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게] 카게야마의 맛은 달다.

* 퍄님이 리퀘해주신 오이카게입니다 u//u

* 제가 사랑니로 한동안 고생해서..카게야마에게도 충치를 만들어줬습니다. 
 

* 리퀘 신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충치?”

 

  킨다이치의 목소리다. 오이카와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킨다이치와 쿠니미, 그리고 카게야마. 일상의 조합이었다. 평소 킨다이치의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말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빨리 찾아온 변성기로 인해 목소리를 크게 내면 모두의 시선을 끈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또한 그리 큰 목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그 너무나도 의외의 단어에, 오이카와는 그만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킨다이치와 쿠니미가 카게야마에게로 몸을 향해있었다. 체육관 내의 밝은 조명이 쏟아지는 한가운데, 카게야마는 볼을 감싸고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볼을 감싸면서도 절대 배구공을 놓지 않는 게 카게야마다웠다. 오이카와는 서브를 내려치려던 손을 멈추고 카게야마를 바라봤다. 카게야마의 눈동자는, 슬며시 물기를 띄고 상대 없는 원망이 섞여 있었다.

  충치. 몇 년 전 오이카와에게도 큰 두려움의 단어였다. 2년 전, 카게야마와 같은 나이였을 때. 14살의 여름, 오이카와는 충치로 인해 갖은 고생을 하다가 결국 치과에 갔다. 그때의 아픔과 공포를 떠올리면 지금도 조금 몸이 떨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그래서일까. 이상하게 오이카와의 마음속에서 저릿하게 검은 감정이 꿈틀거렸다. 이걸 뭐라 부르면 좋을까. 괴롭히고 싶은 마음? 장난치고 싶은 마음? 아니면? 아니면?

  오이카와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제하지 못하면서 배구공을 높이 치켜들었다. 타앙. 총소리에 가까운 충격음이 체육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카게야마의 눈동자가 등 뒤로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 느낌이 좋다. 오늘의 서브는.

 

 

✤ ✤ ✤

 

 

   토비오쨩.”

  오이카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카게야마가 착각해서 뒤돌아볼 정도로, 다정한 목소리였다. 오이카와 선배. 상대를 알아챈 카게야마가 이마를 찌푸리며 입에 물고 있던 빨대를 쪼옥 빨았다. 오이카와는 점심, 오후 1240분이면 항상 카게야마가 이곳에 와서 자판기의 우유를 뽑아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안뜰을 지날 때면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선 서브 가르쳐주세요!’하며 귀찮게 하곤 했으니까. 카게야마를 우연히 만나는 것은 항상 오후 1240분 자판기 앞이었다. 오이카와는 천천히 미소 지었다. 여름의 태양은 뜨거웠고, 쏟아지는 햇볕의 칼날 앞에서 카게야마는 차양 하나 없이 서 있었다. 그 검은 머리카락은 햇빛을 모두 끌어안으려는 듯 연하게 빛났다. 그 앞머리는 땀으로 인해 이마에 달라붙어 흐트러져있었다.

 

   충치라며? 아침에 들었어.”

   아직 아니에요. 그냥, 조금 이가 아파서.”

 

  오이카와에게 들킨 것이 쑥스러웠는지 카게야마의 눈가가 사르르 붉어졌다. 미간을 좁히고, 입은 삐죽 내밀고. 시선은 틀어 내린 채. 여느 때의 카게야마였다. 그 입가에 비어져 나온 우유가 희었다. 오이카와는 엷게 땀이 스며든 입가를 가볍게 핥았다. 짠맛이 나야 하는데, 연한 달콤한 맛이 나는 듯했다.

  오이카와는 우유를 다시 쪼옥 빨아들이는 카게야마의 볼을 스치듯 쓰다듬었다. 카게야마는 이미 오이카와의 약간 서늘한 손길이 익숙한지, 눈을 들어 바라볼 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까만 눈동자에, 쏟아지는 햇빛, 카게야마의 이마 사이로 보이는 투명한 땀방울. 오이카와는 이마 옆에 흐르는 땀이 간지러웠다.

 

   오이카와씨도 충치로 고생한 적이 있어서. 친절한 오이카와씨가 한번 봐줄까?”

   …….”

 

  카게야마의 미간이 더욱 좁아졌다. 올곧게 오이카와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는 의심을 담고 있었다. 내가 언제 토비오쨩을 속인 적이 있다고. 오이카와는 그렇게 말하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카게야마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더니, 다시 우유를 빨아들였다. 그러더니, 꿀꺽. 그 작은 목젖을 움직였다.

 

   ..어요. 왠지 오이카와 선배한테 봐달라고 하면 더 심해질 거 같아요. 치과 갈래요.”

 

  아직도 의심하는 듯한 발언에 오이카와는 욱, 짜증이 치밀었지만 애써 목 아래로 내리며 다시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다시 손을 들어, 이번에는 엷게 우유가 맺힌 입가를 쓰다듬었다. 오이카와의 흰 손가락에 흰 우유가 묻어 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카게야마는 그 행동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치과, 갈 거야? 정말? 엄청 아플 텐데?”

   언젠가.”

   그러다 심해지면 어쩌려고? 그냥 보기만 할게. 경험자에게서 배우는 게 빠르잖아?”

 

  배운다는 말은 카게야마를 움찔거리게 했다. 아무리 부탁해도 결코 서브를 가르쳐주지 않던 그가, 그런 말을. 카게야마는 그럼 서브를 가르쳐줄 것이지, 욱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슬며시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는 미소 지은 얼굴을 풀지 않으며 엄지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가볍게 눌렀다. 붉은 입술이 눌렸다. 더 벌려봐. 말이 없는 강요가 카게야마의 입술을 휘감았다. 카게야마는 눈을 꼭 감으며 입을 벌렸다. 고르게 난 하얀 치아가 오이카와의 눈앞에 여실히 드러났다. 매끈하고 붉은 혀가 덜덜 떨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혀 위에 놓인 미처 삼키지 못한 우유가 침과 함께 섞여 희고 투명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 착하네.”

 

  오이카와는 머리가 저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 어쩌면 아랫배 근처일지도 몰랐다. 어찌 됐든 감각은 하나로 통해있으니까. 오이카와는, 그래. 흥분하고 있었다. 카게야마의 찡그린 얼굴, 떨리면서도 제대로 벌린 입, 그 안에 엷게 비치는 하얀 액체. 오이카와는 얇은 입술을 다시 한 번 핥았다.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힘든지 카게야마의 눈가에 엷게 눈물이 맺혔다. 붉어진 눈가가,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선명했다.

  오이카와는 아랫입술을 누르던 엄지손가락을 움직여 입술 옆에 두었다. 가늘고 긴 검지를 부드럽게 집어넣어 왼쪽 어금니를 느리게 쓸었다. 그 느낌이 생소했는지 카게야마가 눈을 찔끔 감으며 혀에 힘을 주었다.

 

   ...,”

   왼쪽은 괜찮은 것 같네.”

 

  오이카와는 흰 액체가 막을 이루고 있는 볼 점막을 손톱으로 가냘프게 긁었다. 카게야마가 응,.. 목에서 울리는 얇은 신음을 흘린 뒤 눈을 꼬옥 감았다. 결국 얇은 눈방울이 그 붉은 볼을 타고 흘렀다. 오이카와는 저릿해지는 아랫배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번에는 중지도 넣어 혀를 느슨하게 쓸었다. 우유가, 오이카와의 긴 손가락에 얽혀 예쁜 빛깔을 띠었다. 머리 위에서 바로 내리쬐는 햇볕이 손가락을 비추고 지나갔다. 검지는 아랫니의 잇몸을 훑고, 중지는 혀 아래의 예민한 살결을 조심스레 만졌다. 연한, 14살의 입안 점막이 오이카와의 손가락을 감쌌다.

 

   , ........하아...”

 

  카게야마는 숨쉬기 괴로운 듯 눈을 찡그리며 말이 되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오이카와 선배. 그리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오이카와의 손가락이 카게야마의 마음대로 되게 두질 않았다. 혀를 가볍게 긁고, 그 흰 액체를 치아 여기저기에 묻히고, 오이카와의 엷은 미소는 이제 약간의 욕망을 담고 있었다.

   토비오쨩. 오른쪽여기야? 두 번째 어금니.”

   ........으응....”

 

  카게야마는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며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그에 따라 오이카와의 손가락이 혀에 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이제는 꽤 배어 나온 침이 오이카와의 손가락을 더욱 옭아맸다. 오이카와는 중지로 천천히 두 번째 어금니를 만졌다. 그 아래 잇몸이 슬며시 부어올라 있었다. 부은 잇몸을, 서서히. 중지로 매만지면서 동시에 검지로 혀 천장을 가볍게 긁었다. 카게야마는 순간 몸을 크게 떨며 눈동자를 크게 떴다. 그 까만 눈동자 안에 당황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동시에, 약간 다른 빛이 섞인 것도 오이카와는 놓치지 않았다.

 

  . 좋아, 심하진 않네. 치과 가면 금방 치료받을 수 있을 거야.”

