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l me, Please don’t t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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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geyama side

 

 

키스란 건 뭘까. 언제 하는 걸까. kiss. 케이아이에스에스. 사전을 뒤져보면, ‘키스, 입맞춤, 뽀뽀라는데. 아니, 물론 맞는 말이지만. 카게야마는 묻었던 고개를 다시 번쩍 들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이 슬금슬금 피할 정도로 구겨진 인상은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다. 교실 내에 가득 차오른 질척한 습기가 머리카락에 들러붙었다. 며칠 전부터 울기 시작한 매미는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목을 젖히며 울어댔다. 매미가 한번 울 때마다 뒷목을 타고 땀 한 방울이 흘렀다. 미지근한 땀이 귀 뒤로 한줄기 흐르는 걸 느끼면서, 카게야마는 다시 고개를 묻었다. 오랜 시간 누워있던 책상의 네모난 공간 안에는 답답한 열기와 습기가 그득했다. 무거웠던 눈꺼풀을 내리면, 다시금 생각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뭘까. , 어째서. 오이카와씨는 나에게 키스한 걸까. 오이카와는 그 날 이후로 찾아오지 않았다. 카게야마도 찾아가지 않았다. 어차피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찾아왔기에 성립된 관계였다. 나를 놀리고자 시작한 일이었으니까, 충분히 놀려준 이상 오이카와는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그렇다면 찾아올 일도, 필요도 없겠지. 그래서였다. 오이카와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건. 카게야마가 오이카와를 찾아가지 않는 건. 엎드린 카게야마의 뒤통수에 직사광선이 내리 쬈다. 머릿속이 다시 천천히 익어갔다. 몽롱한 의식이 카게야마를 뒤덮고, 그 날의 감촉이 떠올랐다. 조금 촉촉했던 오이카와의 입술, 땀이 송골 맺힌 보드라운 코끝이 맞닿은 느낌. 오이카와의 입술이 떨어진 뒤 제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모른다. 매미 소리가 너무 커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는 것 외에는.

뭐였을까. 카게야마는 다시금 인상을 찌푸렸다. 뭐였을까, 오이카와씨의 수수께끼는. 정답이 무엇이었을까. 장난이었는걸, 뭘 그렇게 진지해? 왜 키스했냐고 물으면 오이카와는 그렇게 대답할 게 뻔했다. 분명 또 풋, 하고 일부러 보여주듯이 비웃으면서. 카게야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마에 묻었던 땀방울이 팔에 질척하게 번졌다. 카게야마가 뱉은 숨이 그대로 책상에 닿아서, 이미 충분히 오른 열기를 더했다. 괜스레 머리에 열이 올랐다. 뜨거운 이마가 간질간질했다.

그만하자. 낮게 숨을 내뱉었다. 치아 끝에 미미하게 남아있는 보드라운 귓바퀴의 감촉도, 입술에 남아있는 그 온기도, 모두 그만하자. 그 사람은 목적을 달성했고, 난 이번에도 당한 거고. 그냥 그걸로 끝인 거지. 오이카와씨랑은. 그냥 그걸로. 카게야마는 뜨끈해진 이마, 습기를 몰고 온 낮은 바람, 잠시도 쉬지 않고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오이카와의 손을 잡았던 손이 이상하게 뜨거워져서, 열기를 잠재우고자 주먹을 쥐었다. 의식 안에서, 태양 빛이 부서지며 닿았던 홍차 빛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건방진 토비오쨩. 오이카와의 입술이 움직였다. 건방진 토비오쨩. 성격 나쁜 오이카와씨. 오이카와씨는 항상 그런 식이죠. 자기 목적만 달성하면, 남겨진 사람은 어찌 되든중학교 때도, 난 당신에게 휘둘리기만 하고. 그러니까, 이번에는 휘둘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데.

다 알고 있어요. 오이카와씨가 생각하고 있는 거. 날 놀리려는 거. 날 가지고 놀려는 거. 그런데도 당신에게 할 말이라고는 왜 저한테 키스했어요?’라는 말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난 아직도 여전히, 중학교 때와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걸까. 잠의 호수로 빠져드는 의식 너머에서, 매미 소리가 울렸다. 그 날 울었던 매미일까, 한 마리가 줄기차게 울어댔다. 뜨거웠던 오이카와의 손, 뜨거운 입술, 이상하게 두근거리던 가슴. 죽을 것만 같던 숨 막힘.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느낄 정도로.

