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오이카게 3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참여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 내일, 오늘

 

 

  




 

좋아해요. 저와 사귀어주세요.”

미안,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오이카와는 몇 번째인지 모를 미소를 지었다. 난감하다는 듯 눈가를 찌푸리며 웃으면, 앞에 서 있던 여자아이는 그보다 더욱 형용 못 할 표정을 지었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놓은 모양새가 안쓰러웠다.

 

그런가요…… 혹시,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그런 건 아니지만. 미안해.”

 

오이카와는 이어지는 질문이 불편했다. 말을 마치지 못한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다시 애써 입꼬리를 올리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뒤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화제가 지겨웠고, ‘미안해다시 한 번 천천히 중얼거린 후 몸을 돌렸다. 연습 시간이 30분이나 지나 있었다. 오이카와는 이를 닦은 것처럼 개운한 얼굴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신발을 신는 것만큼 익숙하고 정해진 일이었다. 고백을 받는 일. 타인의 호의를 구체화한 언어로 전달받는 일. 다른 점은 오이카와의 대답뿐이었다.

체육관으로 향하는 교정 뒤뜰 길 주변에는 버려진 쓰레기가 몇몇 개 널려있었다. 개중에는 거의 먹지도 않고 버려진 빵 부스러기도 있었다. 오이카와는 그것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예쁘게 포장되어 전달된 호의를 살짝 맛보고 길바닥에 버린 꼴이었다. 버려진 사랑을 쓰레기라고 명명하는 건 오이카와 본인도 지나치다고 느꼈으나 달리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오이카와에게는 의미 없는 존재였으니까.

춘추복 안쪽으로 바람이 서늘하게 치고 들어왔다. 바닥에 있던 쓰레기 몇 개가 나뒹굴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오이카와는 흐트러진 머리를 정돈하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며칠 전 카게야마가 했던 말이 떠오른 탓이었다.

 

오이카와 선배는 여자친구를 좋아하세요?”

 

점심시간 도중이었다. 며칠 찬바람만 불다가 유달리 따뜻한 날이었고, 오이카와는 여자친구가 만들어준 도시락을 들고 옥상으로 가던 길이었다. 복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받으며 우유를 먹고 있던 카게야마를 만나, ‘우유만 먹는다고 키 안 큰다?’ 장난기 섞인 인사를 건넨 뒤 도시락을 흔들어 보이며 자랑했다. 카게야마는 우유를 쪽 빨더니, 쪼그라든 우유 팩을 들고 물었다.

여자친구를 좋아하냐고? 당연하지오이카와의 입이 뻐끔거리는 걸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우뚱한 채로 보고 있었다. 대답을 재촉하는 눈길도 아니었고, 오이카와의 대답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기도 했다. 오이카와는 금붕어처럼 몇 번 움직이던 입술을 닫았고, 저를 바라보는 카게야마의 푸른 눈동자만 마주 바라봤다.

 

오이카와는 결국 그 도시락을 먹지 못하고 다시 돌려준 후, 며칠 안 가 그 여자친구와 헤어졌던 것까지 기억해내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도 그 날과 비슷하게 따뜻한 날이었다. 등 뒤로 떨어지는 햇볕이 따뜻했으나 동시에 몇몇 곳을 따갑게 찔렀다.

 

오이카와 선배.”

 

기억 속의 목소리였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들었고, 체육복을 입고 있는 카게야마와 눈이 마주쳤다. 연습에 늦어 뛰어가고 있던 건지 짧은 앞머리 사이로 이슬같이 투명한 땀방울이 동그랗게 맺혀 있었다.

 

오이카와 선배도 지금 가세요?”

토비오쨩이야말로 1학년이 이렇게 늦게 가도 되는 거야? 더 일찍 가서 공 닦고 체육관 청소하고 있지는 못하고.”

종례가, 늦게 끝나서.”

 

목을 움츠린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카게야마를 지나친 후, 오이카와는 걸음을 서둘렀다. 뒤에서 작은 발을 힘차게 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께에서 기대를 품은 듯 상기된 목소리가 흘렀다.

 

오이카와 선배,”

서브는 안 가르쳐 줄 거니까.”

 

이어질 말이 나오기 전에 일부러 심술 맞은 투로 말했다. 카게야마는 입을 샐쭉 내밀었다. 항상 하고 싶은 말혹은 하지 못한 말의 반 이상을 담고 있는 건 카게야마의 표정이었다.

