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큐 글전력 60분. 주제는 편지.
* 지루함. 재미없음 주의
* 전력이기에 조각글입니다. 짧아요!






[오이카게] 편지는 싫어하지만.




  수백마디의 말보다 한번의 행동이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항상 살아왔다. 말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편했다. 머리로 전달할 말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그저 팔을 움직이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도 있었다. 그런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말이란 하나의 숙제와 같았다. 자신의 마음을 말로 전달한다는 것에 대해 도무지 익숙하지 않았다. 무언가 말하고자 입을 열어도 나오는 건 잉어와 같은 뻐끔거림 뿐이었다. 비단 말 뿐만이 아니었다. 언어라는 기호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 문자메세지부터 시작해서- 메일, 낙서, 노트정리 등등 하기까지. 모든 것에서 카게야마는 '말'에 서툴렀다. 말이라는 것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 것일까. 그건 그에게 숙제였다. 정말 그러했다.

  그것은 편지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고등학교 1학년의 2월, 3학년 선배들의 졸업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졸업하는 선배들에게 다같이 편지를 쓰고자 합의하고, 카게야마는 익숙하지 않은 모양새로 문구점에 들렀다. 예쁜, 알록달록한 편지지를 고르는 여자아이들이 고른 걸 곁눈질로 바라봤다. 다양했다. 칸이 작은 것에서부터 아예 칸이 없는 것까지. 꾸밈이 없는 것에서 편지지라고 하기 힘들정도로 화려한 것까지. 카게야마는 그저 눈가를 찌푸리고 편지지들 앞에서 망부석처럼 서있을 뿐이었다. 몰랐다. 카게야마에게는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편지라는 숙제는 더 어려운 고난일지도 몰랐다. 이렇듯 편지지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힘들다면-
  고민하던 카게야마는 결국 연한 아이보리색의 편지지를 들어올렸다. A4 반쪽 크기의, 20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다. 아무런 배경없이 그저 휑하니 줄만 그어진 것이, 카게야마답다고 하면 그렇기도 했다. 언제나 카게야마는 진심으로 부딪치는 남자였다. 백마디 말을 포기한 대신 그는 솔직하게 행동했다. 그렇기에 그는 화려한 장식으로 자신의 진심이 흐려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지 않아도 서투른 그의 말이, 언어가 그 안에서 존재감 없이 부웅 떠 있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카게야마 토비오는 편지를 싫어했다.




* * *



  허나 그 바로 3개월 뒤,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그 문구점으로 향했다. 그것도 편지지가 모여있는 앞으로. 그는 3개월 전과 같이 익숙하지 않은 모양새였고, 여전히 여자아이들이 고르는 것을 곁눈질로 바라봤다. 눈가가 깊게 패인것은 3개월 전보다는 더 심해져있었다. 눈동자가 더 날카로웠다. 카게야마는 집중하고 있었다. 전에없이, 집중하고 있었다. 편지지 하나하나를 비교하면서. 그 색 하나하나를 보면서. 줄 간격까지 신경쓰면서.

  며칠 전 오이카와에게서 편지가 왔다. 정확히 3일 전이었다. 오이카와는 이미 추천을 받았던 여러 대학 중 도쿄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다. 오이카와가 은퇴 후 시작한 관계이기 때문에 함께 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그래. 솔직하게 말하면 오이카와와 더욱 함께 있고 싶었다. 목소리를 듣고싶고, 그 냄새를 맡으며 품에 안기고 싶었다. 더더욱, 그래서. 오이카와가 도쿄의 대학으로 가는 것이 기쁘고, 축하하고 싶은 마음인 동시에 슬펐다. 슬프다는 표현이 옳은 걸까. 카게야마는 알지 못했다. 언어에 능숙하지 않은 카게야마는 자신의 감정표현에 서툴렀다. 그러니 그저 오이카와를 끌어안았다. 조금 더 내 옆에 있어주세요. 가기전에, 조금이라도 더-.


