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l me, Please don’t tell

--

 

 




 

Oikawa side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티가 나는 법이다. 사람의 감정을 예민하게 느끼는 건 선천적인 걸까, 그에 대해선 뭐라 말로 할 수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목소리 톤을 높이면서 말을 거는 여자아이들, 모른 척 기대는 좁은 어깨, 남자치고 피부가 희다면서 가볍게 하는 접촉들. 그런 게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자연적으로 머릿속에서 전환되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자신이 있었다. 여름은 낮이 길다는 것과 같이 당연한 이치인 것처럼.

역시 카게야마 토비오는 날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머릿속에 뚱한 얼굴이 떠올랐다. 노란 끼가 도는 피부에 까만 머리, ‘뭐하러 오셨어요.’하며 삐죽 튀어나온 입술. 이상하게 웃음이 피어올랐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태도, 저는 모르겠지만 손끝까지 긴장한 것 같은 그 모습은 좋아한다고 온 몸으로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오이카와는 가는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고 슬며시 미소 지었다. 옆에서 이와이즈미가 또 무슨 이상한 짓 꾸미고 있냐며 험악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오이카와는 피식 웃어 보이며

그냥. 솔직하지 못하구나 싶어서.”

가볍게 내뱉을 뿐이었다. 연습이 없는 날의 귀갓길 가운데로 햇빛은 부서지며 떨어지고 있었다. 몸에 달라붙는 습기가 끈적거렸다. 뜨끈한 바람이 드러난 팔에 닿아서, 오이카와는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카라스노에 도착했을 무렵엔 석양이 바닥 저변에 녹아들고 있었다. 더위가 한풀 꺾인 저녁나절은 매미 소리도 한풀 꺾여 낮에 비해서 고요했다. 오이카와는 저 멀리서 걸어오는 무리를 보고 가방을 고쳐맸다. 지그시 한 사람만을 향한 시선을 따라가면, 오이카와를 발견한 건지 강한 인상을 쓰고 있는 험악한 표정의 후배가 보였다. 오이카와가 눈을 가늘게 굽히면서 안녕, 토비오쨩. 가볍게 내뱉고 손을 살살 흔들어 보이면, 카게야마는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강하게 한숨을 쉰 뒤 무리 속의 누군가에게 뭐라 뭐라 말을 하고 오이카와쪽으로 걸어왔다. 카게야마가 다가오면 올수록 그 까만 저지에 노을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까만 머리카락에도, 꾹 다문 입술에도. 어둑해져 가는 저녁에 얼굴이 또렷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이르자, 카게야마는 발을 멈췄다. 더는 찌푸려지지 않는 미간을 더욱 좁히면서, 뚱한 입술을 열었다.

뭐하러 오셨어요.”

토비오쨩 보러.”

거짓말 치지 마세요.”

조금의 쉼도 없이 주고받은 말 뒤에 카게야마는 시선을 틀었다. 잠시간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오이카와를 그대로 지나치려는지 몸을 움직였다. 오이카와가 서둘러 손을 뻗어 카게야마의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그냥 가지 말고. ? 할 말 있으니까.”

…….”

카게야마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오이카와와, 오이카와가 붙잡은 팔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 입술이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잠시간 달싹였지만 오이카와가 응? 운을 떼자 다시 꾹 닫혔다. 연습을 끝낸 몸에서는 연한 땀 냄새가 나서, 오이카와는 이상하게 그리운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시절 같이 남아서 늦게까지 연습하던 날은 바람에 실려 카게야마의 땀 냄새가 났었다. 시선이 비슷해질 정도로 키가 자라도, 예전에는 순진한 표정을 짓던 얼굴에 이제는 짜증이 가득해도, 예전과는 달리 굵어진 팔이 한 손에 들어오지 않아도, 카게야마는 카게야마였다.

 

 

저녁이 물드는 카페에는 사람이 적었다. 뚱한 표정으로 눈앞에서 연거푸 물만 마셔대는 카게야마를 보면서, 오이카와는 기어코 웃음을 지었다. 입꼬리를 올린 오이카와를 보더니 카게야마는 먼저 운을 뗐다.

할 말이 뭔데요.”

있지, 토비오쨩.”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카게야마가 놀란 듯 주춤거리며 몸을 뒤로 조금 뺐다. 열이 올랐던 몸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닿은 걸까, 그 팔을 조금 떨면서.

솔직하게 말하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오이카와는 아이스티를 한 모금 마셨다. 간질간질한 목구멍을 타고 톡톡 튀는 아이스티가 내려갔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뭐가요?”

오이카와는 피식 웃더니, 아이스티의 얼음을 빨대로 휘적휘적 흔들었다.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다 아니까 괜찮아. 솔직하게 말해. 오이카와씨의 대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처음부터 정해져있었다. 카게야마가 어떤 식으로 고백하든, 오이카와의 대답은 한가지였다. 여름에는 시원한 음료가 마시고 싶다는 당연한 이치처럼. 카게야마는 얼마간 조용한 표정을 짓더니, 오이카와가 장난스레 지어 보인 미소에 이내 웃어 보였다.

? 웃었다고?

오이카와는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마시던 아이스티를 내려놓았다. 아무리 봐도 눈앞의 후배는 인상 나쁘게 웃고 있었다.

그러는 오이카와씨는요?”

,?”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지 못한 상황에 오이카와는 잠시간 머릿속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카페 안은 조용했고, 카게야마는 웃고 있었고, 시원했던 에어컨 바람은 어느새 소소한 한기를 주고 있었다. 어떤 말이든 오이카와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정해놓지 않은 대답이 나오고 말았다. 카게야마는 소름이 돋는 미소를 거두더니 조용한 얼굴로 오이카와를 바라봤다.

오이카와씨가 뭘 생각하는지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카게야마의 손이 튀어나왔다. 그 손이 오이카와의 넥타이를 낚아채고 끌어당기더니, 두 입술 사이에 아주 조금의 간격만을 남겨두고 카게야마는 입을 열었다.

너무 바보로 보지 마시죠.”

입술에 와 닿는 뜨거운 입김에 오이카와는 입술이 덜덜 떨리는 느낌이었다. 잡고 있던 넥타이를 던지듯이 내려놓은 카게야마는 무언가 해냈다는 표정으로 가방을 들고 카페 밖으로 나가버렸다. 오이카와는 얼마간 아무 말도 못 하고 입만 벌린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간질이던 이마, 바로 앞에서 마치 별이 담긴 듯 반짝이던 검고 푸른 눈동자. 귓속을 울리는 낮은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저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느껴져 머릿속이 다시 한 번 새하얘졌다.

뭐야, 토비오쨩?”

얼굴이 뜨거웠다. 카페 안에서 저만 다른 세상인 것처럼, 온몸이 뜨거워서 오이카와는 손을 꽉 쥐었다. 카게야마에게 잡혔던 넥타이에 주름이 져 있었다. 목이 타서 아이스티를 한 모금 마셔도 가시지를 않았다. 귓속에 들렸던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재차 떠오르면, 다시 열이 올라 목구멍을 태웠다.

…… 토비오쨩?”

그 까맣고 푸르던 눈동자가, 저를 자꾸만 바라보고 있는 착각이 일었다.

 

 

 

 

 

 

Kageyama side

 

 

오이카와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옛날부터 그는 그랬다. 무언가를 꾸미고, 나를 놀리고, 장난치고, 자기가 한껏 즐거운 다음에 남겨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고. 중학교 시절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그랬다. 서브를 가르쳐달라는 나를 내치고, 혼자 앞으로 나아가고. 졸업식 날 세이죠에 가도 되나요? 라고 물었을 때 그건 토비오쨩이 알아서 할 일이지, 저 혼자 졸업해버리고. 오이카와는 그랬다.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와 마주할 때면 또 어떤 짓을 당할까 하는 생각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카게야마는 공을 올리던 손을 멈췄다. 아무도 없을 때 하는 연습은 조용하고 기분이 좋았다. 새벽 기운은 아직 오르지 못한 태양 빛을 가려주어 선선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런데도 열이 모인 몸을 가라앉히기 위해 카게야마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낮게 숨을 내뱉자 폐에 가득했던 뜨거운 열기가 한차례 빠져나갔다. 그래도, 이제 예전과는 다르다. 당하지만은 않을 거니까. 다시 배구공을 들어 올리고, 서브 자세를 취했다. 뭘 꾸미는지는 모른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전날, 오이카와가 갑작스레 찾아온 것도 결국엔 그런 일이겠지. 날 놀리려는 일. 알고 있으면서도 그 석양이 녹아든 웃는 얼굴에, 이상하게 저 안쪽이 욱신거리는 건 카게야마에게 일종의 병이었다. 고질병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사라지질 않는 지독한 병. 서브를 내려치는 맛이 좋지 않았다. 공이 저 바깥쪽으로 빠져 아웃코스로 날아들었다. , 짧게 혀를 차고 카게야마는 재차 공을 들었다.

토비오쨩, 솔직하게 말하지? 그의 정해진 순서였다. 먼저 저의 마음을 파헤치고, 무언가 재미난 건 없을까 떠보고. 바보같이 거기에 걸려들어서 저 속까지 드러내 보이면, 오이카와는 그 안을 온통 할퀴는 사람이었다. 여자애들이 자주 말하는, 쇼트케이크에서 딸기만 빼 먹는 얄미운 사람이란 건 이럴 때 쓰는 말인 걸까. 자세한 건 모르지만 비슷한 말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뭘 꾸미는지는 몰라도 이제 당신 원하는 대로는 안 될 거니까. 오이카와는 어차피 저를 놀릴 생각만 가득하니까, 나도 내 맘대로 할 뿐이었다.

카게야마는 강하게 팔을 휘둘렀다.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강하게 내리치자, 공이 슬쩍 휘어 아웃선 아슬아슬한 곳에 꽂혔다. 땀으로 흠뻑 젖은 티셔츠를 들어 올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쓸어 닦았다. 더워지고 있었다. 체육관의 열린 창문으로 후덥지근한 바람과 습기가 카게야마를 온통 휘어 감았다. 입술을 꾹 다물고, 한번 고개를 끄덕인 뒤 카게야마는 재차 공을 들어 올렸다. 반 박자 쉬고, 도움닫기를 하고. 팔을 휘두르면. 한 번 해보자구요, 오이카와씨.

오이카와씨가 좋아하는 수수께끼.









-

오이카와 생일기념 연성 첫번째. 상중하로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평소 쓰던 느낌이 아니라 뭔가 어색하네요...








만약 네가

 

 

 

 

 

연이어 내린 비로 공기 중에 수분이 가득했다. 카게야마는 창문을 열고,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창가에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 무너져 내릴 듯 쏟아지던 비는 어느새 보슬비로 바뀌어있었다. 젖은 냄새가 났다. 킁킁, 카게야마는 몇 번 소리 내어 비 냄새를 맡은 뒤 고개를 들었다. 검회색 구름이 온통 뒤덮인 하늘은 가느다란 실을 뚝뚝 끊어서 떨어뜨리고 있었다. 안개에 그대로 노출된 머리카락이 수분을 머금고 축축하게 내려앉았다.

 

비가 오고 있었다.

 

거기서 뭐 해, 토비오쨩? 비 다 들어오잖아.”

오이카와가 읽던 잡지를 내려놓고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흰색 브이넥에 주름진 청바지, 집에서의 그는 지나치게 바깥 모습과는 달랐다. 평소에는 쓰지도 않던 안경까지 쓰고, 홍차 빛 눈동자를 빛내며 소파에 앉아 월간 밸리를 읽는 그는 날씨와는 상관없이 기분이 좋아 보였다. ‘비 오는 날은 싫어, 머리가 맘에 안 드니까라고 했던 오이카와는 머리를 한쪽으로 빗어 넘긴 채였다. 쉬는 날이어도 머리 세팅은 반드시 했으면서. 비가 오는 날의 오이카와는 평소와는 다른 모습일 때가 많았다. 오이카와가 커피 테이블에 올려둔 코코아에서 나는 달콤한 향내가 거실 전체에 퍼져서, 비 냄새 사이사이로 흘러들어왔다.

비 냄새는 싫지 않아요.”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돌렸던 고개를 다시 창밖으로 향한 뒤,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이카와가 토비오쨩?’ 낮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으나 빗소리 뒤로 넘겨버린 채. 오이카와와 동거를 시작한 곳은 작은 임대주택이었다. 아직 대학생 신분인 카게야마 대신 오이카와 명의로 된 집. ‘같이 살까라고, 오이카와는 그 날 우산 아래에서 말했었다. 오늘같이 가랑비가 내리던 날, 비에 쫄딱 젖어서 조그만 구멍가게의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카게야마에게 오이카와는 오늘과 같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같이 살까, 토비오쨩.”

그 날 오이카와가 그 말을 건넨 건 단순한 변덕이었을까. 비 오는 날, 버려진 강아지와 눈이 마주치면 무심코 데려오고 마는 것처럼. 오이카와는 그 날 카게야마를 만나버렸기에, 카게야마와 같이 사는 걸까. 카게야마는 비에 젖은 강아지와 같은 눈을 하고 있던 걸까. 오이카와를 만나버리면, 카게야마는 그런 눈을 하고 마는 것일까. 서로가 어찌할 수 없었던 걸까. 카게야마가 오이카와를 보면 그런 눈을 하는 것도, 오이카와가 그런 눈을 한 카게야마를 보면 데려올 수밖에 없는 것도. 서로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던 걸까, 결국은.

오이카와는 같이 살기 시작한 이후 카게야마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집안일은 반반씩이니까라고만 말할 뿐이었다. 벌써 반년. 오이카와는 여전히 카게야마와 같이 살고 있다. 카게야마는 비 오는 날이면 거울을 들여다봤다. 버려진 강아지 같은 눈을 하고 있는 걸까, 난 아직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오이카와의 홍차 빛 눈에 비친 저를 아주 조금이라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저에게 오이카와가 어떤 존재인지 아주 조금도 모르는 오이카와와도 같이.

무슨 생각해?”