 

 

 

 

 

 

 

 

Oikage side

 

 

 

내일은 비가 온다고 했던가, 날이 맑았다. 비 오기 전의 어찌할 바 없는 더위가 하늘 끝부터 땅 아래까지 차곡차곡 가득했다. 여름의 낮은 뭉게구름은 몇 조각 띄엄띄엄 떨어져 있어서, 칼날같이 직선으로 내리꽂는 태양을 막을 것은 없었다.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핀 들꽃이 햇빛을 흠뻑 받아 선명한 노란빛으로 빛났다. 그래서였다, 카라스노 고교 앞엔 노란빛이 점점이 박혀있었다. 오이카와는 그 날과 같이, 교문 앞에서 선연한 태양 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카게야마가 저 멀리서 나오는 것을 보고 첫날과 같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더니. 후배는 첫날과는 달리 약간 긴장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오이카와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날이 길어진 탓에 그때와 달리 노을이 지려면 아직 한참이라는 듯 태양은 더 진하게 타오르며 더위를 흩뿌렸다.

안녕, 토비오쨩.”

오이카와가 놀리듯이 웃으며 말하자, 카게야마는 모래 씹은 표정으로 오이카와를 바라봤다.

용건도 끝났는데 왜 오셨어요?”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꿍얼꿍얼 내뱉더니 그대로 오이카와를 지나가려는 카게야마를,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붙잡았다. 손은 여전히 따뜻했고, 또 뜨거웠다.

나랑 데이트할래?”

인사를 건네듯 가볍게 물어본 오이카와에게, 카게야마는 눈을 동그랗게 뜬 뒤 내뱉었다.

데이트요?”

. 데이트.”

요모조모 따져보면 역시나 잘생긴 그 얼굴 안에서 부드러운 미소가, 그날과 전혀 다를 바 없이 피어올랐다. 카게야마는 미간을 좁히면서 의심하는 눈길로 쳐다봤다.

뭐하러요?”

싫어?”

됐어요. 어차피 선배 명령이겠죠.”

오이카와는 싱긋 웃어 보인 뒤, 카게야마의 손을 다시 한 번 제대로 꽉 잡았다. 오이카와의 손에 있는 굳은살이 하나하나 느껴질 정도로 두 손이 강하게 밀착했다.

갈까.”

오이카와의 모습이 그날과는 달랐다. 이상하게 깔끔한 목소리, 마치 옆에서 꺅꺅거리는 여자애들에게나 보여줄 것 같은 싱그러운 미소. 뭘까. 카게야마는 의심하는 눈초리로 바라봤지만 그래 봤자 카게야마가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놀리려는 목적도 달성했고, 더는 아무것도 원하는 건 없을 텐데. 오이카와는 무얼 하려는 걸까. 무얼 하고 싶은 걸까, 카게야마와. 왜 키스했어요? 다시 혀까지 올라온 말을 카게야마는 꿀꺽 삼켰다. 쓴맛이 났다.

 

 

지독한 여름 때문이었을까, 카페에는 한두 사람밖에 보이지 않았다. 선선한 에어컨 바람이 땀으로 젖은 몸을 순식간에 식혔다. 갑자기 몰려드는 한기에 카게야마는 몸을 조금 떨면서, 오이카와가 이끄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있지, 토비오쨩. 오이카와는 카게야마 쪽으로 홍차 빛 눈동자를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

솔직해지자구?”

피식피식 웃으면서. 카게야마의 안에 첫날의 기억이 지나갔다. 오이카와와의 첫날. 변덕스러운 그가 찾아왔던 첫날과 같이, 그는 또다시 반복하려는 걸까. 오이카와가 좋아하는 수수께끼. 카게야마는 무언가 결정한 듯 오이카와를 곧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요, 솔직해지자구요. 오이카와씨가 원하는 대로 절 놀렸으니까, 이제 다 없던 일로 해요. 키스도, 손을 잡았던 것도, 데이트도.”

카게야마가 툭툭 토하듯이 내뱉었다. 이상하게 명치 깊숙한 곳이 욱신거렸다. 태양이 몸을 찌르던 것보다도 더 날카롭게 무언가가 콕콕 박혔다. 오이카와가 이끌었던 손, 입술의 감촉, 왠지 그게 다. 여름날의 신기루와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습기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사라지는 것처럼 그것도 사라지는 걸까. 아지랑이와 같이 사라지는 걸까.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에게서 시선을 비껴 내려가더니 마찬가지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흰 피부가 전등 빛을 받아 말갛게 빛났다. 오이카와는 흐리게 웃고 있었다. , 솔직해지자.

