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망소재 주의





오이카게 전력 #16 이별

 

 

 

 

좋은 죽음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괴롭지 않게 죽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걸 받아들이고 떠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이카와는 세차게 내리는 빗속을 서둘러 지나면서 생각을 털었다. 뛰어가는 오이카와의 옆으로 외제 차 한 대가 물웅덩이를 튀기면서 거센 바람을 일으키고 지나갔다. 오이카와는 잠시 주춤한 뒤 혀를 한번 차고, 다시 발을 움직였다. 좋은 죽음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세상을 좋게 떠나는 법에 대한 책은 많이 나와 있었다. 서점에는 요즘에서 안락사에 대한 책이 즐비해 있다. TV를 몇 번 돌려보면 여러 가지 죽음의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죽음, 사고 현장의 사망자 통계, 반려견을 기르는 사람들의 좋게 헤어지는 방법 등

오이카와는 드라마 속 배우들의 표정을 떠올렸다. 빗속을 뛰어가면서 그 표정을 조심스레 흉내 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제 모습이 아주 우스꽝스럽단 건 알 수 있었다. 소꿉친구인 이와이즈미가 봤다면 한 대 때리고 싶어지는 표정이겠다고 생각했다.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익살스럽게 웃어 보이는 듯했다. 발아래에서 물방울들이 여기저기로 어지럽게 튀겼다. 저번 주에 산 새 구두가 몹쓸 모양새가 되어있었다. 카게야마라는 글자가 왼쪽 귀 언저리에서 천천히 올라왔다. 양 귀에 이어폰을 낀 듯 그 이름은 금세 머리 전체에 퍼져 카게야마와 연관된 몇 가지가 줄줄이 낚여 떠올랐다. 오이카와는 그중 가장 최근의 기억을 떠올렸다. 떠올렸다기보다는, 이미 부유한 것을 이미지화한 것에 불과했다.

 

 

**

 

 

잘 모르겠어요.”

카게야마는 그렇게 말하고 어려운 듯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겠다는 말은 카게야마가 가장 자주 하는 말 중 하나였다. 오이카와는 한쪽 입 끝을 오므리고 카게야마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작은 식탁 위에 엉덩이를 내리고, 카게야마를 다리 사이에 끼면 어제 세탁한 옷의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조금 달콤한 솜사탕 향, 오이카와의 취향이었다.

생각해야지. 이후의 일.”

고집부리지 말라고 항상 말하는 건 오이카와씨잖아요. 고집부리지 마세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어떻게 생각하라고요.”

카게야마는 입술을 비죽이며 오이카와의 목 뒤로 팔을 둘렀다. 한 달 전과 비교하면 순식간에 가늘어져 있었다. 카게야마는 요 근래 입에 제대로 대는 것이 없었다. 허리를 더욱 끌어당기면 장골능이 오이카와의 허리에 닿았다. 동그랗게 튀어나온 뼈가 단단한 근육을 짓누르고, 카게야마는 약간 오이카와에게 기대는 형태를 취했다. 작은 플라스틱 식탁이 삐걱 소리를 냈다. 오이카와는 제 목을 두른 카게야마의 팔을 풀고 얇은 팔을 덮는 티셔츠의 소매를 올렸다. 두 개로 곧게 뻗은 뼈는 보기에 좋았다.

요새 많이 건방져졌다? 이 오이카와씨한테 그런 말도 하고.”

지낸 시간이 어느 정도인데요.”

카게야마는 피식 웃으면서 오이카와의 손에 들린 제 팔을 힘겹게 빼냈다. 앞서 목에 둘렀던 팔을 재차 허리 뒤로 둘렀다. 검은 고양이 같았다. 두 검은 눈동자가 동그라니 떠서 오이카와의 입술을 바라보고 있었고, 얇은 몸을 오이카와에게 천천히 부비적댔다.

지낸 시간 보다 이후의 시간이 더 길잖아.”

오이카와는 쓴맛을 뱉어내듯 짧게 말했다. 방금 마신 커피는 평소보다 씁쓸했고, 평소 사던 원두가 아닌 걸 이제야 떠올렸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리에 매달린 팔이 힘겹게 풀리려고 해서, 오이카와는 그 허리를 더욱 지탱했다. 한 손을 엉덩이 아래로 갖다 대자 모난 뼈가 잡혔다.

글쎄요. 어느 쪽이든 전 상관없어요. 오이카와씨가 말하는 것처럼 욕심쟁이인지는 몰라도, 전 지금 정도면 됐어요.”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어깨를 베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카게야마의 실핏줄을 닮은 얇은 머리카락들이 오이카와의 볼을 쓰다듬었다. 간지러우면서도 소름이 돋는 이물감에 오이카와는 입술을 깨물었다. 허리를 잠깐 들었다가 다시 식탁에 내려놓자, 플라스틱 식탁은 버겁다는 듯 날 선 소리를 냈다. 엉덩이 밑에 갖다 댄 손에는 카게야마의 청바지 촉감이 까슬하게 닿았다. 뒷주머니에 달린 박음질을 천천히 만지자, 카게야마는 하지 말라는 듯 오이카와의 허리를 살짝 꼬집었다.

지금은 언젠가 사라지잖아. 네가 말한 지금은 이미 방금 전이 됐고, 몇 분이 지나면 예전이 되고, 내일이 되면 어제가 되잖아.”

전 언제나 지금이에요. 지금이 아니라, 이후를 생각하는 건 항상 오이카와씨였죠.”

