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고어 묘사가 있습니다.

 불쾌감을 일으킬 수 있는 장면이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 월간 오이카게 합작 홈의 편집을 가져왔습니다. 깔끔한 편집 감사합니다.








  Love Actually








  소리 없이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퐁당, 퐁당 액체가 물과 만나 작은 파도를 만들어내고, 그 파도는 변기 벽에 부딪혀 스러졌다.

  “우, …윽. 하아, 하아… 욱.”

  변기를 붙잡고 잠시 숨을 고르던 오이카와는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타는 듯한 목을 타고 올라온 건 노란 신물이었다. 더 나오지 않는 것을 부여잡고 꼭꼭 짜내는 위장은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다. 신물과 섞인 침 몇 방울이 이미 더러운 변기 물에 떨어졌고, 오이카와는 올라오는 시큼한 냄새와 찌릿한 코를 닦아내려고 손을 들었으나 이내 주저앉아버렸다.


  서브를 가르쳐주세요.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눈동자.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표정. 공을 들고 서 있는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머릿속에 박제된 나비처럼 떨어지질 않았다. 입과 코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 때문에 다시 울렁거렸으나 오이카와는 손 한 번 움직일 기운조차 없었다. 카게야마는 돌고 돌았다. 귓가에 입술을 대고, “오이카와 선배” 낮게 말한 뒤 오이카와에게 공을 갖다 대는 것이었다.

  서브를 가르쳐주세요.


  한여름 밤의 악몽과도 같았다.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오이카와는 벽에 기댄 채 몸을 일으켰다. 개수대에 서서 찬물로 입안을 헹구고, 코 안을 깨끗이 씻어내자 하얀 덩어리와 침, 일부의 노란 신물이 물과 함께 쓸려 내려갔다. 전부 쓸려 내려가면 될 일이다. 내장 구석구석에 붙은 토기(吐氣)도, 머릿속에 박제된 카게야마도. 오이카와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아주 볼만하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내려앉았다. 세상이 하얗게 번지는 것이, 다시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온 세상이 뿌옇고 제 모습조차 흐릿한데도, 머릿속 카게야마는 속눈썹 한 올조차 보일 정도로 선명했다.



  “오이카와 선배, 안녕하세요.”

  오이카와는 공을 매만졌다.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도 돌리지 않자 카게야마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한 번 더 인사를 건넨 뒤 자기 자리로 휙 가버리는 카게야마의 뒷모습만, 오이카와는 길게 바라봤다. 뛰어가는 발걸음에 따라 흔들리는 옷자락이나 머리카락이 체육관 조명을 받아 부옇게 빛을 냈다. 오이카와는 손목의, 맥박이 느껴지는 부위에 손가락을 댔다. 며칠 전 병원에서 배운 방법이었다. 심전도검사, X-ray 등 몇몇 기초적인 검사 및 활력 징후까지 확인했으나 오이카와에게 이상은 없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지극히 건강했다. 오이카와는 손가락에 느껴지는 박동을 느꼈다. 뚝, 뚝뚝뚝, 뚝뚝뚝. 끊어질 듯 약하게 때로는 강하게 빠른 맥박이 이어졌다. 누가 만져 보더라도 지나치게 빨랐다. 심장이 과도하게 팽창해, 폐를 짓누르는 탓일까. 혹은 여름 특유의 짭조름하고 답답한 공기 때문일까. 숨쉬기가 힘들어, 오이카와는 인상을 찌푸렸다.


  “너, 괜찮냐.”

  옆에 있던 이와이즈미가 목소리 톤을 유지하면서 물었다.

  “뭐가?”

  매만지던 공을 몇 번 바닥에 내려쳤다. 오늘도 해야 할 연습이 많았다.

  “네 표정 장난 아냐.”


  “또 숨이 안 쉬어져서 그래?”