   "편지, 보낼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어깨에 고개를 묻으며 그렇게 말했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대학 입학을 위해 도쿄로 가기 이틀 전의 일이었다. 3월 후반의 날은 아직 추웠고, 바람은 허리를 가르고 매섭게 지나갔다. 그래서 오이카와의 귀는 붉게 올라 있었다. 눈앞의 붉은 귀와, 귓가에서 들려오는 슬며시 떨리는 목소리에 카게야마는 이상하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묵지근한, 말로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 하나씩 배아래에 쌓였다. 그냥 옆에 있어주면 되는데. 편지가 아닌, 그냥 오이카와씨가. 오이카와씨의 깨끗한 글씨가 아닌, 그냥 오이카와씨가.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눈앞에서 안개와 같이 뿌옇게 흐려지기만 하는 시야가 아파서. 오이카와의 체온이 그저 그저 그리워질 것만 같아서. 왜 편지일까. 왜 편지여야만 했을까. 항상 새로운 유행은 반드시 체험해보고야 마는 오이카와가. 핸드폰을 손에 끼고 절대 놓지 않는 오이카와가. 왜 굳이, 편지를 골랐을까.



* * *



  카게야마는 결국 편지지 하나를 손에 들었다. 어느새 석양이 지기 시작한 하늘은 벌써 연한 장밋빛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날이 지고 있었다. 카게야마의 이마에는 조그만 땀방울이 한두어개 맺혀 있었다. 힘겨웠다, 편지지와의 싸움이. 하지만 이 승리의 전리품을 들고 집으로 가면 더 큰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래도.
  카게야마는 입술을 오물거렸다. 약간 상기된 눈가가 생그랗게 빛나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가 꼬옥 감겼다가, 다시 깜빡거렸다. 들고있던 배구공을 옆구리에 끼고, 손에는 편지지를 들어올렸다. 굳이 그 조그만 편지지를 양손으로 들고.


  편지에서 오이카와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편지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도.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보내 온 작은 엽서를 떠올렸다. 도쿄의 야경을 찍은 사진 뒷면에는 오이카와의 깨끗한 글씨가 놓여있었다. 선이 없는데도 정갈하게 줄을 맞춰서. 글씨는 크지도 작지도 않게.
  오이카와에게 들었던 도쿄의 자취집 주소, 그리고 카게야마의 집주소. 풀자국도 없이 붙여진 우표 아래의 오이카와의 글씨가 무언가 생소했다. 항상 라인으로만 대화했으니까, 글씨를 보는 것은 중학교 이래 처음일지도 몰랐다. 글씨를 잘 쓰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오이카와의 깨끗한 글씨로 쓰여진 '카게야마 토비오 귀하' 가 못내 생소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두근두근하면서도, 무언가 오이카와가 다른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어쩌면 오이카와는 자신이 못 본 며칠 사이에 조금씩 변한 걸지도 몰랐다.
  카게야마는 조금의 두려움을 느끼며 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찬가지로 깨끗한 오이카와의 글씨였다. 카게야마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여전히 편지의 말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편지를 잡고 있는 카게야마의 손이 조금 움찔거렸다.


  '너와 보고싶은 것 첫번째'






  카게야마는 손에 든 편지지를 꽉 쥐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완연히 석양빛으로 물든 하늘이 거리를 부드럽게 비췄다. 동네 빵집은 문을 열어 방금 갓 구운 빵냄새를 풍겼다. 슈퍼 앞 할머니는 여전히 이 시간엔 졸고 있었다. 익숙한 풍경을 지나며 카게야마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어느새 반 달리다시피 하며 그 풍경들을 빠르게 지나쳐갔다.


  보고싶다. 오이카와가. 보고싶다. 오이카와가 보는 풍경이. 이제는 오이카와에게 익숙해졌을 그 풍경이, 나도 보고싶다.