 

그럼 오늘은 서브 연습 안 하시나요?”

할 거야. 해도 토비오쨩한테는 안 알려줘.”

괜찮아요. 옆에서 보기만 할게요.”

 

오이카와가 서브 연습을 한다는 말에 카게야마는 다급하게 내뱉었다. 오이카와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카게야마를 몇 마디 말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봤다. 카게야마가 토스를 올릴 때 오이카와가 몇 번 향했던 눈빛이었다. 카게야마는 햇빛을 등지고 음영 진 오이카와의 눈동자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아무 말이 없는 그 입술에 대고 다시 한 번 물었다.

 

오이카와 선배?”

 

오이카와는 대답 없이 몸을 움직였다. 카게야마는 저도 모르는 사이 또 오이카와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오이카와가 저를 말없이 바라보는 건 그런 표시였다. 카게야마는 지금껏 다른 이가 내비치는 그러한 표시들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었고, 의식하지도 못했다. 다만 오이카와는 달랐다. 되도록 오이카와는 웃어주길 바랐다. 체육관 안의 불빛도, 햇빛도 전부 흡수해 밝게 빛나는 그의 미소를 카게야마는 예쁘다고 느끼곤 했다. 그 미소가 저에게만 향하지 않는 걸 안 뒤로, 그는 어쩌면 카게야마를 타인과는 다른 의미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의미가 아닌 건 분명했다.

카게야마는 그의 말과 표정에 집중했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그의 어떤 말에 기분이 상하는지 알지 못한 채 일방적인 불쾌에 맞부딪쳤다. 카게야마는 어찌할 바 모르고 그저 재촉하듯 오이카와를 불렀다.

 

오이카와 선배!”

 

그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는 등에 대고.

 

 

* * *

 

 

 

예정된 연습 시합이 곧이었다. 평소의 리시브, 서브 연습에 더해 부내 모의 시합도 이루어졌다. 이어지는 연습 사이의 짤막한 휴식시간이었고, 오이카와는 선 채로 땀을 닦고 있었다. 같은 스타팅 멤버인 K가 놀리듯 웃으면서 오이카와의 어깨에 팔을 걸었다.

 

, 쟤 또 왔다.”

 

K가 고개를 까딱이는 곳으로 오이카와도 눈길을 돌렸다. 며칠 전 고백을 거절했던 여자아이가 체육관 창문 너머로 연습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이카와만을 담고 있는 눈동자와 보얀 얼굴이 약간 붉었다. 오이카와는 그 눈동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었다. 오이카와에게는 손에 빤히 잡힐 듯 보이는 감정이었다. 아마도 그 감정의 아주 작은 일부를 이루고 있는 건, 오이카와가 받을 이유가 전혀 없는 불만인 것도 알고 있었다.

하하, 애매하게 웃어넘긴 후 오이카와는 고개를 돌렸다.

 

“3학년에서 나름 귀엽다고 소문난 애잖아? 여자친구 있는데도 좋대?”

 

또 다른 동료인 A가 물을 마시다 말고 K와 오이카와의 근처로 왔다. AK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더니 아직도 몰랐냐, 말을 이었다.

 

그 유명한 1학년 신입생이랑은 헤어진 지가 언젠데.”

진짜? 오래갈 줄 알았더니.”

 

오이카와가 아무 말 없이 물을 마실 동안 AK는 오이카와의 지난 여자 친구들에 대해 무어라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이카와의 뒤편으로 그 모든 목소리가 페이드 아웃되었고, 오이카와는 창밖에서 저를 바라보는 여자아이를 주시했다. 예쁜 미인상이었다. 부드럽게 떨어지는 검고 긴 머리카락, 뽀얗고 하얀 피부. 굳이 말하면 오이카와의 취향이었고, 그녀가 고백하며 건넸던 쿠키는 맛있어 보였고받지도 않고 물렀지만좋았지만. 어째서일까.