 

  오이카와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고, 그리도 붙어있던 손을 뗐다. 손가락에서 미처 떨어지지 못한 침이 고리를 이루어 햇빛 아래에서 반짝거렸다. 흰 우유는 이미 녹은 지 오래였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빠져나간 뒤에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하악대는 숨을 고르는 게 최선이었다. 붉은 눈가에서 눈물방울이 한 번 더 떨어졌다. 그 까만 눈동자 위의 땀이, 이마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촉촉한 입가에선 앞서 고리를 이루었던 침이 묻어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젖어있는 눈동자. 오이카와는 다시 아랫배 근처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비릿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맛이 나는 손가락을 끌어올려할짝. 아까까지 얇은 입술을 핥던 혀로 느릿하게 핥았다.

 

  달콤한 맛이 났다.




[오이카게] 카게야마의 일상, 그의 배구

* 키타이치 오이카게

* 조각글. 짧아요.

 

 

 

 

   서브 가르쳐주세요. 오이카와 선배.”

   싫거든? -, -!”

   바보카와, 후배 놀리지 말라고!!”

 

 

  오늘도 어김없는 풍경이다. 쿠니미는 카게야마가 체육관으로 들어와서, 그 얇은 다리를 흔들며 부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와 타박타박 걸으며 오이카와에게 다가가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봤다. 그러더니, 어김없이. 제 머리보다 약간 큰 배구공을 오이카와에게 쭈욱 건네며 내뱉는 말은 오늘도 똑같았다. 쿠니미는 인상을 슬며시 구겼다. 질렸다, 정말. 오이카와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쿠니미의. 오이카와는 혀를 내밀고 카게야마에게 심술궂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작 그 앞의 카게야마는 멀뚱멀뚱 오이카와를 쳐다볼 뿐이었다.

 

  한창 실랑이가 일어나더니 연습 시작한다고 이와이즈미와 자리를 이동하는 오이카와. 카게야마는 다시 하프 팬츠 아래의 흰 다리를 움직여, 오이카와의 뒤를 쫓았다. 그 조그만 발이 도도도, 가벼운 소리를 내며 오이카와와의 거리를 좁히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오이카와 선배, 서브 연습 하실 거에요?”

   아니거든? 그리고 한다고 해도 토비오쨩한테는 안 알려줄 거거든?”

   그럼, 그냥 보기만 할게요. 옆에서 보기만 할게요.”

   됐어, 보지 말라고. 토비오쨩은 바보야? 절대 싫거든.”

 

  오이카와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데, 그 뒤편에 선 카게야마의 표정이 떼구르르 바뀌었다. 머리카락이 가라앉으며 조금 시무룩했다가 다시 파앗 밝아지며 입을 오물거렸다가. 다시 추욱 가라앉고. 옆에서 보고 있으면 저게 바로 그 카게야마 토비오냐며 놀랄 것이다. 카게야마는 감정표현이 결코 적진 않았으나 풍부하지도 않았다. 놀라면 눈을 크게 뜨고, 졸리면 눈가를 끔뻑거린다. 기쁠 땐 볼을 연하게 지피며 입가를 오물거린다. 그걸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지만, 그것뿐이다.

  그렇기에 처음 만난 사람은 카게야마를 오해할 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보면오이카와 앞의 카게야마는 조금의 충격일지도 모른다.

 

  쿠니미에게는 일상인 저것이, 다른 아이들에겐 일상이 아니듯이. 교내에서 카게야마와 다른 아이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오이카와를 만나면. 그 삐죽 내밀었던 입술이 오물거리면서, 도도도 그쪽으로 뛰어가 버리고 만다. 그리고 일상이 다시금 반복되는 것이다.

 

   오이카와 선배, 오늘은 서브 알려주실 건가요?’

   왜 당연히 알려줄 것처럼 말하는 건데? 싫다고, -! 토비오쨩 바-!’

 

  쿠니미는 그 반복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아아, 또 시작이네라고 생각할 뿐이지만. 다른 아이들은 눈을 크게 뜨고 쿠니미를 바라보는 것이 하나의 약속이 되었다. 그러면 쿠니미는 다시 약속처럼 내뱉는다.

 

   , 저거. 항상 저래.’

 

  항상저렇다. 그 말이 쿠니미에게는 이렇게나 당연한데, 다른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이질적인 말이 되고 만다. 그래도 달리 할 말이 없다. 카게야마는 항상 저러니까.

 

  오이카와를 만난 순간부터. 그 서브를 본 순간부터.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처음 오이카와와 카게야마의 만남. 나름 이름난 키타이치 배구부 주장 오이카와 토오루의, 서브 연습을 본 예비입부 시절. 그 모습을, 마치 동영상을 찍듯 눈도 깜빡이지 않고 보던 카게야마의 옆모습. 그 옆에 있던 쿠니미에게는 멋진 서브를 하는 오이카와보다, 그런 눈빛을 하는 카게야마가 더 시선을 끌었다.

 

   카게야마."

 

  가볍게 이름을 불렀었다. 대답이 없었다. 평소 꾹 닫혀있던 카게야마의 입술이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기쁜 듯 보였다. 눈가는 당장에라도 눈물이 차오를 듯 붉게 스며들었다.

 

   찾았어.”

   뭐가?”

 

  얘기를 따라갈 수가 없다. 뭐를 찾았다는 걸까. 오이카와는 이미 한 번의 서브 연습을 끝내고, 또 한 번의 서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긴 손가락 안에서 배구공이 슈르륵,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옆에서 카게야마가, 다시 중얼거렸다. 낮고, 약간 떨리는 목소리였다.

 

   , 배구.”

   …….”

 

  카게야마의 배구.를 찾았다고? 그게, 오이카와라고? 배구는 전부일 것 같은 네가그 배구를, 찾았다고.

 

 

  쿠니미는 그때 느낀 전류를 잊을 수가 없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 그 선명한 충격. 그걸 뭐라 말하면 좋을까. 쿠니미는 애매한 눈빛을 하고 카게야마를 바라봤다. 다시, 오이카와에게로. 오이카와는, 공을 크게 올리고서브를. 내리쳤다.

 

  그래. 굳이, 말하면.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랄까.

  쿠니미는 약간 질색인 기분이 되어선, 고개를 틀어 킨다이치를 바라봤다. 그리고, . 괜스레 그 넓은 어깨를 쳤다.

* 하이큐 글전력 60분. 주제는 편지.
* 지루함. 재미없음 주의
* 전력이기에 조각글입니다. 짧아요!






[오이카게] 편지는 싫어하지만.




  수백마디의 말보다 한번의 행동이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항상 살아왔다. 말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편했다. 머리로 전달할 말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그저 팔을 움직이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도 있었다. 그런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말이란 하나의 숙제와 같았다. 자신의 마음을 말로 전달한다는 것에 대해 도무지 익숙하지 않았다. 무언가 말하고자 입을 열어도 나오는 건 잉어와 같은 뻐끔거림 뿐이었다. 비단 말 뿐만이 아니었다. 언어라는 기호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 문자메세지부터 시작해서- 메일, 낙서, 노트정리 등등 하기까지. 모든 것에서 카게야마는 '말'에 서툴렀다. 말이라는 것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 것일까. 그건 그에게 숙제였다. 정말 그러했다.

  그것은 편지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고등학교 1학년의 2월, 3학년 선배들의 졸업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졸업하는 선배들에게 다같이 편지를 쓰고자 합의하고, 카게야마는 익숙하지 않은 모양새로 문구점에 들렀다. 예쁜, 알록달록한 편지지를 고르는 여자아이들이 고른 걸 곁눈질로 바라봤다. 다양했다. 칸이 작은 것에서부터 아예 칸이 없는 것까지. 꾸밈이 없는 것에서 편지지라고 하기 힘들정도로 화려한 것까지. 카게야마는 그저 눈가를 찌푸리고 편지지들 앞에서 망부석처럼 서있을 뿐이었다. 몰랐다. 카게야마에게는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편지라는 숙제는 더 어려운 고난일지도 몰랐다. 이렇듯 편지지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힘들다면-
  고민하던 카게야마는 결국 연한 아이보리색의 편지지를 들어올렸다. A4 반쪽 크기의, 20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다. 아무런 배경없이 그저 휑하니 줄만 그어진 것이, 카게야마답다고 하면 그렇기도 했다. 언제나 카게야마는 진심으로 부딪치는 남자였다. 백마디 말을 포기한 대신 그는 솔직하게 행동했다. 그렇기에 그는 화려한 장식으로 자신의 진심이 흐려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지 않아도 서투른 그의 말이, 언어가 그 안에서 존재감 없이 부웅 떠 있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카게야마 토비오는 편지를 싫어했다.




* * *



  허나 그 바로 3개월 뒤,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그 문구점으로 향했다. 그것도 편지지가 모여있는 앞으로. 그는 3개월 전과 같이 익숙하지 않은 모양새였고, 여전히 여자아이들이 고르는 것을 곁눈질로 바라봤다. 눈가가 깊게 패인것은 3개월 전보다는 더 심해져있었다. 눈동자가 더 날카로웠다. 카게야마는 집중하고 있었다. 전에없이, 집중하고 있었다. 편지지 하나하나를 비교하면서. 그 색 하나하나를 보면서. 줄 간격까지 신경쓰면서.