  이와이즈미의 목소리에서는 걱정 끼가 묻어나왔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좋은 친구지만, 오이카와는 가끔 달갑지 않을 때도 있었다. 어떻게 하지 못하는 문제를 계속 거론하는 건, 이미 생긴 구멍을 후벼 파 넓히는 것밖에 되지 못한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그저 웃어 보인 뒤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어라 하든 소용이 없었기에, 오이카와는 입을 열지 않았다. 

  서브 연습을 시작하려다가 문득 카게야마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우연히 저를 바라보고 있던 카게야마와 눈이 마주쳤다. 손목에 손가락을 갖다 댈 필요도 없었다. 가슴 한 가운데에 있는 심장이 뼈를 으스러뜨리고 튀어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살을 찌르는 직사광선이 온통 저에게로 모이고, 등이 탈 것처럼 뜨거운 태양 탓에 다시 숨이 막혔다. 후, 후우. 들이쉬고, 내뱉고. 억지로 숨을 쉬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은 두려움이 오이카와를 짓눌렀다. 과도한 심박 수와 산소가 부족한 뇌 때문에 다시 토기가 느껴졌다. 가슴을 부여잡고 화장실로 향하는 오이카와를 이와이즈미는 말없이 바라봤다.


  연습 전 마셨던 스포츠 드링크가 그대로 나왔다. 연한 소다 빛깔의 좋아하는 음료수였는데.

  “하아….”

  정말 그만했으면 좋겠다. 오이카와는 깊은 한숨을 내뱉고 변기 물을 내렸다. 심한 심박동으로 울렁거림을 느낀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으나 현재 오이카와가 겪는 증상이었다. 오이카와는 휴지로 입가를 대충 닦은 뒤 핸드폰을 꺼내 들어 ‘심장병’을 검색했다. 심계항진, 부정맥, 심근경색, 협심증 등…… 오이카와가 느끼는 증상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심장의 고통, 숨쉬기 힘들 정도의 고통‐ 그건 말 그대로 고통이었다. 오이카와는 서브를 가르쳐달라고 처음 들었던 그 날을 떠올렸다.



  “서브를 가르쳐 주세요.”

  어떤 부탁 조도, 애원하는 말투도 아니고 마치 당연한 걸 요구하는 듯했다. 카게야마는 동그란 눈동자로 오이카와를 바라보고 있었고, 공 하나를 들고 있었다.

  “왜?”

  오이카와는 화가 나 있었다. 선배로서 응당 후배보다 침착하고 후배를 이끌어줘야 한다, 고 지식으로 아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이와이즈미가 들으면 다르지 않다 말하더라도 오이카와에게는 다른 문제였다. 

  “오이카와 선배의 서브를 배우고 싶어요.”

  “관심 없어.”

  오이카와는 저를 따라붙는 카게야마의 눈동자를 뿌리치고 체육관 밖으로 나섰다. 오이카와 선배, 오이카와 선배. 뒤를 쫄래쫄래 쫓아온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체육관 밖 뒤뜰에 울렸다. 뒤뜰에 심긴 나무의 나뭇가지 사이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햇볕, 먼지처럼 일어나는 아지랑이와 함께 오이카와의 머리가 울렸다. 손발이 조금 떨리면서 식은땀이 등 뒤로 배어 나와, 오이카와는 약한 오한을 느꼈다. 다리, 발목, 복부, 귀 뒤 등 여기저기에서 박동치는 심장이 제 것이 아닌 것처럼 움직였다.

  심장이 뛰고 있었다. 카게야마로 인해, 뛰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꿈을 꿨다. 초원과도 같이 넓은 평원에는 보랏빛 풀이 번져 있었다. 깊은 밤과 떨어지는 유성우의 꼬리, 풀빛 냄새가 섞인 공기는 날 선 유리 조각처럼 차가웠다. 폐가 찢기듯 차가운 공기 탓에 오이카와는 꿈인데도 목이 얼어붙어 호흡곤란을 느꼈다. 저 앞 초원 한가운데에 누군가가 보였다. 오이카와는 실루엣만으로도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누구인지에 대해 알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았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공을 들고 서 있었다. 흰 티셔츠와 체육복 바지에 짧은 앞머리. 동그란 눈동자까지, 오이카와가 아는 카게야마의 모습 그대로였다. 달빛도 없는 검은 꿈 안에서, 카게야마의 주변에만 반딧불이 몇 마리가 떠돌았다. 어스름한 불빛이 카게야마의 말간 이마와 노란 빛깔의 팔, 흰 운동화까지 비췄다.