  편지는 귀찮다. 편지는 골치아프다. 카게야마 토비오에게는 하나의 전쟁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펜을 든다. 예쁘지 않은 글씨이지만, 길게 쓰지도 못하지만.
  오이카와가 좋아한 민트색의 편지지에 글을 적는다. 펜을 굴린다.


  '오이카와씨를 생각하며 산 편지지 첫번째.'


  그건 분명 편지로밖에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이었다.





* 오이카게인데 오이카게다운 내용이 안 나옵니다.
* 카게야마 어머니가 주인공.
* 재미없음, 지루함 주의
(제 기준으로 긴 글. 길어요!!)
 







[오이카게] 우리 아이의 애인은 배구부 주장








 아오바죠사이 고교. 이 좁은 미야기현에서, 그 고등학교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적다. 시라토리자와와 더불어 배구 강호로 유명한 그 학교는 언제나 여름만 되면 미야기현의 배구 팬들을 불태웠다. 그저 고교 배구 아냐? 라고 우습게 여기는 사람도 한번 그 경기를 보면, 그 고교의 이름을 잊을 수 없게 된다. 특히 지역 TV에도 나온, 아오바죠사이 고교 배구부 주장 오이카와씨네 아들 오이카와 토오루는 더더욱.

 수려한 용모에 184를 넘는 키, 갖춰진 몸에 배구부 주장이라는 리더십까지. 덕분에 바로 옆에서 꺄악꺄악하는 소녀들처럼 나설 수는 없지만, 뒤편에서 그에 대한 얘기로 꽃을 피우는 것은 이제 한 아이의 엄마인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미야기현에 이사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나도, ‘오이카와씨 댁네 아들’에 대한 얘기는 벌써 많이 들었었다. 듣자하니 어릴 적부터 유명인사였다고. 꽤나 동네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란 것 같았다. 오이카와씨네 가족은 그다지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지금도 오이카와 토오루를 제외한 그 가족에 대해선 의문이 가득이지만.

 어찌됐든 이제 갓 중학교 입학생인 아들을 데리고 이사온 미야기현 안에서- 주변 어머니들과 나눈 대화에서 ‘오이카와 토오루’는 일종의 지역 아이돌이란 느낌을 받을 정도로. 헤에, 그런 아이도 있구나. 정도의 느낌뿐이었지만 확실히 그 이름은 뇌리에 새겨졌다.

 

 

 그래서 겨울, 하나뿐인 아들의 중학교 1학년 생활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 아들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좋아하는 사람?”

  “응.”
 

 저녁밥을 먹으며, 약간 볼을 홍조로 물들이고- 평소의 감정 표현이 서툴렀던 아들에게서 보기 힘든 그 모습을 봤을 때. 드디어 이 아이에게도!! 라는 생각이 들어 이상하게 대견함이 마음속에 퍼졌다.

 하나뿐인 아들, 카게야마 토비오는 엄마인 내 입으로 말하기도 참 뭐하지만. 감정 표현이 서툴고 그저 배구밖에 모르는 아이였다. 얼굴은 꽤 귀엽고, 나중에 크면 여자애들도 여럿 울릴 것 같은데. 초등학교 2학년, 처음으로 데려갔던 어린이 배구 교실에서 배구를 접한 이후로 아들의 마음에는 오직 배구 한 길 뿐이었다. 담당 선생님이 흥분하며 ‘이 아이는 천재에요. 꼭 배구를 시키세요, 어머님.’ 이라고 말했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괜찮을까? 정말로, 괜찮을까? 천재라는 이유로 배구를 시키는 게 과연 이 아이의 행복이 될까? 스포츠 세계는 쉽지 않다. 어릴 적 신동이라는 이유로 동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던 운동 선수 얘기를 TV에서 볼 때마다 그런 걱정은 커갔다. 하지만 배구공을 만질 때마다 토비오의 무뚝뚝했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누가 봐도 즐거운 듯이 배구를 하는 토비오에게서 배구를 뺏을 수는 없었다. 이미 이루어진 운명적인(?) 만남에는 엄마인 나조차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그 이후로, 아들의 세계는 배구 일색이다.