뒤에서 큰 손이 뻗어와 제 입술을 톡 치는 감각에 카게야마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서둘러 뒤를 바라보면 오이카와가 속 끝까지 훑는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색 뿔테 안경 너머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날카로워져 있었다. 카게야마의 정면에는 흰색 브이넥 사이로 보이는 쇄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전날 자신이 남겼던 붉은 자국이 여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자국이 사라지지 않은 걸 알고서 브이넥을 입은 게 분명하다. 성격 나쁜 건 변하질 않는군, 카게야마는 짧게 혀를 차고 고개를 돌렸다. 투둑, 툭 짧은 빗줄기가 창가에 떨어져 맑은소리를 냈다. 창 아래에는 꽃이 그려진 우산을 쓴 여고생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었다. 저러면 다 젖어버릴 텐데. 그런데도 강아지는 좋다고 물웅덩이를 철벅거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코코아의 달콤한 냄새, 비 냄새, 오이카와의 향수 냄새가 났다. 보드라운 입술이 뒷목 선을 따라 흘러내려 갔다.

,”

뿔테안경의 테두리가 귀 뒤편을 간지럽혔다. , 쪽 가벼운 소리를 내면서 내려가던 오이카와는 손을 올려 창틀을 잡고 있던 카게야마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창문, 닫는 게 좋지 않아?”

오이카와가 웃는 기색이 느껴졌다. 그 예쁜 손가락이 흘러 창문에 닿는 것을 보고, 카게야마는 눈을 가늘게 떴다. 창문 바깥, 아래층에서 키우는 화초에서 조그만 달팽이가 기어가고 있었다. 꼬물꼬물 기어가는 달팽이의 표면이 비에 젖어 번들거렸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비가 오면. 저 달팽이는 저렇게 기어가는 걸까. 보이지 않는 다리를 움직이면서. 오이카와의 입술이 닿는 곳에 뭉근하게 열이 올랐다. 속눈썹이 무거웠다. 눈이 서서히 감기는 것을 견디면서, 카게야마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이카와씨는 만약.”

?”

오이카와가 달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밀착한 몸의 허리 부근에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오이카와의 냄새가 났다. 오이카와의 향수가 아닌, 그의 냄새. 그의 피부에서 나는 냄새는 카게야마의 침샘을 자극했다. 입안에 고인 마른침을 삼킨 뒤, 카게야마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씨는 만약. 제가 달팽이로 변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달팽이?”

. 강아지나, 고양이나, 토끼같이 귀여운 동물이 아니라. 달팽이 같은 거요. , 지렁이여도 좋구요.”

토비오쨩, 달팽이야?”

오이카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카게야마에게 눈을 맞췄다. 뒤돌아있던 카게야마도 창가에서 몸을 떼어내고, 오이카와에게로 돌아섰다. 약간 거세진 빗줄기가 오이카와의 입술이 닿았던 목덜미에 후두둑 떨어졌다. 카게야마는 인상을 찌푸리고, 험악한 표정으로 오이카와의 브이넥을 꽉 붙잡았다.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면? 달팽이가 되고 싶은 거야?”

…….”

카게야마는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틀었다. 오이카와는 동그란 눈동자로 잠시간 카게야마를 바라보더니, 글쎄인상을 찌푸리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빗소리가 들렸다. 비는 연이어 내리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한쪽으로 빗어 넘긴 머리가 비를 타고 건너온 바람결에 흔들흔들 움직였다.

휙 버려버릴지도.”

, 이요?”

. 휙 하고. 달팽이로 변한 토비오쨩을 바깥으로 버려버릴지도.”

그런가요.”

아무렇지 않게, 여러 여자를 울렸던 웃는 얼굴로 말하는 오이카와에게 카게야마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실망한 것이 아니었다. 슬픈 것도 아니었다. 다만, 던져지면 더는 만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잠시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오이카와의 브이넥도, 주름진 청바지도, 저 익숙지 않은 까만 뿔테안경도, 홍차 빛 눈동자도, 쉬는 날이면 약간은 무장 해제되는 그의 모습도. 모두, 모두 잊어버릴 정도로. 평생 못 만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래도, 있지.”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입술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창가에 서 있느라 온통 식어버린 입술에 따스한 온기가 닿았다. 부드럽게 누르는 손가락은 굳은살이 박여있었다. 그런데도 손톱이 가지런히 정리된 손가락은, 그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럽게 카게야마를 다루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이런 비 오는 날 창가에서 잠깐 쉬었다 가는 건 허락해줄게. 배고파하는 것 같으면 양배추 한 쪼가리는 건네줄 수 있어. 비바람이 심하면 아주 잠깐이지만 집 안에 있는 것도 허락해줄게.”

달팽이인데도요?”

달팽이여도. 토비오쨩이잖아?”

비에 젖은, 강아지가 아니어도요?”

비에 젖은 강아지가 아니어도. 비에 쫄딱 젖은 토비오쨩이 아니어도. 오이카와씨는 징그러운 건 질색이니까, 징그럽게 생긴 달팽이여도.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어. 그 이상은 아니더라도. 어때, 오이카와씨 친절하지?”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허리 뒤로 손을 두른 뒤, 유리를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오이카와의 냄새가 났다. 그의 피부에만 닿으면 카게야마는 열이 올랐다. 전신이 그의 냄새를 기억하고 반응하는, 하나의 화학작용과도 같이. 카게야마에게 있어서의 오이카와는, 오이카와가 평생 가도 모르는 존재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이카와에게 카게야마가 어떤 존재인지, 카게야마는 그 눈동자를 봐도 모른다. 그의 눈에 비친 저가 어떨지. 그래도, 아주 조금. 카게야마는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카게야마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오이카와에게 저는, 어쩌면.

카게야마는 이제 슬며시 열이 오른 팔을 들어 마찬가지로 오이카와의 등에 대고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그의 쇄골에 입술을 묻고 깊이 들이마셨다.

그래도 보통 달팽이 이상은 되는 것 같네요.”

보통 달팽이면 버리긴커녕 창문에서 떨어뜨릴 거야. 징그럽잖아.”

착하다기보단 잔인한 거 같은데요.”

징그럽잖아.”

어린아이같이 투덜거리는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귓속에 녹아드는 것을 느끼면서, 카게야마는 무거웠던 눈꺼풀을 그제야 내려놓았다. 뜨끈뜨끈한 눈가가 기분 좋았다. 빗소리가 다시 약해지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숨을 들이켰다. 젖은 냄새가 났다. 달콤한 코코아의 향기도 났다. 오이카와와 사는 집의 향기였다. 오이카와와, 카게야마의 집.









-

* 오이카와의 브이넥, 검은 뿔테안경 이미지는 히징님이 언젠가 그렸던 오이카와에게서...

* 히징님(@phantom_hj)과 한문장 연성하기 '나는 아직도 당신이 어렵다.' (호칭 변경 가능) 첫문장 맡았어요!! >.<
    히징님의 세계 최고 오이카게 만화는 이쪽입니닷 →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6524C335545CE290D









와르르 무너져 내린 하늘이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바람결에 이리저리 내몰리는 빗줄기가 거칠게 우산에 붙어왔다. 오이카와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우산을 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얼굴을 때리는 비바람이 거셌다. 아침에는 맑았는데, 입술을 씹으면서 생각해봤자 몰아치는 폭우에는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우산으로 머리는 겨우 가렸지만 덮치듯이 불어온 빗줄기는 온몸을 흠뻑 적셨다. 흙탕물을 사방으로 튀기면서 다리를 바쁘게 움직이는 오이카와의 눈앞에 현관문이 보였다. 오이카와와 카게야마가 함께 사는 집. 2층 주택을 싸게 구한 건 더 없는 행운이었다. 여기저기 낡았다거나, 이런 비 오는 날 가끔 물이 새는 걸 빼면 아쉬울 것 없는 집이었다. 겨우 도착했네, 가슴을 쓸어내릴 틈도 없이 2층 베란다가 눈에 들어왔다. 정신없이 흩날리는 시야 속에서 흰 옷가지들이 이리저리 출렁이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잠시 멈춰선 뒤, 입을 벙긋거리며 하얀 한숨만 토해냈다.

지금, 잘못 본 거 아니지? 눈을 의심하고 싶어지는 광경에, 짙은 회색빛 시야가 흔들릴 정도로 오이카와는 고개를 어지러이 흔들었다. 다리를 조금 전보다 거칠게 움직이자 바닥에 후두둑 떨어진 물방울들이 다시 첨벙거리며 솟아올랐다. 다 젖어버린 손에 들려있는 검은 비닐봉지가 바람 때문에 버스럭버스럭 소리를 냈다.

 

✤ ✤

 

토비오! 빨래!”

 

외치면서 들어온 오이카와가 계단을 쿵쾅거리며 올라갔다. 거실에서 월간 밸리 잡지를 읽고 있던 카게야마가 눈을 들어 올리자마자 오이카와는 사라져있었다. 오이카와씨, 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사라져버린 오이카와의 뒤를 따라 카게야마도 몸을 일으켰다. 계단이 물 얼룩으로 가득이었다. 카게야마는 미간을 좁히면서, 양말이 젖지 않게 얼룩들을 피하며 발을 내디뎠다. 기껏 청소 다 해뒀더니. 꿍얼거리면서 계단을 모두 오르자, 오이카와는 2층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빗물이 잔뜩 물든 옷가지를 걷어들이고 있었다. 이미 젖어버린 오이카와의 셔츠와 바지에 한 차례 물벼락이 쏟아졌다.

오이카와씨?!”

비 오는데 왜 빨래를 여기에 널어놔?!”

오이카와는 눈조차 제대로 뜨기 힘든 빗줄기 속에서 빠져나와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머리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고, 옆에 개켜놓았던 수건 한 장을 들어 그 머리에 허겁지겁 엎었다.

오이카와씨가 빨래 널라고 하고 나가셨잖아요!”

비가 오면 당연히 걷어놔야지!”

갑자기 쏟아질 줄 저도 몰랐다고요!”

오이카와는 베란다 옆에 있는 플라스틱 바구니에 젖어버린 빨래들을 던져놓고선, 제 머리를 거칠게 문지르고 있는 카게야마의 손목을 잡았다. 카게야마의 어깨가 움찔 떨리면서 손이 멈췄다. 조심스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오이카와를 바라보자, 깊은 한숨을 내뱉는 그는 어딘지 모르게 지쳐보였다. 머리에 붙어있던 물기를 모두 머금은 수건 사이로, 축 늘어진 홍차 빛 머리카락이 보였다. 열린 채로 남아있는 베란다 문 너머, 눈에 보일정도로 선명한 빗줄기가 연이어서 들어오고 있었다. 투둑, . 베란다 문에, 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쑥날쑥 들려왔다. 오이카와의 전신에서 풍기는 축축한 비 냄새가 작은 2층 방 안에 훅 퍼졌다. 금속같이 차가웠던 손이 카게야마의 온기를 받아 서서히 열을 띠었다. 젖은 셔츠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카게야마의 귓속에 울렸다.

진짜, 토비오. 정말이지

머리카락을 타고 흐른 물방울이 동골동골 맺힌 입술 사이로,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직도, 난 네가. 나는 아직도 네가 어렵다.

 

 

 

 

 

 

 

 

 

 

30년이 지나도

 

 

 

 

 

 

 

 

 

샤워를 방금 끝내 보송보송 열이 오르는 몸은 따끈해서 기분이 좋았다. 오이카와는 작게 휘파람을 불면서, 저녁 재료가 담긴 비닐봉지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검은 봉지에 손을 넣어 재료를 꺼내려던 움직임을 멈추고, 오이카와는 아까와 같이 소파에 앉아 월간 밸리 잡지를 보고 있는 카게야마에게로 고개를 틀었다.

토비오, 뭐 해줄까? 저녁.”

카레요!”

아무렇지 않은 듯이 묻자 카게야마는 읽던 잡지를 거칠게 내려놓더니 눈을 빛내며 말했다. 검은 별이 담긴 듯이 반짝이는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오이카와는 입꼬리를 느슨하게 올렸다.

알았어.”

오이카와는 손을 움직여 봉지 속의 카레 루를 꺼냈다. 이어서 나오는 것은 고기, 당근, 양파, 감자누가 봐도 카레 재료였다. 냉장고에 남아있던 달걀 두 개까지 꺼내면, 머릿속에 있는 레시피의 재료로 빠진 것은 없었다. 오이카와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재료를 손질하고,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고소한 냄새가 코를 스치고 지나갈 때까지 볶았다. 2인분으로 샀던 냄비를 찬장에서 꺼내 볶은 재료들을 넣고, 익숙한 양만큼 물을 채워 넣으면 밑준비는 완성이었다. 그 안에 방금 사 온 카레 루를 조심조심 넣고 불을 올리자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오이카와가 포크커틀릿으로 만들 돼지고기 등심을 다듬고 있자, 등 뒤로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달걀도 올려주실 거에요?”

내키면.”

카게야마는 불퉁한 표정으로 오이카와의 어깨에 턱을 갖다 댔다. 티셔츠 끝자락을 붙든 손이 컸다. 중학교 때에는 저 조그만 머리통으로 어깨에 턱 괴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네. 오이카와는 기억 속의 카게야마를 떠올리곤 쓴웃음을 지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매달린 채로 고기를 다듬는 손길을 뚫어질 듯이 바라봤다. 강하게 뻗어오는 시선에 오이카와는 이상하게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으면서, 한 손을 들어 카게야마의 목 뒤를 쓰다듬었다.

몇 번이나 만들어줬잖아? 이제와서 다를 것도 없을 텐데, 뭘 그렇게 봐.”

오이카와씨가 만들어주는 카레는 매번 다른걸요. 매일매일 다른 맛이 나요.”

카게야마가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은 말에, 오이카와는 약간 눈을 크게 떴다. 놀란 표정으로 바라본 카게야마의 시선은 그대로 돼지고기에 고정된 채였다.

뭐야, 맛없던 적도 있어?”

똑같은 레시피인데 매일매일 다른 맛이라니. 카게야마가 맛있다고 말한 레시피만을 나름대로 고수하고 있었기에, 오이카와의 요리실력이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오이카와의 등에 순간적으로 식은땀이 퍼졌다. 카게야마는 어깨에 고개를 묻고 강하게 도리질 쳤다. 꾸욱 꾸욱 눌리는 감각에 오이카와는 푸핫, 참지 못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 녀석, 제대로 대답하라니까. 벌이라는 의미로 쓰다듬던 목 뒤를 찰싹, 가볍게 때렸다. 카게야마는 아야, 작게 중얼거리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려 오이카와를 마주 봤다. 고개를 갸웃해 보인 카게야마는 말을 고르는 듯했다.