있잖아, 토비오쨩.”

오이카와는 토비오의 손을 끌어, 그 손가락 사이사이를 부드럽게 채웠다. 깍지 낀 두 손이 선선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포근한 열기를 나눴다. 카게야마가 동그란 눈동자로 오이카와를 마주 보자, 그 홍차 빛 눈동자가 카게야마의 시야를 가득 채우면서 순식간에 빛났다. 솔직해지자.

있지, 토비오쨩. 나 거짓말했어.”

무슨 거짓말이요?”

엄청 두근거렸거든. 그때.”

그때?”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에게로 몸을 굽히고, 얼굴을 틀어 밀착하면서 가깝게 다가왔다. 귓가에 닿은 입술에서 나온 그의 한숨이 귓속으로 파고들어, 한기 도는 전신에 뜨거운 한숨이 퍼질 정도로 가까이. 카게야마의 몸이 움찔 떨리면서 뒤로 물러나려는 것을 오이카와가 깍지 낀 손을 당겨 제지했다. 귓속에 숨을 불어넣듯이, 숨소리만으로 오이카와는 속삭였다. 눈앞에 있는 오이카와의 목덜미에서 달콤한 향내가 났다.

토비오쨩이 깨물었을 때.”

이어진 통증에 카게야마는 앗, 낮게 내뱉었다. 급하게 손을 들어 귀를 가리고 뒤로 몸을 빼자, 오이카와도 좁혔던 거리를 되돌렸다. 오이카와가 가볍게 씹은 귓바퀴가 화끈거렸다. 그 예쁜 치열이 저의 귓바퀴에 와 닿았다는 사실이 무의식중에 점점 확실해져서, 귀에서 시작한 통증이 전신으로 아찔하게 퍼지는 느낌이었다. 또 놀리시려는 거에요? 짜증스럽게 내뱉으려던 입술을 카게야마는 다시 꾹 다물었다. 오이카와는 웃고 있지 않았다. 흰 피부가 희미한 열로 붉어져 있었다. 카페의 조명은 상아빛으로 흘러내리는데, 오이카와는 그 아래에서 더 붉은 얼굴로 카게야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체온이 올랐다. 36.7도로 이루어져 있는 체내의 물이 보글보글 끓으면 이런 기분일까. 머릿속이 부옇게 흐려졌다.

지금도, 두근거리거든. 엄청.”

오이카와는 마주 잡고 있는 카게야마의 손을 끌어 제 심장에 갖다 댔다. 일정한 박자로 조금의 쉼도 없이 뛰어오르는 펄떡임을 느끼면서, 카게야마는 제 손도 똑같이 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마저 떠올렸다. 오이카와의 다른 한 손이 카게야마의 왼쪽 가슴에 슬며시 닿았다. 오이카와의 큰 손 아래에서 심장은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두근대고 있었다. 정말 바보 같게도.

토비오쨩도 두근대고 있네.”

오이카와가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오이카와씨.”

토비오쨩도 거짓말, 했지?”

카게야마가 말라붙은 침을 삼켰다. 목울대가 크게 울리면서, 그 행동 하나까지도 오이카와가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의 입술이 부드럽게 열리더니, 카게야마에게 기울였던 아까와 같이 다시 거리를 좁혔다.

나 때문이지?”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간격 사이에서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울렸다. 카게야마의 눈동자와 오이카와의 시선이 겹쳤다. 검고, 푸른 눈동자. 오이카와가 눈동자를 한번 깜빡일 동안, 카게야마는 그저 곧게 오이카와만을 바라봤다.

왜 키스하셨어요?”

무미건조하게 말을 내뱉은 순간 인상을 찡그리며 험악한 표정을 지어 보인 카게야마는 기어코 시선을 피해버렸다. 아뇨, 연이어 내뱉은 말은 지독히도 낮았다.

아뇨, 됐어요. 대답 안 하셔도 돼요.”

토비오쨩.”

오이카와가 짧게 불렀다. 동시에 가볍게 닿았던 입술은 금세 다시 에어컨 바람에 차가워졌다. 카게야마의 크고 까만 눈동자 안에 오이카와만이 가득했다. 더위를 잊은 몸은 오이카와로 가득 차서, 귓속에 그날 들었던 매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매미, 한 마리만 그다지도 울어대던 그 날, 쏟아 내리던 햇살, 녹아서 한 덩어리의 습기가 된 것 같았던 마주 잡은 손.