  “오이카와 선배.”


  오이카와는 입을 연 카게야마의 입술을 양손으로 틀어막은 뒤 그 몸을 그대로 밀어뜨렸다. 넘어진 카게야마의 아래로 보랏빛 풀이 흩날리고, 흰 티셔츠는 이슬방울에 젖어들었다. 카게야마 주변의 반딧불이는 흩어졌지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눈동자를 바라볼 수 있었다. 흰색 가루가 총총히 박힌 검은 눈동자였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입을 힘주어 눌렀다. 배구공을 놀리는 오이카와의 악력이 결코 서툴진 않을 텐데, 카게야마는 괴롭지 않은 듯 오이카와를 두 눈동자로 바라봤다.

  오이카와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손가락에 맞닿는 카게야마의 입술이 보드라웠다. 톡 오른 복숭앗빛 입술이 기억 속에 떠올랐고, 제 손 아래에 짓눌린 게 그 입술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오이카와의 허리 주변을 간지럽혔다. 오이카와는 천천히 카게야마에게 몸을 기댔다. 가슴이 맞닿았고, 카게야마의 심장과 오이카와의 심장이 한 소리로 박동했다. 아니, 오이카와의 쪽이 조금 더 빨랐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입술을 누르고 있는 제 손 위에 입을 맞췄다. 유성우 무리가 소리 없이 카게야마에게로 떨어졌고, 초원의 밤은 광활한 우주와 같이 별의 죽음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손이 새하얗게 변질했다. 카게야마 때문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있었다. 카게야마 때문이었다.

  “왜?”

  오이카와는 물었다. 카게야마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오이카와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너야.”

  보랏빛 풀이 누워서 고개도 들지 못할 정도로, 초원에는 세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왜 나야. 왜 너고, 왜 나야. 어째서.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왼쪽 가슴에 손을 갖다 댔다. 카게야마의 심장 박동에 맞춰 오이카와의 손이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이슬이 묻어 머리카락이 젖어든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이카와의 손에 은빛으로 빛나는 얇은 수술용 칼이 들려있었다. 카게야마의 흰 티셔츠에 대고 조심스레 긁자, 눈에 보기 힘들 정도로 작은 실선이 생기고 그 안으로 솜털이 오른 속살이 보였다. 오이카와는 토기가 밀려왔다. 동시에 기대감도 있었다. 이 칼이 저 자신에게 닿기 전에 해야만 한다는 이유 모를 의무감도 들었다. 오이카와는 실선 사이에 손을 넣고 흰 티셔츠를 벌렸다.

  카게야마의 폭신한 살결에 닿고, 조금 힘을 주어 칼을 내리그으면 말랑거리는 젤리처럼 피부가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수술용 칼에 달라붙는 피부조직을 떼어내면, 노란 빛깔의 동글동글한 지방과 갈비뼈 위에 겹쳐진 엷은 핑크 빛의 근육이 보였다. 카게야마는 총총한 눈동자로 오이카와의 행동을 바라볼 뿐이었다. 배어 나오는 장막 액과 혈액이 카게야마의 흰 티셔츠를 적셨다. 점점이 퍼지는 붉은 꽃잎이 카게야마의 가슴에서부터 퍼졌다. 근육에 손을 대보면 강한 박동이 갈비뼈 아래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목구멍을 조이는 호흡곤란 때문에, 오이카와는 침을 한 번 삼키고 다시 칼을 들었다. 카게야마의 입술이 열렸다.


  서브 알려주세요, 오이카와 선배.