그런 게 아니라, 그날따라 조금씩 느낌이 달라요. 어떨 땐 뭐랄까, 행복해지는 맛이고. 어떨 땐 기분이 좋아지는 맛이고. 어떨 땐

카게야마는 거기까지 말하고 그쳤다. 입은 그대로 열려있는데, 들리는 건 불에 올려놓았던 카레가 잘게 끓는 소리뿐이었다. 오이카와는 한번 가볍게 숨을 들이킨 후, 어떨 땐? 짐짓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떨 땐 매일 먹고 싶어요.”

매이일~?”

오이카와는 대놓고 질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카게야마에게 향했던 얼굴을 돌려 다시 고기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오이카와씨는 매일 카레는 싫어.”

전 좋은걸요!”

카게야마는 어깻죽지 사이에 머리를 갖다 대더니, 꾸욱 꾸욱. 오이카와의 상체가 약간 밀릴 정도로 강하게 밀고 들어왔다. 어깨에서 느꼈던 간지러움이 살살살 등에 모이자 오이카와는 다시 바보 같은 웃음을 흘렸다.

토비오, 그만하라니까.”

오이카와는 고기를 다듬던 손을 멈추고, 제 등에 매달려있던 카게야마에게로 몸을 돌려서 그 얼굴을 마주했다. 푸른 눈동자가 불빛을 받아 반짝이며 오이카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느새 오이카와의 팔이 카게야마의 허리에 둘려 있었다. 티셔츠 너머로 단단한, 그래도 아직은 얇게 잡힌 근육이 느껴졌다. 오이카와씨에 비하면 아직은 한참 멀었다니까. 오이카와는 눈을 얇게 뜨고, 카게야마의 살짝 열려있는 입술에 닿을 뿐인 키스를 했다. , 가벼운 소리가 나기 전에 눈을 감았던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채 떨어지기 전에 살포시 긴 속눈썹을 들어 올렸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오이카와의 홍차 빛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한 민트 색의 티셔츠를 붙들고 있는, 오이카와의 가슴께에 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손가락 끝까지 굳어있는 그 손을 감싸듯이 부드럽게 잡은 뒤 오이카와는 입술 간의 좁은 사이를 메우듯 다시 한 번 입술을 겹쳤다. 얼굴을 틀어 더욱 깊숙이 혀를 집어넣고, 침이 고인 카게야마의 혀 밑을 훑었다.

,

얼굴을 새로 겹칠 때마다 젖은 소리가 귀에 촉촉하게 젖어 붙었다. 그 사이사이 섞여나오는 카게야마의 비음에, 오이카와는 혀가 녹을 것 같은 달콤함을 느끼며 카게야마의 볼을 쓰다듬었다. 얼마간의 키스가 지난 뒤, 오이카와는 동그랗게 붉어진 카게야마의 눈가를 매만졌다.

카레, 다 끓겠다.”

오이카와가 말랑말랑한 귓불을 꼬집으며 흘려 넣는 목소리에, 카게야마는 불퉁한 얼굴로 입을 내밀었다.

그럼 허리 놔주세요.”

카게야마의 볼멘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귓가에서 입술을 떼지 않은 채 낮게 키득거렸다.

.”

오이카와는 솜털이 보들보들 남아있는 귓바퀴에 가볍게 키스하더니, 다시 입술로 옮겨 카게야마의 입 안쪽으로 혀를 돌렸다. 입천장을 쓸 듯이 긁고, 몰캉한 볼 안쪽도 간질이자 카게야마가 헐떡이는 신음을 흘렸다. 불 위에 올려둔 카레에서 폭폭폭 끓는 소리가 났다. 뇌 속을 녹이는 달콤한 입술에서 겨우 얼굴을 뗀 후, 오이카와는 타액이 묻어있는 입술을 다셨다. 카게야마의 얼굴이 눈앞에서 사르르 물들었다. 카게야마는 그 상태 그대로 제 얼굴을 오이카와의 가슴팍에 묻더니, 다시 꾸욱꾸욱. 머리를 비비면서 밀어왔다. 이번에는 자연스레 솟아나는 웃음에, 오이카와는 다시 미소 지으면서 카게야마의 머리에 코를 묻었다. 달짝지근한 카레 냄새가 부엌 공기를 가득 메웠다.

 



✤ ✤

 



조그마한 2인용 목제 식탁은 둘이서 고른 물건이었다. 가구 같은 건 잘 모르겠다는 카게야마를 외국에서 들어온 유명한 가구점으로 이끈 건 오이카와였다. 심플하면서도 기능성이 좋은 걸 몇 개 오이카와가 먼저 고른 후 그 안에서 카게야마가 고르게 했다. 안 그러면 가구점에서 죽치고 앉아서 땀만 뻘뻘 흘리는 카게야마를 평생 기다릴 게 뻔하니까. 당시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골라 온 몇 개의 후보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며 잠시간 고민하더니, 정사각형 모양에 백색에 가까운 상아색의 목제 식탁을 골랐다. 왜 이걸로 골랐느냐는 오이카와의 질문에, 그냥요. 가장 오이카와씨랑 어울리니까? 그렇게 대답한 건, 아직도 의문이지만.

오이카와는 민트 색의 식탁보가 깔린 양쪽 측면에 카레가 담긴 접시를 올려놓았다. 방금 튀겨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포크커틀릿을 얹고, 완숙이 되지 않게 신경 쓴 반숙 달걀을 올리면 음식 자체는 완성이었다. 냉장고에 넣어뒀던 샐러드를 투명한 볼에 담고, 레몬 갈릭 드레싱을 살짝 뿌리면 평소의 저녁밥이었다. 마지막으로 물 두 잔을 정수기에서 받은 뒤 접시 옆에 두면, 작은 목제 식탁은 꽉 들어찼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부르려 입을 열었다가, 다시 금세 다물었다. 상아색 식탁 한가운데에는 연한 초록빛의 로즈마리 화분이 놓여있었다. 3일 전 카게야마가 먹을 수 있대요, 하면서 갑자기 사온 허브 화분이었다.

아니, 먹을 수는 있지만?’ 오이카와는 밀려 올라오는 한숨을 꿀꺽 삼킨 후, 손을 들어 로즈마리 화분을 한번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로즈마리 잎들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문지르던 손을 들어 가만히 코에 갖다 대면, 언젠가 맡았던 아로마 향초같이 노곤한 향기가 슬그머니 묻어나왔다. 오이카와는 손을 내리고, 다시 카게야마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파에 앉아 월간 밸리 잡지를 읽는 모습은 고등학교 때와 똑같았다. 소파에 앉아있는데도 꿋꿋이 다리를 올리고, 특정 부분을 읽을 때면 미간을 좁히면서 표정이 험악해지는 버릇. 눈이 반짝이는 것이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몰입한 모습에, 오이카와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토비오, 밥 먹자.”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흘러가면, 카게야마는 귀를 쫑긋 세우고 돌아봤다. 방금까지 빛나던 눈동자가 더욱 밝기를 더하더니, 읽고 있던 월간 밸리를 던지고 식탁으로 걸어왔다. 눈앞에서 스르르 연기가 오르는 카레를 보고선, 카게야마는 진정되지 않는 모양새로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오이카와도 마주 보듯이 자리에 앉은 뒤 카게야마를 바라봤다. 마주 본 두 사람은 잠시간 가만히 있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열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카게야마가 입술을 꼼지락거리며 숟가락을 들더니, 카레를 한 움큼 퍼올렸다. 아앙크게 벌린 입안으로 카레 한 움큼이 푹 들어가는 걸 보면서,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입가 구석에 카레 소스를 잔뜩 묻히는 것을 바라봤다. 한 입 넣었는데도 벌써 묻다니. 한숨이 나오는 모습에 오이카와는 손을 뻗었다.

아직도 그래서 넌 어떡하냐, 진짜.”

약간의 웃음이 섞인 목소리를 장난스레 내뱉은 뒤, 또 한 입을 넣으려는 카게야마의 턱을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했다. 그 입꼬리에 묻어있는 묽은 금빛의 카레 소스를 엄지손가락으로 쓸고, 손가락을 끌어 제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가만히 혀에 갖다 대고 맛을 음미하면, 오이카와의 기억 속 그 맛 그대로였다.

, 맛있네. 역시 내가 만든 카레야.”

오이카와는 뿌듯한 듯이 미소 지으며 자기 몫의 카레를 한 입 떴다. 그대로 집어넣으려고 조그마한 입을 벌리자, 카게야마의 눈빛이 저를 주시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마치 먼 곳을 보는 듯이 멍하게 오이카와를 바라보는 카게야마를 눈치채고, 오이카와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콧망울에 닿을 듯이 모락모락 오르던 카레 김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깊은 카레 향이 목제 테이블 안에 가득했다.

?”

오이카와는 말없이 바라보는 카게야마에게 미소 지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카게야마의 입 주변은 아까와는 달리 깨끗했다. 그 입이 슬며시 닫혔다가, 오물거린 뒤 다시 열리는 것을 오이카와는 가만히 지켜봤다. 조용한 시간이었다.

오이카와씨가 만든 카레는 30년이 지나도 이 맛이겠죠?”

오이카와는 머릿속이 잠시간 새하얘지는 것을 느끼며 입술 끝에 걸어놓았던 미소를 내려놓았다. 뒷골이 슬쩍 당기는 것을 느끼면서, 테이블에 올려놓았던 손을 아로쥐어 주먹을 꾹 쥐었다.

토비오, 너 나한테 30년이나 카레만 만들게 할 셈이야?”

카게야마는 물음으로 대답한 오이카와에게 누가 봐도 놀랐다는 얼굴로 엇, 당황한 목소리를 흘렸다.

안 만들어 주실 건가요?”

연이어 이어진 질문에 오이카와는 하아깊은 한숨을 내쉰 뒤, 주먹 쥐었던 손으로 제 이마를 짚었다. 무거운 두통이 눈 바로 위에서 뚝뚝 떨어졌다.

저기 있지, 토비오. 너 말야

오이카와는 입을 연 채로, 잠시간 말을 멈추었다. 눈을 낮게 내리깔자, 푸근한 열기가 오르는 카레가 보였다. 오이카와가 생각한 오리지널 레시피. 바삭하게 튀긴 포크커틀릿, 그 위에 올린 반숙 계란. 전부 오이카와의 안에 남아있는 것들이었다. 자다가 일어나도 대답할 수 있는 레시피. 혀끝에서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맛.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웃하고 오이카와를 의아한 눈동자로 바라봤다.

오이카와씨?”

오이카와는 조금 전의 카게야마와 같이 입을 다물고, 얼마간 우물거리다가 다시 열었다.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지나치게 약하게 들리면 어쩌지, 조금 걱정하면서.

있지, 토비오쨩. 나 벌써 스물일곱 살이잖아? 마음의 나이는 스무 살이지만. 토비오는 스물다섯 살이고.”

마음의 나이, 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죠.”

카게야마는 의문의 눈초리로 미간을 좁히더니,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카와는 걸쭉하게 흰 쌀밥 위를 덮고 있는 카레를 숟가락으로 휘저었다. 밥과 카레가 섞이면서, 고운 빛깔이 촉촉하게 빛났다. 테이블 위의 전등에서 부드러운 크림색의 빛이 부서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토비오는 언제까지 오이카와씨의 토비오인걸까.”

오이카와씨의 토비오요?”

카레를 휘저을 때마다 바닥에 숨겨져 있던 연기가 뭉텅이로 터져 나와 조용한 공기 속에 퍼졌다. 오이카와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로즈마리를 흘끗 곁눈질했다. 연초록색 잎들이 싱싱했다. 오이카와는 약간의 쓴웃음을 짓더니, 다시 천천히 말을 뽑아냈다.

카레도 언젠가는 식고. 로즈마리도, 언젠가는 말라죽을거고. 그렇게 하나하나 지워가다 보면, 이 집도 언젠가는 사라지지 않을까. 토비오도

오이카와는 다시 말을 멈췄다. 그 입이 이번에는 열리지 않았다. 꾹 다문 입술을 입안으로 당긴 뒤, 오이카와는 조심스레 카게야마에게로 고개를 들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한번 갸웃, 해 보이더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그 미간에 내 천()자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주름이 깊게 파였다.

??”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며 기어코 팔짱까지 낀 카게야마의 관자놀이에 연하게 땀이 배었다. 눈에 안 보이는 증기가 피쉭 피쉭 머리 위로 몰려나오는 환상이 보이는 듯했다. 결국 입을 툭 내밀더니,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눈을 마주하고 물었다.

저기무슨 뜻이에요?”

하아, 하하

오이카와는 한숨섞인 웃음을 지었다. 이번엔 단념이 섞인 한숨을 흘린 후, 휘젓던 카레를 숟가락으로 한 입 떴다.

아냐, 됐어. 카레나 먹자.”

오이카와씨는 항상 어려운 말만 하시네요.”

오이카와가 눈을 들자, 카게야마는 조용한 표정으로 오이카와를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 눈동자는 그 어떤 감정도 담지 않고, 오이카와만을 가득 담고 있었다. 전등에서 떨어지는 불빛이 카게야마의 검은 머리카락에 닿아 흩어졌다. 오이카와는 다른 존재를 보는 듯한 이물감을 느끼는 동시에 저 아래 쪽으로 접어넣은 뒤,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토비오가 어려서 그래.”

저 안 어린데요. 스물다섯인걸요.”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대답에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내밀고 낮게 말했다. 오이카와는 흐응? 코를 울린 뒤 눈썹을 씰룩이더니 카게야마의 깨끗한 입 주변을 가리켰다.

입가에 묻히면서 먹는 토비오는 아무리 커도 어린애랍니다.”

…….”

카게야마는 할 말이 없는지 입을 굳게 다물고 노려보듯 오이카와를 치켜봤다. 오이카와가 이겼다라는 표정으로 피식피식 웃어 보이자, 카게야마는 다시 차분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전 어려운 말은 잘 몰라요. 오이카와씨가 하는 말 대부분은 어려운 말이니까, 대부분은 잘 몰라요. 그래도 그건 알아요.”

카게야마의 눈동자가 눈앞의 카레로 향했다. 모락모락 오르던 김이 어느새 잦아든 오이카와의 카레는, 아직도 침이 고일 정도로 달콤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오이카와씨는 10년이 지나도, 30년이 지나도, 저한테 카레를 만들어주실 거라는 건 알아요.”