오이카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연습이 다시 시작된다는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 머리에 붙은 땀을 덜어내며 생각했다. 왜 저를 좋아하는 걸까. 아니, 자신은 있다. 어릴 적부터 시선을 끌었던 얼굴에 그 어느 것도 대충 하지 않는 성격, 오이카와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좋은 인상에 대한 자신. 거기에 배구까지 잘하니, 인기가 있는 것이 당연했다. 다만 좋아한다거나 사랑이라는 감정이 주는, 금세 허물어질 정도로 옅은 인상에 오이카와는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하곤 했다.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아 여자아이와 사귀면 즐거웠고, 재밌기도 했고, 그 아이들이 베푸는 사랑에 오이카와는 뿌듯했고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즐겁기도 했다. 오이카와는 그들이 주는 사랑을 즐겼고, 그 사랑이 쉽게 떠나가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본디 무의식 아래에서 사람에게 영원한 건 없었다. 카게야마의 한 마디가 있기 전까지, 오이카와에게 연애는 나름의 즐거움이었다.

오이카와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묻는 카게야마의 질문에 바로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오이카와는 거짓말이 싫었고, 그래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좋아하지 않으면 진심으로 다가오는 그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꼴이었고, 거절하는 게 옳은 행동이었다.

오이카와는 지금까지 사귀었던 여자아이들을 떠올리며 저가 그들을 좋아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들에게 좋아한다고 말해준 적이 있었는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만, 그만! 오이카와씨 이제 배구에만 집중할 거니까! 너희도 진지하게 연습하라고?”

이제 와서 오이카와가 그런 말을 해봤자

그치?”

너무하잖아!”

 

AK의 장난 섞인 웃음에 오이카와는 우는 시늉을 한 뒤, 동료와 후배들을 연습으로 다시 능숙하게 이끌었다. 타인의 감정을 알아채 그에 맞춰 행동하고 그가 원하는 대로 말하면 인간관계는 능사였다. 오이카와는 연애를 할 무렵, 저가 친구들과 여자친구를 다른 존재로 대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다른 점이 없었다.

 

 

* * *

 

 

오이카와가 연습을 하려고 공 하나를 들었을 때였다. 카게야마가 아기 병아리처럼 쪼르르 달려와 오이카와의 옆에 섰다. 아무 말 없이 눈을 빛내며 서 있는 모습이 아기 새가 따로 없었다. 오이카와는 못 본 척 공에 집중했다.

 

오이카와 선배.”

, .”

 

이어질 말은 카게야마도 오이카와도 알고 있었다. 지겹게 반복될 실랑이에 벌써 지친 오이카와가 인상을 찌푸렸다. 작은 동물을 내쫓을 때처럼 쉿, 쉿 잇사이소리를 내며 손을 내저었다. 카게야마는 불만을 양 볼에 가득 물고 부풀렸다.

 

그런 행동 하면 고양이한테 미움받는대요.”

잘됐네. 토비오쨩이라는 성가신 고양이한테 미움받으면 참 좋겠네

 

카게야마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카게야마로서는 드물게 큰 의사 표현이었다.

 

아뇨, 저 말고 고양이요.”

뭐가 다른지 모르겠지만, 저리 가라니까. 오이카와씨 이제 연습해야 돼. 연습 방해하면 나쁜 어린이지요?”

 

아이를 타이르듯 어르는 목소리로 대화를 끝맺은 후 오이카와는 손에 들린 공을 한 번 돌렸다. 카게야마는 바깥으로 시선을 옮겼다. 조금 전 선배 몇몇의 화두에 오른 그녀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시선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오이카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카게야마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눈동자를 굴렸다.

 

오이카와 선배. 쳐다보고 있는데요.”

알아.”

 

오이카와는 눈을 감고, 공에 이마를 맞대었다. 항상 서브 전에 이어지는 일련의 행동이었다. 오이카와가 서브 준비 자세에 들어가면 카게야마는 보통 숨을 죽이고 그 존재를 지우고자 노력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카게야마는 계속해서 그녀와 오이카와를 번갈아 바라봤다. 오이카와는 살짝 홍차 빛 눈동자를 들어 곁눈질만 카게야마에게 향했다.

 

? 연습에 방해돼?”

그런 건 아니지만…….”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짧은 앞머리가 흔들렸고, 그 아래의 푸른 눈동자는 체육관 조명과는 상관없이 빛나면서 오이카와를 향해 있었다.

 

이번에는 여자친구 안 하시나요?”

 

오이카와의 눈썹이 구부러졌다. 오이카와가 생각하는 만큼 카게야마가 깊은 의미 없이 말했다는 것은 오이카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눈동자가 저를 몰아가는 착각이 일었다.

