으로 변형되어있는 때가 많았고, 기억력에 자신이 없는 나로서는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게 연락을 보내오는 오이카와 선배도 신기루 같았고, 대학에서 유명한 여자 선배와 함께 있는 오이카와 선배를 볼 때면 다른 사람이란 생각도 했다.

오이카와 선배는 동거를 먼저 시작한 선배라며 이것저것 알려주려고 했다. 우리는 가끔 만나서 같이 밥을 먹었고, 술을 마셨고, 아주 드물게 배구를 했다. 오이카와 선배는 그때마다 동거생활의 소소한 팁을 말했다. 프라이팬 하나로 반찬을 세 개 만드는 법, 설거짓거리를 줄이는 방법, 처치 곤란한 채소를 한 번에 처리하는 방법 등……. 나는 거의 항상 끼니를 밖에서 때우거나 사 먹었기 때문에 그런 방법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지만, 오이카와 선배가 말하는 걸 굳이 막지 않았다. 나는 오이카와 선배가 의외로 살림꾼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집에서 밥을 혼자 먹는 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이카와 선배는 사생활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대학 내에서 유명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건 자취하는 집에 아무도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오이카와 선배는 많은 여자 선배와 사귀었고, 대학 내에서 친구도 많았으며 여전히 배구부 주장이었다. 그런데도, 오이카와 선배의 집에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이카와 선배는 누가 데려다줘야 할 정도로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여자친구와 데이트 후에는 애인을 집에 데려다주고 혼자서 집으로 향했으며, 평소에는 이것저것 부탁하지도 않은 걸 잘 해주면서도 집에 놀러 가도 되냐는 말에는 부드럽게 거절하는 사람이었다.

오이카와, 지금 여자친구랑 결혼한다는 게 사실이야?”

우와, 무슨 소문이 그렇게 빨리 퍼져? 이 대학 무섭네.”

네가 조금 유명한 사람이어야지하긴, 2년이면 오래 사귀었네.”

같은 강의실 뒤편에서 오이카와 선배의 웃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표정으로 웃고 있을까. 이상하게 뒷머리가 뜨거웠다. 강의실 창문이 지나치게 큰 탓일까. 햇볕이 내 뒤로만 모이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조금 뜨거웠고, 머릿속에선 기억의 파편이 후두둑 떨어져 퍼즐처럼 흩어져 있었다.

자세한 건 아직 몰라. 세리자와랑 얘기해봐야지.”

그래서? 이제 동거하는 건가?”

우와, 나카지마 불건전해! 오이카와씨는 동거란 말은 모른답니다!”

무슨곧 졸업인데, 결혼하기로 정한 남녀가 뭐하러 따로 사냐고.”

동거는 안 해. 그건 세리자와랑도 얘기 끝난 사항이야.”

오이카와 선배는 시합할 때보다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이내 오이카와 선배는 가벼운 말투로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이건 여기서 만의 비밀이야!’ 작게 말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어 10분 전에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늘 만나기로 한 거, 잊지 마.’

발신인은 중학교 때부터의 선배였다.

 

 

왜 안 먹어? 이제 카레 싫어하나?”

오이카와 선배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오이카와 선배 앞에는 방금 만든 로제 파스타가 있었다. 카레의 달콤한 향이 코안에서 위태롭게 흔들거리다가 이내 사라졌다. 반질거리는 겉면의 반숙 달걀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뜨거운 카레 위에서 뒤척였다.

좋아해요.”

근데 왜 안 먹어?”

오이카와 선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기억 속의 오이카와 선배를 떠올렸다. 오이카와 선배의 집에 갔을 때 본 오이카와 선배는 그 이후로 본 적이 없었다. 오이카와 선배의 그런 모습을 아는 건 나뿐이었다. 그건 오이카와 선배가 결혼하기로 결정 한 세리자와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왜 만나자고 하셨어요?”

굳이 오늘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몇 번이고. 오이카와 선배는 잊을만하면 연락했고, 나에게 만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오이카와 선배를 만나러 나온 건 나였고, 그의 앞에 앉아 카레를 주문한 것도 나였다. 나는 오이카와 선배가 불러낸 이유를 듣고 싶었다. 오이카와 선배의 기억도 변형되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뀌어있는 것인지, 혹은 어쩌면 그는 아예 기억 자체의 상자를 닫아버린 것인지. 나는 오이카와 선배도 같으리라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나처럼, 그를 볼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오이카와 선배의 집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도 선명했던 건 그 때문이라 생각했다. 기억에는 뇌의 바람이 투영되어 있었다. 카게야마 토비오의 바람이 투영된 카게야마 토비오의 기억이었다.

오이카와 선배는 찰나와 같이 웃었다. 무언가 소중한 걸 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오이카와 선배의 손이 내게로 다가와, 내 귀를 덮고 볼에서 목까지를 부드럽게 매만졌다.

토비오, 우리 같이 살까?”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오이카와 선배의 손이 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둔 채, 나는 양손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마주 잡았다.

잘 모르겠어요.”

이 말을 하는 건 두 번째였다.

그게 옳은 일이란 생각이 들지 않아요.”

나는 중학교 때 오이카와 선배의 집에 갔던 일을 떠올렸다. 나는 그때에나 지금에나 어린아이였다. 그를 아는 것은 저뿐이라는 기분에 젖은 어린아이일 뿐이다. 나는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오이카와 선배의 집에서 시작한 기억을, 그와의 동거로 끝맺는다는 건 지나치게 미화된 방법이었다. 나는 결국 아직도 그에게 끌리고 있는 채였다.

토비오.”

오이카와 선배는 낮게 내 이름을 불렀다. 토비오쨩, 그날과도 같은 울림이었다.

일어나야만 하는 일에 잘못된 일은 없어.”

일어나야만 하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을 한다는 건, 해야만 하는 일을 한다는 뜻이야.”

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일어나는 일의, 일어나야만 하는 일의,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의, 그 일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우리의 동거라면. 우리의 사랑이라면. 아니, 그의 사랑이고 나의 사랑이라면. 내 기억 속에서 오이카와 선배의 집에 대한 기억만 선명한 것도 그러한 일종인 걸까.

나는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나는 그가 내미는 만난다’, ‘만나지 않는다이외의 선택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이외를 생각하지 않은 건 나의 몫이었다. 나는 마주 잡고 있던 손을 풀고, 내 볼을 감싼 그의 손을 잡았다.

저랑 만난 걸 후회하세요, 오이카와 선배?”

너를 만난 건 옳은 일이야. 옳은 일에는 후회라는 말이 필요 없지.”

오이카와 선배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있던 카레 속 반숙 달걀이 저 혼자 터져서, 누런 노란 빛의 달걀 속이 천천히 퍼졌다. 나는 그 속이 나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언가가 되어서 오이카와 선배와 동거를 하며 살아가는 건 분명 어딘가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고 생각하는 건 이것이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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