오이카와는 질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푸른 눈동자가 여느 때보다도 곧게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작은 눈동자 안에 오이카와만이 아는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카게야마는 머리를 조금 기울이더니, 어려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걸까, 생각할 때의 카게야마였다.

,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오이카와씨는 언제나 제 옆에 있으실거잖아요? 믿고 있거든요, 오이카와씨를.”

입가가 시큰거릴 정도로 달큼한 카레의 향기가 눈앞에서 흔들거렸다. 얼풋 로즈마리 향이 나는 듯했다. 코 안쪽이 달콤하고, 포근한 냄새로 가득차서 머리가 약간 몽롱해졌다. 오이카와는 입가를 몇 번 달싹이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가, 다시 폈다가, 입을 열었다. 심장이 저 뱃속까지 내려갈 듯이 아래쪽을 향해 고동치고 있었다. 흰 볼이 열기로 인해 따끔거릴 정도로 붉어진 게 느껴졌다. 뜨거운 카레의 맛이 그 볼에 닿아 훅훅 퍼졌다. 입을 열면 그 열기가 한꺼번에 후욱 빠져나올 것 같아 오이카와는 천천히, 천천히 말했다.

나랑 같이, 계속 이대로 있고 싶어? 토비오.”

카게야마는 짜증이 톡 올라온 얼굴로 오이카와를 째려봤다. 인상나쁜 눈매의 끝이 엷게 물들어 있었다.

꼭 말해야 해요?”

.”

오이카와는 심장으로부터 열이 전달된 손을 들어, 다홍빛으로 물든 그 눈꼬리에 가만히 갖다 댔다. 카게야마는 제 볼에 닿은 오이카와의 손에 가볍게 기대면서 시선을 틀었다. 우주가 담긴 눈동자 끝이, 여름날 잘 익은 체리처럼 더욱 붉어졌다. 오이카와의 손바닥의 열기와 카게야마의 볼에 담긴 따스함이 뭉근한 열을 만들어냈다.

전 그냥, 오이카와씨가조금만 더 저를 믿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떤 걸?”

제가 오이카와씨를 그저, 아주 당연하게 믿고 있다는 사실을요.”

믿고 있다고?”

카게야마가 틀었던 시선을 돌려 오이카와에게 향했다. 오이카와의 속을 훑어, 저 끝까지 꿰뚫어보는 눈동자였다. 저에게 고백할 때도 카게야마는 저 눈동자로 오이카와를 바라봤다. 오이카와의 겉모습, 행동, 말투 모든 것과는 상관없이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향한 눈동자. 오이카와는 이상하게 카게야마의 저 눈동자를 마주할 때면, 자신이 오이카와 토오루임을 실감했다.

. 30년 뒤의 일은 몰라요. 제가 어떻게 될지, 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아는 건 그저 배구를 계속하리란 것뿐이에요. 근데 오이카와씨는 믿을 수 있어요. 30년 뒤에도 카레를 만들어주실 거라고. 오이카와씨는, 그때도 제 얼굴을 잡고. 키스, 해 주실 거라고.”

잠시간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던 카게야마는, 다시 얼굴을 고쳐 들었다.

이 집이 아니어도 돼요. 로즈마리 화분이 있는, 이 테이블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그냥 오이카와씨가, 오이카와씨의 카레면 돼요.”

오이카와의 심장이 바닥까지 쿵 내려앉아, 목덜미를 붙잡힌 느낌이 들었다. 순식간에 따뜻해진 심장에 머리가 적응하지 못해, 여기저기서 치직치직 불꽃이 타는 느낌이었다. 숨을 어떻게 쉬는 거였더라, 전부 익어서 녹아내린 뇌에서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과도한 열로 인해, 카게야마의 볼에 대고 있는 손바닥이 축축한 땀으로 가득했다. 가슴을 그대로 부여 잡힌 듯한 괴로움에 발끝까지 쥐가 난 듯 움찔거렸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볼에 닿았던 손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토비오.”

제대로 말로 나오고 있는 걸까. 소리를 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착각인 건 아닐까. 입술이 작게 떨리면서, 오이카와는 눅눅하게 익어버린 아이스크림 같은 머릿속에서 부옇게 생각했다. 자신이 없었다.

넌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어.”

낯익지 않은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오이카와는 천천히 말했다. 카게야마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의아한 듯 물었다.

언제는 너무 알기 쉽다면서요?”

불만이 담긴 입술이 튀어나오더니, 카레를 한 입 떠서 제 입안으로 들여보냈다. 따스한 맛이 혀끝에 퍼졌다. 오이카와도 금빛 카레를 담았던 숟가락을 들어 입안에 넣었다. 코끝에만 가득했던 카레 향이 입안 곳곳에 퍼졌다. 토비오가 좋아하는 맛이었다. 레시피는, 누가 쿡 찔러도 바로 말할 수 있을 정도. 30년이 지난 뒤에도 잊을 수는 없겠지. 오이카와는 슬그머니 웃음을 흘렸다. 올라간 입꼬리를 보더니, 카게야마가 짜증 섞인 말을 내뱉었다.

또 저 비웃으려고 그러죠?”

푸핫, 아니야.”

됐어요. 익숙하니까.”

불퉁한 얼굴로 반숙 달걀과 함께 카레를 입에 넣고, 카게야마는 쩝쩝 소리가 나게 씹었다. 오이카와는 하핫, 부드럽게 웃었다.

그냥, 난 아직도 네가 어려워. 가끔은.”

전 항상 오이카와씨가 어려운데요.”

그건토비오가 어려서 그래.”

안 어리거든요?!”

오이카와는 테이블에 올라와 있던 카게야마의 손을 감싸듯이 잡았다. 중학교 때와는 달리 단단한 손은 오이카와가 전부 감쌀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오이카와는 스물다섯 살 남자의 손을 확인하듯 가만히 쓰다듬었다.

. 알아. 알고 있어, 토비오에 대해선 전부.”

그런데도, 난 아직도 네가 가끔 무서워질 정도로 어려울 때가 있어. 내가 알 지도 못 하는 곳에 조용히 스며들어서, 넌 가끔 툭 튀어나오거든. 난 몰랐던 네가. 오이카와는 상체를 천천히 기울였다. 카게야마의 손가락 사이에 제 손가락을 집어넣어 사이사이로 열이 퍼지자, 카게야마도 몸을 오이카와에게로 기울인 후 속눈썹을 무겁게 내려놓았다. 감긴 눈두덩이 전등 빛을 받아 보드라운 색을 띠고 있었다. , 가벼운 소리가 퍼지며 서로의 입술이 닿자마자 떨어졌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가늘게 뜬 눈동자로 바라보면서, 오이카와는 다시 키스를 떨어뜨렸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숨소리만 퍼지는 공기 속에 간간이 들렸다. 코끝으로 달콤한 카레 향에 섞인 카게야마의 냄새가 스치고 지나갔다.

“30년 뒤에도, 카레 먹고 싶어?”

낮게 물으며 간지럽히듯이 콧망울에 키스하자, 카게야마는 눈을 살포시 뜬 뒤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볼덩이를 말갛게 붉혔다.

. 오이카와씨의 카레요.”

카게야마에게서부터 얽어오는 혀가 뜨겁고, 물컹하고, 또 전기가 오를 정도로 달았다. 익숙한 카레 맛이 타액에 속속들이 녹아들어 풍미를 더했다. 맞잡은 손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힘이 들어갔다. 30년 뒤에도 네 손이 똑같이 따스하다면, 그렇다면.

 

, 만들어줄 수는 있어. 카레쯤이야. 30년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도.







* 란오님의 생일 기념 짧게 끄적인 글입니다!!
   * 란오님 생일 축하드려요!!!! >////<






[오이카게] 눈치 없는 후배

 

 

 

 

번쩍하는 섬광이 하늘을 찢고 지나갔다. 그 뒤를 잇는 거대한 천둥소리가 지면을 흔들었다. 비가, 멈추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여름날의 장마는 매번 심했지만, 이번 해에는 유달리 강렬하게 퍼부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회색의 시야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거세게 떨어지는 빗줄기 사이사이로 보이는 건물은 살풍경해서, 세상 끝날에라도 서있는 기분을 자아냈다. 이제 겨우 오후 5시인데도 거리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이리저리 튀어 오른 머리를 짜증스레 매만지며 체육관을 나섰다. 아침에 챙겼다고 생각했던 우산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집 안 신발장 근처에서 나뒹굴고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다정하게 학교까지 데리러 오는 부모는 아니었으므로, 오이카와는 포기하고 가방을 머리에 단단히 이었다. 겨우 머리만 감쌀 수 있는 가방은 이미 눅눅한 습도에 축 늘어져있었다.

이와쨩, 너무해. 오이카와는 굳이 입으로 소리를 내어 꿍얼거렸다. 한 시간 일찍 가버린 이와이즈미는 우산을 쓰고 여유롭게 갔으리라. 그 때에는 오이카와도 우산이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이와이즈미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뒤적이니 언제나 쓰고 다니던 민트 색 우산이 없었다. , 가볍게 혀를 차며 오이카와는 다리를 박차 검은 공간에 몸을 던졌다. 얼굴을 때리는, 몸을 때리는 매서운 빗줄기가 따가웠다. 막을 새도 없이 거칠게 밀고 들어오는 비바람에 오이카와는 가방을 잡고 있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였다. 자꾸만 손이 미끄러졌다. 입안에 고이는 젖은 먹구름의 맛은 축축했다. 가볍게 입술을 핥고 발을 열심히 움직였다. 교복으로 안 갈아입길 잘했다, 오이카와는 가빠오는 숨을 느끼며 생각했다. 비록 세이죠의 새하얀 저지는 더럽혀질지언정, 저지는 항상 빨 수 있으니까. 발 끝자락에 스며든 검은 흙탕물을 보면 조금 불쾌해질 것 같지만, 뭐 그 정도야.

 

◆ ◆

 

오이카와는 눈앞에 보이는 처마 끝에 급하게 몸을 우겨넣었다. 평소 이와이즈미, 마츠카와, 하나마키와 즐겨 들르던 작은 가게였다. 가게 주인인 할머니는 지병인 무릎통증 때문에 비가 오면 가게를 열지 않곤 했다. 애초부터 이곳에서 잠시 멈춰 서서 빗줄기가 나아지길 기다릴 예정이었다. 온 몸이 물에 빠진 생쥐마냥 젖어있었다. 가방으로 겨우 가린 머리카락도 세찬 바람에 의해 잔뜩 젖어서, 그 끝에 종모양의 물방울을 톡톡 떨어뜨리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새어나오는 한숨을 흘린 뒤 어깨며 머리카락을 털었다. 몸 구석구석 싸인 비의 장막을 덜기에 소용은 없었지만, 지금 느껴지는 불쾌감만이라도 덜고 싶었다. 속눈썹 끝에 맺힌 물방울이 간지러워서 눈을 감았더니, 볼 언저리로 또륵 흘렀다. 그대로 눈을 감고 있으면 빗소리만이 들렸다. 파도소리가 끝도 없이 들려오는 착각이 일었다. 젖은 공기, 흔들리는 진동, 몰려드는 한기. 언제쯤 그치는 걸까. 멈추지 않는 물소리에 오이카와는 인상을 찌푸리며 무거운 눈꺼풀을 들었다. 검은 시야검은 시야였다. 아니, 빗줄기로 채워진 검은 공간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물질이 그곳에 있었다. 익숙한 검은색 저지였다. 낯익은 몸이었다. 눈만 감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작은 몸통이 아닌 제대로 된 고등학생의 몸이었다. 이제는 시선의 방향이 퍽 비슷한 몸이기도 했다. 검은 색 우산을 쓰고, 검은 색 저지를 입고, 검은 색 가방을 매고, 검은 색 머리가 살짝 젖은 채로. 뭘까, 검은 사신일까. 오이카와는 풋 웃음을 터뜨렸다.

뭐해, 토비오쨩?”

오이카와 선배야말로 이런 곳에서 뭐하세요?”

카게야마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했다.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약간 음영이 진 얼굴은 험악했다. 오이카와는 알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이해할 수 없는 일에는 매번 저런 표정을 지었다. 짜증을 내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아닌 단순히 ?’라는 의문을 담은 표정이었다.

보면 몰라? 우산 없어서 쫄딱 젖었잖아. 여기서 잠깐 기다릴거야.”

, 오늘 하루 종일 내린다고 하던데요.”

카게야마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오이카와를 꼼꼼히 바라봤다. 젖어서 가라앉은 머리부터 시작해서, 흙탕물이 이리저리 튄 발끝에 이르기까지. 오이카와는 검은 색 일색이라 젖은 티도 나지 않는 카게야마를 바라보며 욱한 심정이 들었다. 상쾌함이라고는 일점도 없는 음울한, 말 그대로 찌그러진 비구름에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나도 알거든? 잠깐 빗줄기가 약해질때까지만이야. 신경 쓰지 말고 네 갈 길이나 가.”

옷 다 젖었는데요. 바람도 거칠고. 춥지 않으세요?”

또 한 번, 갸웃거린 카게야마는 우산을 든 제 손을 꼼지락거렸다. 말로 하지 않아도 하나하나 생각이 눈에 보이는 번거로운 후배였다. 오이카와는 그 눈에 빤히 보이는 움직임에 시선을 사선으로 틀어 내렸다. 바닥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하나하나를 보고 있자면 눈이 아팠다. 오이카와 선배, 귀 안에 내리는 빗소리 사이로 카게야마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오이카와가 다시 시선을 맞추자 카게야마는 한 발자국 다가와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에선 짙은 파랑 빛이었던 눈동자가, 검은 하늘 아래에선 검은 빛을 띠고 있었다.

괜찮으시다면, 제 우산.”

필요 없어.”

오이카와는 조급하게 내뱉었다. 차갑게 떨궈낼 요량으로 낮게 내뱉었으나 카게야마는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치도 없는 후배는 이런 때에도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었다. 제 생각은 하나하나 눈에 박힐 정도로 보이게 만들어놓고선, 오이카와가 던지는 비언어적인 표현은 하나도 알아먹질 못하는 짜증나는 후배였다. 카게야마가 가까워져서일까, 그의 검은 우산에 퍼지는 물방울 소리가 더욱 커졌다. 투둑 툭 간헐적으로 울리는 소리와 계속되는 바람소리. 거칠게 처마 안으로도 노나드는 빗줄기는 오이카와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바람이 거칠었다. 카게야마의 검은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 그럼, 갈게요.”