  며칠 전 오이카와에게서 편지가 왔다. 정확히 3일 전이었다. 오이카와는 이미 추천을 받았던 여러 대학 중 도쿄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다. 오이카와가 은퇴 후 시작한 관계이기 때문에 함께 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그래. 솔직하게 말하면 오이카와와 더욱 함께 있고 싶었다. 목소리를 듣고싶고, 그 냄새를 맡으며 품에 안기고 싶었다. 더더욱, 그래서. 오이카와가 도쿄의 대학으로 가는 것이 기쁘고, 축하하고 싶은 마음인 동시에 슬펐다. 슬프다는 표현이 옳은 걸까. 카게야마는 알지 못했다. 언어에 능숙하지 않은 카게야마는 자신의 감정표현에 서툴렀다. 그러니 그저 오이카와를 끌어안았다. 조금 더 내 옆에 있어주세요. 가기전에, 조금이라도 더-.


   "편지, 보낼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어깨에 고개를 묻으며 그렇게 말했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대학 입학을 위해 도쿄로 가기 이틀 전의 일이었다. 3월 후반의 날은 아직 추웠고, 바람은 허리를 가르고 매섭게 지나갔다. 그래서 오이카와의 귀는 붉게 올라 있었다. 눈앞의 붉은 귀와, 귓가에서 들려오는 슬며시 떨리는 목소리에 카게야마는 이상하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묵지근한, 말로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 하나씩 배아래에 쌓였다. 그냥 옆에 있어주면 되는데. 편지가 아닌, 그냥 오이카와씨가. 오이카와씨의 깨끗한 글씨가 아닌, 그냥 오이카와씨가.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눈앞에서 안개와 같이 뿌옇게 흐려지기만 하는 시야가 아파서. 오이카와의 체온이 그저 그저 그리워질 것만 같아서. 왜 편지일까. 왜 편지여야만 했을까. 항상 새로운 유행은 반드시 체험해보고야 마는 오이카와가. 핸드폰을 손에 끼고 절대 놓지 않는 오이카와가. 왜 굳이, 편지를 골랐을까.



* * *



  카게야마는 결국 편지지 하나를 손에 들었다. 어느새 석양이 지기 시작한 하늘은 벌써 연한 장밋빛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날이 지고 있었다. 카게야마의 이마에는 조그만 땀방울이 한두어개 맺혀 있었다. 힘겨웠다, 편지지와의 싸움이. 하지만 이 승리의 전리품을 들고 집으로 가면 더 큰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래도.
  카게야마는 입술을 오물거렸다. 약간 상기된 눈가가 생그랗게 빛나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가 꼬옥 감겼다가, 다시 깜빡거렸다. 들고있던 배구공을 옆구리에 끼고, 손에는 편지지를 들어올렸다. 굳이 그 조그만 편지지를 양손으로 들고.


  편지에서 오이카와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편지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도.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보내 온 작은 엽서를 떠올렸다. 도쿄의 야경을 찍은 사진 뒷면에는 오이카와의 깨끗한 글씨가 놓여있었다. 선이 없는데도 정갈하게 줄을 맞춰서. 글씨는 크지도 작지도 않게.
  오이카와에게 들었던 도쿄의 자취집 주소, 그리고 카게야마의 집주소. 풀자국도 없이 붙여진 우표 아래의 오이카와의 글씨가 무언가 생소했다. 항상 라인으로만 대화했으니까, 글씨를 보는 것은 중학교 이래 처음일지도 몰랐다. 글씨를 잘 쓰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오이카와의 깨끗한 글씨로 쓰여진 '카게야마 토비오 귀하' 가 못내 생소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두근두근하면서도, 무언가 오이카와가 다른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어쩌면 오이카와는 자신이 못 본 며칠 사이에 조금씩 변한 걸지도 몰랐다.
  카게야마는 조금의 두려움을 느끼며 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찬가지로 깨끗한 오이카와의 글씨였다. 카게야마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여전히 편지의 말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편지를 잡고 있는 카게야마의 손이 조금 움찔거렸다.


  '너와 보고싶은 것 첫번째'






  카게야마는 손에 든 편지지를 꽉 쥐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완연히 석양빛으로 물든 하늘이 거리를 부드럽게 비췄다. 동네 빵집은 문을 열어 방금 갓 구운 빵냄새를 풍겼다. 슈퍼 앞 할머니는 여전히 이 시간엔 졸고 있었다. 익숙한 풍경을 지나며 카게야마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어느새 반 달리다시피 하며 그 풍경들을 빠르게 지나쳐갔다.


  보고싶다. 오이카와가. 보고싶다. 오이카와가 보는 풍경이. 이제는 오이카와에게 익숙해졌을 그 풍경이, 나도 보고싶다.




  편지는 귀찮다. 편지는 골치아프다. 카게야마 토비오에게는 하나의 전쟁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펜을 든다. 예쁘지 않은 글씨이지만, 길게 쓰지도 못하지만.
  오이카와가 좋아한 민트색의 편지지에 글을 적는다. 펜을 굴린다.


  '오이카와씨를 생각하며 산 편지지 첫번째.'


  그건 분명 편지로밖에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이었다.





[오이카게] 악몽 (R-15)
* 직접적 장면은 없지만 수위적 묘사 있습니다. 아주 약간.
* 오이카와가 조금 너무할지도.







   "오... 오이카와 선배... 무서... 워요..."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가 흔들거리며, 두려운 목소리로 카게야마는 말했다. 아직 제대로 복근이 자리잡지 않은 카게야마의 배를 매만지며 오이카와는 부드럽게 웃었다. 살짝 눈망울이 맺힌 그 눈끝을 슬며시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벌써 몇번이고 했잖아? 여기도, 몇번이고 만졌고."
   "으흣...!"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동그랗게 솟아오른 유두를 가볍게 튕기자, 카게야마가 눈을 꼭 감으며 달콤한 신음을 흘렸다. 언젠가 봤던 AV의 여자보다 더 색이 엷게 잡힌 카게야마의 유두를 괴롭히는 것을, 오이카와는 그 무엇보다도 맘에 들어했다. 이제는 살살 만져주는 것만으로도 카게야마의 작은 돌기는 쉽게 달아올랐다. 벌써 발그레해진 볼과 마찬가지로, 그 붉어진 작은 돌기에 입술을 갖다대면 카게야마가 순간 숨을 들이마시는게 느껴졌다. 그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면서, 오이카와는 입 안의 돌기에 촉촉한 혀를 돌렸다.

  두 학년 아래인 후배와, 이런 일을 하는 건 얼마나 되었을까.





  카게야마를 때릴 뻔할 충동을 이와이즈미가 막아준 후,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차분히 지켜볼 수 있었다.
  이전까진 다양한 감정과 증오, 미움이 섞여있는 상태에서 왜곡되어 보였던 카게야마를 아주 순수하게. 그저 한 명의 카게야마 토비오로서 바라봤다. 그 타는 듯이 뜨거운 눈동자, 그 동그란 머리, 자신을 잡아먹을듯이 항상 바라보는 카게야마를 느끼고, 오이카와는 알 수 있었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저 당돌한 1학년 꼬마는.
  나, 오이카와 토오루를 좋아하고 있다.


  그렇게 깨닫고 나자,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 일종의 흥분을 느꼈다. 저 타는 듯한 눈동자는 오이카와에 대한 열렬한 동경과, 애정 또한 담고 있었다.
  애초에 카게야마의 인생은 배구이니, 그에게 배구를 빼고 사람에 대해서만 논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의 배구에 반한 거라면.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반했다는 뜻이 된다. 등을 훑듯이, 잡아먹을듯이 바라보는 그 눈동자는. 아직 완성되지 않아 한 몸에 안기는 그 작은 몸은. 배구공같이 작은 머리에, 그를 덮는 사락거리는 머리카락은. 자신에 대한 연정으로 괴로워 몸부림 칠 때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 조그만 후배에게- 오이카와는 키스할 수밖에 없었다. 작고, 붉은 입술에 마치 잡아먹을 듯한 키스를.






   "으...으응..!"

  동아리 연습이 끝나고 모두가 돌아간 체육관 안에서, 그 조용하고 적막한 가운데서 오직 오이카와의 입술을 받아들이는 카게야마의 신음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입술을 맞닿았을 때 커진 동그란 눈동자 안에, 자신의 호박빛 눈동자만이 가득했을 때. 오이카와는 코로 숨을 뱉으며 후, 웃었다.
  혀를 타고 카게야마의 입안으로 바로 전해진 오이카와의 한숨에 카게야마의 몸이 조금 떨렸다. 자꾸 도망가는 카게야마의 혀를 기어코 잡아서 끌어내고, 이리저리 휘두르고. 마치 생크림같이 부드러운 입 안의 점막을 혀로 간질거리자 눈 앞의 눈동자가 움찔거렸다.

  카게야마의 타는 듯하던 눈동자가, 물에 젖어, 색욕을 띠고, 맞닿은 입술 사이로 말이 되지 못한 한숨이 새어나올 때.

