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브여성 주의




오이카게 전력 #11 벚꽃

 

 




나는 숨을 들이쉬었고, 다시 내뱉었다. 검은 벚꽃의 향기가 머릿속에서 아롱아롱 떨어지고, 빛을 흘리고, 나는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은 걸 깨닫고 눈을 떴다. 나는 그날따라 너에 대한 꿈을 오랫동안 꿨다. 나는 칠흑 벚꽃 잎 아래에 있었고, 너는 나를 원망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사과하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내 입에 벚꽃 잎이 가득 들어찼다. 입속 점막에는 간지러운 벚꽃 잎 무더기가, 마른 혀끝에는 암술과 수술의 교합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코 밖으로는 역한 꽃내음이 한숨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의 눈동자가 검은 태양이 되어 나를 찌르고 있었고, 나는 숨을 쉴 수 없어 헉헉댔다. 나를 구해줘, 간신히 내뱉은 말은 지독히도 나약한 단어의 나열이었다. 너는 아주 잠깐 가엾은 갓난아이를 보는 표정으로 나를, 이젠 잊어버린 소중한 물건을 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사라졌다. 나는 목이 아파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억지로 흘려보냈다. 눈물 한 방울들이 벚꽃 잎 한 가지로 변해 발밑에 쌓였다. 눈물로 만들어진 하얀 벚꽃 잎을 발로 짓이기고, 입속의 벚꽃 잎들을 게워냈다. 나는 그렇게 살아났다.

 

꿈꿨어?”

.”

울고 있어.”

알아.”

등이 흠뻑 젖은 채로 나는 다시 눈을 떴다. 태양이 낮게 떠서 창가로 들어오고 있었다. 기분이 찝찝한 채로 몸을 일으키고, 눈앞에 있는 젊은 여성을 품에 안았다. 땀 냄새나, 그녀가 작게 내뱉은 불만은 귀 깊숙한 곳에 몽우리져 체내의 물방울이 되었다. 나는 마른 입을 열었다.

꽃 폈어?”

한두 개라면.”

분홍색이야?”

분홍 벚나무라면.”

숨을 들이쉬었다. 나는 분홍 벚꽃 잎을 떠올렸다. 너와 본 것은 작년 봄이 마지막이었다.

 

후회하세요?’

뭐를?’

저랑 꽃놀이 온 거요.’

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내게 너라는 존재는 어렵고, 또 모호했다. 네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동물이 무엇인지도 아는데 너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너에 대한 거라면 허벅지 안쪽의 별 모양 점에 대해서도 아는데, 나는 네가 어제 자른 손톱이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네가 어제 먹은 음식에 대해서도 아는데, 네 안이 어떤 물질로 가득 차있는지도 몰랐다. 나와 너는 그런 상태로 함께하고 있었다.

꽃놀이, 오고 싶지 않았어?’

꽃이란 거 잘 모르니까요.’

벚꽃은 알잖아.’

오이카와씨가 아는 것만큼 알지는 못해요.’

나도 꽃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벚꽃은 벚나무에서 열린다는 것, 향이 없으면서도 바람이 한차례 강하게 불면 참기 힘든 꽃내음이 난다는 것, 떨어져서 발밑에 쌓여도 더럽지 않다는 것 정도. 너에 대한 것보다도, 나는 꽃에 대해 자세할지도 몰랐다. 다만 그건 가끔 나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후회하는 거야? 꽃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데 여기까지 같이 온 거.’

너는 아는 것이 없었다. 벚꽃은 말이 없었고, 나 또한 말이 없었다. 꽃이 지는 걸 보러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죽어가는 나무 아래에서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서서, 무엇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된다는 것 또한 우스운 일이었다. 서로 아는 거라곤 아주 일부분일지도 모르는 우리가 벚나무 아래에 서 있는 것도 낯부끄러운 일이었다. 너에게 벚꽃을 보러 가자고 한 건 나였고, 끄덕인 건 너였다. ‘후회하냐고 물어야 할 건 나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묻는 건 나였고 대답하는 건 너라는 공식을 만들고 싶었다. 너의 손톱 하나의 형태까지도 모르는 나는 대답이라는 질문이 어려웠다. 대답해줘, 토비오. 그렇게 말하면 너는 고민하다가도, 나를 조금 원망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후회가 아예 없다는 건 거짓말이죠.’