, 좋아해?”

오이카와가 물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잡고 있는 깍지 낀 손에 힘을 주어 잡았다. 심장에 닿아있던 서로의 손은 떨어져, 남은 건 차가운 테이블 위에서 둘만의 여름을 맞잡고 있는 손 두 개뿐이었다. 카게야마의 입술이 꾹, 굳게 다물어졌다가 다시 열렸다. 한숨이 나올 새도 없이 다시 닫혔지만.

, 물어요. 그런 거. 알고 있잖아요.”

솔직해지기로 했잖아.”

싫어요. 오이카와씨 같은 사람. 심술궂고, 맨날 장난만 치고, 놀리기나 하고. 갑자기 찾아와서 데이트니, 키스니, 그런 거. 그런 짓만 하는 오이카와씨는 싫어요.”

토비오쨩.”

오이카와가 다시 가볍게 키스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오이카와의 입술이 천천히 뜨거워져서, 그와 맞닿았던 카게야마의 입술도 이제는 달싹일 정도로 뜨거워진 것을 느꼈다. 카게야마는 결국 눈을 감았다.

두근거려요.”

?”

오이카와씨 때문에요.”

. 나도.”

감긴 카게야마의 속눈썹에 오이카와는 살며시 키스했다. 카게야마는 천천히 눈을 뜨고, 검고 푸른 눈동자로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약간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이 장면에서 그런 표정을 짓나? 오이카와는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게야마의 미간을 꾹 눌렀다.

감동적인 장면인데 표정이 왜 그래?”

솔직한 오이카와씨뭔가 기분 나빠요.”

진짜 한 대 때려버릴까. 요 꼬맹이.

건방지다니까, 진짜.”

그래도 싫진 않아요. 솔직한 오이카와씨.”

대답할 새도 없이 카게야마의 입술이 오이카와를 덮쳤다. 오이카와가 했던 가벼운 키스보다도 더 깊게 입술을 얽어매는. 떨어질 줄 모르고 붙어있는 카게야마의 입술을 깨물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 오이카와는 눈을 마저 감았다.

역시 건방진 녀석이라니까.












Tell me, Please don’t tell

-중-

 

 

 

 

 

oikawa side

 

 

 

조각난 구름 몇 조각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간간이 부는 후끈한 열기는 전날보다도 더욱 심해져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폐에 답답한 공기가 가득 찼다. 오이카와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몽롱한 머릿속에서 부옇게 전날을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하길래 또 바보 같은 표정이냐.”

이와이즈미가 땀이 한두 방울 묻어있는 뺨에 대고 손부채 질을 하며 툭 내뱉었다. 한두 마리 울기 시작한 매미는 고요한 공간 안에 가끔씩 귀를 찌르는 이명을 던져넣었다.

으음, 그냥.”

무슨 일 있냐.”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오이카와를 보면서, 이와이즈미는 인상을 찌푸렸다. 또 무슨 귀찮은 일이라도 저지른 건 아니겠지. 어제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더니, 오늘은 종일 이 상태다. 하루 사이에 일어난 변화는 오이카와만이 아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매미가 울기 시작했고, 햇빛은 더 강하게 지면을 태웠고, 날이 더욱 더웠다. 본격적인 여름이 오고 있었다.

미안, 이와쨩. 나 먼저 갈게.”

또 어디 가서 사고 치려고?”

사고 치는 거 아니라니까! 그냥, 확인해보는 것뿐이야.”

뭐를?”

이것저것.”

 

 

뭐하러 또 오신 거에요?”

누가 봐도 질색이란 표정으로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쏘아붙였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불만 섞인 목소리는 신경도 쓰지 않는지 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안녕, 토비오쨩. 있지, 나랑 데이트할래?”

데이트요?”

카게야마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오이카와를 쳐다봤다. 위아래로 흘기는 느낌이 들어, 살며시 드러난 이마에 딱밤이라도 먹여주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 데이트.

저 연습할건데요.”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고 카게야마는 금세 툭 내뱉었다. 방금까지 한 건 연습 아니야? 카게야마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있는 투명한 땀방울을 보면서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배구 바보. 그런 점은 중학교때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카게야마는 여전히 카게야마 토비오였다. 배구밖에 모르는, 건방진 후배 녀석.

지금 선배 말을 무시하겠다고?”

미간을 찌푸리면서 미소 짓는 오이카와를 보고, 카게야마가 인상을 더욱 구기더니 입을 삐죽 내밀었다. 오이카와의 시선을 피하고 뭐라 뭐라 꿍얼거리더니 이내 못마땅하다는 듯 내뱉었다.