  오이카와는 아랫배 근처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아..하..아.."


  겨우 떨어진 입술 사이로, 가늘게 이어진 투명한 실이 채 끊어지기도 전에. 카게야마는 거칠게 숨을 골랐다. 까만 눈동자는 긴 속눈썹에 가려져 있었다. 오이카와는 입꼬리를 올리고,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토비오쨩, 나- 좋아하고 있지?"
   "...에...?"


  오이카와의 말에 카게야마는 열에 들뜬 눈동자로 오이카와를 바라봤다. 그 눈동자에 오이카와는 혀로 입술을 가볍게 핥은 뒤, 다시 키스할 듯이 카게야마에게 몸을 밀착했다.
  카게야마가 '아..' 하며 고개를 살짝 틀어 내렸다. 그 몸을 비틀어 뒤로 가려 하지만 벽에 가로막혀 오가지도 못하는 몸이 되었다.


   "좋아하고 있잖아. 그치? 토비오쨩."
   "저...저기, 전 오이카와 선배의 배구는 멋있다고 생각하고... 그치만 좋아한다던가, 그런건 잘 모르겠어서-"


  카게야마의 말에 오이카와는 다시 입꼬리를 올렸다.
  설마했는데, 무의식인건가. 그 타는 듯한 눈동자도, 나에 대한 갈망이 담긴 손 끝도. 이것도 저것도 전부, 무의식에서 나온 나에 대한 욕망인가.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타액이 묻어 채 마르지 않은 자신의 입술을 다시 핥았다. 어쩐지, 달콤한 맛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겹친 입술. 카게야마는 그 순간, 그때까지 오이카와를 밀어내던 손의 힘을 풀었다. 그저,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으로 오이카와의 티셔츠를 잡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걸 보고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이번엔 더 깊게. 카게야마의 혀를 얽어맸다.





  그 뒤로는 연습이 끝난 체육관 뒤 부실이 오이카와와 카게야마의 장소가 되곤 했다. 평소에도 남아서 연습하곤 했던 두 사람이기에 아무도 그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매번 상쾌한 미소로 남는 오이카와에게 뭐라고 말해주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결국 입술을 깨물며 돌아가곤 했다.


   "왜 피하는 거야? 토비오쨩."
   "...."


  둘이서 부실에 있게 되면, 카게야마는 매번 오이카와를 피해 구석진 곳으로 몸을 당기곤 했다. 오이카와는 그 거리를 좁히며 다가가지만, 더욱 거리를 벌리는 카게야마에게 미간을 좁히고. 결국 그 희고 가는 팔을 끌어 자신의 품에 가뒀다. 품 속에서 카게야마가 팔을 흔들며 바르작거렸지만 오이카와는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결국 그 몸에서 스르르 힘이 풀리더니, 그 젖은 눈동자가 약간 떨리며 오이카와를 올려다봤다.



  그러니까, 그 눈동자.

  평소에는 곧고, 바르고, 자신을 그저 순수하게 바라보는 그 눈동자가.
  자신에게 안기고, 키스를 하면. 촉촉하게 젖어 눈가에 약간의 물방울을 머금고. 떨리는 속눈썹 아래에서 오이카와에 대한 욕망에 휘둘리는 걸 볼 때면.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알 수 없는 전류가 척추를 휘감아 도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오이카와 선배... 왜- 이런.."


  카게야마는 그 눈동자를 거둬 다시 오이카와의 시선을 피했다. 이제 오이카와의 품안에서 카게야마의 하반신은 아주 조금이지만 열을 띠고 있었다.
  그걸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일까, 카게야마는 다리를 슬쩍 오무락거리며 오이카와의 허벅지 사이에서 빠져나가고자 했다.


  왜, 라고?
  오이카와도 의문이었다. 자신은 어째서 카게야마를 범하는 걸까. 여자라면 곤란하지 않을 정도로 있었고, 욕망의 배출구는 굳이 카게야마가 아니어도 된다.
  그런데, 어째서? 오이카와에겐 일종의 장난에 불과한 이 행동에 왜 자신은 이리도 흥분하는 건가. 왜 카게야마의 미완성된 몸을 만지고, 그 몸에 자신의 각인을 새길 때마다- 이리도.

  오이카와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생각을 중단했다. 그리고 후, 가볍게 웃으며 눈꼬리를 내렸다.
  생각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저, 이건. 그래.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젖은 눈동자를 가렸다. 가린 자신의 손이, 카게야마의 작은 얼굴을 반정도 덮었다. 그 아래에서 영문을 모르는 입술이 조금 달싹거렸다.



  "이건 모두- 나쁜 꿈이야, 토비오쨩."



  그래. 이건 모두, 하룻 밤의 나쁜 꿈이다. 토비오에게도, 나에게도.



   하룻 밤의, 지독한 악몽이다.








-

이번으로 확실히 알았습니다. 전.. 수위.. 못써요.. 못쓰겠어요...ㅎㅎ...

R-19 쓰시는 분들 정말 대단한거 같은... 으아아아아아 ㅠㅠㅠ




 오이카와 선배의 목도리에서는, 연한 민트향기가 났다. 거기에 포옥, 조용히 고개를 묻으면 민트 향기 너머로 오이카와 선배의 냄새가 났다. 조금은 달콤한 냄새.

 가장- 좋아하는 냄새.

 

 이 목도리가 감쌌을 얇고 선이 잘 잡힌, 오이카와의 목을 생각하니 카게야마의 볼에 연하게 불이 지폈다. 정면에 있는 거울을 보니 평소 제대로 감정 표현조차 하지 못하는 얼굴이, 자신이 보기에도 확연히 붉어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동아리 선배의 진한 청색 목도리를 두르고, 그 냄새를 맡는 모습이라니. 누가 봐도 이상하다. 

 그만두자, 라는 생각에 고개를 휙휙 흔들고 목도리를 옆으로 치워두지만- 다시 치고 올라오는 기억이 카게야마의 머릿속을 부드럽게 휘감았다.

 

 

 




 

-

  "으으...추워..."

  "오이카와 선배는 여전히 추위에 약하시네요."

 

 

 평소처럼 동아리 연습이 끝나고, 평소처럼 남아서 연습한 오이카와와 카게야마가 체육관 정돈을 끝내고 나올 무렵-

하늘은 이미 완연히 어두워져 있었다. 벌써 계절도 계절인지라, 시간은 그리 늦지 않았으나 해가 지는 것이 빨랐다.

 

 오이카와는 목도리에, 코트, 장갑까지 끼고 완전무장을 하고서도 오들오들 떨었다. 하지만 얇은 져지만 입고도 멀쩡한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우뚱해보이며 오이카와를 바라봤다.

 


 오이카와는 그렇게 내뱉은 후배를 한번 날카로운 시선으로 째려본 뒤, 목도리를 더욱 여몄다.

 

  "그것만 입고도 멀쩡한 토비오쨩이 이상한 건 아니고? 애초에 이런 날씨에 목도리 하나 안하고...감기 안걸려?"

  "글쎄요... 감기는 그다지 걸려본 적이 없어서."

 

 앞서 걸어나가기 시작한 오이카와에 보폭을 맞추고자 카게야마는 열심히 다리를 움직였다. 그럼에도 휘적휘적 거리를 벌리는 오이카와가 조금 얄밉다. 언제나 자신이 바라보는 건 그의 등 뿐이다.

 


  "아~ 그건가? 바보는 감기에 안걸린다는?"

 

 오이카와는 피식,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카게야마는 바보라는 발언에 인상을 찌푸리고 뚱하니 입술을 내밀었다.

 

  "....그냥 건강한 거 아닐까요."

 

  마음 속으로는 그렇다면 오이카와 선배도- 라고 생각했지만 상하관계는 확실히 구분짓는 카게야마다. 아무리 오이카와가 놀려대도,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 내미는 것이 한계였다.

 

 오이카와는 '아, 그렇습니까~'라고 하며 다시 장난스레 웃었다. 전혀 안 듣고 있는게 분명하다. 카게야마는 뚱하니 입술을 내밀고 열심히 발을 움직였다.

 

 


  "읏..."

 

 순간, 강한 바람이 일어 카게야마는 눈을 감았다.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 목,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 순간 오도도,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감은 탓인지 오이카와의 등이 보이지 않았다.

 오이카와라면 분명, 카게야마는 신경도 쓰지 않고 걸어가버렸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얼른 이 바람이 멈춰, 그를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랐다.

 


 "뭐야, 솔직하게 춥다고 말하면 되잖아."

 

 그런데 이상하게 가까이에서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도 가까운 그 목소리에 카게야마는 순간 번쩍, 눈을 떴다.

 

 오이카와의 정갈한 얼굴, 맑은 눈동자가 거기에 있었다. 호두 빛깔을 띤 그 눈동자는 카게야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럽히지 마. 아끼는 거니까."

 

 그러더니 휙,휙 카게야마의 목덜미를 자신의 목도리로 감쌌다. 목에 푸근하게 퍼지는 감각에 카게야마는 눈을 크게 뜰수밖에 없었다. 그 목도리는 슬며시, 오이카와의 온기를 담고 있었다.