  기분 나쁜 꿈이었다.




  “너 연습 할 수 있겠어?”

  “완전 괜찮다니까. 이와쨩 자꾸 왜 그러실까.”

  오이카와는 장난스럽게 웃은 뒤 체육복으로마저 갈아입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상이던 놈이 말은 잘하네. 이와이즈미는 옷을 대충 구겨 접고 사물함에 넣었다. 새벽 2시에 오이카와에게서 온 라인 메시지는 ‘혹시 자?’ 한 마디였다. 아침에 그것을 보고, 이와이즈미는 요 며칠 입을 막고 화장실로 달려가던 오이카와의 모습을 떠올렸다. 카게야마를 만나면 심장을 내리누르는 것도 자주 있는 모습이었다.

  “이와쨩?”

  체육복으로 다 갈아입은 오이카와가 탈의실 입구에 서서 이와이즈미를 불렀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만난 후로, 이와이즈미에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오이카와에게서 카게야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건 이미 아주 옛날 일이었다.

  ‘누구야, 쟤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1학년이던데. 이름이 독특했어. 카게… 뭐였지.’

  ‘카게야마 토비오쨩.’

  ‘알면서 물어본 거냐!’

  말 그대로 첫 만남 때였다. 오이카와는 그 날, 꽤 길게, 카게야마의 모습을 지켜봤다. 오이카와의 그런 눈빛은 이와이즈미의 인상에 오래 남아있었다. 오이카와가 누군가를 그렇게 오랫동안 바라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체육관 안에는 이미 많은 부원이 연습하고 있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넓은 체육관이 사람 냄새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오이카와가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여기저기서 안녕하세요, 오이카와 선배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등의 인사 소리가 들렸다. 오이카와는 작은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수많은 인원 사이에서 작고 검은 머리통이 오이카와에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기분 나쁜 꿈을 기억해냈다. 꿈에서와 같았다. 보지 않아도,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보랏빛 풀의 향기가 어른거렸다.

  “안녕하세요, 오이카와 선‐”

  “카게야마.”

  카게야마의 인사가 마저 끝나기 전,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이름을 불렀다. 오이카와의 입술에서, 항상 다른 부원의 이름만 오가던 입술에서 저의 이름이 불린 게 너무 오랜만이어서일까. 카게야마는 잠시 눈동자를 크게 뜬 뒤 대답하지 못하다가, 겨우 다듬지 못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다음 경기용으로 준비해야 하는 음료수, 주문하러 가자.”

  다음 경기용 음료수?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미리 정해놓은 매장에서 직접 공수해주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갈 필요는 없다. 더더욱 연습 시간에 주장이. 이해할 수 없는 오이카와의 말에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카게야마.”

  오이카와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부르자, 카게야마는 자신이 들고 있는 공을 바라보고 다시 오이카와를 쳐다봤다. 이후 네, 작게 대답한 뒤 저가 들고 있던 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카게야마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항상 공을 잡고 있던 손을 바라보면서, 오이카와는 그 손이 꿈에서보다 작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체육관의 2층 창문 위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카게야마의 볼과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유성우도 검은 밤도, 낮의 햇빛도 카게야마 주변을 돌고 돌았다. 카게야마는 지나치게 빛나는 존재였다.



  파란 하늘, 한두 번씩 울리다가 멈추고 다시 일제히 이어지는 매미 소리가 더웠다. 팔에 닿은 공기가 끈적거렸고, 눈에 닿는 초록이 부셨다. 길가에는 차 한 대도 다니지 않았고, 바닥에는 매미 허물과 떨어져 죽은 매미 사체 한두 개가 보였다. 하수구 주변에는 진물이 번들거렸다. 오이카와는 제 옆에서 걷는 카게야마를 바라봤다. 작은 볼이 더위 탓인지 조금 붉었다. 보폭 차 때문에 오이카와가 두 걸음 걸을 때 세 걸음에서 네 걸음을 걸어야 하는 카게야마의 발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오이카와 선배."