어디 갈 건데요.”

데이트, 갈 거야?”

오이카와씨가 강제로 후배를 끌고 가는 걸 데이트라고 부르고 싶으시다면요.”

우와, 토비오쨩 건방지네~”

장난식으로 내뱉으면서 오이카와는 피식 웃음 지었다. 그와 동시에 비어있던 카게야마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연습을 마치고 땀이 식어가던 카게야마의 손이 순식간에 열기로 물들었다. 거봐, 역시 좋아하는 거 맞지? 피어오르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올리자, 카게야마의 얼굴이 순간이나마 생전 처음 보는 표정으로 변했다. 순간적인 당황과 경계, 동시에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슬며시 붉어진 얼굴을 보면서, 오이카와는 올렸던 입꼬리를 다시 내렸다. 저런 표정도, 짓는구나. 미간을 찌푸린다든가, 인상을 구긴다거나, 입술을 삐죽 내민다든가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 보일 뿐인.

이상하게 묘한 두근거림에 금세 놀려주면서 놓으려고 했던 손을 놓지 못하고, 오이카와는 어정쩡하게 마주 잡은 채로 발을 움직였다. 손에 열이 모이는 게 느껴졌다.

 

 

전날 갔던 카페, 이 근처였던 거 같은데. 이상하게 길이 멀게 느껴졌다. 같은 곳을 돌고, 돌고, 또 도는 느낌. 눈을 돌려 주변을 보면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런데도, 왜일까. 발은 분명 움직이고 있고, 몸도 나아가고 있고, 태양도 기울고 있는데 왜일까. 카게야마와 이대로 영원히, 도착하지 않는 길을 걸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오이카와는 시선을 돌려 살며시 카게야마를 바라봤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조금 아래로 내린 채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오이카와와 보폭을 맞춰서 걸어가고 있었다. 아무 말이 없었다. 오이카와의 타는 목구멍에서도 숨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조용한, 두 사람의 간격 25센치 정도의 적막 안에서 매미 한 마리가 오이카와와 카게야마를 따라오면서 끊임없이 울고 있었다. 한 마리, 단 한 마리가 그렇게 울어댔다. 아지랑이가 저 끝에서 피어올랐다. 해가 더욱 뜨겁게 타고 있기 때문이리라. 바람 한 점 없는 습기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그런데도 손은 놓을 수가 없어서. 오이카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말랐던 목구멍이 더욱 비쩍 말라서, 약간의 통증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등을 타고 땀이 한줄기 흐르는 감각이 이상하게 선명했다. 등에 흐르는 간지러움에 오이카와는 손을 더욱 꽉 잡으면서, 카게야마를 다시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바닥을 향했던 그 눈길은 이제 곧게 뻗어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고, 푸른 눈동자. 밤하늘 같은 눈동자.

토비오쨩.”

발을 멈추고, 오이카와가 낮게 불렀다.

?”

카게야마가 고개를 돌린 순간, 조금 놀란 표정으로 몸을 살짝 뒤로 뺐다.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 오이카와의 눈동자가 있었다. 카게야마의 입술이 당황한 탓일까, 슬며시 벌어졌다. 오이카와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틀고 마치 키스할 것 같은 모양새로 카게야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 말을 내뱉지 못한 카게야마의 입술에서 뜨거운 한숨이 나왔다. 결국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눈동자를 끝까지 바라보지 못하고 눈꼬리를 물들이면서 눈을 꼭 감았다.

,”

오이카와가 못 참겠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카게야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슬며시 뜨자, 오이카와는 푸하핫, 매끄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 그러게 솔직해지라니까?”

오이카와가 장난스레 웃어 보이며 놀리듯이 말하자, 카게야마의 노란 끼 도는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이내 인상을 찌푸리면서 오이카와와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줘서 강하게 끌어당겼다. , 어라? 무방비하게 웃고 있던 몸이 좀전과 같이 카게야마 쪽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오이카와는 웃음을 거뒀다. 카게야마의 얼굴이 오이카와의 옆으로 기울어지더니, 그 코끝이 귀 뒤의 연한 살을 간지럽혔다.

저라고 오이카와씨 못 놀릴 줄 아세요?”

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스며들더니, 이내 귓바퀴에 날카로운 통증이 훅 퍼졌다.

우왁?!”