 

글쎄. 지금은 아니어도, 마음이 바뀌어서 사귈 지도.”

마음이 바뀌나요?”

당연하지. 바뀌지 않는 마음이란 없어.”

그런가요.”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들고 있는 공을 바라봤다. 오이카와는 이마에 대었던 공을 떼어내고, 몸을 카게야마 쪽으로 돌렸다. 착잡한 표정으로 오이카와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배구를 좋아하는 것도 마음이잖아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배구를 좋아하는 마음은 안 바뀌는걸요.”

 

카게야마는 알 수 없다는 듯 고민하고 있었다. 눈동자를 가 쪽으로 올린 뒤, 머릿속으로 사고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한 번 흘겨본 뒤 그에게로 다가갔다. 줄어드는 거리에 비례하며 점점 커지는 오이카와의 신체에 카게야마는 고개를 들었다. 차가운 눈동자였다. 카게야마는 몸을 움츠렸다.

 

그건 다르잖아.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란 건 쉽게 바뀌니까. 방해 그만하고 안 가면 토비오쨩 괴롭힌다?”

, 서브 가르쳐 주세요.”

카게야마, 아직도 여기 있는 거야?”

오이카와 선배 방해 그만하라고.”

오이카와 선배, 죄송합니다.”

 

오이카와의 눈빛이 다른 빛깔로 바뀐 걸 눈치챈 킨다이치와 쿠니미 두 사람이 카게야마의 양팔을 붙잡고 질질 끌다시피 데려갔다. 카게야마가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삐죽 내밀며 두 사람에게 무어라 말했으나 두 사람은 팔을 놓지 않았다. 두 명보다 키가 작은 카게야마의 쓸데없는 고집이었다.

지겨운 찰거머리야. 오이카와는 속 언저리에서 솔솔 풍겨오는 짜증에 입술을 씹었다. 공을 들어 올렸다. 체육관 조명이 전부 공 한 점에 모였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이란 쉽게 허물어진다. 금세 빛을 잃는다. 잘 만들어진 타르트가 바닥에 떨어지면 한순간에 모양이 망가지듯이, 사랑이란 그러했다. 3개월을 넘기지 못하는 화학작용이었다.

오이카와는 몸을 활처럼 굽혔다가, 공을 강하게 내리쳤다. 손바닥에 전달된 충격이 전기와도 같았다. 팔 전체가 후들거리며 끝에 이어지는 충족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오이카와는 작게 미소 지었다. 작년사귀었던 여자친구가, 헤어진 이후 다른 남자와 함께 복도를 걷다가 오이카와를 만났을 때 지었던 표정이 떠올랐다. 알 수 없는 자신감, 충족감. 오이카와는 그가 누구를 사귀든, 어떻게 지내든 아무런 관심이 없었으나 그렇게 되리란 건 알고 있었다. 그와 사귀기 전서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이 옳았다.

사람과 사람의 유대는 없어지기 마련이고, 오이카와를 언제까지고 좋아하고 사랑해줄 사람은 없었다. 특별히 사랑은 그중에서도 달콤함이 제일 짧았다. 이와이즈미와 저의 관계는 사랑이 아니기에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는 관계였고, 그 때문에 그와의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영원하지 않은 관계일지라도,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를 전부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와이즈미와의 관계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별로, 사랑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바란 건 아니지만.’

 

저가 조금은 차가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이카와의 모든 걸 이해해줄 사람은 없었고, 그런 확신이 들어 관계의 온전한 만족을 포기 하고 마는 저 자신에게 동정심마저 들었다.

 

이번 리시브 연습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연습은 종료될 예정이었다. 오이카와는 익은 토마토 빛으로 물드는 창가를 보면서, 그 여자아이가 아직도 서 있는 걸 바라봤다. 노을과 같이 붉은 볼이었다. 거센 바람 때문에 곱게 빗어놓았던 머리카락 끝부분이 조금 헝클어져 있었다. 잠시 울고 온 걸까, 눈동자가 붉었다. 혹은 해가 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오이카와는 그녀가 안타까웠고, 달려가 울고 있는 그 눈가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그럴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감정의 뿌리가 사랑은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느낄 자신. 자연스레 누구로부터 그러한 사랑을 받을 거라는 기대도 없었다. 오이카와에게 사랑은 종이로 만든 케이크였다.