그래. 얼른 가라니까.”

카게야마는 고개를 꾸벅 내리더니 그 길로 뛰어가 버렸다. 찰박 찰박, 촉촉한 물소리가 오이카와의 귀를 메꿨다. 오이카와는 괜시리 짜증이 났다. 자신에 대해서, 카게야마에 대해서. 중학교 때 제 등을 지칠 줄 모르고 쫓아다니던 카게야마는 더이상 없었다.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의 옆에 서서, 같이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려줄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도 오이카와는, . , 다시 혀를 차면서 머리를 털었다. 처마로 들어온 비 때문이었을까, 젖은 머리에서 아까와 같이 다시 물방울이 튀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오이카와가 전하고자하는 생각은 못 알아먹는 후배였다. 건방진 녀석, 항상 하던 말을 머릿속에서 툭 내뱉은채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먹구름이 하늘 안에 빼곡히 차들어 있었다. 저게 다 투명한 흰색으로 돌아오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있어야 하는 걸까. 굳게 닫힌 가게 셔터에 몸을 기댄 뒤 길게 한숨을 뱉었다. 몰려드는 피로감과 끝도 없는 빗소리, 빗소리, 빗소리, 뛰어오는 소리. 뛰어오는 소리? 오이카와는 다시 정면으로 시야를 돌렸다. 검은 사신이 오이카와에게로 뛰어오고 있었다. 손에 들린 건, 밝은 갈색의우산이었다. 사신은 아까와 비슷한 거리까지 오더니 몸을 굽혀 숨을 가다듬었다. 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 몸이 흠뻑 젖어있었다.

하아, 하아, 오이, 카와 선배

, 토비오쨩?! 뭐 하러 다시 온 거야?”

이거요!”

처마 밑으로 내민 손에는 우산이 들려있었다. 밝은 갈색의 우산. 온통 검은색 일색인 카게야마 안에서, 유일하게 을 가진 존재였다. 오이카와는 우산을 그저 멍하니 바라봤다. 눈앞에 있는 카게야마의 머리카락에서 새끼손톱만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거, 라니. 항상 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녀석이었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좀 더 심했다. 아니, 모든 것이 빤했다. 제 감정 따위, 생각 따위 숨기지도 못하는 바보 같은 후배 녀석.

이거 뭐? 우산이잖아.”

오이카와는 애써 넘겼다. 받아야할 의무도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이걸 위해 카게야마가 다시 온 것조차도, 오이카와는. 모든 건 오이카와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속속들이 보였음에도 오이카와는 눈을 가렸다.

우산, 쓰세요. 저희 집에서 가져온 거에요. 가지셔도 되니까 안 돌려주셔도 돼요.”

아니, 됐다니까? 왜 내가 너희 집 우산을 받아야하는데?”

저 집 문을 열어두고 와서요. 얼른 돌아가야 해요.”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손에 억지로 우산을 들린 채 그 길로 다시 뛰어가 버렸다. 서서히 사라지는 검은 사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오이카와는 더 이상 눈을 가릴 수 없었다. 손에 들린 우산이 묘하게 무거웠다. 무거워서, 떨어뜨릴 것만 같아서 오이카와는 두 손으로 꼭 감쌌다. 메마른 우산이, 물기가 녹아있는 오이카와의 두 손 안에서 젖어 들어갔다. 항상 검은색 우산만 들고 다니는 카게야마가, 밝은 색의 우산을 고르고. 집 문도 열어둔 채, 온 몸이 젖어가면서. 오이카와에게 검은 사신은, 건방진 후배는 정말이지 눈에 거슬리는 존재였다. 눈이 아플 정도로, 머리가 저릿할 정도로 온갖 정보를 들이붓는 귀찮은 녀석이었다. 오이카와는 눈을 감았다. 속눈썹 위에는 흘러내릴 물방울이 없었다. 그런데도 볼이 이상하게 간질거렸다. 톡톡 튀는 별사탕이 목구멍에 잔뜩 걸린 느낌이었다.

더럽게 귀여운 후배 녀석.”

별사탕이 하나씩 터져서 목이 따끔거렸다. 볼은 간질간질, 목은 따끔따끔. 손 안에서 우산이 자꾸 미끄러져 내릴 것 같아서, 오이카와는 우산을 펼쳤다. 둥그렇게 퍼지는 밝은 갈색의 우산이, 누군가의 머리통을 떠올려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이카와는 그 우산을 들어 머리 위에 썼다. 새하얀 저지가 갈색 빛에 물들었다. 약간 어두운 색이 더해진 그 저지는, 마치 검은 빛에 감싸인 것만 같아서. 오이카와는 킁, 코를 훔치며 거센 빗줄기 속으로 발을 옮겼다.






* 조금 다른 방식으로 쓰고 싶어서 시작한 글. 하지만 여전히 지루함 주의만...

* 키타이치 시절의 오이카와랑 카게야마입니다.









연애를 가르쳐 주세요.


 

 


 

지독한 겨울이었다. 아프고 아파서 눈을 뜰 수조차 없는. 조그만 볼 안을 맴돌고 나간 바람은 지독히도 차가웠다. 카게야마는 눈을 감았다. 파르르 떨리는 눈가가 아팠다. 이곳저곳이 아팠다. 후우 내뱉는 한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추워?” 근처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서, 눈을 돌렸다. 습관과도 같았다. 그에게로 몸을 돌리고, 눈을 맞추고, 한번 깜빡. 그림으로 그린 듯한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그도 습관인 걸까,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진득하니 녹아내린 설탕이 그의 얼굴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었다. “아니요.” 고개를 도리질 쳤다. 오이카와는 짙은 남색의 코트를 입고 있었다. 목덜미에 두른 목도리의 색이 썩 예뻤다. 올리브색, 이라고 하나. 저런 걸. 카게야마는 제 목에 둘린 검은색 목도리를 바라봤다. 카게야마가 내쉰 입김을 한번 바라본 뒤, 오이카와가 손을 잡았다. 꺼끌거리는 손바닥. 오늘도 이 손에서 몇 번이고 그림 같은 서브가 쏟아져 나왔다. 살며시, 마주 잡으면. 오이카와는 저 달과 같이 눈을 굽혔다. 차갑네. 중얼거리는 소리가 낮게 깔렸다.

 

모르고 시작한 연애는 힘겨웠다.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감정의 정의도 제대로 모르는 시절이었다. 그 감정을 뭐라고 불러야 될지 고민이 될 즈음, 오이카와가 말했다. “토비오쨩, 나랑 연애할래?” 연애가 뭐에요? 묻는 나에게 오이카와씨는 그저 웃어 보였다.

연애? 연애는 있잖아

 

무슨 생각해?” 눈을 들어 앞을 봤다. 오이카와가 바로 앞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있잖아, . 무슨 생각하고 있어? 찌릿하게 등을 훑는 듯한 시선. 말끔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저를 비웃는 듯했다. 오이카와씨를 눈앞에 두고. 카게야마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시선을 틀었다. 어두운 길 가운데에 비친 가로등 불빛이 약했다. 빛이 바람에 서서히 흔들거렸다. 그만하세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기어코 내뱉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만하세요. “그렇게 다가오는 거.” 결국 완성되지 않은 말이 되어버렸다. ? 오이카와는 목울대를 울리며 소리를 냈다. 어떻게 저런 목소리를 내는 걸까. 귀가 녹아버릴지도 몰랐다. 시리고, 아픈 귀가 그대로 얼어서 떨어져서. 오이카와의 목소리로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눈앞에서 녹는 귀를 바라보면 카게야마는 무슨 생각이 들까. 그 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까. 오이카와의 목소리로 녹는다면, 그렇다면. 오이카와에게 잡힌 손이 아직도 차가웠다. “손잡고 있는 거 싫어?” 오이카와가 눈가를 찡그리며 웃었다. 밤이 그의 눈에 녹아있었다. 입김을 내뱉는 입술이, 보드라워 보여서. 카게야마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오늘로 두 번째였다. 머릿속에선 아뇨, 라는 말이 맴도는데. 정작 나오는 건 고갯짓뿐이었다. 그 대신 손을 꽉 맞잡았다. 오이카와와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안 그래도 쪼그라든 폐에 차가운 공기를 한껏 들이마셔, . 천천히 내뱉었다.

 

토비오쨩. 우리 연애한 지 벌써 한 달이네.” 오이카와는 몸을 다시 되돌리더니 앞서 걸어나갔다. 그의 손에 이끌리듯 카게야마가 몸을 움직였다. 타박, 타박. 아직 녹지 않은 눈이 길 끝에 놓여있는 좁은 길가는, 오이카와와 카게야마가 붙을 만한 너비였다. 어깨에 닿은 오이카와의 단단한 팔. 옆모습조차도 다시 보게 만드는 사람. 진한 홍차 빛의 눈동자에는 카게야마가 아직 모르는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저 시선 끝에 있는 건 무엇일까. 카게야마는 가로등 불빛이 부서지는 한가운데서 그런 것만 생각했다. “한 달, 이네요.” 그 말을 나지막이 따라 한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었다. 찬 바람에 몇 번이고 한 심호흡 때문일까. 떨리는 목소리가 힘겨웠다. 오이카와가 낮게 웃었다. 묘한 웃음소리였다. 카게야마와 둘이 있을 때만 내던 그의 목소리. 뱃속을 훑는 감각에 카게야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한 달 해보니까 어때?” “연애요?” “. 어땠어? 오이카와씨랑 보낸 한 달.” “, 모르겠어요.” “연애를?” “…….” 카게야마는 숨을 참았다. 거리에는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 울려 퍼졌다. 연애를. 모르겠어요. 오이카와씨와의 연애를.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손을 꾸욱 잡았다. 저릿하게 퍼지는 아픔에 읏, 약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눈앞에 보이는 건 달 뿐인데. 밤이 길었다. 아플 정도로 길었다. 밤이면,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몸을 뱀처럼 타고 올라왔다. 그 목소리로, 눈길로, 손으로, 달콤하게 끌어안는 몸으로. 오이카와가 손을 끌어당겨서 카게야마는 그 몸에 폭 안겼다. 오이카와에게 안긴 카게야마의 몸이 떨렸다. 오이카와에게 안기는 감각은 푸근하면서도 싸늘했다. 그 긴 팔이 카게야마의 등을 낚아채듯 감싸 안았다. 눈앞에는 오이카와의 남색 코트뿐이었다. 눌린 팔 안에서 숨이 막혀왔다. 시야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아서. 카게야마는 그냥 눈을 감았다. “토비오쨩. 나 좋아해?” “아시잖아요.” “. 알면서 묻는 거야.” “좋아, 해요. 잘 모르겠지만. 좋아해요.” “뭐야, 그거?” “좋아해요.”

좋아해요. 좋아하고 있어요. 그렇게 말할 때마다 제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오이카와에게 낚아채여서, 갈고리로 뜯기듯이. 오이카와는 몇 번이고 물어봤다. 귓속으로 흘러들어오는 물과 같이, 졸졸졸 흘러 넣었다. 나 좋아해, 토비오쨩? 그 말을 들으면 온몸이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아는데도. 카게야마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감고, 오이카와가 끌어당기는 대로. 좋아해?

 

. 나도, 좋아해. 좋아하고 있어, 토비오쨩.” “거짓말하지 마세요.” “우와, 너무한다. 오이카와씨 의심하는 거야?” “믿는다고 해도, 거짓말이니까요. 거짓말은 믿기 싫어요. 믿어봤자 거짓말이잖아요. 서브 알려주겠다는 오이카와씨 말처럼.” “으응오이카와씨 거짓말은 안 하는데? 항상 진심이야. 서브는 알려주지 않을 거니까 싫다고 말하는 거고, 좋아하니까 좋아한다고 말하고.” 졸졸졸 흘러들어오는 말의 물방울은 귀 안을 가득 메웠다. , 알고 있어요. 오이카와씨가 거짓말 잘한다는 거. 쿠니미한테 캐러멜 사탕 사준다고 해놓고 우유빵 사주고, 이와이즈미씨한테 안 한다고 말해놓고 사귀지도 않는 여자 선배랑 키스하고. 저랑 연애한다고 해놓고, 저를 먹어버릴 생각만 하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어요. 사실 저는 다 알고 있어요. 거짓말은 믿지 않거든요. 카게야마는 고개를 도릿짓했다. 이번으로 세 번째였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정수리에 턱을 두었다. 무거워진 머리에 카게야마가 삐죽 입을 내밀었다. “나 이렇게 신뢰가 없었어? 토비오쨩, 나 좋아한다면서 안 믿어주고. 오이카와씨 서운한데?” “믿는 거랑 좋아하는 건 다르잖아요. 좋아하지만 오이카와씨 말은 믿을 수 없어요. 그것뿐이에요.” “나 좋아해? 토비오쨩.” “왜 자꾸 물어봐요. 좋아한다니까요?” “나랑 하는 연애, 좋아?” “모르겠어요.”

 

오이카와와 하는 연애부터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달, 애초에 얘기했던 것은 한 달 뿐이었다. 우리 한 달만 연애해볼까? 그 한 달이 지나면 뭐가 있는 걸까. 자신에게 짜증만 내던 오이카와가 눈에 띄게 상냥해진 것은 연애하기로 한 때부터였다. 토비오쨩, 다정한 오이카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귀를 의심할 정도의 달콤한 목소리. 설탕을 졸이면 그런 목소리가 만들어지는 걸까. 정성스레 모양이 예쁜 각설탕만 골라서, 몇 시간이고 졸인 시럽의 맛. 한 달이 지나면, 한 달이 지나면. 카게야마는 매일 밤 그것만을 생각했다. 왜 한 달일까? 한 달이 지나면 더는 오이카와씨의 그런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걸까? 한 달이 지나면오이카와는 더는 카게야마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 ✤ ✤

 

 

카게야마, 이거. 네 거지?” 이름이 불려서 고개를 돌린 곳에는 쿠니미가 있었다. 그 손에 들린 검은색 목도리가 낯익었다. 이미 많은 부원이 옷을 갈아입고 나간 한적한 부실에서, 손이 느려서 여태 나가지 못한 카게야마에게 쿠니미가 말했다. “저기 떨어져 있던데.” 쿠니미의 손이 오이카와의 사물함 근처를 가리켰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다. 전날 오이카와가 멋대로 뺏어간 목도리였다. 카게야마의 집 앞에서 헤어질 때. 오이카와가 씨익 웃으면서. 여기까지 데려다줬으니까, 오이카와씨한테 상 하나만 줘. 카게야마의 붉어진 귀를 손가락으로 살살 매만지면서, 오이카와는 속삭였다. 달콤한 감각이 카게야마의 머릿속에 퍼졌다. 앗 하는 사이에 목덜미는 생경한 바람으로 뒤덮였다. 다 지나지 않은 겨울의 알싸함이 뒷목까지 덮쳤다. 그 감각이 되살아나는 느낌에 카게야마는 뒷덜미를 매만졌다. 쿠니미가 뭐하냐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끄덕,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인 뒤 손을 뻗었다. 쿠니미에게서 건네받은 목도리는 차가웠다.

