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게 전력 #5 마츠리(축제)

 

 

 

사방이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오른쪽에서는 친구 이름을 부르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왼쪽 조금 위쪽에선 딸을 잘 챙기라고 남편을 다그치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 아래에선 우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뭇게 타버린 밤하늘에선 멀리 북소리가 둥, , 둥 일정한 리듬을 두고 들려왔다. 이 길로 가면 오른쪽에는 타코야끼 가게가 있었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조심스레 발을 떼자 어깨에서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짧게 사과하고, 유카타를 입은 소녀는 뛰어가 버렸다. 나와 한, 두 살 정도 차이 날 뿐 같은 나잇대였는데도 눈가에 보드랗게 퍼진 펄 빛 눈화장과 입술에 물든 분홍 꽃잎 색이 낯설었다. 투명한 흰 피부에 보스스 달아오른 볼이, 오늘이 얼마나 특별한 날인지 새삼 말해주는 느낌이었다. 소녀가 신은 나막신이 따각따각 나무 부딪치는 듯한 소리를 냈다. 시야가 좁아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소녀는 앞서 걷던 소년의 손을 잡고 서둘러 걸어가 버렸다. 나는 제대로 걸어가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앞이 이곳이 맞는 걸까. ‘이란 말조차 소용이 없는 것 같은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카게야마 토비오가 속해 있는 키타이치 중학교 배구부는 부원이 많았다. 배구로 유명한 강호교에, 특히나 올해는 오이카와 토오루가 이끄는 시기였다. 예년보다 부원의 수도 많았고, 더 강하고 단단한 팀이 되고자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은 지역 축제에 다 같이 가서 팀워크를 돈독히 하자! 는 목표 자체는 원대하고 좋아 보였다. 할 일이라고는 가끔 모이는 지역 소모임에 참가하는 일 혹은 때때로 폭설이 내리면 소일거리 차원에서 자기 집을 넘어 옆집 눈 치우기가 전부인 시골 마을에서, ‘축제란 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 전에는. 카게야마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전국대회 영상을 본 이후로 처음 알았고, 사람에 깔려 죽을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모두가 다 함께 축제를 구경하며 돌아다니자는 목표는 흐지부지되고 학년별로 모여 다니자는 것에 겨우 합의를 봤을 때는 이미 몇몇이 개별활동을 시작했을 즈음이었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속한 1학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1학년 대다수가 각자 알아서 돌아다니고 있었고, 카게야마는 킨다이치, 쿠니미와 이곳저곳을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이동하고 다녔다. 도쿄나 큰 도시에서는 커다란 불꽃놀이도 있다고 들었지만, 시골인 미야기에서는 작은 불꽃 몇 개가 하늘을 점점이 수놓는 게 전부였다. 꽃 모양에 용 모양, 하트모양에 작게는 두 번 연이어 터지는 불꽃도 있다지만 전부 소문에 불과했다. 항상 화려한 불꽃놀이는 먼 나라혹은 먼 지역의얘기였으며, 카게야마가 알고 있는 불꽃놀이는 북소리나 사람들 소리에 가려져 작게 터지는 불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이렇게나 사람이 모인 것은 역시나 시골이기 때문이었다. 행사가 별로 없는 시골에서 축제는 공식적인 즐거움의 장이었다.

쿠니미는 타코야끼를 사들었으며, 킨다이치는 금붕어 잡기에 열중했다. 카게야마는 다만 가만히 서서 그들을 구경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모르기도 했다. 축제에는 가족과 함께 몇 차례 오긴 했지만, 그때마다 카게야마는 사람들에 쏠려 무언가를 생각하기도 전에 정신없는 한바탕을 보내고 집에 돌아가기 일쑤였다. 올해도 사람이 많기는 여지없이 같았지만 카게야마는 올해의 축제가 여느 때와는 다르단 것을 알고 있었다.

여우 가면 어때?”

그건 쿠니미지. 카게야마는 이게 더 좋을 거 같다. 까마귀 가면.”

까마귀를 보통 가면으로 만드나. 어울리긴 하네. 킨다이치는 이거 어때? 랫서 팬더 가면.”

랫서 팬더야말로 왜 가면으로 만드는 거야?”