 


 그랬던 아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엄마로서는 기쁠 수밖에 없었다. 아, 이 아이가 잘 크고 있구나. 그런 마음이 드는 동시에 여러 가지 조급한 마음도 들었다. 첫사랑은 흔히들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조그만, 배구밖에 모르는 아이가 받을 아픔이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나도 참 과보호인 엄마구나. 조심, 또 조심.

 그래서 일부러 관심있게, 그러나 너무 과도한 관심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가볍게 내뱉었다.

 


  “그래? 잘됐네. 어떤 사람이야?”

  “우리 부 주장. 배구, 엄청 능숙한 사람이야.”

  “...배구부 주장?”

  “응. 오늘, 고백했더니 그럼 사귀자고.”

  “....”

 

 

 마치 잘 익은 사과처럼, 그 하얗던 얼굴이 스르륵 붉어지는 건 무엇보다 귀엽지만. 토비오의 말을 잘 이해할 수가 없다. 배구부, 주장? 배구가 엄청 능숙한 사람? 분명 배구는- 으음, 남녀 별개이다. 그리고 토비오가 다니는 중학교는..



  “음... 여자 배구부 주장?”

  “...? 아니? 여자 배구부는 따로 있는데?”

  “...?”

 

 아들과의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다. 토비오가 다니는 중학교에서, 여자 배구부가 따로 있다면. 그리고, 아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배구부 주장이고, 배구가 능숙하고- 그런데 여자 배구부는 아니고. 그렇다면, 그렇다면.

 

 순간적으로 머릿 속에 지역 아이돌의 얼굴이 훅 지나갔다. 분명, 그 아이도 키타이치 중학교였다.

 

 

  “...‘오이카와 토오루’?”

  “..! 어떻게 알아?”

 


 아들의 얼굴이 생전 처음보는 당혹으로 물들었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기뻐 보인다. 그 눈동자가 반짝반짝 거리며 검은 눈동자 안에 별들이 가득 빛났다. 이미 발그레 한 볼이, 눈가까지 붉게 물들이며 더욱 붉어졌다.

  놀랐다. 까만 눈동자 안에, 잔뜩 기대와 당혹을 담고서. 아들이 그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이었다. 항상 말주변이 없고, 감정표현은 서툰, 그래도 제대로 기뻐하고 슬퍼하고 낙담할 줄 아는. 하지만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이었다. 얼마나, 좋아하면. 얼마나 기뻤으면-
  오이카와씨 댁네 아들은, 어떻게 아들에게 저런 표정을 짓게 하는걸까.

   "근데...음-... 사귄다고?"
   "응. '우리 오늘부터 연인이야, 토비오쨩' 이라고 했어."
   "...."


  머리가 어질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토비오는, 그것이 이상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그저 기쁜 마음에 나에게 말했다고 생각한다. 그저, 처음으로 좋아한 상대와, 처음으로 사귀게 되고- 그게 남자인 것과는 상관없이. 좋아하는 '오이카와 선배'와 사귀게 되어서, 그게 기쁘고 기뻐서.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눈앞에서 부끄러운듯 고개를 숙이고 미소짓는 아들을 보며 마주 웃어줄 수 없었다.
그 선배는 남자잖아? 토비오도 남자고- 남자랑 남자가 사귄다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는 건 쉬웠다. 아니, 그렇게 말해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였을지도 모른다. 아직 어린 마음의 미숙한 사랑을 착각으로 치부하고, 그 마음을 짓뭉개서- '정상'을 강요하는 것이 옳았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과연 이 아이의 행복일까? 처음 배구를 시킬 때 들었던 고민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그 때도 이런 고민을 했었다. 어쩌면, 토비오. 배구를 하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평범한 남자애, 땀냄새가 나는 동아리 선배가 아닌- 꽃향기가 나는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평범한 남자애로 너를 키우는게 옳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나는. 평소에는 삐죽 내밀며 불만을 표시하는 그 입술이- 부드럽게 올라가며 미소짓는게 보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네가 행복하다면.
  자식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그 어떤 길을 택하든 난 네 편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게 부모 아닐까. 그 어떤 감정이라도, 토비오가 행복하다면.