 

  "엣..? 아... 오이카와 선배..!!"

  "목도리, 내일 돌려줘. 잃어버리면 각오해."


 

 오이카와는 그대로 휙 몸을 돌려 걸어가버렸다. 세찬 바람 사이로 몸을 조금 떠는 그의 등이 점점 멀어져갔다. 카게야마는 그런데도, 거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연한 민트 향기가, 났다. 그리고 그 안에 조용히 퍼지는 오이카와의 냄새. 고개를 묻으면 머릿 속에 전부, 오이카와만이 가득했다.






-

역시나 하이큐 전력으로 참여한 조각글입니다.

전력은 참 좋은데.. 힘들어요.. 더군다나 이번글은 30분만에 갈겨써서

짧기도 짧지만.. 아쉽네요 ㅠㅠ


 말로는 꿍얼대면서 결국에는 챙겨주는 오이카와랑, 

입은 삐죽 내밀면서 꿋꿋이 따라다니는 카게야마.


키타이치 시절 너무 좋아요.....ㅠㅠ


* 오이카게의 날(01/09) 기념 연성입니다.

* 사귀고 있는 두 사람, 어느날 아침 갑자기 몸이 뒤바뀝니다.

* 뒤바뀌고 나서야 알 수 있는 사실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 상, 하로 나눠집니다.






[오이카게] Two of us - 下


 

   

 

  “!? 연습을..하겠다고?!”

 

 

  “.”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오이카와에게- 아니, 그 안에 있는 카게야마에게 이와이즈미는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오늘 점심 시간에 갑자기 이와이즈미 선배라고 부르며 찾아오는 것만도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그러더니 갑자기, 몸이 바뀌었어요.

 

 

 어딘가에 있는 비현실 소설이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애초에 거의 동시에 계단에서 굴렀다고 몸이 바뀐다는 것부터 말이 안된다. 하지만 동그란 눈동자로 자신을 쳐다보는 오이카와, 아니 카게야마는 현실이었다. 몸만 오이카와이다 뿐이지, 그 표정과 말투는 중학교 때의 후배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돌아가는 방법이 있다는 것 같으니, 다행이지만. 그래서 오늘 하루만 제대로 감시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동아리라니, 그럼 말이 달라진다.

 

 

 

  “아니, 저기.. 말은 쉽지만, 지금 넌 오이카와 몸이고- 네 생각만큼 몸이 안 움직일 지도 몰라. 그러다가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저기-”

 

 

 

 큰 문제다. 카게야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자신은 카게야마가 아닌 그가 들어있는 오이카와의 몸이 더욱 걱정이었다. 어쨌든 그 몸의 주인은 오이카와다. 지금같이 중요한 시기에, 카게야마의 탓으로 오이카와의 몸이 부상을 입는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상상이 머릿속에 마구 떠돌아서 이와이즈미는 그를 내치고자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압니다. 점프서브, 딱 세 번만. 거기까지만 할게요.”

 

 

  “.... 점프서브?”

 

 

 

 중학교 시절부터 그가 그렇게 오이카와를 귀찮게 했던 원인, 서브. 그걸 연습하겠다고 하는 카게야마. 이와이즈미는 저도 모르게 등골에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어디까지 배구에 미친 소년일까. 자신의 몸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놓여있어서- 보통의 사람이라면 두려워서 돌아다니지도 못할 상황에. 카게야마의 눈은 여전히 배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그는 가능하다면 오이카와의 몸으로, 오이카와의 서브를 훔치고자 하고 있었다.

 

 

 그 맑고 곧은 눈이 무섭다고, 이와이즈미는 오랜만에 생각했다. 그리고 분명 카게야마의 몸으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자신의 소꿉친구를 떠올리고 무심코 한숨이 흘러나왔다.

 

 

  “...3. 3번이야.”

 

 

  “..! 감사함다!”

 

 

 

 분명 바보카와도 카라스노에서 이런 고집을 부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도는 피차일반이겠지. 오이카와가 나중에 허락한 것에 대해 알면 화를 낼게 분명하지만, 알게뭐냐. 애초에 네 멋대로 몸을 바꾼게 잘못이잖아.

 

 

 카게야마는 그 길로 배구공을 집어들고 구석진 코트로 향했다. 그 얼굴이 평소 연습을 하기 전 기대하는 표정의 소꿉친구와 닮았다고 하면 분명 그 녀석은 기분나빠하겠지. 그런데도, 두 사람은 닮았다. 여러 가지 다양한 측면에서. 그리고 여러 가지 다양한 측면에서, 다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저 배구공을 들고 있을 때의 기분만큼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세상의 그 어느 누구보다도 서로 뿐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이와이즈미는 다시 한번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언제까지고 손이 많이 가는 두 사람이다.

 

 휙- 카게야마가 공을 위로 높이 뻗쳤다. 순간 이와이즈미가 눈을 의심할 정도로, 그건 오이카와가 하는 그대로였다.

 

 

 

 

 

 

 

 


  -

  “-?! 대왕님이 토스를 올려주겠다고?”

 

 

  “그렇다니까?”

 

 

  “..하지만 지금 카게야마는 대왕님이고.. 대왕님은 카게야마고.. 으응-?!”

 

 

 히나타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오이카와는 슬쩍 미소지으며 평소처럼 가볍게 내뱉었다.

 

 

  “어쨌든, 나에게 토스를 받을 수 있는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테니까. 어때? 한번 경험해보는건.”

 

 

  “! 그것도 그렇네!! 그렇다면, 토스 올려줘!!!”

 

 

 오이카와는 속으로 미소지으며 마음껏 날뛰는 히나타를 바라봤다. , 좋아. 꼬맹이는 이걸로 포섭 완료. 다음은.. 역시 저 무서운 주장님이겠지.

 

 

 오이카와는 자신을 조금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와무라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사와무라는 오이카와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3. 3번까지만 토스 올리고, 그만둘게. 그냥 이대로 아무것도 안하는 것도 좀이 쑤셔서.”

 

 

 

 오이카와는 가벼워보이는 말투와는 달리 시합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3. 그 이상은 자기도 할 생각이 없다. 3번이면 족하다. 과연 이 손가락으로, 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사와무라는 조용히 있다가, - 딱 한번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알거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네 몸은 카게야마의 몸이니까 말야. 적당히 해줘.”

 

 

 오이카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히나타 쪽으로 몸을 돌렸다. 히나타는 벌써 몸을 다 푼것인 지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오이카와를 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토스!”

 

 

 히나타의 목소리가 체육관 안에 울려퍼졌다. 오이카와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배구공을 하나 집어들었다.

 

 

 

  “그럼, 해볼까?”

 

 

 

 

 

 

 

 

 

 

-

 

 

  ‘-

 

 

 카게야마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착지했다. 끼긱, 운동화에 스치는 체육관 바닥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이 소리는, 그대로인데.

 

 

 카게야마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 오이카와의 손가락을.

 

 

 

  “...거짓말..”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렇게 해도 여전히 그 손은 그 자리에 있었다.

 

 

 

 ‘방금 그, 점프서브.’

 

 

 ‘완전히, 오이카와 선배의-’

 

 

 

  점프 서브. 그가 이상으로 생각했던 점프 서브가, 방금 그의 손에서 나왔다. 그 각도, 탄력, . 무엇하나 다를 것이 없었다. 완전히 오이카와 토오루의 점프 서브. 그것을 방금 카게야마 토비오는 해냈다.

 

 

 

 ‘.. .’

 

 

 

 카게야마는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심장이 이리저리 쿵쾅대고 있었다. 손끝까지 두근거리는 감각이 살아있었다. 방금 배구공에 닿았던 손바닥이 발갛게 익어, 지금 그 감각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자신이, 했다. 방금 그, 점프서브. 오이카와 선배가 그렇게도 가볍게 했었지만, 난 한번도 할 수 없었던 바로 그 점프서브를-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카게야마는 슬쩍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이상하다. 분명 오이카와의 점프서브인데. 그 무엇하나 다르지 않은데.

 

 

 

 ‘- 이상해.’

 

 

 

 이상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무언가, 이상하다.

 

 

 

 ‘오이카와 선배의 점프 서브는 뭔가- ,’

 

 

 

 다르다. 달랐다. 뭐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지금의 점프 서브와는. 무언가가 달랐다. 뭘까.

 

 

 

  “.. 오이카와 선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킨다이치가 그곳에 서있었다. 순간 카게야마는 들킨 건가 싶어 조금 움찔했지만, 자신에겐 한번도 향한 적이 없던 킨다이치의 눈빛이 그게 아니라는걸 말해주고 있었다. 킨다이치는 긴장하면서도, 존경심이 가득 담은 눈동자로 카게야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도 평소와 같이 멋진 점프 서브, 대단합니다!”

 

 

 

 평소와 같이- 멋진 점프 서브. 오이카와 선배의- 자신이 그렇게도 원했던.

 

 

 ‘오이카와 선배의 점프서브.

 

 

 ‘오이카와 선배, ‘배구’.

 

 

 

  -아아, 그런건가. 그랬던 건가. 그래서 자신은 부족했던 건가. 그래서-

 

 

 

 “..... 오이카와 선배?”