 

 

* * *

 

 

가끔 비가 오는 날이 이어졌다. 맑게 갰나 싶다가도 찌푸린 구름이 모여 부슬부슬 얇은 비를 뿌렸고, 몸에 닿는 공기는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이틀 동안 내렸던 비가 그친 날이었다. 연습시합에서 키타가와 제1중학교가 21로 이긴 뒤 일주일이 지난 날이었다. 체육관 창문으로 보이던 그녀가 안 보인지 일 주일 정도 지난 날이었다. 오이카와는 오지 않게 된 그녀에 대해 입방아를 찧는 팀 동료들에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저 관심이 없었다.

체육관으로 내려가는 복도 창밖으로 그 여자아이가 보인 건 아주 흔한 우연이었다. 오이카와가 서 있는 2층 복도의 창밖은 1층 뒷문 근처였고, 그녀는 검도부 주장과 함께 있었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던 미소 대신 볼을 파스텔 색조로 물들인 미소가 보였고,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교복 치마를 힘겹게 꼭 쥐고 있던 손은 검도부 주장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있었다.

 

, 사귀고 있구나. 그럼 그렇지.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야 할, 이루어져야 할 일의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약간의 후련함까지 느꼈다. 억지로 침수시켜놓았던 죄책감이 멀리 날아가 버린 상쾌함이었다. 조금의 미소를 입가에 걸고 앞을 보자 익숙한 머리통이 보였다.

 

오이카와 선배!”

 

카게야마 토비오가 평소보다 기대감에 찬 눈동자로 뛰어왔다. 체육복이 든 에나멜 가방을 보니 연습에 가는 도중인 것 같았다. 무시하고 계단을 뛰어내려 가버릴까, 잠시 고민했으나 오이카와는 불현듯 좋은 생각이 들었다.

 

토비오쨩, 저거 봐.”

 

오이카와는 창밖에 서 있는 두 사람을 가리켰다.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쏙 내밀었고, 카게야마의 푸른 눈동자에 두 사람이 비쳤다.

 

뭐가요?”

저기 저 여자애.”

……?”

 

카게야마는 눈을 잔뜩 찌푸리고 창밖을 바라봤다. 눈이 안 좋은 것도 아니면서. 그 입이 열리려다가 다시 닫히고, 입꼬리를 꼬물거리는 것이 영.

 

기억 안 나면 안 난다고 말해.”

, 런게, 아니고

 

오이카와의 쏘아붙이는 말투에 카게야마는 몇 번 말을 더듬었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적중인 모양이었다.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토비오쨩, 진짜 심각하네. 그때 토비오쨩이 말했잖아? 이번엔 여자친구로 안 하냐고

그랬었나요.”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카와는 그때 나눈 두 사람의 대화가, 제가 생각하는 만큼 카게야마에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는 눈가를 구겼다. 생각해 보면 카게야마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오이카와가 생각하는 사랑 관과, 마음의 불변성에 대한 주제 같은 건.

 

저 선배가 왜요?”

변하지 않는 마음은 없다느니, 그때 토비오쨩이 건방진 말을 하면서 이 오이카와 선배를 가르치려 들었잖아? 저거 봐, 다 변하잖아.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란 건 저런 거야.”

저 선배가 오이카와 선배를 좋아했나요?”

그랬, .”

 

카게야마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오이카와는 어울리지 않게 말을 잇지 못했다. 고백은 받았으나, 오이카와를 기다리며 며칠 동안 체육관 창문에서 바라봤으나 실제 어땠는지 오이카와는 몰랐다. 지금에 와서는 더 모를 일이기도 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대답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먼저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바뀌지 않는 좋아도 있는 걸요.”

토비오쨩은 아직 어려서, 몰라서 그래.”

 

오이카와도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고, 보폭을 넓혀 카게야마보다 앞섰다. 평소처럼 코맹맹이 소리를 얹은, 가벼이 여기는 어조였다. 카게야마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저렇게 입만 삐죽 내밀다간 언젠가 입 삐죽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오이카와는 그걸로 또 놀릴 생각을 여러 가지 해보았다.

 

몰라도, 제대로 좋아하고 있어요. 오이카와 선배요.”

?!!”

 

다리가 휘청, 계단을 미끄러져 내려갈 뻔했으나 간신히 난간을 붙잡았다.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카게야마를 쳐다보자 작은 체구가 계단에 멈춰 서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왜 그러세요?”