오이카와가 귀를 손으로 감싸면서 펄쩍 뛰었다. 순식간에 통증은 사그라들었지만, 징징 울리는 욱신거림은 가시지 않았다. 여름이어서 그런걸까, 더운 날씨 때문인 걸까. 오이카와의 흰 피부가 연한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투명한 땀이 한 방울 흐르고 있던 얼굴도 마찬가지여서, 붉어진 카게야마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오이카와 또한 몸에 열이 오르고 있었다.

,

말이 이어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선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는데, 정작 나오는 건 공기 거품뿐이었다. 카게야마는 인상 나쁜 얼굴로 오이카와를 째려보면서 아직도 잡고 있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습기가 손과 손 사이에 그득했다. 언제 땀방울이 배어 나와서 흘러내릴지 모를 정도로, 손가락 사이사이에 몽글몽글 열이 맺혀있었다.

이상해. 이거, 뭔가 이상해.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토비오쨩이 나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나? 토비오쨩이 먼저 나를 좋아했고, 그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었고, 난 그저그저. 그런데도 왜 자꾸만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지. 죽을 것만 같이,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카게야마와 이어진 손이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이대로 녹아서, 모두 녹아서 그대로 손이 없어지는 건 아닐까 할 정도로.

오이카와씨, 두근거리고 있죠?”

카게야마가 쌤통이다라는 건방진 표정으로 툭 내뱉었다. 요 녀석이? 짜증이 확 치밀었지만 그 벌려진 입 사이로 고른 치아 선열이 보이자, 카게야마가 깨문 귓바퀴가 다시 욱신거렸다. 그가 깨물었던 잇모양이 하나하나 느껴져서, 귀가 마치 불에 덴 듯이 뜨거웠다.

아니거든?”

전 두근거려요.”

?”

오이카와씨 때문이 아닌 건 확실하네요.”

건방지네.”

오이카와씨도요.”

조금도 지지 않으려는지 카게야마는 미간에 힘을 주고 오이카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을 따라오던 매미는 울지 않고 있었다. 방금까지 강하게 울던 소리가 그치고, 조용한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었다. 잡고 있는 손에 감각이 없었다. 어느새 서로 간에 깍지를 끼고, 조금의 틈도 없이 겹쳐진 손안에는 더운 공기가 가득했다. 열기를 담은 땀방울이 목을 타고 흘렀다. 입술을 슬며시 열고, 오이카와는 낮게 내뱉었다.

건방진 토비오쨩.”

고른 치열이 보이는, 살짝 벌려진 카게야마의 입술에 오이카와는 그대로 가볍게 키스했다. 메마른 입술은 약간 짠맛이 났다. 카게야마의 땀 냄새가 났다. 여름밤의 향기였다. 매미 한 마리가 한차례 크게 울었지만, 오이카와에게는 카게야마의 숨 삼키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날이 더웠다. 본격적인 여름이 오고 있었다.













 Tell me, Please don’t t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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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kawa side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티가 나는 법이다. 사람의 감정을 예민하게 느끼는 건 선천적인 걸까, 그에 대해선 뭐라 말로 할 수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목소리 톤을 높이면서 말을 거는 여자아이들, 모른 척 기대는 좁은 어깨, 남자치고 피부가 희다면서 가볍게 하는 접촉들. 그런 게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자연적으로 머릿속에서 전환되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자신이 있었다. 여름은 낮이 길다는 것과 같이 당연한 이치인 것처럼.

역시 카게야마 토비오는 날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머릿속에 뚱한 얼굴이 떠올랐다. 노란 끼가 도는 피부에 까만 머리, ‘뭐하러 오셨어요.’하며 삐죽 튀어나온 입술. 이상하게 웃음이 피어올랐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태도, 저는 모르겠지만 손끝까지 긴장한 것 같은 그 모습은 좋아한다고 온 몸으로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오이카와는 가는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고 슬며시 미소 지었다. 옆에서 이와이즈미가 또 무슨 이상한 짓 꾸미고 있냐며 험악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오이카와는 피식 웃어 보이며

그냥. 솔직하지 못하구나 싶어서.”