고마워.” “오이카와 선배랑 요즘 뭐 하고 지내는 거야?” “?” “요즘 묘하게 잘 지내잖아. 특히 둘만 있을 때.” “…….” 쿠니미는 카게야마가 목도리를 잡은 후에도 손을 놓지 않았다. 목도리를 따라서 카게야마의 무언가가 쿠니미에게로 옮겨가는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질끈 눈을 감고 싶었다. “무슨 얘기라도 들었어?” “아니, 그런 거 아니야.” 쿠니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정적. 조용해진 부실. 이미 쿠니미와 카게야마를 빼곤 모두 돌아간 후였다. 킨다이치가 밖에서 쿠니미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와 돌아가는 것이 요즘의 기정사실이었으니까. 쿠니미와 킨다이치는 카게야마를 기다리지 않았다. 요즈음 카게야마의 옆에는 항상 오이카와가 있었다. 그것도 한 달째였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한 달, 연애해볼까. 했을 때부터 날을 세었다. 어째서일까. 그저 매일 아침 일어나면 오늘로 며칠째. 저절로 계산이 됐다. 그것이 오늘로 꼭 한 달이었다. 오늘,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한 달 전만 같았다. “그래. 알았어.”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목도리에서 손을 놓았다. 쿠니미의 손이 떨어진 목도리가 무거웠다. “내일 보자.” “. 내일 봐.”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대화를 나누고, 쿠니미는 부실을 나갔다. 덜컥, 문고리 소리가 유난히 울렸다. 귀 안에서 울렸다. 오이카와의 달콤한 물방울로 가득 찼던 귀는 어느새 말라버려서.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바람이 불고, 시린 공기 속에서 얼어서 떨어지면. 오이카와는 그 귀에 속삭여줄까. 귀를 녹여줄까. 형태도 사라질 정도로, 달콤한 시럽으로 녹여줄까. 카게야마는 목도리를 둘렀다. 귀까지 덮이게 꼭꼭 싸매고, 그 목도리에 고개를 묻었다. 오이카와의 냄새. 오이카와의 품 안에서 나던 냄새가 카게야마를 채웠다. 좋아해요, 오이카와씨. 좋아해요. 말하면 말할수록 떨어져 나가는 귀가 아픈데. 또 말하지 않고는 못 버티니까. 카게야마는 눈을 꼬옥 감고, 다시 뜨고. 몸을 움직였다. 밖에서 오이카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카게야마를 기다리지 않는 오이카와가.

 

 

✤ ✤ ✤

 

 

체육관 밖은 한산했다. 오후 연습이 끝나고, 손이 느린 카게야마가 나오면 항상 이랬다. 겨울이 지나고 있었다. 동아리 홍보지가 벽에서 바람결에 파라락 흔들렸다. 목도리 사이로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카게야마는 후, 엷은 한숨을 내쉬었다. 흘러내린 가방을 다시 고쳐매고, 목도리를 여미고, 발을 내디뎠다. 체육관 근처, 교사(校舍)에서는 또 떨어진 곳이 한곳 있었다. 크게 자란 고목(古木) 아래가 그곳이었다. 키타이치 중이 자랑하는 그 나무는 500년도 더 됐다고 하던데. 카게야마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정확한 숫자는 쥐약이었다. 오이카와와 연애한 한 달은, 그렇게도 잊히지 않았는데. 여름에는 꽤 장관이 펼쳐지는 그 나무 아래는 여자 선배들이 좋아하는 공간이었다. 큰 잎이 그늘을 만들고, 햇볕에게서도. 사람들에게서도 많은 것을 가려주었다. 결국에는 다 보이는데도, 여자 선배들은 뭐만 하면 그렇게 그곳을 찾아갔다. 겨울이어서, 잎이 모두 사라진 가지 아래는 오늘도 여전히. 그 옆을 지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이카와였다. 오이카와의 눈동자가 카게야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여자 선배였다. 이와이즈미가 언젠가 했던 말이, 카게야마의 귀에 떨어졌다. “바보카와, 너 아무 여자하고나 키스하고 다니지 마.” “어어? 이와쨩 혹시 봤어? 몰래 훔쳐보다니 변태!” “보이는 걸 어떡하라고. 여기저기 이상한 짓하고 다니지 마.” “으응알았어. 슬프지만!”

거짓말쟁이. 오이카와는 거짓말쟁이였다. 거짓말은 믿지 않았다. 믿어봤자 진실이 되지 않으니까. 아무리 믿고 싶어도, 진실이 되길 원해도, 한 달을 믿어도 거짓말이니까. 카게야마는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요, 오이카와씨. 오이카와의 눈이 달과 같이 휘었다. 오이카와는 미소 짓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모르는 여자 선배와 고목 아래에서 키스하고 있는 오이카와를. 그저 바닥을 보면서 지나갔다. 귀가 시렸다. 떨어질 것만 같았다. 떨어져서, 툭 하고 떨어져서. 오이카와가 녹여주지 않는다면, 그대로 썩어버릴 텐데.

 

 

✤ ✤ ✤

 

 

토비오쨩.” 뒤쪽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렸다. 습관이었다. 그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눈을 한번 깜빡. 오이카와가 그림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코트는 두르지 않고, 목덜미에 덮여있는 올리브색 목도리는 흐트러져있었다. 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시간이었다. 정갈하게 자리 잡은 코를 한번 훔치더니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 다가왔다. 오이카와가 다가올 때마다 바람이 불어서 카게야마는 눈을 한번 감았다. 다시 떴을 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폭 안았다. 눈앞에 오이카와의 셔츠만이 보였다. 가만히 숨을 쉬면 오이카와의 냄새. “오늘, 한 달째잖아.” “.” “그러니까 이제 연애 끝. 그렇지?” “.” “있지, 이제는 알 것 같아? 연애.” “…….”

연애. 연애인 걸까. 이런 게 연애인 걸까. 카게야마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 토비오쨩. 오이카와가 속삭이는 목소리가 머리끝에서 퍼졌다. 밤이 되면 또,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몸을 감아온다. 발끝에서 시작해서, , 가슴, 귓속까지. 이게 연애인 걸까. “연애는, 이상한 거 같아요.” “이상해?” “. 오이카와씨랑 하는 연애는, 이상해요.” “흐음. 그게 토비오쨩의 결론이야?” “그럼 오이카와씨는 어떠신데요?” “연애?” “. 오이카와씨의 연애는 어떠신데요.” 오이카와는 푸핫, 거칠게 부는 바람과 같이 웃더니 카게야마의 몸을 떼어냈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거친 손길에 카게야마의 몸이 조금 흔들거렸다. 눈을 뜨고 오이카와를 바라보면. 어둑해지기 시작한 저녁 속으로 오이카와의 미소가 녹아들었다. 있잖아, 토비오쨩. 연애는그 입이 예쁘게 움직였다. 아까 여자 선배가 닿았던, 그 입술. 예쁜 분홍빛 입술이 카게야마의 눈앞에서 움직였다.

연애는 중독이야.” 중독. “하면 할수록 빠져들거든. 연애 자체에.” “대상이 누구든 상관없어. 연애 자체에 사랑을 하는 거야. 연애 자체는 좋아할 수 있거든.” 대상은 상관없이. “그러니까, 있지. 토비오쨩. 나랑 연애할래?” 오이카와는 슬며시 카게야마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바람에 차가워졌던 카게야마의 이마가 순식간에 열이 올랐다. 그것을 보고 오이카와는 느릿하게 웃어보였다. 당신의 입술은 독이었다. 내 몸을 옭아매고, 저 깊은 곳까지 떨어뜨리면서. 이곳도 저곳도 모두 녹아버려. 당신의 목소리는 독이었다.

한 달만 저를 사랑해주시는 건가요.” “한 달만 너를 바라보는 거야. 그리고 또 한 달, 또 한 달. 연애는 중독이니까, 하다 보면 토비오쨩과의 연애에만 빠져들지도 몰라.” “그러니까 오이카와씨는 거짓말쟁이인 거에요.” “? 너무하네. 오이카와씨는 항상 진실만 말한다니까? 진짜야.” “거짓말쟁이.”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몸에 안겼다. 그 팔을 돌려 그의 등을 감싸 안았다. 차가운 교복끼리 닿았다. 밤이 내리깔렸다.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렸다. “좋아해, 토비오쨩.” , 떨어졌다. 귀가 떨어졌다. “나도 좋아해요, 오이카와씨.” 몸의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오이카와의 손톱에 긁혀서, 미소에 긁혀서 오늘도.

적어도 카게야마의 몸이 모두 사라지기 전까진 할 수 있는 연애였다. 이렇게 또 한 달,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녹아내려 간다.









[오이카게] 오이카와의 벚꽃

*하이큐 글전력 주제 : 벚꽃 참여했습니다.

*지루함 주의입니다..

 

 

 

꽃놀이란 말을 처음 알았을 때. 카게야마는 정말로 꽃을 가지고 노는 놀이인 줄 알았던 자신을 떠올렸다. 꽃과 놀이라는 말의 결합이 의아했다. 꽃으로는 어떻게 놀면 되는 걸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오이카와가 꽃놀이 갈까?” 라고 했었던 날은, 정말로. 카게야마의 안에서 꽃놀이라는 말이 이질적인 단어가 될 정도로 고민했었다. 저로서는 답이 나오지 않아 결국 오이카와에게 답을 얻고자 찾아갔으나, 돌아온 대답은 맥빠질 정도로. 오이카와는 방금 핀 꽃처럼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바보, 벚꽃 보러 가는 것뿐이야.”

벚꽃. 벚꽃. 그 말을 되풀이할 때마다 카게야마의 머릿속이 온통 분홍빛으로 가득 찼다. 벚꽃은 분홍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막상 떠오르는 것은 분홍색 일색이었다. 정면으로 떨어지는 태양이 아닌, 고스란히 퍼지는 햇볕. 따뜻한 공기 가운데에 퍼지는 약간은 차가운 바람. 그곳에 흩날리는 벚꽃잎들. 바람이 불 때마다 폭풍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퍼붓는 벚꽃잎의 홍수는 아름다운 공포였다. 모두 떨어지면 결국에는 엉성한 나무만이 남을 뿐이었다. 나무는 아주 짧은 순간 모두의 눈빛을 끈 뒤에, 결국에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만다. 나머지는 아주 긴, 긴 겨울 뿐이었다. 벚나무에게는 벚꽃잎이 없는 자신이란, 여름이든 가을이든 겨울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카게야마는 그걸 보는 것이 싫었다. 꺾일 때를 놓쳐버린 고목처럼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싫었다. 언젠가는 져버리는 꽃잎. 언젠가는 사라져버리는 봄. 그런데도, 벚나무는 어째서. 매번 그다지도 꽃잎을 내버리는지. 제 몸을 모두 소멸시키려는 듯이. 그때만큼은 벚나무가 무서워 보일 정도로, 카게야마에게는. 벚꽃잎이 흩날리는 모양은 무서운 신기루였다.

 

그래서일까, 오이카와와 가는 꽃놀이는 조금 두려웠다. 어쩌면 카게야마와 오이카와 앞에서 모두 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불가능한 일이란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카게야마는 그런 장면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오이카와와 바라본 벚나무, 순식간에 바람이 몰아쳐서, 모두 떨어진 벚꽃잎들. 오이카와와 카게야마의 머리에도, 땅에도, 공기 중에도 온통 벚꽃잎으로만 가득해서. 그때 오이카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카게야마는 그것이 무서웠다. 오이카와는 어쩌면, 벚꽃잎처럼.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몰랐다. 그 뒤엔 긴, 긴 겨울을 오이카와 혼자 보낼지도 몰랐다. 벚나무는 오이카와를 떠올리게 했다.

 

 

✤ ✤ ✤

 

 

, 아직 남아있네.”

그러게요.”

연습으로 바쁜 오이카와와 카게야마는 시간을 맞추는 것이 힘들었다. 서로 학교도 다르고, 연습시간도 달랐다. 같은 것은 둘 다 연습을 빠지진 않는다는 점뿐이었다. 겨우 잡은 시간은 벚꽃 만개기보다도 꽤 늦은 시기였다. 벚나무가 그득하니 늘어선 공원은 없지만, 몇 그루가 모여 있는 공터는 그 나름대로 장관이었다. 어느 정도 떨어진 벚꽃잎이 바닥에서 흥건히 분홍빛 호수를 이루고 있었다. 그 꽃의 잔해들이, 얼마나 많은 나무가 제 몸을 흔들어댔는지 알게 해줬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위로 들었다. 빈틈없이 피어있는 벚꽃 사이로 포근한 햇살이 쏟아졌다. 따스한 날이었다. 가쿠란을 입고 있는 몸이 조금 더웠다. 오이카와는 이미 세이죠의 재킷을 벗은 상태였다. 홍차 빛의 머리카락이 연한 바람에 조금씩 흔들 흔들거렸다. 그 사이로 물 흐르듯 흐르는 벚꽃잎이, 한 방울. 두 방울. 오이카와 주변으로 떨어졌다.

 

덥지 않아? 가쿠란.”

조금, 덥네요.”

오이카와가 미간을 찡그리며 웃었다. 항상 깔끔한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카게야마는 목 부근의 단추뿐만이 아닌, 나머지의 단추도 모두 풀었다. 그런 뒤 오이카와가 했듯이 가쿠란을 벗어 팔에 걸쳤다. 짙은 검은색의 가쿠란에 떨어진 벚꽃잎이 묘하게 눈에 띄었다.