 

 

 

 킨다이치는 약간 의심쩍은 눈동자로 카게야마를 바라봤다. 평소라면 금세 웃으며 대답할 오이카와가 멍한 얼굴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는게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킨다이치는 놀라고 말았다.

 

 

 

 “아아- . 고마워.”

 

 

 

 굉장히 부드러운 미소. 적어도 배구공을 잡고 있을 때는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오이카와의 미소. 아름다운 눈동자를 부드럽게 접고- 새하얀 피부에 입꼬리를 조금 높게 걸고. 오이카와는 미소짓고 있었다.

 

 

 분명하게, 웃고 있었다.

 

 

 

 

 

 

- 

 

 ‘.’

 

 

  “....! 대단해!! 카게야마의 토스도 대단하지만, 대왕님의 토스도 굉장해! 기분 좋아!”

 

 

 오이카와의 몸이 가볍게 내려앉았다. 그 순간,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 카게야마의 손가락을.

 

 

 

  “...거짓말..”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렇게 해도 여전히 그 손은 그 자리에 있었다.

 

 

 

 ‘방금 그, 토스.’

 

 

 ‘완전히, 토비오의-’

 

 

 

 그가 두려움을 느꼈던 그 토스가, 방금 확실하게 이 손가락에서 나왔다. 그 각도에, 그 정확성. 무엇하나 다를 것이 없었다. 완전히 카게야마 토비오의 토스. 그것을 방금, 오이카와는 해낸 것이다.

 

 

 

 ‘...진짜로?’

 

 

 

 오이카와는 손끝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방금 공이 닿았던 그곳이 슬쩍 물들어있었다. 그 약간 뜨거운 감각만이, 방금 배구공에 닿았던 것이 사실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자신이, 한 것이다. 방금 그, 토스.

 

 히나타는 알 수 없었을 테지만, 카게야마의 토스를 몇백번이고 돌려본 자신은 알 수 있다. 분명하다. 이건- 카게야마 토비오의 토스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봤지만 자신은 할 수 없었던 바로 그 토스를-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오이카와는 슬며시 손가락을 매만졌다. 뭔가 이상하다. 분명 카게야마의 토스인데. 그 무엇하나 다르지 않은데.

 

 

 

 ‘- 이상해.’

 

 

 

 이상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무언가, 이상하다.

 

 

 

 ‘토비오의 토스는 뭔가- ,’

 

 

 

 다르다. 달랐다. 뭐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지금의 토스와는. 무언가가 달랐다. 뭘까.

 

 

 오이카와는 슬쩍 눈을 감고,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댔다. 토비오의 손가락, 토비오의 냄새. 너무도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것이- 숨결을 따라 오이카와의 폐 속으로 들어왔다.

 

 

 

 

 ‘, 그런가.’

 

 

 ‘토비오- 손가락에서 나오는, ‘토비오의 토스.

 

 ‘카게야마 토비오의 토스가, 나는.

 

 

  “... - 푸핫.”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온 오이카와는, 다시 눈을 떴다. 그 눈동자가 아까와는 다르게, 이번엔 좀 더 명확하게 볼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

 

 

 히나타는 멀리서 오이카와를 바라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미간을 좁히고, ‘뭐지?’하고 중얼거리는 모습이 이상해서 츠키시마는 히나타에게 다가갔다.

 

 

  “뭐가?”

     

 

  “...아니, 분명. 카게야마 모습인데. 이상하게 방금, 대왕님으로 보였거든.”

 

 

  “...그야 안에 있는 게 그 대왕님이니까. 당연하지.”

   

 

  “! 그런가!”

 

 

 

 

 

 

 

 

-

 

 

 “~ 추워!”

 

 

 오이카와는 목도리를 더욱 강하게 여미며 발길을 재촉했다. 애초에 토비오의 목도리, 너무 얇다. 터무니 없이 얇다. 이 겨울에 코트도 없이 이거 하나만 하고 다니면 감기님한테 와달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이카와 선배.”

 

 

  “- 토비오.”

 

 

 평소에 만나기로 약속하진 않았지만, 언제나 암묵적으로 이곳에서 만나기로 되어있는 길목이었다. 만나서, 함께 집에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서 이렇게 토비오를 만나 집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것이 오늘은 조금 다른 일상. 눈 앞에는 조금 뚱한 표정의 자신이 서있었다. 이봐, 그런 표정은 오이카와씨답지 않다니까?

 

 

 

  “오늘 했어? 부활동.”

 

 

  “....”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카와의 밀크티색의 눈동자가 어스름속에서 빛났다. 이런식으로 자신의 눈을 쳐다본 건 오이카와에겐 처음이다.

 

 

 

  “. 나도, 했어. 부활동. 토비오의 몸으로.”

 

 

 

 오이카와는 슬며시 미소지었다. 이상하게 자연스런 미소가 흘러나왔다. 지금 이 순간, 어째선지 자신보다 더 큰 카게야마를 힘껏 끌어안아주고 싶었다. 오늘 아침 오이카와 자신이 세팅하지 못한 머리를 톡톡,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몸은 바뀌었어도 여전히 넌 토비오구나. 그리고- 나 또한.

 

 

 

  “오이카와 선배- 역시, 서브. 가르쳐주세요.”

 

 

  “넌 정말이지, 여전하구나. 이 짜증나는 후배녀석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오이카와는 폭, 그 큰 몸을 끌어안았다. 그 어깨가 조금 움찔거리더니, 이내 오이카와의 등에 마찬가지로 팔을 둘렀다. 평소보다 조금 높은 그 팔의 위치에, 오이카와는 무의식중에 생각했다.

 

 

 ‘토비오가 만약 나보다 더 키가 크게된다면, 이런 기분일까나-’

 

 

 

  “있잖아, 토비오. , 느낀게 있는데 말야.”

 

 

  “오이카와 선배도요? 우연이네요. 저도 그런데.”

 

 

  “있잖아.. 역시, 서브. 가르쳐주기 싫어. -, -.”

 

 

  “....”

 

 

 

 카게야마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꽉 끌어안고 있는 탓인지 카게야마의 얼굴은 오이카와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어째선지 카게야마가 부드럽게 웃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오이카와도 다시 한번 풋, 웃음이 나왔다.

 

 

 응. 분명 카게야마도 같은 기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카게야마의 토스는. 오이카와의 서브는. 무척이나 아름답고, 손에 넣고 싶다고 몇 번이나 생각한 건 사실이다. 가지고 싶어서, 가지고 싶어서 정신없이 탐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손에 들어오니-

 

 

 알 수 있었다.

 

 

 

 그래, 내가 얻고 싶었던 건- 내가, 그렇게도 아름답다고 느꼈던 건.

 

 

 

 ‘카게야마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토스였다. ‘오이카와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서브였다. 인생에서 배구를 떼고 설명할 수 없는 두사람인 것처럼, 서로에게서도 배구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 두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카게야마의 배구에서, 오이카와의 배구에서 그 대상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카게야마의 배구는 그대로 카게야마였고, 오이카와의 배구는 그대로 오이카와였다. 서로에게 있어서.

 

 

 

  ‘정말, 너도 나도 어지간히 푹 빠졌구나.’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따끈한 온기에 기분좋은 편안함이 퍼지는 걸 느끼며 생각했다. 서로의 배구를 부러워하고, 탐하는 이유가 바로 그 배구를 하는 당사자 때문이라니. 분명 자신은, 카게야마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카게야마의 토스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지간히도, 카게야마밖에 보지 못하는 사랑이다.









-

원래 1월 9일에 올렸어야 하는데.. 원래 올렸던 블로그에조차 1월 11일에 올렸습니다...;_;

참 지각을 안하면..ㅋㅋ 글을 못쓰나봐요 저는..


그래도 케스에서 존잘님들꺼 많이 보구 쓰는거라 행복해요...


 얼른 올려야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이상한 오타가 있을지도 몰라요. 너그럽게 봐주신다면...;ㅅ;



 이렇게 중요한 연성은.. 적어도 1주일전에 준비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ㅋㅋㅋㅋ

다음엔 좀더 일찍.. 제발....


* 오이카게의 날(01/09) 기념 연성입니다.

* 사귀고 있는 두 사람, 어느날 아침 갑자기 몸이 뒤바뀝니다.

* 뒤바뀌고 나서야 알 수 있는 사실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 상, 하로 나눠집니다.




  [오이카게] Two of us - 上


 

 

 

 

  띠리리리- 띠리리리-’

 

  생전 처음듣는 촌스러운 벨소리에 오이카와는 슬며시 눈을 떴다. 바깥에선 짹짹거리는 새들의 지저귐소리, 조금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에 몸을 조금 떨었다. 오이카와는 약간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에도 여전히 촌스러운 벨소리는 끊이지 않고 울려댔다. 이상하게 몸이 개운치가 않다. 그리고- 이상하게, 느낌이 싸하다. 머리가 멍한데 이상하게 개운하다. 저 벨소리- , 촌스러운 기본 벨소리.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다.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오이카와는 고개를 들어 방에 달려있는 벽시계로 눈을 돌렸다.