 난 받아들여줄 수 있으니까.


   "응. 좋아하는 사람이랑 사귀다니, 좋겠네. 토비오."
   "....응."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했지만 그래도 제대로 고개를 끄덕이는 너를 보며 나는 겨우 웃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서와, 오늘 저녁도 먹고 갈거니?"
   "네. 매번 감사합니다."
   "토오루는 맛있게 먹어주니까 좋아. 토비오는 매번 물어봐야 대답해주니까. 정말, 내가 생각해도 무뚝뚝한 아들이야."

  토비오는 또 입을 삐죽 내밀며 미간을 좁혔다. 정말이지, 저 버릇 고쳤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저것도 저 아이 나름대로의 감정표현이라고 생각하면, 토비오도 의외로 표정이 다양하다는 걸 알게된다.

  토비오는 오이카와와의 관계를 나에게 말한 것에 대해서 조금 쓴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조금 걱정스런 표정으로,

   "엄마. 오이카와 선배랑 사귀는 걸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건, 나쁜 일이야?"

  라고 물어왔으니까. 그에 대해서는, 음. 조금 고민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하나 뿐이었다.

   "다른 사람한텐 비밀로 하는게 좋지 않을까? 사귄다는 건 두 사람만의 약속이니까."
   "...하지만 엄마한텐.."

  이미 말했는데. 끝까지 말하지 못 한 토비오의 입술이 삐죽 튀어 나왔다. 아직 말랑말랑한 얼굴근육을 구기며, 미간을 좁힌 토비오를 보며.
  이 아이가, 그 관계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순간적인 기쁨으로 나에게 말해버린 걸, 후회할 정도로.
  그정도로 소중히 여길 사람이 생겼다는 게 기쁜 동시에, 벌써 엄마에게 비밀이 생길 나이구나. 그런 마음도 들어 웃음이 나오면서도 심장 한쪽이 욱신거렸다.


   "그럼, 엄마가 비밀 알아버린 사과로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다음에 오이카와 선배도 데리고 와."
   "...괜찮을까?"
   "응. 엄마가 꼭 왔음 좋겠다고 했다고, 오이카와 선배한테 말하면 올거야."
   "....응."

  자신도 옳다고 생각하면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 그것은 토비오의 좋은 습관이었다. 입술을 내밀거나, 미간을 좁히거나, 가끔 혀를 차거나- 고쳤으면 하는 습관은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솔직한 아이로 자란 것에는 항상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이카와 토오루라고 합니다."
 
  동네 애엄마 모임에서 항상 빠짐없는 주제였던, 그리고 토비오에게 대단하다고 전해 들었던 바로 그 오이카와씨 댁네 아들은.
분명 수려한 외모에 각잡힌 몸, 그리고 어린아이라고 보기 힘든 갖춰진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게 말할 때 약간 떨리는 손이, 아- 이 애도 그냥 중학교 남자애구나. 둘의 관계를 알고 있는, 자신이 좋아하는 토비오의 엄마인 나를 보며 무서워하고 있구나. 그 관계가 깨어질까봐.
  그렇게 생각하니, 참 이상했다. 그때까지 아무리 떨쳐내려해도 떨어지지 않던, 마음 한구석에 응어리져 가라앉아있던 걱정들이 모두. 가루가 되어 사르륵 모래와 같이 바람에 나부껴 사라졌다.

  이 아이도 제대로 토비오를 좋아하고 있구나. 이 아이들의 사랑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어리숙한게 아니구나. 그런 마음이 들어서, 어쩐지 눈가가 뜨거워졌다. 토비오를 위해 한 선택이 잘못된게 아니야, 라고 토오루의 떨리는 손이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어서오렴. 저녁, 카레인데 괜찮니?"