오이카와는 부정할 수 없었다. 카게야마의 솜사탕 향이 나는 보송보송한 티셔츠에 코를 묻으면서도, 당장 내일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떠올렸다. 일주일 뒤에는 친선 경기가 있었고, 한 달 뒤에는 누나의 생일이었다. 이후를 생각하는 건 오이카와의 버릇이었다. 카게야마와 오이카와의 시간은 항상 어느 정도 어긋나있었고, 오이카와는 그러한 시간의 틈에 답답하면서도 일종의 편안함을 느꼈다. 카게야마에게는 어제 오이카와와 싸운 일도, 내일 폭우가 내린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고양이 같았다. 지금의 그에겐 두 팔에 남겨진 오이카와의 단단한 허리로도 충분했다.

버릇인걸. 미래를 대비하는 거라고 말해줄래? 그러니까, 난 준비하고 싶은 거야. 헤어지는 준비는 일이 닥치고 나서 하면 늦으니까.”

만남과 이별은 하나였고, 일맥상통이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떠올랐다. 맺어진 인연은 어디로 가든 이별로 통했고, 오이카와는 이 만남을 맺은 것이 저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두 사람의 손이 맞닿은 지점을 카게야마에게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손을 끊는 건 카게야마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고집불통인 점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카게야마는 고개를 피하고 오이카와의 허리에만 들러붙고 있었다. 무겁게 누르는 카게야마의 뼈가 아팠다. 부엌의 통유리로 짙게 들어오는 햇볕이 등에 닿아 피부 사이사이로 땀이 한두 방울 맺혔다.

오이카와씨는 너무 뒷일까지 생각하시네요.”

카게야마는 불만인 듯 말끝을 흐렸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강하게 안았다. 몸 여기저기에서 뼈가 튀어나와 오이카와를 곳곳이 찔렀다. 이별하기까지의 아픔이었다. 점점 진득하게 들러붙는 태양 빛에 오이카와의 등이 젖어들기 시작했고, 먹먹한 목이 씁쓸했다. 식탁 위에 올려졌던 커피잔 하나가 덜그럭거렸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어깨에서 고개를 들고, 고집을 부리는 표정으로 오이카와를 바라봤다.

좋은 죽음이라는 말 아세요?”

그건 단어와 형용사의 조합이잖아. 말이 아니야.”

사람의 죽음을 뜻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요. 죽음이란 건 제각기 다르잖아요.”

오이카와는 듣기 싫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카게야마는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쨌든 오이카와씨가 생각하는 좋은 죽음과 제가 생각하는 좋은 죽음은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준비는 닥치고 나서 해도 괜찮다고요. 항상 어긋났던 것들도 그때가 되면 서로 다르지 않을 테니까.”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같지는 않아.”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눈을 피했다. 카게야마의 앞에서 약한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오기로라도 입을 다물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마주 잡았던 손을 카게야마가 풀고 난 뒤에, 시간이 어긋난 채로 남는 건 오이카와였다. 좋은 죽음의 뒤에 새로이 기억을 덧입혀야 하는 건 오이카와였다. 오이카와는 그 준비를 하고 싶었다. 뒷일을 항상 미리 생각하는 건 오이카와의 버릇이었으니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딱딱한 뼈를 만졌다. 튀어나온 팔꿈치 뼈, 아래팔뼈, 엉덩이 아래쪽의 몽글한 뼈, 톡 튀어나온 귀 아래쪽 턱뼈까지. 카게야마는 왜 자꾸 이상한 곳을 만지냐며 비죽 웃었다.

그때가 되면 오히려 항상 왜 그렇게 어긋났을까 하고 생각할 지도요. 닮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잖아요. 같이 지낸 시간도 길고, 의외로 저랑 오이카와씨는 닮았을지도 몰라요.”

지금 이 오이카와씨를 누구랑 닮았다고 하는 거야. 전혀 다르잖아. 난 토비오처럼 어둡지도 않은걸.”

항상 조금씩 어긋났던 시간이 그때가 되면 마침 마주쳐서, 카게야마의 말대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몰랐다. 어찌 됐든 카게야마의 현재만 바라보던 눈동자가 그 순간만큼은 오이카와에게 옮을지도 몰랐다. 오이카와는 그 순간,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준비하고 싶었다.

카게야마는 단단히 짜증이 난 듯 오이카와의 목 언저리를 꽉 깨물었다. 따끔한 순간이 지나고 이내 촉촉한 감촉이 새로운 감각이 되어 허리를 간지럽혔다. 카게야마의 혀는 말캉거렸고, 솜사탕 향을 머금은 듯 조금 달달했다.

나쁜 버릇이라고요.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나, 항상 이별을 생각하는 거나.”

버릇이니까. 좋고 나쁘고는 상관없지.”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말한 좋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카게야마의 말대로, 그가 생각하는 것과 카게야마의 생각이 다르지는 않으리라. 고등학생 시절 두 사람의 서브 모습을 찍은 비디오가 낡은 필름처럼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지나치게 닮은 그 모습에 오이카와는 짜증이 났었다. 그가 카게야마였어도, 비슷한 선택을 하리라는 점에서 더욱 싫증을 느꼈다. 그제야 두 사람은 지나치게 닮아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매사 어긋나는 것도, 조금의 취향도 겹치지 않는 것도, 전부지나치게 닮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좋은 죽음이라는 말처럼, 좋은 이별이란 말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오이카와는 달리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카게야마가 가끔 오이카와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것에 대해 생각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던 모습만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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