, , 좋아, 좋아한, 다고?”

 

한심하게도 혀가 제대로 돌지 않았다. 방금까지 삐죽이고 있던 작은 입에서 나온 말이 무엇인지 해석할 수 없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 배구도, 카레도, 오이카와 선배의 서브도 좋아해요.”

 

그렇구나. 오이카와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고 싶었다. 배구나, 카레 같은 좋아’. 심지어 그것도 서브. 가슴을 쓸어내리고 싶은 동시에 그 작은 머리 위를 꾹 눌러주고 싶었다. 감히 오이카와씨를 서브로만 평가해? 실제 오이카와가 머리를 누른 것도 아닌데, 카게야마는 인상을 안 좋게 찌푸렸다.

 

가끔, 괴롭힐 땐 싫을 때도 있지만그래도 좋아해요. 처음부터 똑같은 걸요.”

 

처음부터, 오이카와의 존재와 만났을 때부터, 카게야마 토비오가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존재를 알았을 때부터. 순간적인 기분의 흔들림과는 별개로 쭉.

아니, 아니 아니. 오이카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배구나 카레와 같은 좋아라니까. 그럼에도 카게야마 토비오에게는 제대로 된 좋아였다. 카게야마가 아마 앞으로도 쭉 좋아할 배구와 카레. 가끔 지칠 때는 있어도, 질리고 싫어질 때도 있겠지만, 앞으로도 카게야마에게 사랑일 배구나 카레와 동일하다고. 동일하다고.

 

근데 그거 서브잖아?!”

?”

 

카게야마는 반문했다.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가, 갑자기 큰소리를 쳤다가, 지금은 흰 피부를 붉은 거품처럼 몽글 물 들이고. 오이카와는 역시 이상했다. 가끔, 아니 혹은 자주.

 

 

* * *

 

 

토비오쨩, 집에 같이 갈까?”

 

평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오이카와는 눈을 굽혀 웃고 있었다. 카게야마가 오이카와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등 뒤에 섰다.

 

너 이 자식또 무슨 짓을 하려고

아니, 아니, 아니라니까? 이와쨩, 그런 거 아니니까 진짜 무서워. 그냥 같이 가는 것뿐이니까?”

.”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이즈미가 눈빛으로 넌지시 괜찮은지 의향을 물었으나 카게야마가 알아챌 리 없었다. 오이카와는 뒤에 있던 이와이즈미를 벗어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동전 소리가 났다.

 

가는 길에 만두 사줄까?”

!”

먹는 걸로 꼬셔서 뭐하려고?”

아니, 이와쨩 왜 그런 생각만 하는 건데. 늦었으니까 바래다주는 거라고?”

 

카게야마가 눈동자를 빛내며 오이카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가자, 이를 보이며 웃은 뒤 앞서 걸었다. 가방을 고쳐 맨 등이 카게야마보다 두 뼘 정도 컸다. 걸친 재킷에는 키타가와 제1중학교 배구부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카게야마가 몇 번이고 바라봤던 등이었다. 카게야마는 저도 모르게 볼을 물들이면서 뒤를 쫓았다. 뒤따라오는 카게야마를 바라본 오이카와의 눈꼬리가 반달처럼 휘어있었다.

 

 

, 뜨거우니까.”

감사합니다!”

 

만두를 한 개씩 사 들고 걸어가는 길목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점점이 퍼진 가로등 불빛이 오이카와와 카게야마의 윤곽을 비췄다. 오이카와는 만두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이 카게야마의 볼에 닿아 촉촉이 젖는 걸 보면서, 작게 물었다.

 

토비오쨩은 집이 어디야?”

저기요.”

 

카게야마가 가리킨 곳은 골목 안쪽 주택가의 한 지점이었다. 정확히 어디인지는 몰랐으나 거리상 멀지 않은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만두를 한 입 베어 문 카게야마의 발음은 그리 정확하지 않았다.

 

가깝네.”

오이카와 선배는요?”

거기서 15분 더 걸어가야 해.”

가깝네요.”

가까운 거야?”

못 만나는 거리는 아니잖아요.”

 

그건 그러네. 오이카와는 끄덕였다. 말로는 꺼내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어느덧 만두를 한입에 다 넣고 양쪽 볼 주머니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입을 열면 만두가 튀어나오려는지 작은 입을 양손으로 누르면서 입안을 열심히 움직였다. 햄스터 같은걸, 오이카와는 생각하면서 카게야마 입술 옆에 붙은 만두 부스러기를 입에 넣었다.

