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게

너를 사랑한다는 것 01








너를 만나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아는 사람만 가는 편집샵에서 평소 사고 싶었던 재킷을 사고, 조금 이르지만 초겨울 용으로 부드러운 털로 짜인 갈색 목도리를 샀다. 무슨 변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검은색 목도리도 하나 손에 들었다. 가게 밖에는 몇몇 사람만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지나간 여자 두 명은 군청색 털모자를 세트로 쓰고 있었다. 입술이 붉었다. 나는 그 여자들 뒤에 자리를 잡고 몇 명의 행인으로 이루어진 기류에 몸을 맡겼다. 가을에서 겨울로 지나가는 계절의 자리에는 낡은 낙엽 잎만 몇 개 바닥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목도리 두 개가 담긴 갈색 봉투를 한 손으로 여유 있게 잡고, 얇은 코트를 반대쪽 손에 들었다.

아주 오랜만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정의는 아주 모호했다. 나에게는 지나간 계절만큼이나 의미 없던 시간들이 너에게는 세상 마지막 날보다도 중요한 날이었을지도 몰랐다. 나의 계절에서 네가 없던 시간의 축은 일그러져 아주 빠르고도 천천히, 때로는 거꾸로 흐르기도 했지만 대체로 하루라는 날은 지나갔다. 시간이란 그랬다. 시침이 없든 분침이 없든 혹은 그 두 개가 모두 존재하지 않아도 의식 없이 흘러가는 게 시간이었다.

앞서 걷던 여자 두 명이 오른쪽 골목길로 발을 틀었다. 유명한 호텔의 애프터눈 티세트 광고 간판이 골목길 앞에 서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샌드위치와 다르트류가 프린팅된 종이는 그냥 보기에도 고급 재질이었다. 3단 트레이 앞에는 흰색에 선이 예쁘게 자리 잡은 도자기와 찻잔이 놓여있었다. 찻잔 안의 홍차가 김이라도 오를 듯 선명한 빛깔이었다. 군청색 털모자를 바라보면서 멍하니 따라 들어간 뻔한 다리를 멈추고 다시 다른 대열에 끼어들었다. 거리 양쪽에 놓인 건물은 3층 건물도 있었고 10층 건물도 있었다. 얼마 전 모 유명 가수가 공연했다던 넓은 콘서트홀도 있는 곳이었고, 동네 구멍가게 수준으로 물건 몇 가지만 들여놓은 슈퍼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너를 만나기로 한 곳은 한 블록 넘어서 테라스가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초겨울 바람이 바닥을 때리고 낙엽 몇 개가 팔랑이다 다시 가라앉았다. 얼마 전 머리를 자른 뒤로 뒷목이 서늘해서, 방금 산 목도리를 한번 둘렀다. 코트는 손에 들고서 목도리만 두른 모습이 내가 봐도 우스울 것 같았다. 넌 웃지 않겠지만, 조금 이상하게 쳐다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와 마지막으로 만난 건 여름 한낮이었다. 손으로 가려도 각진 햇볕이 머리를 덮었다. 만나기로 한 곳은 시골이라 할 수 있는 미야기에서 30분에 한 번씩만 버스가 오는 버스정류장이었다. 처음 버스가 다니기 시작할 때에 만들어졌던 버스정류장은 페인트칠 한 곳이 군데군데 벗겨져 시커먼 회반죽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와는 어울리지 않게 몇 년 전 새로 단 유리 천장은 햇빛을 끌어모아 바닥을 쪼아대고 있었다. 뒤편 나무그늘에서 자라기 시작한 담쟁이 넝쿨이 언제인지 모르게 뒤편 기둥 반 이상을 휘돌아 감쌌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으면 으레 그렇듯, 버스를 탈 일도 없는데 괜스레 차 한 대 보이지 않는 차도를 몇 번이고 쳐다봤다. 오지 않는 너에 대한 생각이 더위로 눌린 의식 안에 수북이 쌓였다.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은 했다. 확신으로 가기까지는 이 자리에 나올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기대라는 품목이 심장에 남아있던 것 같다. 기대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덧없는 믿음이 버스 한두 대가 지나갈 때마다 여름 태양에 스러져갔다. 핸드폰을 두고 나온 건 실수였을지도 몰랐다. 약속시간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시간의 축은 가끔씩 흔들거렸고, 그날따라 지구 전체가 누워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씨."