가볍게 내뱉을 뿐이었다. 연습이 없는 날의 귀갓길 가운데로 햇빛은 부서지며 떨어지고 있었다. 몸에 달라붙는 습기가 끈적거렸다. 뜨끈한 바람이 드러난 팔에 닿아서, 오이카와는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카라스노에 도착했을 무렵엔 석양이 바닥 저변에 녹아들고 있었다. 더위가 한풀 꺾인 저녁나절은 매미 소리도 한풀 꺾여 낮에 비해서 고요했다. 오이카와는 저 멀리서 걸어오는 무리를 보고 가방을 고쳐맸다. 지그시 한 사람만을 향한 시선을 따라가면, 오이카와를 발견한 건지 강한 인상을 쓰고 있는 험악한 표정의 후배가 보였다. 오이카와가 눈을 가늘게 굽히면서 안녕, 토비오쨩. 가볍게 내뱉고 손을 살살 흔들어 보이면, 카게야마는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강하게 한숨을 쉰 뒤 무리 속의 누군가에게 뭐라 뭐라 말을 하고 오이카와쪽으로 걸어왔다. 카게야마가 다가오면 올수록 그 까만 저지에 노을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까만 머리카락에도, 꾹 다문 입술에도. 어둑해져 가는 저녁에 얼굴이 또렷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이르자, 카게야마는 발을 멈췄다. 더는 찌푸려지지 않는 미간을 더욱 좁히면서, 뚱한 입술을 열었다.

뭐하러 오셨어요.”

토비오쨩 보러.”

거짓말 치지 마세요.”

조금의 쉼도 없이 주고받은 말 뒤에 카게야마는 시선을 틀었다. 잠시간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오이카와를 그대로 지나치려는지 몸을 움직였다. 오이카와가 서둘러 손을 뻗어 카게야마의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그냥 가지 말고. ? 할 말 있으니까.”

…….”

카게야마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오이카와와, 오이카와가 붙잡은 팔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 입술이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잠시간 달싹였지만 오이카와가 응? 운을 떼자 다시 꾹 닫혔다. 연습을 끝낸 몸에서는 연한 땀 냄새가 나서, 오이카와는 이상하게 그리운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시절 같이 남아서 늦게까지 연습하던 날은 바람에 실려 카게야마의 땀 냄새가 났었다. 시선이 비슷해질 정도로 키가 자라도, 예전에는 순진한 표정을 짓던 얼굴에 이제는 짜증이 가득해도, 예전과는 달리 굵어진 팔이 한 손에 들어오지 않아도, 카게야마는 카게야마였다.

 

 

저녁이 물드는 카페에는 사람이 적었다. 뚱한 표정으로 눈앞에서 연거푸 물만 마셔대는 카게야마를 보면서, 오이카와는 기어코 웃음을 지었다. 입꼬리를 올린 오이카와를 보더니 카게야마는 먼저 운을 뗐다.

할 말이 뭔데요.”

있지, 토비오쨩.”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카게야마가 놀란 듯 주춤거리며 몸을 뒤로 조금 뺐다. 열이 올랐던 몸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닿은 걸까, 그 팔을 조금 떨면서.

솔직하게 말하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오이카와는 아이스티를 한 모금 마셨다. 간질간질한 목구멍을 타고 톡톡 튀는 아이스티가 내려갔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뭐가요?”

오이카와는 피식 웃더니, 아이스티의 얼음을 빨대로 휘적휘적 흔들었다.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다 아니까 괜찮아. 솔직하게 말해. 오이카와씨의 대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처음부터 정해져있었다. 카게야마가 어떤 식으로 고백하든, 오이카와의 대답은 한가지였다. 여름에는 시원한 음료가 마시고 싶다는 당연한 이치처럼. 카게야마는 얼마간 조용한 표정을 짓더니, 오이카와가 장난스레 지어 보인 미소에 이내 웃어 보였다.

? 웃었다고?

오이카와는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마시던 아이스티를 내려놓았다. 아무리 봐도 눈앞의 후배는 인상 나쁘게 웃고 있었다.

그러는 오이카와씨는요?”

,?”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지 못한 상황에 오이카와는 잠시간 머릿속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카페 안은 조용했고, 카게야마는 웃고 있었고, 시원했던 에어컨 바람은 어느새 소소한 한기를 주고 있었다. 어떤 말이든 오이카와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정해놓지 않은 대답이 나오고 말았다. 카게야마는 소름이 돋는 미소를 거두더니 조용한 얼굴로 오이카와를 바라봤다.

오이카와씨가 뭘 생각하는지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카게야마의 손이 튀어나왔다. 그 손이 오이카와의 넥타이를 낚아채고 끌어당기더니, 두 입술 사이에 아주 조금의 간격만을 남겨두고 카게야마는 입을 열었다.

너무 바보로 보지 마시죠.”