토비오.”

.”

나 내일 졸업식인데.”

알아요.”

카게야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내일이면, 오이카와는 졸업하고. 도쿄의 대학으로 가버린다. 어긋나기만 했던 시간을 겨우 맞췄더니 다시 어긋나버린다. 뭐가 아쉬운 걸까. 카게야마는 그저 어색했다. 오이카와가 없는 미야기가 어색했다. 오이카와가 없는 인터하이가 어색했다. 오이카와가 제 영역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이 카게야마의 미간을 좁혔다.

 

뭘 안다는 거야. 오이카와는 장난스레 내뱉은 뒤 미소 지었다. 화려한 얼굴에 꽃과 같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딜 가나 눈길을 끄는 사람이었다. 화려한 벚나무와 같은 사람. 당신을 보면 눈이 부셔서 모두 넋을 놓고 바라보지만, 무대 아래의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미소를 바라볼 때면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도 결국에는 똑같으면서. 무대 위의 모습만을 바라보는 건 카게야마도 같았다. 온통 빛으로 가득 찬 등만을 바라봤다. 오이카와는 자신에게 항상 큰 존재였다. 그가 서브를 한 번 내리칠 때마다, 벚꽃잎 폭풍이 들이닥치는 것처럼. 눈부셔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그를 붙잡고 싶어서, 분홍색 시야 사이로 손을 내뻗으면 오이카와는 그대로 사라져버리는 느낌이었다.

 

도쿄로 갈 거니까.”

.”

절대 따라오지 마. 알았지?”

……왜요.”

그러라면 그냥 네, 알겠습니다 하면 되는 거야. 여전히 귀엽지 않은 녀석이네.”

오이카와는 짜증스럽게 내뱉으며 카게야마의 머리를 헤집었다. 입꼬리는 여전히 올라간 채였다. 따스한 햇볕으로 상기된 두 볼이 붉었다. 카게야마의 얼굴 또한 붉었다. 카게야마의 정수리가 뜨거웠고, 오이카와는 그 열을 느끼는 듯 가만히 손을 대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오이카와를 올려다봤다. 좁혀진 미간으로 인해 험상궂은 얼굴이 오롯이 오이카와만 바라보고 있었다. 건방진 녀석,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내뱉었다. 카게야마의 정수리에 놓여있는 오이카와의 손에 한 방울, 벚꽃잎이 떨어졌다. 오이카와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봤다. 카게야마에게는 보이지 않는 벚꽃잎이 떨어질 듯 말 듯 흔들거렸다. 오이카와는 입술을 모아 그 벚꽃잎을 다시 공기 중으로 흘려보냈다. 흔들, 흔들. 그 새끼손톱만 한 잎이 빙글빙글 돌면서.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불어넣은 바람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뭐하시는 거에요?”

? 벚꽃잎은 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거잖아.”

오이카와는 가만히 미소 지었다. 떨어지기 위해 몽우리가 맺히고, 떨어지기 위해 꽃이 피고.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셔츠를 가만히 붙잡았다. 카게야마가 상상했던 그대로, 어쩐지 오이카와가 사라질 것 같아서.

도쿄로 가면 영영 안 오실 건가요?”

. 안 올 거야. 토비오가 있는 곳으로는.”

그렇게 혼자서 어디까지 가시려구요?”

글쎄. 다 떨어질 때까지?”

오이카와는 피식 웃음 지었다. 카게야마의 정수리에 놓였던 손이 천천히 떨어졌다. 손이 가르는 공간 사이로 벚꽃잎이 흩어졌다. 세찬 바람이 불고, 나뭇가지를 흔들고, 벚나무는 또 한 차례 벚꽃을 제 몸에서 깎아냈다.

오이카와가 셔츠를 붙잡고 있는 카게야마의 손을 떼어내고, 그 몸을 돌릴 때까지. 카게야마는 울렁거리는 가슴에 어지러웠다. 언젠가 상상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의 등이 분홍빛 시야 사이로 보이고, 오이카와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아직도 그 등이 커 보이는데. 당신은 아직도, 내게는 봄인데.

따라, 갈 거에요.”

…….”

따라갈 거라구요. 도쿄. 그러니까, 그때까지. 혼자 멋대로 사라지지 마세요. 기다리셔야 돼요.”

오이카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몸은 아직도 벚꽃잎을 내뿜고 있었다. 언젠가 져버릴 때를 기다리듯이, 그렇게 가만히 혼자서. 카게야마가 없는 도쿄에서, 그는 길고 긴 겨울을 보낼지도 몰랐다. 카게야마는 조급하게 내뱉었다.

도쿄는 더 벚꽃이 많죠? , 같이 보러 가요. 꽃놀이. 그때는 오이카와 선배 시간에 맞출게요. 그러니까또 같이 가요.”

 


, 같이. 당신과 벚꽃을 보고 싶어요. 그때는, 당신의 손을 잡을 테니까. 나만 두고 져버리지 않게, 붙잡고 말 거니까.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길고 긴 겨울을오이카와의 겨울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오이카게] 봄비를 닮은 사람

 

 

 

 

오랜만에 맞는 봄비였다. 소리도 없이 내리는 봄비는 3월 막바지에야 겨우 내리기 시작해서 겨울의 폭풍같이 휘몰아치던 바람을 잠재웠다. 부슬비라고 하던가, 이런 비를. 카게야마는 복슬복슬 흐르는 비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검은 우산 아래서의 까맣던 손이, 확 노래지면서 비를 맞게 되었다. 손에 와 닿는 감촉도 없이 젖어갔다. 서서히 물웅덩이가 생기기 시작하는 손을 다시 끌어당겨 우산 아래로 옮겼다. 젖어버린 손을 타고 물방울이 주륵 흘러내렸다. 아무런 느낌도 없이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보면서 카게야마는 다시 눈을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빗줄기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연하게 부는 바람은 카게야마의 귀 뒷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

 

카게야마는 툭 내뱉었다. 소리도 들리지 않는 빗줄기 안에서 카게야마의 목소리는 우산 안에서 맴돌았다. 저도 모르는 새에 자신의 몸을 적시는 봄비. 누군가와 닮았다, 는 생각이 카게야마의 머릿속에서 조용하게 흘러갔다. 카게야마는 눈을 감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조그맣게 보슬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몽글몽글하게 귀에 들어오는 소리는 간질거리는 느낌이었다. 카게야마에게 있어서 봄비는 생소한 존재였다. 아니, 생소하다기보다낯선 느낌이었다. 무섭게 쏟아내리는 소나기나, 여름의 끝없는 장마 같은 장대비나, 겨울의 거친 바람 속의 흩날리는 비가 아닌. 소리도 없이 몸을 적시는 봄비는 낯설었다. 모 아니면 도,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확실한 카게야마에게는 낯설고. 또 어려웠다. 항상 봄비를 맞이할 때면 누군가가 생각났다. 벌써 이런 봄비 아래에서 그 사람을 생각한 것도 몇 년째였다. 이제는 조금 알 법도 한데여전히 어려운 그 사람은 카게야마에게 수수께끼였다. 눈앞에 흐르는, 느낌조차 없이 젖어드는 봄비와 같이 오이카와 토오루는. 카게야마에게 하나의 답 없는 문제였다.

 

토비오쨩.”

―…오이카와 선배.”

 

비를 타고 들려온 목소리에 카게야마는 등을 돌렸다. 오이카와가 서 있었다. 세이죠 교복을 입고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든 채, 한 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 눈가는 찡그리고 웃으며 서 있었다. 보일 듯 말 듯한 빗줄기 건너로 보이는 오이카와는 약간의 신기루처럼 보이기도 했다. 카게야마는 벌써 약간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우산을 꼭 잡았다. 검은색 우산이 약한 바람에 조금 흔들렸다.

 

뭐해? 가만히 서서.”

여기서, 기다리라고.”

여기 말고 저기. 저쪽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잖아.”

 

오이카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까딱했다. 카게야마가 그쪽으로 얼굴을 돌리자 멋들어진 카페가 눈에 보였다. ‘멋들어진이란 표현은 오이카와에게 배운 말이었다. 카게야마는 멋들어진게 무엇이냐고 오이카와에게 반문했지만 오이카와는 저런 걸 말하는 거야라며 카페를 가리켰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말에 있어서는 오이카와가 더 능숙했기 때문에 그런 거냐며 아무렇지 않게 넘기곤 했다. 카게야마는 멋들어진카페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 안에 들어서면 오이카와는 너무나도 어울리는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사실 오이카와는 어디에 서 있어도 풍경을 만들어내는 그림 같은 사람이었다.

 

뭔가 저런 데 혼자 있는 건 거북해서요.”

하핫, 그런 무서운 표정 짓고 있으면 당연히 그렇지.”

뭐라고요?”

, . 인상 쓰지 말라니까? 인상만 안 쓰면 꽤 괜찮은 얼굴인데 말이야.”

…….”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 다가와 우산 아래로 손을 뻗었다. 연한 민트색의 우산은 세이죠 교복과도 어울려 오이카와의 흰 피부를 더욱 드러냈다. 온통 검은색 일색인 카게야마의 우산 아래에 오이카와의 흰 손이 불쑥 들어왔다. 우산과 우산이 겹쳐 비가 묻지 않은 그 흰 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오이카와가 픽 웃었다.

 

, 안 잡아?”

밖이잖아요.”

, 어때?”

 

오이카와는 으쓱하면서 그저 공기 중에 떠 있는 카게야마의 손을 끌어 잡았다. 우산끼리 맞부딪쳐 어느 정도의 충격이 우산을 잡고 있는 카게야마의 손으로 전해졌다. 오이카와의 무게였다. 약간 버거운 느낌이 들면서도 기분 좋은 무거움. 눈앞의 오이카와는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오이카와에게 잡힌 손이 뜨거웠다. 부슬거리며 내리던 비는 어느새 빗줄기가 많이 약해져 있었다. 봄비란 그런 것이었다. 저도 모르는 새에 시작되고, 저도 모르는 새에 그치고. 그러면서도 어느새 봄비에 함빡 젖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것이었다.

 

 

✤ ✤ ✤

 

 

카페 안에선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딸랑가벼운 종소리에 종업원들은 고개를 돌아보며 인사를 했다. 카페 내부는 많이 북적이진 않았다. 다만 봄비 탓이었을까,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창가에 앉아있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끌어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평소에도 자주 앉는 그 자리만 고집하는 오이카와를 카게야마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리는 어디든 똑같을 텐데도, 오이카와는 매번 그 자리에 가 앉곤 했다. 그 이유를 물었을 때 오이카와는 기억하려고라고 대답했다. 무얼 기억하고자 한 걸까. 오이카와의 대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카게야마도 그에 대해서는 짚이는 점이 있었다. 정해진 자리에서 보는 오이카와는 약간 빛이 났다. 약간 노란 전등불빛이 몸에 닿아 부서져 흰빛을 뿜어냈다. 카페라떼를 마시는 손가락의 움직임, 눈의 움직임. 가볍게 내렸던 눈을 들어 정면을 바라볼 때의 그 얼굴. 카게야마는 그 모든 것들을마치 그 자리에 있는 듯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것도 모두 저 자리에서만 오이카와를 마주 본 덕이었다. 어쩌면 오이카와도 그런 의미였을지도 몰랐다. 그 빛의 방향에 따라 음영이 지고, 주변의 풍경에 녹아드는 그는 하나의 그림이었다. 그에게도 카게야마가 그런 모습일까.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토비오쨩은 언제나 먹던 거지? 나도 그걸로 주문했어.”

왜 항상 마시던 카페라떼 아니구요?”

비오니까. 가끔은 좋잖아.”

비가 오면좋은 건가요?”

. 비가 오면 같은 걸 마시고 싶잖아.”

…….”

 

카게야마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어쩐지 고개를 숙이고 싶었다. 얼굴에 볼그랗게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부끄러운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이다, 정말로. 오이카와는 자리에 앉더니 재밌어하는 표정으로 카게야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몸은 약간 앞으로 기울이고, 항상 보던 부드러운 눈빛으로. 오이카와가 앉아있는 의자 뒤편은 통유리라서 밖이 그대로 보였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뒤로 비치는 가느다란 빗줄기에 눈이 갔다. 봄비는봄비는, 오이카와를 닮았다.

 

오이카와 선배는 봄비를 닮았어요.”

?”

 

갑작스레 툭 튀어나온 말에 오이카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더 놀란 것은 카게야마였다. , 하는 마음에 서둘러 고개를 숙여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이카와가 무슨 말이야? 반문하며 고개를 아래쪽으로 내려 카게야마를 올려다봤다. 앞머리가 길지 않아 카게야마의 얼굴이 다 가려지지 않은 것이 카게야마의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잔뜩 달아오른 얼굴을 오이카와는 궁금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러더니 이내, 어느새 좁아진 미간을 흰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머리가 밀리는 느낌에 카게야마가 오이카와를 마주봤다. ? 말해봐, 토비오쨩.

 

저기, 그러니까.”

.”

봄비는, 언제 내리는지도 모르게 내리잖아요. 그칠 때도 그렇고.”

.”

소리도 안 들리고, 아무런 기척도 없고. 그래서 괜찮나 보다, 하고 발을 내디디면 순식간에 젖어버려요. 봄비로. 전부.”

, 그렇네.”

 

오이카와는 약간의 웃음기를 지우고 카게야마를 보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저도 모르게 오이카와의 기분이 나빠질 만한 말을 내뱉었나 고민해봤지만 아무런 짐작도 가지 않았다. 카게야마의 말이 나오길 기다리는 건지 오이카와는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해도 되는 걸까, 하면 안 되는 걸까. 카게야마는 짧은 시간 고민했다. 그 순간 오이카와의 등 뒤로 흐르던 봄비가 그치는 것 같았다. 아무런 빗줄기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바라보던 카게야마의 눈에 얇게 봄비가 다시 보였다. 멈춘 것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바닥을 적시고, 나무를 적시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우산 위로 떨어져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그러니까오이카와 선배도. 어느 순간 저를 적셔서 이것도 저것도 다 오이카와 선배로 만들어버리니까. 저도 모르는 새에 모두 흠뻑 젖어서 말릴 틈도 없이 오이카와 선배로 가득 차버려서. 봄비를 닮았구나, 하고.”

…….”