네 목소리가 들려서 눈을 떴다. 언제인지 모르게 나는 얼 풋 잠이 들어 있었다. 꿈일까, 현실일까 확신이 들지 않는 경계에서 나는 서 있었고 그건 꿈으로 결론이 나 있었다. 너는 검은색 티셔츠에 파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살포시 열린 입술 사이에서 약한 한숨이 나왔다. 네 뜨거운 손이 맞닿아있는 어깨가 다른 조직으로 이루어진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토비오."

잠긴 목소리였다. 네 이름의 운을 떼고서부터 제 박동을 찾지 못하는 심장이 강한 햇볕에 짓눌려 찬찬히 속도를 되찾았다. 카게야마 뒤편으로 버스가 한 대 멈췄다. 버스 창문에 기대어 자고 있는 한 여성만이 유일한 승객이었다. 버스 출입문이 느릿하게 열리는 걸 너와 내가 바라봤다. 잠시간의 시간적 간극이 지나고 버스 문이 다시 닫혔다. 몇 차례 바닥을 긁는 시동 소리가 나더니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창문에 기대고 있던 여성의 머리가 조금씩 흔들렸다. 카게야마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찰나는 영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때가 있었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모르는 척하려 했던 사실은 네 눈동자 안에 있었다. 바람 한편 때문에 흔들린 담쟁이 넝쿨의 버서석거리는 소리가, 기대라는 의미 없던 믿음이 애초에 가졌던 확신으로 바뀌는 소리 같았다. 생각이 갈음하는 한 장면에서는 소리도 운을 띄워주는 법이다.

"문자 보냈는데, 못 보셨어요?"

"핸드폰을 두고 나오는 바람에."

"……."

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게 나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너와 나 모두 알고 있는 또 다른 무언가에 대한 고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눈이 몇 번 왕복했다. 유리 천장이 모아 내린 햇빛이 닿아 네 뺨을 비추고 또 빛났다. 너는 닫혀 있던 입을 몇 번 여닫은 후, 다시 열었다. 나는 입을 열어야만 했다. 눌린 배 안에 힘을 주고, 잠긴 목에서 버서석 거리는 소리라도 내야 했다. 알 수 없는 책임감은 어디서 오는 거였을까. 어쩌면 난 그제야 내가 너보다 2년 선배라는 사실을 억지로 인식한 걸지도 몰랐다.

"헤어지자고?"

"……."

너는 약간 놀란 듯 어깨에 둔 손을 조금 떨었다. 열렸던 입이 다시 닫혔다. 긍정하는 데에는 말 한마디보다 행동 하나가 더 진실을 담고 있다. 카게야마 토비오라는 존재에게는 더욱이 그랬다. 확신은 순간 진실로 바뀌어 빠른 뇌내 변환을 거쳤다. 어깨에 놓여있던 네 손을 잡았다. 너에게 닿은 부분만 다른 조직으로 변했다. 시간의 축은 다시 조금씩 어긋나,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다시 혼란을 자아냈다. 다만 가로젓지 않는 네 얼굴은 진실이었다.

"그래. 그래야지."

"오이카와씨."

너는 슬픈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왜 네게 그런 눈빛을 받아야 하는지, 나는 또 왜 네 눈동자를 보며 심장이 밟힌듯한 기분을 느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당연스레 내게 속해 있었던 애정의 조각은 몸에서 떨어져나와 제 자리를 찾아갔다. 너는 나와는 관계없는 타인이 되어있었다. 사랑의 말미를 끊는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나의 손이 더이상 네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는 이미 지나간 버스를 떠올렸다. 30분에 한 번씩 버스가 온다고 해도, 같은 버스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그 사실이 새삼 지나치게 슬프다는 생각을 했다. 너는 숨이 끊길 듯 아픈 표정을 지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내가 들은 너의 마지막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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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야마 토비오입니다.”