 

?!”

 

말로 하지 못한 당황이 카게야마의 얼굴에 번졌다. 입을 열려고 입술을 오물거렸으나 손가락을 떼지 못하고 왜 그런 걸 먹어요라는 눈빛만 열심히 보내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자신도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게야마의 양팔을 잡아 끌어당긴 뒤, 보이는 작고 모양 좋은 귀에 속삭였다.

 

토비오쨩은 내가 서브 평생 안 가르쳐 주면 어떻게 할 거야?”

 

온기를 담고 있는 입김이 귓속의 솜털을 간지럽히자, 물감이 퍼지듯 귓바퀴를 따라 귀 전체가 천천히 붉어졌다. 귓불을 조금 세게 꼬집으면서, 오이카와는 짓궂게 웃었다.

 

토비오쨩 귀 붉어졌어.”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바라보는 눈가를 찌푸린 뒤 만두 덩어리를 꿀꺽 삼켰다. 작은 목젖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입가를 가리고 있던 손을 들어 이번에는 귀로 옮겼다. 작은 주먹이 오이카와의 손가락을 방해했다. 불만이 가득한 눈동자로 오이카와를 노려보면서, 카게야마는 작게 투덜거렸다.

 

지금도 안 가르쳐 주시잖아요

그건 그렇지.”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요즘 카게야마의 말에 동조할 일이 잦았다. 카게야마와 그만큼 많이 마주 보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카게야마의 갸우뚱하는 고개, 불만이 담긴 눈동자, 삐죽 내민 입술 모두 지금의 오이카와에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익숙했다. 아마 몇 년이 지나도, 카게야마의 저러한 버릇들은 쉬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오이카와는 제 귀를 감싸고 있는 카게야마의 손을 잡아 내렸다. 손을 맞잡고, 아직 온기를 품고 있는 카게야마의 손을 몇 번 주물렀다. 아기같이 보드라운 손이었다. 그냥,

 

그럼 오이카와 선배가 싫어지지 않겠어?”

 

카게야마는 고민하는 듯 눈동자를 내렸다. 흘러내린 가로등 불빛이 검은 속눈썹 한 올 한 올에 가라앉았다.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고요한 적막이 카게야마의 입술 끝에 잠시간 머물렀다. 비가 그친 뒤 물기를 머금은 바람 한 점이 오이카와와 카게야마의 맞잡은 손 사이를 지나갔다. 오이카와는 지금껏 저와 헤어진 후 다른 남자와 사귀었던 여자친구, 이제는 싫어진 좋아했던 음식을 떠올렸다. 이와이즈미와의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오이카와는 제가 생각하는 온전한 이해와 사랑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없는 거라고.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었다.

 

지금이랑 달라질 게 없는데 좋아하는 마음이 달라질까요?”

 

카게야마는 고민을 마친 듯 눈동자를 다시 들어 올렸다. 푸른, 별 몇 조각이 빛나는 눈동자는 여전히 오이카와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게야마가 처음 오이카와를 만났을 때부터 변하지 않은 것 중 한 가지였다.

 

오이카와 선배는 여전히 대단한 사람이고, 서브는가르쳐주시면 좋겠지만 안 가르쳐 주는 건 지금도 똑같고. 뭐가 달라지는 건지 전 잘 모르겠어요.”

달라지잖아. 내가 언제까지 대단한 선수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단순히 토비오쨩이 나에 대한 마음이 훅 바뀔지도 모르고?”

 

오이카와는 그런 말을 하는 저가 이상했다. 저 자신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언제까지혹은 언제 즈음. 오이카와는 저를 좋아하냐고 집요하게 물었던 지금까지의 여자 친구들을 떠올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안 바뀌어요.”

 

카게야마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앞선 질문보다도 망설임이 없었다. 입술에 만두 부스러기를 붙인 꼬맹이가 당돌하기도 했다. 오이카와는 불룩 심술궂은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장담해? 토비오쨩 미래 보고 왔어? 아직 꼬꼬마가 그렇게 책임도 못 질 말 막 하면 안 되는데

 

오이카와가 손가락을 들어 카게야마의 이마를 꾹 눌렀다. 카게야마의 인상 쓴 얼굴이 뒤로 밀렸다가 다시 되돌아오자, 그 이마에 붉은 점이 남았다. 카게야마는 붉은 이마를 문지르고 싶었으나 오이카와에게 양손을 잡힌 상태였다.