 

오이카와는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카게야마를 바라봤다. 카게야마는 조심조심 오이카와의 눈치를 살폈다. 화나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즐거워 보이지도 않았다. 알기 힘들었다. 정말이지, 알기 힘든 사람이었다. 카게야마는 그렇게 생각하던 머리가 순간 새하얘졌다. 오이카와의 얼굴이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하얀 피부가 목덜미부터 시작해서, 입술, , 이마까지. 그 작은 흰 얼굴이 전부 붉게 물들었다. 카게야마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오이카와를 바라보자 오이카와는 갑자기 짜증을 부렸다.

 

으아아, 정말이지! 토비오쨩 진짜 바보야?”

, ?”

 

갑작스레 욕을 얻어먹은 카게야마는 불쑥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다시 한 번 머리가 새하얘졌다. 오이카와가 붉어진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며 테이블에 풀썩 엎어졌다. 부드러운 오이카와의 홍차 빛 머리가 보였다. 보송보송하게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머리는 만지면 너무도 부드러워 이 세상의 감촉이 아닌 느낌을 느끼게 했다.

 

바보 토비오쨩. 날 또 죽이려고?”

, 뭘 죽여요?”

맨날,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언제부터 그렇게 건방진 말을 할 수 있게 된 거야?”

……오이카와 선배?”

 

카게야마는 툭툭 내뱉는 오이카와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아까 봤던 붉어진 그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그 얼굴을 잡고, 저도 몰랐지만. 어째선지 키스하고 싶었다. 카게야마는 제 얼굴에도 확확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어째선지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알고 보니 생각한 것을 오이카와에게 그대로 내뱉는 것은 처음이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머리를 부드럽게 매만졌다. 보드랍게 퍼지는 머리카락은 예쁜 빛을 띠었다. 빛이 부서져, 반짝반짝.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손길을 느끼는 건지 머리를 살짝 틀어 옆얼굴을 보였다. 정갈한 옆모습이 카게야마의 눈길을 끌었다. 그 자세 그대로, 눈길만을 들어 카게야마를 바라봤다. 카게야마는 움찔, 몸이 떨렸다. 그 홍차 빛 눈동자가 빛을 받아 신기한 빛을 띠었다. 오이카와의 볼은 약간 발그랗게 물들어 있었다.

 

토비오쨩, 건방져졌어.”

제가요?”

. 중학교 때보다, .”

, 런가요. 아니, 중학교 때도 건방지진 않았어요!”

 

카게야마는 약간 언성을 높였다. 오이카와는 그에 화내는 기색도 없이 생글 웃어 보였다. 예쁜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었다. 붉은 입술이 분홍빛 볼에 어울렸다.

 

너도봄비야.”

?”

봄비라구.”

…….”

 

카게야마는 아까 오이카와가 했듯이 서서히 얼굴이 물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이내 푹. 다시 고개를 숙여버렸다. 이번엔 오이카와가 키득거리며 몸을 일으켜 카게야마를 바라봤다. 카게야마는 마주 볼 수 없었다. 심장이 이상한 리듬으로 뛰고 있었다. 밖에선, 오이카와 건너편에선. 벌써 그친 봄비가 햇볕을 받아 바닥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맑은 햇살, 바닥을 적신 비. 마치 당신처럼.

 

토비오쨩, 나 봐봐.”

싫어요

? 고개 들어보라니까?”

 

오이카와는 부드럽게 카게야마의 볼을 쓰다듬었다. 카게야마는 서서히 눈을 들었다. 오이카와가 미소 짓고 있었다. 예쁜 사람이다. 어딜 가나 풍경이 되는 사람이다. 햇살 아래에서도, 빗줄기 아래에서도, ‘멋들어진카페에서도. 그 풍경 속에 젖어드는 게 자신이 되길 바랐다. 온통 오이카와로 젖어서, 그 안에 살고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오이카와도.

오이카와는 테이블 위에 놓였던 카게야마의 손을 깍지껴서 맞잡아, 쭉 자신에게로 당겼다. 덕분에 카게야마의 몸이 오이카와쪽으로 조금 기울었다. 그대로, 오이카와는 가볍게 카게야마의 입술에 키스했다. 스칠 뿐인 키스였다. 바로 앞에 오이카와의 눈동자가 있었다. 코가 스쳐서 오이카와의 냄새가 났다. 달콤한 향기였다. 약간의 민트향도 섞인, 오이카와의 냄새. 카게야마는 맞잡은 손에 힘을 줬다. 따스한 기운이 그 안에서 피어났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눈을 바라보고, 서서히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카게야마도 부드럽게 눈을 감았다. 생크림같이 말랑한 입술이 와 닿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 오이카와도 또한, 맞잡은 손에 힘을 줬다.

[오이카게] 카게야마의 맛은 달다.

* 퍄님이 리퀘해주신 오이카게입니다 u//u

* 제가 사랑니로 한동안 고생해서..카게야마에게도 충치를 만들어줬습니다. 
 

* 리퀘 신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충치?”

 

  킨다이치의 목소리다. 오이카와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킨다이치와 쿠니미, 그리고 카게야마. 일상의 조합이었다. 평소 킨다이치의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말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빨리 찾아온 변성기로 인해 목소리를 크게 내면 모두의 시선을 끈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또한 그리 큰 목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그 너무나도 의외의 단어에, 오이카와는 그만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킨다이치와 쿠니미가 카게야마에게로 몸을 향해있었다. 체육관 내의 밝은 조명이 쏟아지는 한가운데, 카게야마는 볼을 감싸고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볼을 감싸면서도 절대 배구공을 놓지 않는 게 카게야마다웠다. 오이카와는 서브를 내려치려던 손을 멈추고 카게야마를 바라봤다. 카게야마의 눈동자는, 슬며시 물기를 띄고 상대 없는 원망이 섞여 있었다.

  충치. 몇 년 전 오이카와에게도 큰 두려움의 단어였다. 2년 전, 카게야마와 같은 나이였을 때. 14살의 여름, 오이카와는 충치로 인해 갖은 고생을 하다가 결국 치과에 갔다. 그때의 아픔과 공포를 떠올리면 지금도 조금 몸이 떨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그래서일까. 이상하게 오이카와의 마음속에서 저릿하게 검은 감정이 꿈틀거렸다. 이걸 뭐라 부르면 좋을까. 괴롭히고 싶은 마음? 장난치고 싶은 마음? 아니면? 아니면?

  오이카와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제하지 못하면서 배구공을 높이 치켜들었다. 타앙. 총소리에 가까운 충격음이 체육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카게야마의 눈동자가 등 뒤로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 느낌이 좋다. 오늘의 서브는.

 

 

✤ ✤ ✤

 

 

   토비오쨩.”

  오이카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카게야마가 착각해서 뒤돌아볼 정도로, 다정한 목소리였다. 오이카와 선배. 상대를 알아챈 카게야마가 이마를 찌푸리며 입에 물고 있던 빨대를 쪼옥 빨았다. 오이카와는 점심, 오후 1240분이면 항상 카게야마가 이곳에 와서 자판기의 우유를 뽑아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안뜰을 지날 때면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선 서브 가르쳐주세요!’하며 귀찮게 하곤 했으니까. 카게야마를 우연히 만나는 것은 항상 오후 1240분 자판기 앞이었다. 오이카와는 천천히 미소 지었다. 여름의 태양은 뜨거웠고, 쏟아지는 햇볕의 칼날 앞에서 카게야마는 차양 하나 없이 서 있었다. 그 검은 머리카락은 햇빛을 모두 끌어안으려는 듯 연하게 빛났다. 그 앞머리는 땀으로 인해 이마에 달라붙어 흐트러져있었다.

 

   충치라며? 아침에 들었어.”

   아직 아니에요. 그냥, 조금 이가 아파서.”

 

  오이카와에게 들킨 것이 쑥스러웠는지 카게야마의 눈가가 사르르 붉어졌다. 미간을 좁히고, 입은 삐죽 내밀고. 시선은 틀어 내린 채. 여느 때의 카게야마였다. 그 입가에 비어져 나온 우유가 희었다. 오이카와는 엷게 땀이 스며든 입가를 가볍게 핥았다. 짠맛이 나야 하는데, 연한 달콤한 맛이 나는 듯했다.

  오이카와는 우유를 다시 쪼옥 빨아들이는 카게야마의 볼을 스치듯 쓰다듬었다. 카게야마는 이미 오이카와의 약간 서늘한 손길이 익숙한지, 눈을 들어 바라볼 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까만 눈동자에, 쏟아지는 햇빛, 카게야마의 이마 사이로 보이는 투명한 땀방울. 오이카와는 이마 옆에 흐르는 땀이 간지러웠다.

 

   오이카와씨도 충치로 고생한 적이 있어서. 친절한 오이카와씨가 한번 봐줄까?”

   …….”

 

  카게야마의 미간이 더욱 좁아졌다. 올곧게 오이카와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는 의심을 담고 있었다. 내가 언제 토비오쨩을 속인 적이 있다고. 오이카와는 그렇게 말하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카게야마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더니, 다시 우유를 빨아들였다. 그러더니, 꿀꺽. 그 작은 목젖을 움직였다.

 

   ..어요. 왠지 오이카와 선배한테 봐달라고 하면 더 심해질 거 같아요. 치과 갈래요.”

 

  아직도 의심하는 듯한 발언에 오이카와는 욱, 짜증이 치밀었지만 애써 목 아래로 내리며 다시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다시 손을 들어, 이번에는 엷게 우유가 맺힌 입가를 쓰다듬었다. 오이카와의 흰 손가락에 흰 우유가 묻어 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카게야마는 그 행동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치과, 갈 거야? 정말? 엄청 아플 텐데?”

   언젠가.”

   그러다 심해지면 어쩌려고? 그냥 보기만 할게. 경험자에게서 배우는 게 빠르잖아?”

 

  배운다는 말은 카게야마를 움찔거리게 했다. 아무리 부탁해도 결코 서브를 가르쳐주지 않던 그가, 그런 말을. 카게야마는 그럼 서브를 가르쳐줄 것이지, 욱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슬며시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는 미소 지은 얼굴을 풀지 않으며 엄지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가볍게 눌렀다. 붉은 입술이 눌렸다. 더 벌려봐. 말이 없는 강요가 카게야마의 입술을 휘감았다. 카게야마는 눈을 꼭 감으며 입을 벌렸다. 고르게 난 하얀 치아가 오이카와의 눈앞에 여실히 드러났다. 매끈하고 붉은 혀가 덜덜 떨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혀 위에 놓인 미처 삼키지 못한 우유가 침과 함께 섞여 희고 투명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 착하네.”

 

  오이카와는 머리가 저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 어쩌면 아랫배 근처일지도 몰랐다. 어찌 됐든 감각은 하나로 통해있으니까. 오이카와는, 그래. 흥분하고 있었다. 카게야마의 찡그린 얼굴, 떨리면서도 제대로 벌린 입, 그 안에 엷게 비치는 하얀 액체. 오이카와는 얇은 입술을 다시 한 번 핥았다.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힘든지 카게야마의 눈가에 엷게 눈물이 맺혔다. 붉어진 눈가가,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선명했다.

  오이카와는 아랫입술을 누르던 엄지손가락을 움직여 입술 옆에 두었다. 가늘고 긴 검지를 부드럽게 집어넣어 왼쪽 어금니를 느리게 쓸었다. 그 느낌이 생소했는지 카게야마가 눈을 찔끔 감으며 혀에 힘을 주었다.

 

   ...,”

   왼쪽은 괜찮은 것 같네.”

 

  오이카와는 흰 액체가 막을 이루고 있는 볼 점막을 손톱으로 가냘프게 긁었다. 카게야마가 응,.. 목에서 울리는 얇은 신음을 흘린 뒤 눈을 꼬옥 감았다. 결국 얇은 눈방울이 그 붉은 볼을 타고 흘렀다. 오이카와는 저릿해지는 아랫배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번에는 중지도 넣어 혀를 느슨하게 쓸었다. 우유가, 오이카와의 긴 손가락에 얽혀 예쁜 빛깔을 띠었다. 머리 위에서 바로 내리쬐는 햇볕이 손가락을 비추고 지나갔다. 검지는 아랫니의 잇몸을 훑고, 중지는 혀 아래의 예민한 살결을 조심스레 만졌다. 연한, 14살의 입안 점막이 오이카와의 손가락을 감쌌다.

 

   , ........하아...”

 

  카게야마는 숨쉬기 괴로운 듯 눈을 찡그리며 말이 되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오이카와 선배. 그리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오이카와의 손가락이 카게야마의 마음대로 되게 두질 않았다. 혀를 가볍게 긁고, 그 흰 액체를 치아 여기저기에 묻히고, 오이카와의 엷은 미소는 이제 약간의 욕망을 담고 있었다.

   토비오쨩. 오른쪽여기야? 두 번째 어금니.”

   ........으응....”

 

  카게야마는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며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그에 따라 오이카와의 손가락이 혀에 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이제는 꽤 배어 나온 침이 오이카와의 손가락을 더욱 옭아맸다. 오이카와는 중지로 천천히 두 번째 어금니를 만졌다. 그 아래 잇몸이 슬며시 부어올라 있었다. 부은 잇몸을, 서서히. 중지로 매만지면서 동시에 검지로 혀 천장을 가볍게 긁었다. 카게야마는 순간 몸을 크게 떨며 눈동자를 크게 떴다. 그 까만 눈동자 안에 당황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동시에, 약간 다른 빛이 섞인 것도 오이카와는 놓치지 않았다.

 

  . 좋아, 심하진 않네. 치과 가면 금방 치료받을 수 있을 거야.”

 

  오이카와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고, 그리도 붙어있던 손을 뗐다. 손가락에서 미처 떨어지지 못한 침이 고리를 이루어 햇빛 아래에서 반짝거렸다. 흰 우유는 이미 녹은 지 오래였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빠져나간 뒤에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하악대는 숨을 고르는 게 최선이었다. 붉은 눈가에서 눈물방울이 한 번 더 떨어졌다. 그 까만 눈동자 위의 땀이, 이마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촉촉한 입가에선 앞서 고리를 이루었던 침이 묻어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젖어있는 눈동자. 오이카와는 다시 아랫배 근처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비릿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맛이 나는 손가락을 끌어올려할짝. 아까까지 얇은 입술을 핥던 혀로 느릿하게 핥았다.

 

  달콤한 맛이 났다.




+ Recent posts