조그맣게 등을 말면 한 마리의 작은 곰이 되진 않을까 착각할 정도로 아기 같은 몸이었다. 한 팔에 폭 들어오는 어깨, 깨물면 말랑말랑한 떡처럼 자국이 금세 사라져버리는 보드라운 귀, 건포도 알처럼 작은 눈동자는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까맸다.

배구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외동아들로 귀하게 자랐을 것 같은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두 입술이 작았다. 카게야마 토비오에 대한 첫인상은 작다인형 같다였다. 굳이 무언가를 더 붙인다면, 오이카와는 고민하는 듯 고개를 한번 갸웃했다.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지.

 

오이카와 선배, 안녕하세요.”

얏호, 토비오쨩안녕, 이라고 말하려는데. 왜 그런 표정인 거야?”

양 볼에 불만 주머니를 가득 담은 햄스터보다는 무서운 표정인카게야마가 배구공을 들고 소리도 없이 오이카와 옆으로 다가왔다. 배구공 너머의 작은 포도알 같은 눈동자 두 개가 오이카와를 원망스럽다는 듯 쳐다봤다.

가르쳐주시기로 하셨잖아요.”

아니, 내가 언제? 그보다 뭘 말하는 건지 제대로 말해줄래?”

거짓말쟁이.”

토비오쨩, 오이카와씨는 팬클럽 여자아이들에게 맹세코 거짓말은 안 하거든? 네가 멋대로 생각한 거잖아. ‘우유 빵 사다 주면 토스 요령 가르쳐주는걸. 역시 너였구나! 부실에서 자고 있을 때 우유 빵 얼굴에 던지고 간 녀석이!”

오이카와는 이제야 범인을 찾았다며 카게야마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아 잔뜩 헤집었다. 카게야마는 얼마간 오이카와의 공격을 받더니 입이 불뚝 튀어나왔다.

그치만! 오이카와 선배 자주 말하잖아요. ‘우유 빵 사면 알려주지라고.”

너한텐 말한 적 없는데.”

…….”

그 말이 사실인지라 카게야마는 할 말이 없었다. 다만 입을 쭉 내밀고 강한 호소가 담긴 눈동자로 오이카와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눈으로 봐도 소용없어. 이런 흐름은 이미 오이카와에게 익숙했다.

토비오쨩한텐 가르쳐 줄 생각 없으니까. 애초에 가르쳐 줄 의무도 없고, 네가 말하는 요령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애초에 연습도 없이 요령이나 배워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게 비겁한 거 아니야? 토비오쨩 말로는 연습, 연습 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비겁한 행동을 하려는 건지 알고 있어?”

……,”

카게야마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검은 눈동자 안에 울먹울먹 물이 스며들더니, 금방이라도 굵은 눈물방울을 뚝 떨어뜨릴 것 같이 아래 속눈썹에 물방울이 가득 고였다. 이런, 큰일 났다. 오이카와는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다. 배구공을 들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카게야마는 버려진 새끼 곰 같았다. 우두커니 서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걸 참는 게 한계인 작은 중학교 1학년생은 결국 1학년들이 모여서 연습하는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후배 좀 괴롭히지 마라.”

카게야마를 피해서 구석진 자리로 온 오이카와 옆에는 이와이즈미가 있었다. 비난하는 것도, 타이르는 것도 아니라 아주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듯 낮게 내뱉은 말에 오이카와는 인상을 찌푸렸다.

후배 괴롭히는 거 아니야. 토비오쨩만 괴롭힌다고.”

카게야마도 후배잖아. 네가 뭣 때문에 그러는지는 알겠는데, 방금 그건 오히려 네가 더 비겁한 거 아니냐. 꼴사나운 모습 보이면 내가 패버린다.”