그럼, 후회하는 거야?’

선택한 건 저인걸요.’

너는 고개를 내리깔고 아래에 쌓인 벚꽃 잎들을 바라봤다. 목이 빠져라 벚나무를 올려다보는 몇몇 커플들이 너의 뒤편으로 그림자처럼 길게 이어졌다. 수백, 수천 개의 벚꽃 잎들이 네 아래에 형태 없는 호수를 이루고 있었다. 너는 숨을 참고 있었다. 눈가 끝이 엷게 붉어진 게 보였다. 숨을 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럴 자격이 내겐 없었다. 네가 내 뒤편에 수북이 쌓아놓은 후회만큼, 나는 너에게 입을 다물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네가 오이카와씨,’라고 부른 말 뒤편에 삼켜버린 말 만큼, 나는 너를 안아줄 의무가 있었다. 설령 네가 원하는 것이 나의 대답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 의무 뒤편에 철저히 숨었다.

봄이란 건 후회의 계절이잖아.’

봄이요?’

. 작년엔 그러지 말걸, 올해 초반엔 왜 그랬을까, 뭐 그런 것들.’

오이카와씨도 후회란 걸 하나요.’

원망 섞인 눈동자와 앙다문 입술에선 귀엽지 않은 말이 흘러나왔다. 토비오, 너는 다시 바닥을 바라봤다. 꽃을 보러 와서 바닥만 보는 너는 참 변하지 않는 아이였다. 그게 바른 거야, 나는 생각했다. 꽃이란 건 결국 지는 게 최종 형태니까, 네가 꽃을 가장 바르게 보고 있는 거야. 벚꽃을 보러 온 사람 중 오직 너만이 벚꽃을 가장 그 형태 그대로 보고 있었다. 나는 토비오 발아래에 묻힌 벚꽃 잎들을 떠올렸다. 처음 네가 나와 함께 살겠다고 찾아온 날, 나는 내 심장이 네 발아래 짓이겨지는 상상을 했다. 꽃은 지고, 떨어져서, 밟히는 게 가장 올바른 꽃의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쯤은 한다고. 그런 걸 먹지 말걸, 그런 말을 하지 말걸, 그날 받아들이지 말걸, 키스하지 말걸,’

오이카와씨.’

좋아하지 말걸,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손톱이 길게 자란 밤, 내 앞에서 손톱을 깎으면서 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였던 것들을 그 어딘가에 버리면서 너는 무슨 상상을 할까. 한 번쯤, 너는 내가 없는 너의 인생을 생각해본 적이 없을까. 나는 그런 밤이면 눈 끝이 붉은 너를 안고, 어두운 침대로 끌어들였다. 검은 벚꽃 잎이 너를 덮고 나를 덮어 그 방안에 가득 차면, 네 뒤편에 쌓인 후회에 깨끗이 포장된 한 개의 상자가 자리 잡았다.

미안해, 토비오.’

나는 사과해야만 했다. 사과하고 싶었다.

사과하지 마세요.’

너는 대답했고, 내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기어코 너의 눈에서 나온 물 한 방울이 나는 무겁고 또 버거워서 어깨를 툭 떨구고 싶었다. 나는 항상 대답을 네게로 미뤘고, 너는 내 이름 뒤에 하고 싶은 말을 또 삼키고 내게 대답했다.

좋아해요, 오이카와씨.’

네가 손톱을 버린 쓰레기통에 수북이 쌓였을, 그 수많은 좋아하지 말걸의 후회들이 발아래에 쌓였다. 오늘도 네게서 호롱이 떨어지는 벚꽃 잎을 나는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살아났어?’

품 안의 그녀가 낮게 물었다. 땀이 식은 등허리에 고통이 뚝뚝 끊어진 채로 붙어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에는 손톱을 잘라야겠다고 생각했다. 낮에는 벚꽃을 보고, 밤에는 손톱을 자르자. 나는 눈을 작게 내리깔고 손톱을 자르던혹은 꽃의 홍수를 바라보던너의 모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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