  뜨거워진 눈가를 애써 억누르며, 떨리는 말투를 애써 밝은 목소리로 가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말하니 토오루는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그래도 그 호박빛의 예쁜 눈동자로 똑바로 나를 바라보면서.

   "네. 카레, 좋아해요."


  그 뒤로는 토오루도 가끔씩 놀러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집에 들어올 때마다 떨리던 손이, 어느새 떨림이 멈추고 자연스럽게 토비오의 손을 맞잡고 들어오기까지. 천천히, 그래도 확실히 토오루에게 신뢰를 주었다는 느낌이 들어 그 무엇보다도 기뻤다.

  받아들여줬구나, 나를.
  너희가 그 어떤 모습으로 있든지, 토비오가 행복할 수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수긍할 수 있는 나를.




  그 뒤로 중학교 기간을 거치며 토비오는 여러가지로 힘든 시기를 겪은 것 같았다. 나름대로 상처도 받고, 또 슬프기도 하고, 가슴아픈 일도 있었으리라.
  그래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똑같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네편이야, 토비오.
  세상 모든 사람이 너를 비난하고, 네 적이 된다고 해도.
  나는, 나 만큼은. 언제나 네 옆에 있을게.




  아이는 커간다. 부모 마음을 모르던 아이는 어느새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이제는 자신과 자신의 연인이 어떻게 보일지도 안다. 그리고 그 관계가 세상에서 말하는 '정상이 아닌' 관계라는 것도 안다. 그리고- 그걸 중학교 1학년 때 뭣도 모르고 나에게 말해버린 자신이 바보같다는 것도.
  그래도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도 그렇게, 너에게 카레를 만들어주고.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묻는다.

   "오늘 토오루 오는 날이지? 저녁, 카레로 괜찮아?"

  그렇게 말하면 너는 조금 쑥스러운 듯이, 그래도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 -응. 카레, 좋아."



  그 얼굴이 평소와 똑같이 무뚝뚝해 보이지만, 그 눈가가 슬며시 붉어진 걸 이제는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입가가 평소보다 조금 더 느슨해진 것도.


  그러면 나는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미소짓는다.
  오늘도 행복하구나, 토비오.
  오늘도 너는, 내 하나뿐인 자랑스런 아들로 잘 크고 있구나.





-
카게야마에 대한 모성애가 마구 솟구쳐서 쓴 글입니다. 그냥
사랑해. 항상 행복하면 좋겠어. 이 말을 해주고 싶다고 떠올리며 썼습니다.
오이카게라고 하기 참 부끄러운 글이네요....ㅠㅠ


[오이카게] 악몽 (R-15)
* 직접적 장면은 없지만 수위적 묘사 있습니다. 아주 약간.
* 오이카와가 조금 너무할지도.







   "오... 오이카와 선배... 무서... 워요..."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가 흔들거리며, 두려운 목소리로 카게야마는 말했다. 아직 제대로 복근이 자리잡지 않은 카게야마의 배를 매만지며 오이카와는 부드럽게 웃었다. 살짝 눈망울이 맺힌 그 눈끝을 슬며시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벌써 몇번이고 했잖아? 여기도, 몇번이고 만졌고."
   "으흣...!"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동그랗게 솟아오른 유두를 가볍게 튕기자, 카게야마가 눈을 꼭 감으며 달콤한 신음을 흘렸다. 언젠가 봤던 AV의 여자보다 더 색이 엷게 잡힌 카게야마의 유두를 괴롭히는 것을, 오이카와는 그 무엇보다도 맘에 들어했다. 이제는 살살 만져주는 것만으로도 카게야마의 작은 돌기는 쉽게 달아올랐다. 벌써 발그레해진 볼과 마찬가지로, 그 붉어진 작은 돌기에 입술을 갖다대면 카게야마가 순간 숨을 들이마시는게 느껴졌다. 그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면서, 오이카와는 입 안의 돌기에 촉촉한 혀를 돌렸다.