이와쨩 진짜 누구 편이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연습이나 해라, 바보카와.”

이와이즈미의 날카로운 말투에 네네. 입술에만 겉도는 말을 가볍게 내뱉고, 오이카와는 가까이 있는 배구공 하나를 들었다. 오이카와도 알고 있었다. 비겁하고, 유치한 건 자신이었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다른 부원에 비해서 달성하고 있는 엄청난 연습량이나, 연습에 있어 중학교 1학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진지한 태도 등. 적어도 그에게 연습에 있어 가타부타 말할 수 있는 건 이 많은 부원 중에서도 몇 없을 것이다.

짜증 난다고.’

오이카와는 인상을 찌푸리며 공을 들어 올렸다.

귀엽지도 않고, 인상도 더럽고, 툭하면 귀찮게 굴고. 하나도, 하나도

하나도 맘에 안 들어. 숨을 참고 던진 공은 궤도를 크게 벗어나 체육관 귀퉁이에 꽂혔다. 오이카와는 다시 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카게야마 토비오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이 싫었다.

넌 다르구나.”

오이카와는 언젠가 들었던 감독의 말을 떠올렸다. 키타가와 제1중학교 배구부에 입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감독은 오이카와를 개인적으로 불러다 앉혀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많이 다르구나. 그래서 많이 힘들었을 거야. 언젠가 배구가 즐겁지 않은 시기도 올 텐데, 그래도 계속할 수 있겠니?”

힘든 연습은 지금도 싫어하고요, 여자애들한테 인기 많은 건 제 탓이 아닌데도 자꾸 뭐라고 하는 선배들도 싫고요, 땀으로 몸이 끈적해지는 것도 싫어요. 그래도, 그래도 말이죠.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너와 비슷한 사람은 만날 수 있을 거 같은데. 내가 볼 때, 너 같은 애가 이 세계에 적진 않거든. 단지 같은 세터로서 네가 어떤 입장인지 네 자신만큼 이해할 수 있는 애가 있을진 모르겠다만. 이 배구계에 한 명쯤은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외롭지만은 않지?”

너무 일찍 만난 건 아닐까요, 감독님. 오이카와는 인상을 구겼다. 방금 던진 공은 아슬아슬하게 아웃라인을 넘어섰다. 오이카와는 알고 있었다. 카게야마도 저와 비슷하다는 걸. 어쩌면, 많은 면이. 또 어쩌면, 많은 면이 다를지도 몰랐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만남으로서 저에 대해서 더 깨달은 점이 많았다. 아마 전에 오이카와와 대화를 나눴던 감독이 지금 카게야마를 만난다면, ‘넌 다른 존재구나.’ 정도를 말할지도 몰랐다. 오이카와 또한 카게야마를 감독으로서 만난다면 그렇게 말했겠지.

필요 없는데 말야. 오이카와는 겨우 원하는 궤도로 날아간 공을 보면서 천천히 미소 지었다. 필요 없었다. 누구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부족하고, 어떤 부분을 가르쳐주면 더 높게 날아오를 수 있는지 오이카와는 알고 있었다. 그런 눈은 필요 없었다.

카게야마 토비오입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부터 오이카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단지 그건 너무나도 잔혹하고적어도 오이카와에게는지독하게 현실적이었다. 오이카와에게 카게야마는 확실히 다른 존재였다. 카레를 좋아하고, 만두를 두 볼 빵빵하게 채우고 오물거리는 그 작은 아이는 오이카와가 가장 만나고 싶었던 아이였다. 또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던 존재였다. 오이카와는 침을 삼켰다. 쳐다보는 눈빛도 싫었다. 동그란 눈동자를 빛내며 저한테 찾아와 가르쳐주세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 입이 싫었다. 바보같이 곧이곧대로 들으며, 저가 해내는 모든 일을 아주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 작은 머리통이 싫었다.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을 거니까. 오이카와는 숨을 삼켰다. 공을 다시 한 번 들어 올렸다. 이건 거야. ‘오이카와 토오루의 거라고.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를 빤히 바라보던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작은 어깨가 놀란 듯 조금 들썩이더니, 다시 아무 말도 없이 오이카와를 바라봤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배구부에 입부하고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둘 사이에 오갔던 대화를 떠올렸다.