  카게야마의 입에서 오이카와의 이름이 나왔을 때, 가슴을 새가 쫀 듯 강한 흉통이 느껴졌다. 오이카와의 시야에 현기증이 맺혔다. 올라가는 심박동과 여름의 습습한 공기가 기도를 눌렀고, 다시 호흡곤란이 이어졌다. 오이카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인상을 찌푸렸다.

  “서브, 옆에서 연습하는 거 봐도 될까요.”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안돼.”

  오이카와의 대답에 카게야마는 조금 충격이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나야.”

  꿈에서 물었던 말이었다. 왜 오이카와여야만 하는가. 왜 카게야마는 키타이치 중학교에 왔고, 왜 오이카와는 그의 2년 선배이며, 왜 오이카와의 서브여야 하는가. 옆에서 걷던 카게야마가 재빨리 다리를 굴려 오이카와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의 좁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또륵또륵 떨어졌다.

  “오이카와 선배의 서브를 보면 가슴이 뛰니까요.”

  “가슴이 뛴다고?”

  “네.”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 작은 손은 꿈에서 오이카와가 갈랐던 카게야마의 가슴 위에 올려져 있었다. 오이카와는 신경 선을 타고 느껴지는 심장 박동을 세어 보았다. 뚝, 뚝뚝뚝… 지나치게 빨랐다.

  “어떻게 뛰는데?”

  “네?”

  “가슴이, 어떻게 뛰냐고.”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질문에 고민하듯 머리를 갸우뚱해보다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서툰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 어. 두근두근… 하고요? 오이카와 선배가 서브를 치려고 뛰어오르면, 체육관 안의 빛이 전부 오이카와 선배한테 모여서, 약간 눈이 부시니까 눈을 세게 뜨고 봐야 해요. 오이카와 선배의 손이 움직이고, 공 소리가 울리고 나면 가슴이 뛰어요. 강하게.”

  매미가 울고 있는 공기 속에 오이카와의 심장 소리가 천천히 섞여 들어갔다. 그 속에 또, 카게야마의 심장 고동이 함께. 오이카와는 꿈에서처럼 손을 대지 않아도, 가슴을 맞닿지 않아도 카게야마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검은 머리카락과 노란빛 볼, 동그란 어깨에 떨어지는 태양 빛은 카게야마의 색과 섞여 부드러운 여름의 베이지색으로 빛났다. 카게야마의 검은 밤, 아니 짙은 하늘처럼 푸른 눈동자는 오이카와를 담고 있었다.

  “서브,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공을 들고 있던, 꿈에 나왔던 카게야마에게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오이카와는 기억을 떠올렸다. 여름의 한낮에, 나무 한 그루마다 후두두 떨어지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카게야마와 마주칠 때마다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박동치던 심장은 언제나 오이카와를 배신했다. 카게야마를 만난 후로 심장은 거짓말쟁이인 오이카와를 심하게 힐책하고, 오이카와의 전신을 뒤흔들어 놨으며, 카게야마의 앞에서 언제나 오이카와를 배신했다. 그러니,

  이 정도는 당연하다. 오이카와는 테이핑 되어 있는 검지로 제 가슴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맹렬하게 요동치고 있는 그곳에 오이카와의 심장이 있었다.


  "여기가 멈추면, 가르쳐줄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미소 지었다. 여름 수국처럼 환한 미소였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로 고개를 숙였다. 눈동자가 겹치고, 코끝의 한숨이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보다 뜨거웠다. 질식해서 죽는 게 낫다고 느낄 정도로 구역질 나는 이 감정이 사랑이라고, 이 심장이 그렇게도 소리친다면, 오이카와도 평생 거짓말쟁이로 사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가 멈추면, 토비오쨩이 원하는 거 전부 줄게."

  그때까지는, 심장이 오이카와에게 굴복하기 전까지는, 카게야마에게 '아무것도 줄 이유'가 없었다.

  달콤한 한숨 한 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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