입술에 와 닿는 뜨거운 입김에 오이카와는 입술이 덜덜 떨리는 느낌이었다. 잡고 있던 넥타이를 던지듯이 내려놓은 카게야마는 무언가 해냈다는 표정으로 가방을 들고 카페 밖으로 나가버렸다. 오이카와는 얼마간 아무 말도 못 하고 입만 벌린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간질이던 이마, 바로 앞에서 마치 별이 담긴 듯 반짝이던 검고 푸른 눈동자. 귓속을 울리는 낮은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저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느껴져 머릿속이 다시 한 번 새하얘졌다.

뭐야, 토비오쨩?”

얼굴이 뜨거웠다. 카페 안에서 저만 다른 세상인 것처럼, 온몸이 뜨거워서 오이카와는 손을 꽉 쥐었다. 카게야마에게 잡혔던 넥타이에 주름이 져 있었다. 목이 타서 아이스티를 한 모금 마셔도 가시지를 않았다. 귓속에 들렸던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재차 떠오르면, 다시 열이 올라 목구멍을 태웠다.

…… 토비오쨩?”

그 까맣고 푸르던 눈동자가, 저를 자꾸만 바라보고 있는 착각이 일었다.

 

 

 

 

 

 

Kageyama side

 

 

오이카와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옛날부터 그는 그랬다. 무언가를 꾸미고, 나를 놀리고, 장난치고, 자기가 한껏 즐거운 다음에 남겨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고. 중학교 시절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그랬다. 서브를 가르쳐달라는 나를 내치고, 혼자 앞으로 나아가고. 졸업식 날 세이죠에 가도 되나요? 라고 물었을 때 그건 토비오쨩이 알아서 할 일이지, 저 혼자 졸업해버리고. 오이카와는 그랬다.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와 마주할 때면 또 어떤 짓을 당할까 하는 생각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카게야마는 공을 올리던 손을 멈췄다. 아무도 없을 때 하는 연습은 조용하고 기분이 좋았다. 새벽 기운은 아직 오르지 못한 태양 빛을 가려주어 선선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런데도 열이 모인 몸을 가라앉히기 위해 카게야마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낮게 숨을 내뱉자 폐에 가득했던 뜨거운 열기가 한차례 빠져나갔다. 그래도, 이제 예전과는 다르다. 당하지만은 않을 거니까. 다시 배구공을 들어 올리고, 서브 자세를 취했다. 뭘 꾸미는지는 모른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전날, 오이카와가 갑작스레 찾아온 것도 결국엔 그런 일이겠지. 날 놀리려는 일. 알고 있으면서도 그 석양이 녹아든 웃는 얼굴에, 이상하게 저 안쪽이 욱신거리는 건 카게야마에게 일종의 병이었다. 고질병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사라지질 않는 지독한 병. 서브를 내려치는 맛이 좋지 않았다. 공이 저 바깥쪽으로 빠져 아웃코스로 날아들었다. , 짧게 혀를 차고 카게야마는 재차 공을 들었다.

토비오쨩, 솔직하게 말하지? 그의 정해진 순서였다. 먼저 저의 마음을 파헤치고, 무언가 재미난 건 없을까 떠보고. 바보같이 거기에 걸려들어서 저 속까지 드러내 보이면, 오이카와는 그 안을 온통 할퀴는 사람이었다. 여자애들이 자주 말하는, 쇼트케이크에서 딸기만 빼 먹는 얄미운 사람이란 건 이럴 때 쓰는 말인 걸까. 자세한 건 모르지만 비슷한 말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뭘 꾸미는지는 몰라도 이제 당신 원하는 대로는 안 될 거니까. 오이카와는 어차피 저를 놀릴 생각만 가득하니까, 나도 내 맘대로 할 뿐이었다.

카게야마는 강하게 팔을 휘둘렀다.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강하게 내리치자, 공이 슬쩍 휘어 아웃선 아슬아슬한 곳에 꽂혔다. 땀으로 흠뻑 젖은 티셔츠를 들어 올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쓸어 닦았다. 더워지고 있었다. 체육관의 열린 창문으로 후덥지근한 바람과 습기가 카게야마를 온통 휘어 감았다. 입술을 꾹 다물고, 한번 고개를 끄덕인 뒤 카게야마는 재차 공을 들어 올렸다. 반 박자 쉬고, 도움닫기를 하고. 팔을 휘두르면. 한 번 해보자구요, 오이카와씨.

오이카와씨가 좋아하는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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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와 생일기념 연성 첫번째. 상중하로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평소 쓰던 느낌이 아니라 뭔가 어색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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