 

카게야마 토비오(飛雄)라니, 독특한 이름이네.”

연습이 끝나고 어쩌다 우연히 둘이서 돌아가게 된 날, 벚꽃잎이 카펫처럼 깔린 길을 걸으면서 오이카와는 말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웃하고 오이카와를 바라봤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런가요?”

그 정도의 말만 하고선, 카게야마는 다시 열심히 발을 움직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주 쓰는 한자는 아니었다. 남자애 이름으로 친다면야, 뭐 강해 보이니까 좋지만.

귀엽지 않잖아.”

오이카와는 짓궂게 웃었다. 카게야마는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엔 눈썹도 구부린 채.

이름이 귀여울 필요는 없잖아요.”

중요한 문제거든? , 쨩 붙이면 귀엽지 않을까? 어때, 토비오쨩?”

이상해요.”

잔말말고. 토비오쨩은 조금 귀엽게 들리네. 새끼 다람쥐 같고.”

쨩만 붙였다고 그런 느낌이 들진 않는데요.”

넌 항상 말 한마디가 더 많다니까. 건방진 토비오쨩.”

벚꽃잎이 하롱하롱 떨어져서, 오이카와와 카게야마 사이로 흘러내렸다. 이른 봄날치고 새가 높이 나는 푸근한 날씨였다. 카게야마는 입꼬리를 꾸물거리면서 볼을 슬며시 물들였다. 귀 끝이 벚꽃처럼 옅은 분홍색으로 물들어있었다. , 지금 부끄러워 하는 건가. 오이카와는 이상하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작은 어깨가 평소보다 더 작아 보여서, 저도 모르게 꼭 끌어안고 싶었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간지럽힐 정도로 불어오자, 벚꽃잎의 홍수가 하늘 위로 떠올랐다. 동그란 접시 모양의 구름 사이사이에 벚꽃잎이 하늘거리며 흘러다녔다. 귀 끝이 붉어진 카게야마 토비오가 귀여웠던 봄 첫날이었다.




-

오이카게 전력 첫 글이 정말 이상해서..죄송합니다...ㅇ<-<

오이카게 안티 아니에요.. 오이카게 쵱컾입니다.. 지각한데다가 이런..글을...ㅠ.ㅠ..


두 사람의 첫만남은 꽤 좋지 않았을 거 같고, 카게야마랑 오이카와 서로에게 좋든 나쁘든 자극을 주는 만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중학생의 토비오는 좀 더 감정을 숨길 줄 몰랐을거같고, 오이카와는 사고가 어린 중딩이었을거같네요.

그런 두 사람도 봄날처럼 따스한 날 정도는 있지 않았을까요. 그냥 그런 생각에서 나온 글입니다. 하하..:D

다음전력은 좀 더..열심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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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rnal Ring



 

 

오이카와 선배의 왼손 약지는 쉬질 않았다. 중학교 시절 처음 여자친구를 사귀었을 때부터, 작은 반지는 거기서 빠지질 않았다. 반지의 종류, 어떤 형태, 혹은 박힌 보석의 모양이 바뀌는 날은 있어도 약지가 비어있는 날은 없었다. 연습할 때 반지는 잠깐 모습을 감췄다가, 연습이 끝나고 여자친구와 만나서 돌아가기 전에 반드시 반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조그만 걸 그렇게 잃어버리지도 않고 용케 뺐다 꼈다 한다고 감탄도 했다. 테이핑도 손수 정성스레 묶는 섬세함이 거기서 드러나는 걸까, 반지는 깨끗하게 보관되었다가 다시 손가락 안에 자리 잡았다.

 

그게, 그렇잖아요.”