어울리니까 됐잖아.”

우연히 마주친 가면 가게에서 각자 하나씩 사자는 얘기를 꺼낸 건 킨다이치였다. 아무렇지 않게 몇몇 가면을 골라든 쿠니미 손에 이끌려 카게야마는 까마귀 가면을 얼굴에 썼다. 순식간에 사방이 어두워지고, 오직 정면만 시야에 가득했다. 쿠니미와 눈이 마주쳤다. 카게야마는 여우 가면을 쓴 쿠니미를 보고 조금 웃었지만, 쿠니미는 알아보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여우 가면을 쓴 쿠니미는 사람으로 둔갑해서 마을에 내려온 여우라 해도 믿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

정면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곳을 보려면 고개를 평소보다 더 이리저리 돌려야 했다. 익숙하지 않은 행동에 카게야마는 잠시 헤매다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너머로 익숙한 머리색이 보였다. 검은 하늘 아래 붉은색으로 퍼지는 전등 불빛 옆에서, 오이카와의 홍차 빛 머리색은 평소보다 아름다운 빛깔로 빛나고 있었다. 진한 바다색에 줄무늬가 들어간 유카타는 썩 잘 어울렸다. 3학년 배구부 선배 몇 명과 이와이즈미 선배, 그 앞에 유카타를 입은 몇몇 여자 선배들이 오이카와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바로 뒤편에서 서로 손잡고 가자는 커플의 대화가 들렸다. 시야 건너편에서 오이카와는 입을 바삐 움직이며 대화를 나누다가, 이윽고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팔짱을 낀 유카타 소매가 아래로 늘어져서 흰 속살이 드러났다.

카게야마는 조심스레 발을 떼었다. 조그맣게 난 두 개의 눈구멍은 오이카와만이 시야에 가득했다. 애초에 옆은 볼 수 없게 만들어진 구조였다. 까마귀 가면 속의 카게야마의 시야는 어두웠고, 고요하고, 오이카와의 홍차 빛 눈동자만 존재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불렀다. 아니, 어쩌면 그랬다고 착각한 걸지도 몰랐다. 까마귀 가면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하든지, 카게야마는 까마귀 가면을 쓴 남자아이에 불과했다. 사람들에게 몇 번 치이면서도 똑바로 앞을 바라보고 가는 도중, 이와이즈미와 눈이 마주쳤다. 카게야마는 몸을 조금 떨며 걸음을 멈췄다. 이와이즈미의 곧은 눈동자가 이내 비껴졌다. 그렇구나. 지금은 카게야마 토비오가 아니었다. 쿠니미가 인간으로 둔갑해 마을 축제를 구경하러 온 여우였듯이, 카게야마는 산의 외로움을 피해 도망쳐 온 새끼 까마귀였다. 카게야마는 다시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오이카와는 이제 다섯 발자국 앞에 있었다. 유카타가 감싸고 있는 등은 곧게 뻗어 있었고, 코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주변에 빛무리를 형성하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본능일지도 몰랐다. 그의 등만 보이면 달라붙고, 서브를 가르쳐 달라 조르는 게 일상이었던 카게야마의 본능일지도 몰랐지만 카게야마는 다리를 움직였다. 까마귀 가면 속에서 저의 숨 쉬는 속도가 어긋나는 게 느껴졌다. 오이카와는 두 발자국 앞에 있었다. 카게야마는 그대로, 아무렇지 않게, 오이카와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이제 정면 시야에 오이카와는 없었다. 저 멀리서 둥, , 둥 일정한 속도로 북소리가 들렸다. 북소리가 제 심장 소리인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어쩌면 북 치는 장인이 치고 있는 건 제 심장일지도 몰랐다. 지금 이 축제에 있는 모든 사람이 저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오이카와까지도.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하게 얼굴에 열이 올랐다. 불꽃놀이인가? 옆 사람이 중얼거렸다. 하늘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카게야마는 모든 게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토비오쨩?”

뒤편에서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보같이 뒤를 돌아보려던 카게야마는 몸만 조금 떨고, 발을 다시 움직였다.

토비오, 지금 선배 말을 무시하는 거야?”