 

 

  “....?!”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말이리라. 배구를 시작하고 난 뒤, 일어나고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시간이 벽시계에서 똑딱거리며 비춰지고 있었다. 이 시간이라고? 정말로? 오이카와는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조금 흔들고 다시 한 번 벽시계를 바라봤다. 잘못 본 게 아니다. 8- 8? 8시라고? 8시라니- 아침 트레이닝은커녕 1교시 지각을 면하는 것도 빠듯하다. 아침 연습을 주장이 늦잠이라는 이유로 참가 못하는 것만큼 웃긴 일도 없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오이카와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퍼뜩 몸을 일으켰다. 아니,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얼른 준비하고 나가야 한다.

 

  , - 다다미 바닥이 진동으로 움직일 정도로 발을 거칠게 저으며 벽에 걸려있는 교복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멈춰섰다. 그 때까지도 울리고 있던 촌스러운 벨소리가 오이카와의 신경을 긁었다. 안 좋은 예감이 다시 한 번 오이카와의 머릿 속을 훑고 지나갔다. , 안좋은 예감이다. 이건. 오이카와는 눈을 가늘게 떴다. 깨끗하게 자리잡은 눈동자 사이의 미간을 좁혔다. 촌스러운 벨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이거... 토비오?!”

 

 

  그곳에 있는 건 카게야마 토비오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가 아닌 카게야마 토비오의 핸드폰이었다. 고교 1학년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 되고 나서야 스마트폰으로 바꾼 카게야마는 그래도 여전히 촌스러운 기본 벨소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항상 그런 카게야마를 놀리며 이제 적당히 바꾸지 그래?’ 라고 했지만 카게야마는 언제나 벨소리를 바꾸지 않았다. 이유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오이카와는 다시 어지러워지기 시작한 머리를 있는 힘껏 붙잡으며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액정에 뜬 이름은 오이카와 선배였다.

 

  -. 안 좋은 예감, 적중이다. 오이카와는 거칠게 한숨을 쉬며 액정을 슬라이드했다.

 

 

   토비오, 이게 무슨 일이야? 오이카와씨는 설명이 필요한데.”

 

  아니, 저기.. 아무래도 어제 오이카와 선배네 집에 갔을 때 제가 잘못 들고 온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멋쩍어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발빠르게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잠옷을 저 멀리 내던지고, 정갈하게 다림질되어있는 와이셔츠에 거칠게 팔을 집어넣었다. 머리고 뭐고 다듬을 새도 없이 그대로 가방을 대충 챙긴 채 현관으로 향했다.

 

 

   덕분에 오이카와씨는 알람을 못들어서 난생 처음으로 아침 트레이닝을 못하고, 거기다 지각까지 하게 생겼거든? 이 책임은 어떻게 져줄거야?”

 

  저도 아침 트레이닝 못했어요! 방금 일어나고 깜짝 놀라서 오이카와씨한테 전화한 거라고요!

 

   일단, 얘기는 나중에. 지금 서로 급할테니까, 중요한 얘기는 이따 학교 끝나고 얘기해. 알았지?”

 

  ...알았습니다.

 

 

  핸드폰 저편에서 카게야마가 불만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으리라. 하지만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여느때와 다르게 진지한 것을 깨닫고 더 이상 고집부려봤자 소용이 없다고 느낀 카게야마였다.

 

  오이카와는 이제 거의 집을 나서기 직전이었다. 카게야마의 불만스런 목소리를 들은 걸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귀에서 떼려는 순간-

 

  우와아앗?!

 

  쿠당탕탕- 핸드폰 저편에서 거대한 소리가 들렸다. 순간 고막을 통해 들어온 커다란 소리에 머리가 지잉- 울린 오이카와는 반사적으로 잡고있던 핸드폰을 멀찍이 떨어뜨렸다.

 


 “...토비오?!”

 

 

  놀란 것도 잠시, 순간적으로 카게야마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하는 마음이 오이카와의 심장을 순식간에 덮쳤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큰 소리를 지르지 않는 카게야마다. 그런 토비오가, 저렇게 크게 소리치면서-

 

  하지만 오이카와는 핸드폰에 집중하느라 자신의 눈 앞을 보지 못했다. 현관에서 나가면 몇 계단을 내려가야한다. 평소라면 단 한 달음에도 내려갈 수 있는 그곳에서, 오이카와는 발이 엉키고 말았다.

 

  ...?!”

 

 

  방금 카게야마가 내질렀던 비명 만큼은 아니지만- 자신의 입에서도 꽤나 큰 비명이 나오는 것을 무의식중에 느낀 오이카와는 꼬옥, 눈을 감았다.

 

 

 

  - 어라? 아프지 않아. 이상하다. 아무리 몇 계단 안된다고 하지만, 넘어진 건 넘어진거다. 심하게 다치진 않아도 엉덩방아는 찧었으리라. 그런데, 아프지가 않다.

  오이카와는 서서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처음보는-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어느 가정집의 현관. 그리고 자신은 그 현관 앞에 있는 계단에 꼴사납게 널부러져 있었다. 이 자세만큼은 자신의 머릿 속에 있는 상상과 같다. 그런데- 그 이외의 것은 모두, 다르다.

 

 

  오이카와 선배?! 괜찮으세요?!

 

 

  자신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거기서 크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조금 눈살을 찌푸리면서 핸드폰을 귀에 갖다댔다.

 

 

   아아- 토비오, 괜찮아.”

 

 

  어라? 또 이상한 점이 생겼다. 이 목소리- 이상하다. 언제나 상큼한 오이카와씨의 목소리가 아니다. 이 목소리-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안좋은 예감이 들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안 좋은 예감이 많이 든다. 그리고 이럴 때 드는 안좋은 예감은- 그래, 분명. 맞는 때가 많다.

 

  오이카와 선배.. 지금, 상황 이해되세요?

 

  “...아니, 토비오.. 오이카와씨는 설명이 필요한데.”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자신을 돌아본다. 고개를 내리면 검은색 가쿠란이 눈에 들어왔다. 현관 옆에 있던 거울로 눈을 돌리자, 오이카와는 그대로 기절해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이건 누가봐도- 카게야마 토비오잖아.

 

 

 

 

 

  아아- 오늘은 정말이지, 성가신 일 투성이다.

 

 

 

 

 

 

 

  일단 각자 학교에 가는 거야, 알았지?’

  이 오이카와씨가 지각이라니 있을 수가 없다고. 너도 괜히 귀찮은 일에 말려드는 건 싫지?’

  더 자세한 건 방과후에 얘기해. 난 카라스노 애들한테 말할테니까, 넌 이와쨩한테만 설명해

 

 

  그것만 말하는 것도 한계였다. 카게야마는 현재 처해있는 상황에 의문을 가지기는 하지만 정확히 뭘 어떻게 하면 되는지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 순간 오이카와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단 하나, 지금은 오이카와 토오루인 그를 학교로 보내는 일이었다.

 

 

 

   하아....”

 

 

  오이카와-현재 카게야마 토비오의 몸 안에있는-는 주변에는 들리지 않게 약한 한숨을 내뱉었다. 겨우겨우 도착해 고교 1학년 카게야마 토비오로서 수업을 들은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이번 교시만 넘기면 점심시간이다점심시간이 되면 카라스노 멤버에게 이 상황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 전에- 오이카와는 정신없이 달려온 오늘 하루를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1. 우선, 카게야마가 어제 오이카와의 집에 놀러왔다.

  2. 그리고, 핸드폰을 바꿔 가져갔다.

 

  보통 이 단계에서 눈치채지 않나?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미간을 좁혔다. 하긴- 자신도 어제는 피곤해서 핸드폰이고 뭐고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자신의 잘못도 있다. 어쨌든, 여기서 끝났다면 그냥 해프닝 정도였겠지. 물론 아침 트레이닝은 못했지만.

 

  3. 아침에 일어나고 그걸 깨달아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

  4. 서로 지각을 면하는것만 빠듯해서, 정신없이 준비를 하던 와중.

  5. 토비오가 계단에서 굴렀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나도.

  6.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이 바뀌어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머리가 아파온다. 도대체 5번과 6번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이 일을 주도한 녀석이 있다면 꼭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하아, 다시 한 번 약한 한숨을 내뱉었다. 어찌됐든 지금 확실한 건 6번이 현실이란 사실이다. 5번을 한 번 더 하면 원래대로 돌아갈 거 같기도 한데-... 안타깝지만 그걸 도전할 수 있는 건 방과후다. 지금은 일단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끝내는 게 중요하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옆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고 생각했던 한 녀석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걸 오이카와는 깨달았다. 그를 눈치채고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 녀석은 조금 움찔했지만 여전히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걸까, 오이카와는 조금 고민했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 오이카와씨한테 할 말이라도 있어?’ 라고 말하며 전매 특허의 미소를 지었겠지만- 카게야마의 몸으로 그런 일을 한다면 아마 3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대사건이 될 것이다.

 

  아침 트레이닝을 못한 벌로 일을 벌여줄까- 하는 생각도 순간 들었지만 오이카와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찌됐든 카게야마와 자신은 다른 학교다. 이제 새롭게 달라진 카게야마의 환경을 어찌 할 권한은 오이카와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카라스노라는 환경은 오이카와가 없는, 오로지 카게야마에게만 존재하는 환경이었다.