 

오이카와 선배의 길고 가느다란, 손톱이 잘 정돈된 약지에는 항상 예쁜 모양의 반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연습이 끝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오이카와 선배는 그 반지를 다시 끼웠다. 몇 번이고 손을 여기저기 들었다 놨다 하며 반지가 빛을 반사하고 반짝이는 모습을 줄곧 바라봤다.

 

누구라도 그런 모습을 보면,”

 

그 손가락이 쉬는 건 아주 잠깐의 기간뿐이었다.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소문이 돌면 거짓말같이 오이카와 선배의 약지에선 반지가 사라졌다. 오이카와 선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오이카와 선배의 약지는 일종의 증거였다. 가설을 입증하기에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물적 증거였다.

 

생각하잖아요. 누구라도. , 정말 좋아하는구나. 여자친구.”

 

오이카와 선배의 약지가 아주 긴 휴식시간을 가졌다.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 시합이 끝난 후, 오이카와 선배는 한동안 새 여자친구를 사귀지 않았다. 단순한 변덕 정도겠지,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고, 날을 새는 것보다 달을 세는 게 더 빨라질 무렵 그 자리가 비어있는 게 당연한 때가 천천히 찾아왔다. 그 사이 오이카와 선배의 약지에는 반지가 남아있던 자국이 스르르 없어지고, 대신 선명한 테이핑 자국만 남아있게 되었다. 카게야마 토비오라는 이름의 내가, 남자인 내가, 오이카와 선배와 사귀게 된 건 그즈음이었다.

 

그래서 어땠어요?”

어땠냐고요?”

. 반지 받았을 때요. 전 그게 제일 궁금하네요.”

화났어요.”

화가 났다고요?”

.”

 

토비오쨩, 이거.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로 오이카와 선배는 입을 열었다. 갈색 각설탕 2개를 졸인 목소리였다. 달콤하고, 입 끝에서 녹아버리는 목소리. 내 손을 천천히 가져가서,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은 목소리보다도 조심스러웠다. 사귈까, 라는 애매한 말로 사귀기 시작한 지 손가락으로 꼽아보면 365일하고 3시간이었다. 간단히 말해 그 날은 사귀고 나서 1년째였다.

이게 뭔데요.

생애 처음 태어나서 모르는 척이란 걸 해봤다. 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구부러진 눈썹 형태에서 이미 오이카와 선배는 눈치챈 모양이었겠지만. 김빠진다는 듯이 웃더니 무슨 표정이 그래? 핀잔을 늘어놓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골랐다고. 아무래도, 남자용으로 2개는 없더라. 사이즈 조정을 좀 한 것뿐이고, 한번 껴보는 게 제일 좋을걸. 입술을 움직이며 혼자서 열심히 설명하는 오이카와 선배의 목소리가 멍한 귀 뒤편에서 울렸다.

오이카와 선배는 반지를 소중하다는 듯이 들어 올려서, 내 왼손 약지에 천천히 끼우려 했다.

하지 마세요. 개미 소리도 이보단 크겠다. 자학하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대신 손가락을 움츠렸다.

토비오?

왜 그러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오이카와 선배의 손에 들린 반지가 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비슷하다. 오이카와 선배의 약지에 끼워져 있던 반지들과 비슷했다. 어쩌면 똑같은 디자인이 하나쯤은 있을지도 몰랐다. 반지는 다 거기서 거기니까. 몇 번이고 바뀌었던, 지독히도 가벼웠던 그 반지들과 같은 색이기도 했다.

그건, 너무하잖아요. 너무하다고? 자꾸 억울한 감정이 들어 이상하게 눈이 시큰했다. 멍청아, 이런 데서 이상한 모습 보이지 말라고. 머릿속 카게야마 토비오가 뭐라뭐라 말하는데도 웅얼거리는 물소리로 바뀌어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너무하다고요. 하나도, 오이카와 선배가 아주 조금도 저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 안 하는 건 알고 있는데요. 이렇게까진 안 해도 되잖아요. 언젠가, ―…헤어지는 건알고, 있으니까.

아니, 토비오. 지금 무슨 소린데?

반지 얘기하고 있잖아요.