  두 학년 아래인 후배와, 이런 일을 하는 건 얼마나 되었을까.





  카게야마를 때릴 뻔할 충동을 이와이즈미가 막아준 후,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차분히 지켜볼 수 있었다.
  이전까진 다양한 감정과 증오, 미움이 섞여있는 상태에서 왜곡되어 보였던 카게야마를 아주 순수하게. 그저 한 명의 카게야마 토비오로서 바라봤다. 그 타는 듯이 뜨거운 눈동자, 그 동그란 머리, 자신을 잡아먹을듯이 항상 바라보는 카게야마를 느끼고, 오이카와는 알 수 있었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저 당돌한 1학년 꼬마는.
  나, 오이카와 토오루를 좋아하고 있다.


  그렇게 깨닫고 나자,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 일종의 흥분을 느꼈다. 저 타는 듯한 눈동자는 오이카와에 대한 열렬한 동경과, 애정 또한 담고 있었다.
  애초에 카게야마의 인생은 배구이니, 그에게 배구를 빼고 사람에 대해서만 논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의 배구에 반한 거라면.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반했다는 뜻이 된다. 등을 훑듯이, 잡아먹을듯이 바라보는 그 눈동자는. 아직 완성되지 않아 한 몸에 안기는 그 작은 몸은. 배구공같이 작은 머리에, 그를 덮는 사락거리는 머리카락은. 자신에 대한 연정으로 괴로워 몸부림 칠 때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 조그만 후배에게- 오이카와는 키스할 수밖에 없었다. 작고, 붉은 입술에 마치 잡아먹을 듯한 키스를.






   "으...으응..!"

  동아리 연습이 끝나고 모두가 돌아간 체육관 안에서, 그 조용하고 적막한 가운데서 오직 오이카와의 입술을 받아들이는 카게야마의 신음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입술을 맞닿았을 때 커진 동그란 눈동자 안에, 자신의 호박빛 눈동자만이 가득했을 때. 오이카와는 코로 숨을 뱉으며 후, 웃었다.
  혀를 타고 카게야마의 입안으로 바로 전해진 오이카와의 한숨에 카게야마의 몸이 조금 떨렸다. 자꾸 도망가는 카게야마의 혀를 기어코 잡아서 끌어내고, 이리저리 휘두르고. 마치 생크림같이 부드러운 입 안의 점막을 혀로 간질거리자 눈 앞의 눈동자가 움찔거렸다.

  카게야마의 타는 듯하던 눈동자가, 물에 젖어, 색욕을 띠고, 맞닿은 입술 사이로 말이 되지 못한 한숨이 새어나올 때.

  오이카와는 아랫배 근처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아..하..아.."


  겨우 떨어진 입술 사이로, 가늘게 이어진 투명한 실이 채 끊어지기도 전에. 카게야마는 거칠게 숨을 골랐다. 까만 눈동자는 긴 속눈썹에 가려져 있었다. 오이카와는 입꼬리를 올리고,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토비오쨩, 나- 좋아하고 있지?"
   "...에...?"


  오이카와의 말에 카게야마는 열에 들뜬 눈동자로 오이카와를 바라봤다. 그 눈동자에 오이카와는 혀로 입술을 가볍게 핥은 뒤, 다시 키스할 듯이 카게야마에게 몸을 밀착했다.
  카게야마가 '아..' 하며 고개를 살짝 틀어 내렸다. 그 몸을 비틀어 뒤로 가려 하지만 벽에 가로막혀 오가지도 못하는 몸이 되었다.