 

  반응에 고민하면서 그를 마찬가지로 빤히 쳐다보자, 그는 수업을 하는 교사의 눈치를 보면서 조그맣게 속삭였다.

 

   오늘 한 번도 안자네? 카게야마, 웬일이야?”

 

 

  아아- 그런거였나. 무심코 풋, 하고 웃음이 나올 뻔한 걸 오이카와는 애써 억눌렀다. 카게야마가 수업시간에 한 번도 안자고 깨어있는게 그렇게 신기한 일일 정도로, 카게야마는-

 

   아아.. .”

 

  더 깊은 대답을 하면 쓸데없이 이것저것 말할 것만 같아서 오이카와는 최대한 무덤덤하게 말한 뒤 입을 닫았다그러고선 고개를 돌려버렸다.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는 데에 애먼 고생을 하면서 오이카와는 이상하게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자신은. 오이카와가 없던 카라스노라는 환경 안에 들어와있다. 오이카와가 유일하게 알지 못했던 카게야마의 카라스노 고교 1학년으로서의 삶. 그 안에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로서 들어와있다. 그것이 이상하게 신기하면서도 무언가 알 수 없는 만족감이 들었다.

 

  평소에 토비오는 이런 식으로 칠판을 바라보는 건가- 평소에 토비오는 이런 시야로 생활하는 건가. 평소에 토비오와 함께 있는 클래스메이트는 이런 녀석들인건가- 토비오는, 평소에. 이 책상에서, 이 의자에서. 고개를 묻고 잠을 청하는 걸까.

 

  오이카와는 슬며시 책상을 쓰다듬었다. 맨들맨들한 표면이 기분좋았다. 그곳에 천천히 고개를 묻었다. 책상의 낡은 나무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와 폐를 채웠다. 이 냄새를 맡으며 토비오는 잠이 들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도 어쩐지 잠이 몰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입가가 부드럽게 올라가며 기분좋은 노곤함이 온 몸에 퍼졌다.

이상하게 충족감이 들었다. 심장을 가득 채우는 그 감정이 흘러넘쳐서 작은 책상 위에서 부드럽게 퍼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 공간은 카게야마 토비오의 공간이다. 그 공간의 한가운데에, 오이카와는 존재하고 있었다.

 

 

 

 

 

 

 

 

   몸이 바뀌었다고?!”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정신이 바뀐 것 같지만? 어쨌든, 그런 것 같아.”

 

   “.....”

 

 

  자신의 말에 카라스노 멤버가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입을 다무는 모습이 보였다. 오이카와 자신도 이런 말을 들으면 입을 다물 게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카게야마의 이해되지 않는 설명을 들을 이와이즈미가 조금 불쌍했다. 미안, 이와쨩. 내가 잘못한 건 없지만 사과할게.

 

 

   그렇다면 지금.. 너는, 오이카와라는 거지?”

 

   , 그렇게 되네.”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자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뭐야, 실례잖아. 오이카와씨의 전매특허 미소인데.

 

 

   아아.. ... 진짜인거같네.. 그치, 다이치?”

 

   .. 카게야마는 저렇게 웃지 않으니까..”

 

  스가와라와 사와무라가 조금 당황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카와는 그 말에 아아, 그럼 그렇지. 이제 3년 간은 기억될 대 사건이 되겠네. 라고 의식 저편에서 생각했다.

 

 

 

 

 

  그 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돌아갈 방법이라고 예상되는 것에 대해 말하고. 간단히 오늘 하루 조용히 지낼 것에 대해서 말하자 점심시간은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나머지 교시를 마찬가지로 멍하니 보내고 오이카와는 동아리 시간이 되자마자 가방을 챙기고 교실을 나섰다. 마침 핸드폰도 때에 맞춰 울렸다. 평소 카게야마의 핸드폰에서 들어본 적 없는 벨소리는 오이카와의 핸드폰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사람이 적은 뒤뜰을 통해 체육관으로 향하며 전화를 받았다. 저편에서도 마찬가지로 인적이 적은 곳을 통해 체육관으로 향하는지, 방과후인데도 조용했다.

 

   여보세요, 토비오?”

 

  오이카와 선배? 저기, 오늘-

   잠깐, 나 먼저. 너 뭔가 이상한 행동 한 건 아니겠지?”

 

  이상한 행동..이 뭘 말하는 건진 모르겠는데 딱히 뭐라는 말을 듣진 않았어요. , 수업 시간에는 잠만 잤지만..

 

 

  잠깐, 그거 이미 이상한 행동이잖아. 이 오이카와씨는 수업시간에 그렇게 엎드려 잠만 자지 않는다고. , 몸이 안 좋다고 둘러대고 잘 때도 가끔 있지만. 너처럼 대놓고 자진 않는다고.

 

 

   어쨌든. 어떡할래? 내 생각에 돌아올 방법은 우리가 처음 몸이 바뀌었을 때처럼 똑같이 계단에서 구르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오늘 아침에 트레이닝도 못하고 아침연습도 못하고.. 그래서 저기, 몸이 쑤시다고 해야할까..

 

   잠깐. 토비오 너, 오이카와 씨 몸으로 배구 연습 할 생각이야?!”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높인 오이카와는 서둘러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주변에는 사람 한명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오이카와는 슬며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되지, 안돼. 지금은 카게야마 토비오니까.

 

 

  하지만.. 하루라도 안하면 역시 몸이 근질거리고.. 그리고.. 저기..

 

 

  카게야마가 그 뒤에 할 말이 왠지 예상이 가 오이카와는 미간을 좁혔다. , 이녀석. 분명 제대로 된 생각 안하고 있어.

 

 

  오이카와 선배 몸으로 배구 해 볼 기회는 이제 없을테니까.. 한 번 해보고 싶슴다!!!

 

 

  카게야마는 체육계 남자아이와 같이 크게 소리쳤다. 분명 핸드폰 너머에선 고개도 90도 각도로 숙이고 있을게 분명하다. 오이카와는 머리가 지잉-울리는 것을 애써 견디며 핸드폰을 잠깐 뗐다가 다시 갖다댔다.

 

  - 이 녀석, 역시. 쓸데없는 생각 하고 있어.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좋아, 나도 이 몸 마음대로 써줄테니까 말야. 토비오가 나중에 다시 돌려받고서 불만 말해도 소용없을 정도로 말이야.”

 

 

  누군가가 들으면 오해할 발언을 내뱉으며 오이카와는 성격나빠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깨끗한 눈가가 다시 한번 구겨졌다. 그러나 오이카와의 예상과 달리 핸드폰 건너의 카게야마의 목소리는 밝았다.

 

 

  ! 잘부탁드립니다!

 

 

  ...아니, 어째서 기뻐보이는데. 너말야. 카게야마는 이상하게 들뜬듯한 목소리였다. 이카와가 자신의 몸을 쓰는 것에 대해 허락해줬다고 느낀 것일까, 자신의 몸을 오이카와가 쓴다는 것보다 그것에 더 기뻐하는 느낌이다.

오이카와는 쯧, 짧게 혀를 차고 한번 더 언성을 높였다.

 

 

   잠깐, 토비오 너 말이야..!!”

 

  그럼 동아리 연습이 있어서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 , 토비오?! 토비오!!”

 

 

  일이 복잡하게 됐다. 오이카와는 다시 아파오는 머리를 붙잡고 핸드폰을 거칠게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 상태가 되면 카게야마는 그 어떤 말도 듣지 않는다. 오이카와가 달려가서 한 대 쥐어박지 않는 이상 분명 그대로 동아리 연습에 임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이라도, 막을까. 달려가서. 뭐하는거야, 이자식아! 라고.

 

  오이카와는 천천히 자신의 손으로 눈을 돌렸다. 지금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카게야마의 손으로. 그리고 천천히 그 손가락을 하나하나 움직여보았다. 엄지손가락, 검지, 중지, 약지, 마지막으로 새끼 손가락까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손가락은 하나도 없었다. 언제나 그 무서우리만치 정확한 토스를 던지는 손가락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쩌면.’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에 그대로, ‘바보아냐?’ 라고 스스로 반문했다. 반문했지만, 그런데도.


 

  어쩌면, 이 손가락이라면 가능할 지도 몰라.’


 

  , 귀신같이 정확한 토스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어디든지 전달할 수 있는 그 토스가. 가장 이길 가능성이 높은 타점을 찾고, 그 지점에 정확하게 던져서- 그 어떤 세터가 보더라도 한 눈에 반해버릴 만한.

 

  배구의 여신에게 사랑받는 토스를, 올릴 수 있을 지도 몰라.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꽉 주먹을 쥐었다. 이상하게 심장이 뛰었다. 귓속에 자신의 심장소리만이 가득가득 울려퍼졌다. 얼굴이 상기된 것이 느껴졌다. 지금- 이렇게 두근거리는 건 카게야마의 심장이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손톱이 파고드는 손바닥은, 카게야마의 것이다.

 

  오이카와는 서서히 발걸음을 체육관으로 옮겼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