반지가 왜 헤어지는 얘기가 되는 건데?

반지니까요.

아니, 무슨 소리냐니까!

 

왜 웃으세요?”

아니, 죄송해요. 너무 웃겨서알 거 같아요. 카게야마씨가 왜 그랬는지. 반지는 증거였으니까요.”

오이카와 선배는 몰랐어요. 저도 몰랐죠. 저희 둘 다 몰랐어요. 서로에게 무슨 의미인지.”

 

헤어지면 뺄 거잖아요. 뺏다가, 사귀면 새로 끼고, 다시 헤어지면 반지는 없어지고. 그런 과정 중 하나일 뿐인 거잖아요. 저도, 그냥 결국 똑같이.

뭐가 불만인 건데.

반지가 빠지면 저희는 헤어지는 거잖아요. 헤어지면, 반지는 빠지고. 그럼 오이카와 선배의 왼손은 다시 반지를 끼울 테고, 전 그냥 버린 반지나 가지고 있겠죠.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오이카와는 드물게 진지하게 화내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빛이 붉게 물든 카게야마의 눈가를 훑었다. 부드럽게 잡았던 손에 힘을 주고선, 꽉 잡힌 카게야마의 왼손을 앙 깨물었다.

아얏! 날카로운 목소리를 흘린 카게야마는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오이카와를 바라봤다. 오이카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거칠게 말했다.

겨우 그런 생각 때문에, 이 오이카와씨가 주는 반지를 거절해?

꽉 깨문 자국을 지나, 반지가 카게야마의 왼손 약지에 꼭 들어맞았다. 주문 제작하기라도 한 것처럼 딱 맞는 사이즈에 카게야마는 순식간에 우울해졌다. 결국, 제 손가락에 들어가고 말았다. 언젠가 손가락에서 빠질 날만 기다리는 증거’.

이제 두 번 다시 반지는 안 살 거니까. 그걸로 끝이야.

그게 무슨 말인데요.

, 오이카와씨 왼손 약지에 끼워. 빨리.

거의 반강제로 오이카와의 약지에 세트로 만들어진 반지를 끼우고 난 뒤, 카게야마는 거의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울상을 짓고 있었다. 최악이다. 하필 1년 된 날에 이런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연애에 무지한 카게야마도 알고 있었다. 1년째 되는 날은 특별한 날이라는 걸. 적어도, 이런 걸 하는 날은 아니잖아. 입 밖으로 당장에라도 불만을 토로하고 싶은 카게야마와 달리, 오이카와는 만족스럽다는 듯 기분 좋게 웃으면서 반지를 몇 번이고 들여다봤다.

내 왼손 약지는 이걸로 끝이니까.

?

이제 반지는 죽을 때까지 이거 하나뿐이라고. 비싼 거로 사서 다행이지, 녹슬 때까지 끼고 다녀야 하니까.

무슨 말인데요.

이해 못하겠냐고, 바보야.

오이카와 선배는 눈꽃이 닿아 녹는 것처럼, 순간의 키스를 하고선 다시금 웃어 보였다. 흰 눈처럼 새하얀 미소였다.

 

또 웃으시네요.”

두 사람이 귀엽잖아요. 전 제 아내랑 그렇게 재밌게 연애해본 적은 없거든요. 애초에 아내랑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죄송해요. 제 얘기를 하려고 만난 게 아니었죠.”

괜찮아요. ‘재미나게 연애하는 게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 . , 죄송해요. ‘주례얘기였죠? 좋아요. 저라도 괜찮다면 얼마든지요.”

감사합니다.”

, 그 반지가 그거에요? 평생 하나뿐이라는 반지.”

. 결혼식 때도 이걸로 할 거라네요.”

오이카와씨나 카게야마씨나 정말, 엄청난 고집쟁이 같네요.”

워낙에 배구란 게 포기하면 지는 경기라서요.”

멋지네요. 두 사람 다. 약간 낡은 반지여도, 그 반지가 부러울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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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님 생일 축하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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