   "좋아하고 있잖아. 그치? 토비오쨩."
   "저...저기, 전 오이카와 선배의 배구는 멋있다고 생각하고... 그치만 좋아한다던가, 그런건 잘 모르겠어서-"


  카게야마의 말에 오이카와는 다시 입꼬리를 올렸다.
  설마했는데, 무의식인건가. 그 타는 듯한 눈동자도, 나에 대한 갈망이 담긴 손 끝도. 이것도 저것도 전부, 무의식에서 나온 나에 대한 욕망인가.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타액이 묻어 채 마르지 않은 자신의 입술을 다시 핥았다. 어쩐지, 달콤한 맛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겹친 입술. 카게야마는 그 순간, 그때까지 오이카와를 밀어내던 손의 힘을 풀었다. 그저,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으로 오이카와의 티셔츠를 잡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걸 보고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이번엔 더 깊게. 카게야마의 혀를 얽어맸다.





  그 뒤로는 연습이 끝난 체육관 뒤 부실이 오이카와와 카게야마의 장소가 되곤 했다. 평소에도 남아서 연습하곤 했던 두 사람이기에 아무도 그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매번 상쾌한 미소로 남는 오이카와에게 뭐라고 말해주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결국 입술을 깨물며 돌아가곤 했다.


   "왜 피하는 거야? 토비오쨩."
   "...."


  둘이서 부실에 있게 되면, 카게야마는 매번 오이카와를 피해 구석진 곳으로 몸을 당기곤 했다. 오이카와는 그 거리를 좁히며 다가가지만, 더욱 거리를 벌리는 카게야마에게 미간을 좁히고. 결국 그 희고 가는 팔을 끌어 자신의 품에 가뒀다. 품 속에서 카게야마가 팔을 흔들며 바르작거렸지만 오이카와는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결국 그 몸에서 스르르 힘이 풀리더니, 그 젖은 눈동자가 약간 떨리며 오이카와를 올려다봤다.



  그러니까, 그 눈동자.

  평소에는 곧고, 바르고, 자신을 그저 순수하게 바라보는 그 눈동자가.
  자신에게 안기고, 키스를 하면. 촉촉하게 젖어 눈가에 약간의 물방울을 머금고. 떨리는 속눈썹 아래에서 오이카와에 대한 욕망에 휘둘리는 걸 볼 때면.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알 수 없는 전류가 척추를 휘감아 도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오이카와 선배... 왜- 이런.."


  카게야마는 그 눈동자를 거둬 다시 오이카와의 시선을 피했다. 이제 오이카와의 품안에서 카게야마의 하반신은 아주 조금이지만 열을 띠고 있었다.
  그걸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일까, 카게야마는 다리를 슬쩍 오무락거리며 오이카와의 허벅지 사이에서 빠져나가고자 했다.


  왜, 라고?
  오이카와도 의문이었다. 자신은 어째서 카게야마를 범하는 걸까. 여자라면 곤란하지 않을 정도로 있었고, 욕망의 배출구는 굳이 카게야마가 아니어도 된다.
  그런데, 어째서? 오이카와에겐 일종의 장난에 불과한 이 행동에 왜 자신은 이리도 흥분하는 건가. 왜 카게야마의 미완성된 몸을 만지고, 그 몸에 자신의 각인을 새길 때마다- 이리도.

  오이카와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생각을 중단했다. 그리고 후, 가볍게 웃으며 눈꼬리를 내렸다.
  생각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저, 이건. 그래.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젖은 눈동자를 가렸다. 가린 자신의 손이, 카게야마의 작은 얼굴을 반정도 덮었다. 그 아래에서 영문을 모르는 입술이 조금 달싹거렸다.



  "이건 모두- 나쁜 꿈이야, 토비오쨩."



  그래. 이건 모두, 하룻 밤의 나쁜 꿈이다. 토비오에게도, 나에게도.



   하룻 밤의, 지독한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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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으로 확실히 알았습니다. 전.. 수위.. 못써요.. 못쓰겠어요...ㅎㅎ...

R-19 쓰시는 분들 정말 대단한거 같은... 으아아아아아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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