 

미래는 모르지만지금은 안 바뀌는 걸요. 지금은 어제였고, 그저께였으니까, 내일이나 모레도 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매일 매일 지나면 결국 안 바뀌는 거잖아요.”

토비오쨩은 내일에 대한 생각은 안 해?”

? 해요. 내일 저녁 메뉴는 카레라고,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내일이면 오이카와 선배가 미워질지도 모르잖아?”

오이카와 선배가 말하는 건 전부 지금이랑은 상관없는 얘기인 거 같아요. 빨리 집에 가면 안 되나요? 오늘 저녁도 카레인데.”

 

카게야마는 이야기가 지겨운지 입을 뚱하니 내밀었다. 몸을 배배 꼬면서 저의 집 쪽으로 틀려는 걸 오이카와가 제지했다.

 

요 녀석, 선배가 얘기하는데! 그리고 너희 집은 매일 저녁이 카레냐! 얼마나 좋아 하는 거야?!”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볼을 잡고 양옆으로 당겼다. 찹쌀떡처럼 죽 늘어나 카게야마의 입이 벌려졌다. 우우, 아하요,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하고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작은 손으로는 속수무책이었다. 오이카와는 작게 웃고 말았다. 늘어난 볼을 놔주고, 머리 위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밤이 녹아, 카게야마의 우주 같은 눈동자와 어울리는 머리카락이었다.

 

집에 가야지. 토비오쨩은 어린아이니까.”

…….”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빨간 코끝을 바라봤다. 오이카와의 빨간 코끝, 홍차 빛 눈동자와 올라간 입꼬리를 바라봤다.

 

?”

, 오이카와 선배만큼 대단한 사람은 본 적 없어요.”

, 고마워?”

 

얼결에 대답하고 말았지만, 이상한 칭찬에 이상한 대답이었다. 카게야마는 제 머리 위를 쓰다듬던 오이카와의 손을 꽉 붙잡았다. 카게야마의 손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카게야마의 눈동자에 담긴 수많은 별이 후두두 떨어지고 있었다. 푸른 눈동자 안에서, 유성군처럼 떨어지는 별똥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지면이 뒤집힌 것처럼 몰려드는 어지러움에, 오이카와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아찔해졌다. 밤하늘이 오이카와의 발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달 웅덩이가 가로등 불빛을 받아 은빛으로 주변을 물들였다. 수채화처럼 은은하게, 카게야마 주변으로.

 

어머니가 그랬어요. 그 선배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배구 선수가 더 잘하지는 않냐고요.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저에게 대단한 사람은 오이카와 선배인걸요. 앞으로도 계속요.”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손바닥에 땀이 배어 제 손바닥까지 적셔지는 걸 느꼈다. 감정이, 뜨거움이 전달되고 제 심장이 눅진하게 녹고 있는 걸 느꼈다. 카게야마가 뜨거웠다. 종이 케이크가 카게야마의 손안에서 진짜 생크림과 과일로 덮이고 있었다.

 

토비오쨩그렇게 칭찬해도 서브는 안 가르쳐 줄 건데.”

.”

 

카게야마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전기가 한 차례 몸을 돌고 오이카와의 시야를 흔들었다. 그렇기에, 오이카와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토비오쨩의 좋아는 어느 정도 오래 갈 것 같네. 어느 정도는.”

진짜예요. 자신 있어요.”

 

무슨 자신인데.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은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빛나는 눈동자를 손으로 한번 훑었다. 속눈썹, 눈꼬리까지 달빛을 한바닥 머금은 눈동자를. 오이카와의 머리 위에 뜬 별이 빙글빙글 돌았다. 바람개비처럼 오이카와의 심장 박동에 맞춰 천천히, 조금 빠르게. 오이카와의 머릿속이 온통 카게야마가 흩뿌려놓은 별 가루로 가득했다. 눈이 부셔 눈꺼풀을 내렸다. 양 볼이 마주 잡은 카게야마의 손만큼 뜨거웠다. 이끌리듯 카게야마의 눈꼬리에 키스하면서,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손을 꼭 잡았다.

 

한입에 집어넣은 카게야마의 케이크는 의외로 잊지 못할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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