이번에는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오이카와가 말했다. 이와이즈미가 옆에서 왜 생사람 잡냐라며 오이카와의 등을 한 대 강하게 때렸고, 주변 사람들은 토비오?’ 의문을 담은 목소리로 오이카와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아야! 그치만 이와쨩! 토비오인걸!”

카게야마는 다리를 바쁘게 움직였다. 거의 뛴다고 봐도 좋을 정도의 속도였다. 사람들에 끼여서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이 원망스러웠다. 키만 조금 더 컸으면, 적어도 오이카와 선배만큼이라도. 몸이 조금 더 다부졌다면, 평소에 근력 트레이닝을 열심히 했어야지. 자책하는 목소리와 후회감이 밀물과 썰물이 되어 북 치는 장인이 두들기는 심장에 차올랐다. 콧속으로 탄내가 스며들어왔다. 멀리서 불꽃을 쏘아 올린 모양이었다. 산소가 부족한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지만 카게야마는 다리를 움직였다. 축제는 무언가 최악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지 말 걸,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오이카와 선배를 보지 말 걸, 북소리는 점점 빨라졌다. 까마귀 가면을 쓰지 말 걸, 화약이 과하게 들어갔는지 탄내의 정도가 짙어졌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걸.

토비오!”

어깨가 강하게 잡힌 아픔이 카게야마의 전신에 퍼졌다. 겨우 멈춘 양 다리가 후들거렸다. 힘들게 서 있는 몸이 살며시 비틀거리자,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몸을 돌리고 마주 바라봤다.

왜 도망치는 건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보고 있었다. 카게야마의 좁은 시야는 다시 오이카와로 가득 찼다. 예쁜 홍차 빛 눈동자 위로 작은 땀방울이 한두 방울 걸려있었다. 까마귀 가면 속은 지나치게 더웠고, 숨소리가 엉망이었다.

오이카와 선배는 왜 알아보는 건데요.”

?”

오이카와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알아듣기 힘든 중얼거림이었다. 잔뜩 어긋난 호흡에 약간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가 오이카와는 당황스러웠다. 너무 세게 잡은 건가, 어깨에 실었던 힘을 조금 풀었다.

왜 알아보는 건데요. 까마귀 가면, 썼는데…….”

아니, 토비오쨩이잖아?”

그러니까, 왜 알아보냐고요.”

이유를 알 수 없는 원망이 오이카와에게 향했다. 오이카와는 조심스레 까마귀 가면을 벗겼다. 손길이 지나치게 상냥해서, 카게야마는 한차례 차라리 짜증이라도 내고 싶었다.

왜 그런 표정이야?”

어떤 표정인데요.”

못난이 표정.”

오이카와는 짓궂게 웃으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오이카와의 큰 손이 땀으로 눅눅하게 젖은 카게야마의 머리를 헤집었다. 좋게 말해도 쓰다듬는다고는 할 수 없는 손놀림이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데 내가 어떻게 설명해? 토비오쨩은 그냥 토비오쨩이잖아? 머리를 짧게 잘랐어도 토비오고, 하복을 입든 동복을 입든 사복을 입든 토비오고, 까마귀 가면을 써도 토비오고.”

축제로 앞뒤가 안보이고 꽉꽉 막힌 곳에서 만나도요?”

.”

북 치는 장인이 손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북소리도 뚝 끊겼다. 축제 소리는 저 멀리 멀어지고, 콧속으로 끝도 없이 들어오던 탄내는 점차 사라졌다. 카게야마의 시야는 다시 넓어졌다. 오이카와의 뒤편으로 수많은 사람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뒤에서는 불꽃놀이가 벌써 끝났냐고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왼쪽 조금 위쪽에선 저쪽 타코야끼가 더 맛있다며 재촉하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모든 것을 배경으로 오이카와는 눈앞에 있었다. 어디에 있든 오이카와였다. 여자 선배들에게 둘러싸여도, 멋진 유카타를 입어도, 오이카와는 오이카와였다. 오이카와에게 카게야마가 그렇듯.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손에 들린 까마귀 가면을 다시 받았다. ‘써봤자 소용없다니까?’ 오이카와의 말에 카게야마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안 쓸 거예요. 안 써도 괜찮으니까요.”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천천히 북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처음 들었던 일정한 리듬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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